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단군조선 가림토 38자의 방계와 직계
조홍근(曺洪根)
40여년 족보·역사 연구
[저서] 마고할미로부터 7만년/홍익인간 7만년 역사/천부경 인간완성-제1부 천부경과 음양오행 ·역원리 이해 등
<고조선 문자> 검증역 · 허대동 저. 이민화 감수 / 공학사·법학사·언론학사·인문학사(중문학·영문학·국문학)
해달별문화원 · 천부역사태학원 대표 / 민족회의 상임부대표 / 민족회의 역사광복군 총사령 / 기천검학 범사 / 참한역사신문협의회 감사 / 한뿌리사랑세계모임 자문위원 / 도선풍수지리신문 편집인 / 법무사 |
1) 인도 브라미 문자
인도지역에서 시작되었다는 소위 브라미(Brahmi) 문자는 산스크리트가 되는데 소위 범어(梵語)라 하는 문자이다. 범(梵) 또는 브람, 브라흠(Brahm)이라는 말은 역사적 어원으로 볼 때 바람(風)과 통하는 말이 되는데 단군조선 구족의 하나이던 풍족(風族) 즉 풍이(風夷:藍夷라고도 함)에서 연유한 것으로 강력히 추정된다.
즉, 이는 서기전2224년경에 단군조선의 천자(天子)이던 우순(虞舜)의 신하 우(禹)가 단군조선의 천사(天使)이던 유호씨(有戶氏)의 명을 받아 유상(有象)의 군사와 합공으로 반역자 순을 쳐서 순을 죽인 후, 스스로 반역하여 하왕이라 칭하면서 함부로 단군조선의 제도를 흉내내어 제후를 봉하고 조공을 받는 등 폭돌한 정치를 펼치자, 이에 불만을 품었던 태호복희 후손들이 되는 풍족(風族) 즉 풍이(風夷)가 중심이 되어 하나라를 탈출하여 단군조선의 영역으로 피난하였던 것이며, 이후 이들 풍족이 중심이 되어 서방으로 이동하면서 역사속의 인도유럽어족인 아리안족이 되어 서기전2000년경에 인도지역으로 가서 정착하였던 것에서, 연유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도의 브라미 문자는 소리글자이며, 단군조선의 소리글자인 가림토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는 글자인데, 서기전2181년에 가림토 38자가 정립되기 이전에 사용되고 있던 소위 상음문자(象音文字)를 변화시켜 소리글자로 사용한 것이 될 것이다. 이로써 브라미문자와 가림토는 친연성을 가지며, 단적으로 배달나라 시대에 사용된 공통문자가 되는 것이며, 계통적으로 단군조선의 가림토 38자와는 단군조선 초기에 분화된 방계(傍系)에 해당하는 것이 된다.
단군조선의 화폐가 되는 소위 명도전에 새겨진 문자는 브라미 문자와 같거나 유사한 글자들이 많은데, 이는 브라미문자와 가림토가 친연성이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된다.
2) 일본 신대문자(神代文字)
일본의 신대문자는 서기전660년 이전에 사용되던 문자로서 단군조선의 가림토 38자에 해당하는 문자가 되며, 일부 새로이 만들어 사용되어진 문자로 볼 수 있는 것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단군조선의 가림토가 된다. 그리하여 일본의 신대문자는 계통적으로 보면 단군조선 가림토 38자의 직계에 해당하는 것이 된다.
▲ (좌)일본 이세신궁 원시한글 / (우)아라가야 토기에 새겨진 가림토
3) 아라가야 문자
아라가야는 서기42년에 건국된 가야연맹의 하나로서 지금의 경상남도 함안을 중심으로 하던 나라인데, 이 지역에서 출토되는 토기에 순수한 상형문자로 볼 수 없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단군조선의 가림토 38자에 해당하는 글자도 있고, 이에 속하지 아니하는 글자들도 있어, 전체적으로 보면 소리글자인 가림토 글자이인 바, 단군조선의 삼한관경이던 마한(馬韓)에 속하였던 땅이므로 가림토 38자의 직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원래 김씨 왕족의 가야는 서기42년에 건국되었는데, 그 이전의 김씨족은 서기전110년경부터 서기23년 사이에는 한(漢)나라의 땅인 지금의 산동지역에 살았던 것이 되고, 그 이전에는 소위 흉노족으로서 주로 만리장성 밖에서 서쪽으로는 후대의 돌궐족이 되는 견족(견이)과 북쪽으로는 선비족들과 땅을 나누어 살면서, 서기전7세기경부터 세력이 팽창하여 고대중국의 북방 세력이 되었던 것인데, 원래 흉노족은 서기전2173년경부터 지금의 오르도스 지역에서 시작된 단군조선의 한 부족이었던 것이다.
