이 글은 송호수의 『한겨레의 뿌리 길』, 개천학회 강의자료 등에서 뽑아 소개하였고, 필자의 발굴 자료인 『홍사한은』의 내용을 첨가하였음을 밝혀둔다.
[단군조선은 동양고전의 뿌리]
3.생사일여의 연원
반 재 원 훈민정음연구소장 / 국학박사 |
『홍사한은』 17세 여을단군 42년 경자년(서기전1511년경)에 고수노가 말하기를 “사람이 자기의 책임을 능히 안 연후에 죽어 천궁에 가면 의리와 영혼이 모두 보존되어 불멸하는 것입니다.백발은 자신이 한 일의 증표이니 어찌 백발을 한탄만 하여 사업이 이루어지지 못할 것을 근심하여 탄식만 하겠습니까.”라는 내용이 있다.
또 같은 경자년에 여을단군이 도를 물으니 고수노가 대답하기를 “하늘의 도는 통명하므로 삶이라고 기뻐하지 않으며 죽음이라고 화禍라고 하지 않는 것은 시종始終이 있지 않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비교하면 살아있는 때가 살아있지 않은 때만 같지 못할 경우가 있습니다.”라고 생사일여를 말하였다. ‘생사일여生死一如’(서기전1511년경)는 석가보다 1,000여 년 전 단군조선 때 이미 고수노가 한 말이다.
[단군조선은 동양고전의 뿌리]
4.관등행사와 금살방생의 연원
『단군세기』 16세 위나단군 28년 무술년(서기전1583년경)에 “온 나라 제후들을 영고탑에 모이게 하여 천제를 올리고 한인, 한웅, 치우, 왕검 단군의 신주를 모셨다. 5일 동안 잔치를 베풀고 대중들과 더불어 등불을 켜서 밤을 밝히고 경經을 외우면서 뜰을 밟았다. 줄지어 세우고 둥글게 돌면서 애한가愛桓歌를 불렀다.” 3,500여 년 전의 관등행렬을 여기서 본다. 따라서 4월 초파일의 관등행사(서기전1583년)는 석가보다 1,000여 년 전 위나단군 때부터 있었다.
또 서기1363년 행촌 이암의 『단군세기』 47세 고열가 단군 재위57년 임술년(서기전239년)에 “4월 8일 해모수가 웅심산에서 군사를 일으켰다.”라고 했으니 이날을 북부여의 건국기념일로 삼아 관등행사를 하면서 축하잔치를 벌였다. 그리고 『홍사한은』에 “반우천을 태부(국무총리)로 삼고 경태원을 재상(내무부장관)으로 삼고 진평숙을 장수(국방부장관)로 삼아 나라를 세우고 자칭 천제의 아들이라 하고 조선을 흠모하여 동명제라고 하였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이때 이미 성씨가 있었다.
성씨의 기원도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또 『단군세기』 13세 흘달단군 61년 기묘년(서기전1722년)에 금살방생이라 하여 방생 행사도 같이 행해졌으니 불교의 방생행사보다 1,200년이 앞선다. 지금 4월 초파일 방생행사의 옛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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