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세기(檀君世紀) _ 행촌 이암 편
제2세 단군 부루 재위 58년
★제후 우순이 정한 국경을 바로 잡으심(1)
부루단군의 재위 원년은 신축(BCE 2240)년이다. 임금께서 어질고 복이 많아서 재물을 많이 쌓아 큰 부를 누리셨다. 백성과 더불어 산업을 다스리니 굶주리거나 추위에 떠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매년 봄가을에 나라 안을 수행하여 살피고, 예를 갖추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모두 제후의 선악을 살피고 상벌을 신중히 하셨다.
도랑을 파고, 농업과 양잠을 권장하며, 학교를 지어 학문을 일으키시니 문화가 크게 진보하고 그 명성이 나날히 퍼졌다.
초기에 우순(虞舜, 순임금도 단군조선의 제후)이 유주와 영주를 남국(藍國) 근처에 설치하므로, 임금께서 군사를 보내 이들을 정벌하여 그 곳 왕을 모두 쫓아내고 동무(東武)와 도라(道羅) 등을 봉하여 그 공을 표창하셨다.
*우순~유우씨, 우순이라고 칭한다. 성은 요, 이름은 중화로 재위는 48년간(BCE 2255~BCE 2208)이고 고수의 아들이다. 맹자는 "순을 동이인이다"라 증언한 바가 있다. 순임금은 포판(蒲坂, 산서성 영제현 포주진)에 도읍하였다.
*유주와 영주~고대 중국 9주의 하나이다. '상서 하서 우공편'에 기주.연주.청주.서주.양주.형주.량주.옹주.예주로 나누었다.
유주는 하남성과 하북성 경계에 걸쳐있고, 영주에 대해서는 '상서 순전'에 처음으로 12주를 두었는 데, 동한의 마융과 정현의 주석에 12주에 영주가 있다. 정현은 청주(현 산동성)에서 바다를 건너는 데, 제(齊)를 나누어 영주를 만들었다. 제나라에 영주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영주는 현재의 요서가 아닌 산동성에 있었다.
*남국~단군조선의 제후국으로 동이 구족 가운데 藍씨가 세운 나라다. 산동성을 발원지로 하여 하북성에 걸쳐 있었다. 후에 한족의 압박으로 사방으로 흩어졌다.
*동무와 도라~북애가가 쓴 규원사화에는 "2세 부루단군 때 세사람의 이인(異人)이 패수를 건너 왔는 데, 선라와 동무와 도라이다. 선라는 龍加를 다스리고, 도라는 鶴加를 다스리고, 동무는 拘加를 삼았다"라고 하였다.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2012), p103
#한자원문 해설은 이암의 단군세기를 참조 바람니다.
#좌우를 넘어 자랑스런 한겨레의 1만년의 정체성을 찾아라!!!
★배달과 단군조선 시대의 제천가(2)
참전계율의 어아가!
신시개천(神市開天) 이래로 매년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나라에 큰 축제를 열어 삼신하느님께 덕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며 화합하였다.
어아(於阿, 기쁨과 흥에 겨워 내는 감탄사, 여기는 음악의 이름)를 음악으로 삼고 감사함을 근본으로 하여 하늘의 신명과 인간을 조화시키니 사방에서 모두 이를 본받았다. 이것이 참전계(參佺戒)가 되었는 데,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어아 어아
우리 대조신(大祖神, 인간과 신명의 궁극의 뿌리 되는 천상의 큰 조상님이라는 뜻으로 환인, 환웅, 단군을 의미한다)의 크나큰 은덕이시어!
배달의 아들딸 모두
백백천천 영세토록 잊지 못하오리다.
어아 어아
착한마음 큰 활되고 악한마음 과격되네
백백천천 우리모두 큰활줄같이 하나되고
착한마음 곧은 화살처럼 한마음 되리라.
어아 어아
백백천천 우리모두 큰활처럼 하나되어
수많은 과격을 꿰뚫어 버리리라
끓어 오르는 물같은 착한마음 속에서
한덩이 눈같은게 약한마음 이리레
어아어아
백백천천 우리모두 큰 활처럼 하나되어
굳세게 한마음되어 배달나라 영광이로세
백백천천 오랜 세월 크나큰 은덕이시여!
우리 대조신(大祖神)이로세
우리 대조선이로세
*대조신~우주 역사를 주재하는 삼신하느님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2012), p103~105
#한자원문 해설은 이암의 단군세기를 참고 바람니다
#좌우를 넘어 한겨레의 자랑스런 1만년의역사를 찾아라!!!
★소련.대련과 삼년상 풍속의 유래(3)
재위 2년 임인(BCE 2239)년에 임금께서 소련(少連)과 대련(大連)을 불러 나라를 다스리는 방도에 대해 물으셨다. 이에 앞서 소련과 대련은 거상(居喪)을 잘 하였으니 처음 3일 동안 태만하지 않았고, 한 해가 다 지나도록 슬퍼하였으며, 3년간 근심으로 지냈다.