이에 아라가야인이 단군조선의 문자를 사용한 것은 당연한 것이며, 만약 아라가야의 문자가 김씨왕족이 가져온 문자가 아니라면, 아라가야 지역은 단군조선의 마한 땅이었던 곳이므로 당연히 단군조선의 문자가 되는 가림토를 사용하였던 것이 되고, 후대의 아라가야가 이전의 문자를 계승하여 사용하였던 것이 되는 것이다.
▲ 돌궐문자
|
4) 돌궐문자
서기7세기경에 사용된 돌궐의 문자는 단군조선의 가림토 38자에 해당하는 글자도 있고 아닌 글자도 있는 바, 기본적으로는 단군조선의 상형문자와 가림토 글자의 형태가 된다 할 수 있으며, 단지 시대가 흐름에 따라 글자를 읽는 소리가 달라졌다고 할 수 있고, 문자로만 본다면 가림토의 방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은나라 유적지인 은허(殷墟) 외에 단군조선의 영역이던 발해만 유역과 두만강 유역에 갑골문의 일종인 우골문(牛骨文)이 나타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은허는 산동지역의 서쪽으로 황하 바로 이북에 있는 지금의 안양(安陽)이라는 땅이 대표적인데, 역사적으로 이곳은 은나라의 여러 수도 중의 하나가 된다.
5)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서기1446년에 반포된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은 28자로서 단군조선의 소리글자인 가림토 38자와 직결되므로 가림토 38자의 바로 직계(直系)가 된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정인지 서문에서 이미 옛 시대에 소리글자가 있었음을 밝히고 있으며, 훈민정음의 글자는 소리글자가 되는 고전(古篆) 즉 옛 글자를 본딴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는 것이 된다. 훈민정음의 기본 28자에는 단군조선의 가림토 38자에는 없는 형태의 글자인 ㅎ이 있는 것이 특징이며, 소리에 따라 글자를 만들 수 있도록 체계화시켰으므로 가림토 38자에 있던 글자를 거의 조합하여 모두 만들 수 있는 체제를 갖춘 것이 된다.
▲ 훈민정음
결론적으로, 훈민정음은 조선시대 김시습 선생이 단정적으로 밝혔듯이 단군조선 가림토 38자의 부활(復活)인 것이며, 그동안 단군조선 시대의 가림토 38자에 관한 글자 외 각 글자에 대한 음가(音價)나, 자음과 모음으로 글자를 만드는 서법(書法) 등을 알 수 없었던 것에서 나아가, 음가를 명확히 규정하고 글자를 만드는 법을 체계화시켰다는 사실에서, 세종대왕의 획기적인 업적이라 할 수 있다.즉, 훈민정음의 모음 11자는 가림토 38자 중의 모음과 100% 일치하고, 자음에서는 일부 일치하지 아니하는 것이 있는 바, 훈민정음의 자음 17자는 가림토 38자의 자음 27자를 그대로 적용하거나 글자를 만드는 법에 의하여 보완이 되도록 한 점에서 더 체계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된다.
6) 알파벳과의 관련성
현재 사용되고 있는 표음문자인 소위 알파벳은 역사적으로 소아시아 지역에서 사용되던 문자로서 원래는 상형문자에서 나온 것이며 글자의 수도 많았던 것인데, 시대가 흐름에 따라 순수한 표음문자로 발전한 것이 된다. 역사적으로 약 3,000개이던 상형문자가 표음문자로 진화하면서 60개로 정리되고 다시 30개 안쪽으로 정리된 것으로 된다.
