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송호수의 『한겨레의 뿌리 길』, 개천학회 강의자료 등에서 뽑아 소개하였고, 필자의 발굴 자료인 『홍사한은』의 내용을 첨가하였음을 밝혀둔다.
[단군조선은 동양고전의 뿌리]
1. 산업과 문화라는 단어
반 재 원 훈민정음연구소장 / 국학박사 |
『단군세기』 2세 부루단군 첫해 신축년(서기전2240년)에 “임금이 어질고 복이 많아서 재물이 많이 모이고 백성과 함께 산업을 일으켜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이 없었으며 ~ 학당을 세우고 학문을 가르치니 문화가 크게 발전하였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또 23세 아흘단군과 33세 감물단군 때에도 ‘문화文化’라는 단어가 보인다. 이미 4,000년 전인 서기전2240년의 기록이다. 그 뒤 순자의 제자인 한나라 공자 한비韓非가 지은 『한비자』에는 ‘불사이기산업不事利其産業’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그뿐 아니라 진晉나라 학자 광미廣微가 지은 『속석束晳』에도 ‘문화내집文化內緝 무공외유武功外悠’라는 기록이 보인다. 한나라 학자 유향산이 지은 『설원說苑』에도 ‘문화불개연후가주文化不改然後可誅’라는 기록이 보인다. 『홍사한은』의 23세 아흘단군조에도 “예의와 문화”라는 단어가 보인다.
『한단고기』나 『홍사한은』을 위서로 보는 이들은 여기에 나오는 ‘산업’과 ‘문화’라는 말이 20세기의 근대적인 단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족보로 알려진 황해도 신천군 문화현의 <문화류씨>의 ‘문화’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참전계경』 123조에 ‘보산자불실산업保産者不失産業’과 『참전계경』 196조에는 ‘멸산자멸인지산업滅産者滅人之産業’이라는 문구가 있다. 또 『참전계경』 348조에 ‘산업풍양비산産業風揚飛散’이라는 문구도 보인다. 이로 미루어 산업과 문화는 근대의 단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단군조선은 동양고전의 뿌리]
2. 이기 일원론의 연원
『홍사한은』 13세 흘달屹達단군 28년 병신년(서기전1755년경)에 유위자가 “생명이 올 때는 자취가 없으며 생명이 갈 때에는 옅은 형질을 남기되 정한 곳이 없어 출입하는 문이 따로 없으며 모두 우주에 충만하여 일진기一眞氣가 되는 것입니다.”하고 만유일기론을 말하였다. 또 『홍사한은』 45세 여루 단군 기축15년(서기전382년경) 때 “마자은馬子隱이 이기혼원편을 저술하여 단군께 바쳤다.” 는 내용이 있다. 퇴계의 이기이원론과 대립되는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을 율곡이 처음 주장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2,300여 년 전 단군조선 때 정립된 이론이다.
‘농자천하지대본’은 ‘農者天下之大本 四業之首’라 하여 『참전계경』 148조에 나오는 기록이다. 여기서 4업이란 지금의 사, 농, 공, 상의 순서가 아니라 농, 학(사), 상, 공의 순서이다. 이것 또한 조선시대에 처음 생긴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라는 속담도 『홍사한은』 1세 왕검단군 91년 무술년에 나오는 “너희가 이 도를 잘 체득하면 하늘이 무너져도 반드시 피할 수 있다.”라는 기록에서 나온 말이다. 또 나는 새도 쌍이 있고 헌짚신도 짝이 있다는 속담도 역시 1세 왕검단군 91년 무술년의 기록 ‘비금유쌍飛禽有雙 폐리유대弊履有對’에서 나온 말이다. ‘열손가락을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라는 속담도 이작십지爾嚼十指 통무대소痛無大小라고 한 『단군세기』와 『홍사한은』의 기록에서 연원한 속담이다. 무려 4,000여 년 전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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