이로부터 세상의 풍속이 부모상을 당하면 소련과 대련을 본받아 다섯 달 동안 정상(停喪,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장사 지내지 않고 일정한 기간동안 애도하는 것을 말한다)을 하였는 데, 오래도록 상을 모시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
천하의 대성인이 아니었다면 어찌 덕화(德化)가 널리 퍼짐이 이토록 역마(驛馬)로 전하는 것처럼 빠를 수 있었겠는가? 소련과 대련은 효자로 알려지고, 공자 또한 이들을 칭송하였다.
무릇 효란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근본이니 온 세상에 이를 널리 펴서 표준으로 삼았다.
*소련과 대련~고조선 사람(동이족)인 소련과 대련에 대하여 공자는 '예기 잡기하'에서
"少連大連善居喪, 三日不怠, 三月不解, 期悲哀, 東夷之子也"라고 하였다. '삼한관경본기 마한세가 하편'에서도 "39세 번한 왕 登那(己巳 BCE 1012에 즉위)께서 이극회가 삼년상을 청하여 실시할 것을 청하므로 이에 따랐다'고 하였다.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2012), p105
#한자원문 해설은 이암의 단군세기를 참고 바람니다.
#좌우를 넘어 자랑스런 한겨레의 1만년의 정체성을 찾아라!!!
★도량형 통일과 정전법 시행(4)
재위 3년 계모(BCE 2238)년 9월에 조칙을 내려 백성들에게 머리카락을 땋아서 머리를 덮게하고(편발개수:編髮蓋首) 푸른옷(청의: 靑衣)을 입게 하셨다. 도량형(度量衡)을 모두 관(官)의 표준에 맞게 통일하고, 삼베와 모시의 시장 가격을 어디서나 똑같게 하셨다. 백성이 속이지 않게 되므로, 원근 사람들이 모두 이를 편하게 여겼다.
재위 10년 경술(BCE 2231)년 4월에 토지의 경계를 우물정(井)자로 그어 구분하여 전결(田結, 논밭에 물리는 세금)을 정해 주어 백성이 스스로 사리사욕을 채우지 못하게 하셨다.
재위 12년 임자(BCE 2229)년에 신지(神誌) 귀기(貴己)가 칠회력(七回曆, 한민족의 고대 신교시대의 제천력)과 구정도(邱井圖, '우물정' 자처럼 나눈 토지구획도)를 만들어 받쳤다.
*편발개수(編髮蓋首~머리를 땋고 관(冠)이나 갓 등으로 머리를 덮는 것을 말한다.
*청의(靑衣)~평상시에는 푸른 옷을 입고 제천의식에는 흰 옷을 즐겨 입었다.
*정전법(井田琺)~정사각형의 농경지를 우물 井자형으로 구획하여 관리하는 토지제도 그 가운데 있는 1구획을 공전(公田)이라 하여 8호가 공동으로 경작하여 그 수확물을 나라에 바치게 하였다.
*전결(田結)~논밭에 대하여 물리는 세금
*칠회력~한민족의 고대 신교시대의 제천력으로 배달시대에 칠회제신력(七回祭神力)이 있었다. '태백일사 신시본기' '사기 봉선서'에 이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있다.
*구정도~'우물 井' 자처럼 나눈 토지구획도이다.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2012), p107
#한자원본 해설은 이암의 단군세기를 참조 바람니다!
#좌우를 넘어 자랑스런 한겨레의 1만년의 정체성을 찾아라!!!
★부루단지 풍속의 유래와 전계의 뜻(5)
재위58년 무술(BCE 2183)년에 부루단군께서 붕어하셨다. 이 날은 하늘에 일식(日蝕)이 있었고, 산짐승이 떼를 지어 산 위에서 울부짓고, 만백성이 목놓아 통곡하였다.
후에 백성들이 제사를 지낼 때, 집안에 자리를 정하여 제단을 설치하고 항아리에 곡식을 담아 제단을 올려 놓았는 데, 이것을 부루단지(扶婁壇地)라 부르고 업신(業神)으로 삼았다. 또는 전계(佺戒)라고 칭하였는 데, 전계는 '"온전한 사람이 되는 계율을 받아(全人受戒) 업주가리(業主嘉利)가 된다"는 것으로, "사람과 그가 이루고자 하는 업(業)이 함께 온전해진다"는 뜻이다.
태자 갸륵이 즉위하였다.
*부루단지(扶婁壇地)~정월이 되면 질그릇 단지에 쌀을 담은 뒤 울 안의 박달나무 말뚝 위에 올려놓고 고깔을 만들어 씌우고 복을 비는 민간 풍속이 있는 데, 이 쌀단지를 부루단지라한다. 수천년 동안 우리민족이 간직해 온 민간 신앙의 뿌리는 대부분 단군왕검 시대에 비롯된 것이다.
*업신(業神)~재물과 복록을 내려주는 신이다. 조선 시대에는 업왕신(業王神)이라 하였다. 집안에 재물과 가복(家福)을 관장하는 신이다.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2012), p107
#한자원문 해설은 이암의 단군세기를 참조 바람니다.
#좌우를 넘어 한겨레의 1만년의 정체성을 밝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