A는 원래 소(牛)의 머리 모양을 나타낸 상형문자에서 변형된 글자가 되어 지금은 소리글자가 된 것이다. 즉, 현재 사용되고 있는 영어의 알파벳은 원래 상형문자에서 진화하여 소리글자로 정착된 것이 되는데, 그 자음이나 모음을 읽는 소리가 단군조선의 가림토 또는 훈민정음, 한글을 읽는 방법과 같거나 유사한 것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A는 ㅐ의 모습과 유사하여 그 음가가 유사하며, B는 ㅣ와 옆으로 된 두개의 U가 결합된 형태의 글자로서 “UUㅣ”가 되어 “비“라고 발음나는 것이 된다. 또, D는 옆으로 된 "ㄷ ㅣ”의 글자가 되며, G는 귀모양으로서 “ㄱ ㅡ ㅣ”로 이루어지는 글자가 되어 “귀”가 되고 구개음화 되어 “쥐”라고 발음하나 여전히 음가는 “ㄱ”이 된다. 이처럼, 알파벳의 소리와 음가는 단군조선의 가림토 방식으로 발음나는 것이 대부분이 된다.
그리하여 알파벳과 단군조선의 가림토 글자는 친연성을 가지는 것이 되는데, 이는 알파벳을 사용하던 역사적 족속들과 알파벳의 원류가 되는 문자를 사용하던 역사적 족속들이 모두 단군조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 되는 바, 알파벳을 정리한 그리이스나 로마에 정착한 사람들이 곧 아리안족으로서 인도의 브라만족과 밀접한 관게에 있는 족속이며, 소아시아지역 또한 수메르지역이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근접한 지역으로서 단군조선의 역사문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된다. 결국 영어의 알파벳은 계통적으로 상형문자에서 나왔으며, 단군조선의 가림토의 일종으로서 브라미 문자와 마찬가지로 방계(傍系)에 해당하는 것이 된다.
7. 고대중국의 배달나라 상형문자 도입과 중국어의 분화(分化)
지금 소위 중국과 중국인이 사용하고 있는 글자는 소위 한자(漢字)이거나 한자에서 변형된 간체자(簡體字)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중국의 대표적인 공식언어는 소위 한어(漢語)라고도 하는 중국어가 된다. 그리하여, 중국의 공식적 글자와 공식적인 언어는 한자(漢字)와 한어(漢語)에 뿌리를 두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한자와 한어는 어떠한 역사를 가질까? 즉, 한자와 한어는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왜 만들었을까? 이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가. 한자(漢字)의 역사 - 배달나라 문자를 도입하다
한자(漢字)는 단적으로 상형문자이다. 고대중국의 역사 속에서 한자의 원류는 진(秦)나라 시대 문자이며, 진나라 이전의 문자는 소위 전국칠웅(戰國七雄)의 문자이며, 그 이전에는 주(周)나라 문자이고, 그 이전으로는 은(殷)나라의 문자이며 그 이전으로는 하(夏)나라 문자이고, 그 이전으로는 요순(堯舜) 시대의 문자이며, 그 이전으로는 황제헌원(黃帝軒轅)이 왕으로 있던 유웅국(有熊國)의 문자였던 것이 된다.
서기전2698년 계해년에 헌원이 공손씨(公孫氏)를 이어 유웅국의 천자(天子)가 되었으며, 당시 염제신농국(炎帝神農國)이 쇠퇴하면서 여러 제후들이 땅을 다투기 시작하였는데, 이때 배달나라의 종주이던 제14대 치우천왕(治尤天王)이 서기전2697년 갑자년에 염제신농국을 평정하여 염제 제8대 유망(楡罔)의 아들 괴(魁)를 다시 단웅국(檀熊國)에 봉하였던 것이며, 이후 헌원이 군사를 일으켜 치우천왕에게 10년을 넘게 총 100여회를 도전하였는 바, 연전연패 한 후 결국 헌원은 자부선인(紫府仙人)의 도(道)에 대한 가르침을 전수받아 진정한 신하로서 치우천왕에게 굴복하여 황제(黃帝)로서 정식 천자로 인정되었던 것이다.
황제헌원은 창힐(倉詰)에게서 문자를 전수받았는데 곧 배달나라 문자이던 소위 과두문(蝌蚪文:올챙이 문자) 또는 조족문(鳥足文:새 발자국 문자)이었다. 실제 역사상으로 창힐은 황제헌원의 신하가 아니라 배달나라의 동부(東部)의 책임자인 청제(靑帝)였던 것이며, 배달나라의 문자를 배워 소위 과두문과 조족문을 창안하였던 인물이 된다.
배달나라의 상형문자를 도입한 황제헌원은 자신의 나라인 유웅국 백성들에게 사용하게 하였던 것이며, 이 상형문자로 된 문장을 일반 의사소통의 도구로 사용하게 함으로써 점차 배달나라의 언어가 되는 교착어 대신에 이 상형문자로 된 소위 문장언어를 사용하게 되었던 것으로 된다.
이상으로, 지금의 중국(中國)이 사용하고 있는 문자인 소위 한자(漢字)는, 서기전2698년경 유웅국(有熊國)의 왕이던 황제헌원(黃帝軒轅)이 배달나라 문자이던 창힐(倉詰)의 과두문 또는 조족문을 도입하여, 백성들의 일상 의사소통 도구로서 상용(常用)하게 하였던 데서 연유한 것이 된다.
나. 한어(漢語:중국어)의 분화(分化) - 문장언어인 고립어가 되다.
황제헌원을 비롯한 유웅국 백성들이 상용하게 된 상형문자로써 일상 의사소통의 도구로 사용하게 되니, 이는 소위 문장언어(文章言語)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특히 상형문자로 된 문장언어는 뜻글자로만 조합되고 특별히 조사(助詞)를 붙이지 아니하므로 소위 고립어(孤立語)식의 문장이 되니, 자연히 유웅국 백성들이 사용하는 말은 고립어(孤立語)가 되는 것으로 된다. 이러하기를 여러 대를 거듭하게 되자 소위 문장언어로 고착화 되어 그들 유웅국의 공식적인 언어로 정착하게 되었던 것으로 되는데, 이러한 언어적 습관이 약 1,000년 이상 내려오는 사이에 굳어져 하나의 언어로 정착된 것이다.
중국의 역사기록으로 보면, 중국의 역사는 서기전3528년경 태호복희에서 시작된다. 태호복희는 배달나라 한웅(桓雄)의 아들로서 중국의 입장에서는 천강(天降)의 역사이다. 그래서 서기전220년경 진시황(秦始皇) 시대 인물인 서복(徐福)은 태호복희의 역사를 하늘나라에서 내려와 세워진 천강(天降)의 역사로 기록한다. 즉 고대중국의 역사는 배달겨레의 역사인 것이다.
황제헌원은 배달나라 제후국인 유웅국(有熊國)의 왕으로서 중부(中部)의 천자(天子)인 황제(黃帝)라 불리는 인물인데, 동시대에 존재하였던 창힐(倉詰)은 당시 황제(黃帝)와 동격에 해당하는 청제(靑帝)였다. 즉 창힐은 배달나라의 오방(五方) 중 동방(東方)의 천자(天子)로서 오제(五帝)의 하나였던 것이다.
창힐은 배달나라 문자인 상형문자를 황제헌원에게 전수(傳授)하여 주었던 것이 되는데, 직접 가르쳐 주었다기보다 문자담당을 황제헌원에게 보내 주어 가르치게 하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이리하여 유웅국도 문자 전문가를 두어 나라를 다스렸던 것이 된다.
배달나라 시대에 상형문자는 이미 6서법(書法)이 정립되어 있었다. 즉 지사(指事), 상형(象形), 회의(會意), 형성(形聲), 가차(假借), 전주(轉注)라는 6가지 서법이 있었던 것이다. 즉 의사를 전달하는 데 필요한 문자표기법(文字表記法), 문장작법(文章作法)이 완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배달나라 시대에 한웅(桓雄)은 8음2문(八音二文)을 수학(修學)하였다 한다. 즉 8가지 소리에 2가지 문자를 익혔다는 것이다. 여기서 2가지 문자는 역사적으로 볼 때 상형문자(象形文字)와 표음문자(表音文字) 또는 소위 상음문자(象音文字)가 된다. 상형문자는 녹도문(鹿圖文) 또는 녹서(鹿書)가 되고, 표음문자는 ○(원), □(방), △(각)으로 대표되는 소위 간소화 된 상형문자를 간략화, 상징화 한 문자가 된다.
역사적 흐름으로 볼 때, 황제헌원은 상형문자를 도입하여 백성들에게 사용하게 함으로써, 지금의 중국어라는 특수한 언어를 형성케 한 인물이 된다. 황제헌원의 나라인 유웅국의 백성들이 배달나라 상형문자를 이용한 문장을 상용화(常用化)함으로써 소위 문장언어(文章言語)로서 의사소통을 하게 되고, 이것이 그들의 언어로 고착화 된 것으로 되는 것이다. 즉 황제헌원 시대에 고대중국어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던 것이 된다.
배달나라의 자치제후국(自治諸侯國)이던 유웅국이 교착어가 되는 배달나라 말을 사용하는 대신 문장언어를 의사소통 수단으로 사용함으로써 고립어식(孤立語式)의 특수한 언어가 생긴 것이 되는데, 이후 요순(堯舜), 하(夏)나라와 은(殷)나라 시대를 거치면서 약 1,500년이 흐른 주(周)나라 시대에는 이미 단군조선의 언어와 확연히 구분되는 구조체계를 가진 언어를 사용한 것이 되며, 이는 소위 한자문장식(漢字文章式) 언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소위 한어인 중국어는 단적으로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자연언어가 아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인공언어(人工言語)가 된다. 즉 한국어처럼 단어의 순서가 다르더라도 의사소통에 문제가 거의 없는 언어형태가 아니라, 단어의 순서를 바꾸면 정확한 뜻을 알기 어려운 특수한 형태로 만들어진 언어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문법(文法), 어법(語法)이 다른 외국어는 그 문장을 구성하는 단어의 자리를 바꾸지 못한다. 만약 단어의 위치를 바꾸면 뜻이 통하지 않게 된다. 이처럼 중국어는 소위 한문식(漢文式) 언어로서 배달나라의 문장언어(文章言語)에서 출발한 언어가 되는 바, 각 단어들의 위치를 임의로 바꾸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외국어에 해당하는 배달나라의 상형문자로 구성된 문장이 그들의 언어로서 고착화 된 것이다. 중국어는 단적으로 말이 먼저 생기고 그 후에 문자가 생긴 언어가 아니라, 먼저 문자가 있은 후에 그 문자가 이루는 문장에 따른 언어가 된다. 이는 고립어(孤立語)의 특성상 충분히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상으로, 중국어는 서기전2698년경 유웅국의 황제헌원이 배달나라에서 도입한 상형문자로 된 문장의 작법(作法)을 활용하여, 그에 따른 문장이 의사표시 수단으로 상용화됨으로써 습관화, 고착화 되어 시간이 흐름에 따라 특수하게 형성된 언어가 되는 것이다. 특히, 현재 한자(漢字)에 대한 중국어 발음은 많은 부분이 대체적으로 단군조선 시대 상형문자를 읽던 음독(音讀)의 변형된 소리로 추정된다.
8. 우리 역사상 한자(漢字)의 상용화(常用化)
단군조선 초기인 서기전2181년에 출현한 가림토 38자는 당시에 사용되고 있던 상형문자인 진서(眞書:참글:神篆)의 글자를 읽는 표준음을 통일하기 위하여 정립된 것이 된다. 즉, 뜻을 전하는 수단은 여전히 상형문자로 된 문장인 것이며, 소리글자인 가림토 글자만으로 문장을 만들어 쓴 것이 아닌 것이다. 상형문자의 독음을 정확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소리글자가 탄생된 것이 된다.
그래서, 우리 역사상 상형문자를 수입한 기록이 없을뿐더러 수입한 사실이 없다. 즉, 원래부터 우리는 상형문자를 의사소통의 한 도구로서 사용하며 왔던 것이다. 역사기록으로 서기전3897년경부터 상형문자를 사용하여 왔으며, 이에 더하여 상형문자와 읽는 소리가 같은 소위 상음문자(象音文字)를 동시에 사용하면서 역사를 이어온 것이 된다.
단적으로 은(殷)나라 문자가 한자(漢字)의 원형이라면, 이미 단군조선 시대에는 한자의 원형인 은문(殷文) 즉 갑골문(甲骨文)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며, 하(夏)나라 문자가 한자의 원형이라면 단군조선 시대에 이미 한자의 원형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 된다. 더 나아가 황제헌원 이하 요순 시대에 사용되었던 고대중국의 문자가 한자의 원형이라면 배달나라는 물론 단군조선 초기에 이미 한자의 원형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상 한자(漢字)를 고대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적이 전혀 없으며, 배달나라 시대부터 즉 처음부터 일상의 의사소통 도구로써 한자를 상용(常用)하고 있었던 것으로 되는 것이다. 다만, 그 글자의 서체(書體)가 변형되어 왔으며, 고대중국이 사용하던 글자와 통일되어 온 것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역사흐름 속에서 고대중국이 상형문자를 사용하여 오면서 만든 글자가 아닌, 우리가 독자적으로 만든 글자도 상당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논리가 된다.
9.소위 한자는 우리 선조가 만들고 고대중국에 전수된 우리 글자다.
역사적으로 소위 한자(漢字)의 원형은 배달나라 시대에 사용되던 상형문자(象形文字)인 것이며, 배달나라 역사의 주인공은 배달나라의 정통성을 이은 나라인 단군조선(檀君朝鮮)인 것이며, 단군조선을 계승한 지금의 한국(韓國)인 것이다.
지금의 소위 한자는 배달나라 문자에서 발전된 것이므로, 소위 한자는 곧 우리의 선조가 되는 배달나라 시대의 우리 조상들이 만든 글자로서, 배달나라 제후국이던 황제헌원의 유웅국(有熊國)에 전수(傳授)되었던 것이며, 이 유웅국을 계승한 고대중국의 문자가 된 이후 지금에 이른 것이 된다.
특히 단군조선 시대인 서기전925년에 왕문(王文)이 창안한 부예(符隸)라는 문자는 단군조선의 상형문자인 신전(神篆)의 글자를 간소화한 상형문자이며, 진(秦)나라 시대에 육국(六國)의 문자를 통일하며 정립된 진(秦)나라 문자 등 고대중국의 소위 한자(漢字)의 서체(書體)는 이 부예의 예법(例法)을 따른 아류(亞流)라 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소위 한자(漢字)는 고대중국의 한 국가였던 한(漢)나라만의 문자가 아니라, 그 이전 시대에 이미 사용되고 있었던 문자로서, 고대중국의 종주(宗主)로서 상국(上國)이던 배달나라 및 단군조선의 문자였던 것이다.
1) 참글(眞書)과 바른소리(正音)는 음양의 조화관계
단군조선 시대에 양립(兩立)하는 참글인 진서(眞書:신전)와 바른소리인 정음(正音) 즉 가림토(加臨土) 글자는, 글과 소리로서 소위 음양(陰陽)의 이치에 해당하는 조화(調和)관계에 있는 것이 된다.
상형문자인 참글은 머릿속 즉 뇌에서 뜻을 떠올리는 글자라면, 소리글자인 가림토는 말 즉 소리로써 나타내는 글자가 되는데, 뇌에 있는 존재는 신(神) 또는 심(心)이 되고, 입으로 나오는 소리(音聲)는 기(氣)가 되므로, 음양의 관계에 있는 것이 된다.
물론, 소리글자인 가림토 즉 정음(正音)은 원래 상형문자인 참글인 진서(眞書) 즉 신전(神篆)에서 나오거나 신전에서 정립된 글자가 되어 원래 하나였던 것이 되는 바, 상형문자를 음(陰)이라 하면 가림토는 상대적으로 양(陽)이라 할 수 있고, 이 상형문자와 가림토를 읽는 소리는 음양의 합이 되어 중(中)이라 할 수 있어, 소위 음양중(陰陽中)의 이치에 해당하여 삼위일체가 되는 것이다. 하늘에는 하늘과 땅과 사람이 모두 포함되듯이, 원래의 상형문자에는 소리글자가 되는 요소 및 그 소리가 처음부터 내포되어 있는 것이 된다.
2) 참글(眞書) 교육으로 역사를 보전하자
소위 한자(漢字)는 중국 고유(固有)의 글자이기도 하지만, 원래는 우리의 고유의 글자로서 고대중국의 나라들이 그들의 글자로서 사용하여 온 것에 불과한 것인 바, 분명한 우리 고유의 글자인 것이다. 한자(漢字)라는 용어는 한(漢)나라의 글자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가 되므로, 우리 역사상의 용어로서 진서(眞書) 또는 참글이라 부르는 것이 타당할 것인데, 글이라는 말 자체가 그리다, 그림이라는 말과 같은 어원에서 나온 것이므로, 진서(眞書:참글)를 원래의 진정한 그림에서 나온 글자라는 의미로 사용하면 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소리글자인 가림토 또는 한글은 진서(眞書)에서 파생되어 나온 후차적인 글자가 되어 진서(眞書)가 아닌 다른 용어로서 정음(正音:바른소리)이라고 부르면 되는 것이다. 우리의 고유의 글자인 소리글자 한글과 더불어 상형문자 참글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서 자라나는 세대에게 우리 글자임을 교육하여 역사를 보전하여야 할 것이다.
_
ichncok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