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중도 고조선 유적지의 역사적 고찰]
3. 단군조선 시대의 춘천 지역 역사
1) 우두산 관련 역사 - 일본 대일령의 근거지로 추정
춘천에는 우두산(牛頭山:牛首山)이 있다. 이 우두산을 역사의 흔적으로 보아 추적을 해 본다. 서기전 2173년에 두지주 예읍(濊邑)의 추장 소시모리가 반란을 일으켜 여수기가 처단하였는데 나중에 그 땅이 우수국(牛首國)으로 되었다. 여기 두지주는 지금의 백두산 동쪽에 위치한 땅이며, 예라는 나라는 여수기가 봉해진 제후국의 이름이다.
여수기가 이미 예국을 다스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예읍은 이 예국 내에 있던 한 읍에 해당하는 지역이 되고, 소시모리가 반란을 일으킨 곳이 우수국이 되었는데, 후대에 이 소시모리의 후손들이 남쪽으로 이동하여 춘천까지 내려온 것이 된다. 이때가 역사적으로 보아 서기전 850년경으로 추정된다. 즉 이때가 일본의 국조신인 천조대신이 출현한 시기에 해당한다.
일본 국조신인 천조대신은 원래 이름이 대일령(大日령)으로 일본말로 "오~하류"이다. 그런데 지금의 일본 이세신궁에 원시한글 축문이 소장되어 있는데 그 문장 속에 "두디도리 ... 요하유.."가 적혀 있다. 두디도리는 곧 두지주의 우두머리라는 말이다. 즉, 요하유는 두지주 예읍의 추장이던 소시모리의 후손으로서 그 직을 승계하여 두디도리라 불리고 기록되는 것이다.
2) 언파불합과 배반명의 출신지
▲ 일본 이세신궁 소장의 원시한글 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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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령의 후손인 언파불합은 서기전 723년경 인물로서 단군조선 마한의 장군이었고, 배반명은 서기전667년경 인물로서 협야후인 제후였다.
언파불합은 지금의 일본 땅인 구주(九州)의 웅습(熊襲)의 난을 평정하였고, 협야후 배반명은 서기전 667년에 단군조선의 명을 받아 마한 땅에서 500척의 배를 이끌고 가서 삼도(지금의 일본 땅)의 난을 진압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협야후의 무리 중에 막내이던 반여언(神武)이 7년동정이라는 구실로 형제들이 모두 제거되자 서기전 660년에 스스로 천황이라 참칭하여 단군조선을 반역하였던 것이다.
반역의 역사가 되풀이 된 셈이다. 반역자는 소시모리와 신무이다. 소시모리의 후손인 언파불합과 협야후 배반명은 장군, 제후로서 단군조선의 명을 받아 난을 평정한 인물이다. 그러나, 신무가 다시 반역한 것이 된다.
여하튼 배반명은 협야후로 기록되고 있는데, 언파불합이 그 전에 난을 평정한 공이 있어서 협야후로 봉해졌을 가능성이 농후한 바, 서기전 723년경에 협야후로서 단군조선 중앙 조정이나 마한으로부터 제후로 봉해졌던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비파형 청동검과 도끼를 제후인 천자자격으로 하사받았던 것이 아닌가 한다. 즉 제천권이 없는 천자격의 일반 제후로서 지방을 다스리는 지배권을 부여받은 것이 된다. 만약 비파형 동검과 도끼의 제작연대가 서기전 723년경으로 나타난다면 단군조선 우수국(牛首國)의 존재가 실제로 입증되는 것으로 된다.
3) 결론
비파형 동검이나 도끼는 결국 서기전 723년에 단군조선의 장군으로서 파견되어 지금의 일본 땅인 구주에 있던 웅습에서 일어났던 반란을 진압한 언파불합 장군을 협야후(狹野侯)인 제후로 봉하면서 하사한 증거물이 된다.
협야라는 땅은 일본 역사상에도 나타나는데 지금의 구주 남동쪽 편에 있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언파불합이 구주에 있던 웅습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협야라는 땅에 봉해져 협야후로 불리는 것이 된다. 물론 언파불합이 난을 평정하기 전에도 지금의 일본 땅은 단군조선의 제후나 관리들이 다스리던 단군조선 영역이었던 것이며, 지역적으로는 북쪽은 진한, 남쪽은 마한의 관할에 속하였던 것이 된다. 그리하여 구주는 특히 마한 관경에 속하였던 것이 되는 것이다.
4. 여론
일본 국조신 천조대신인 대일령이 일본 땅에 출현한 것으로 기록되는 곳이 바로 아시하라(아사벌)이다. 천조대신은 거울을 지닌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는 그냥 천자격의 왕이 아니라 제천권을 가진 왕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된다. 이 천조대신의 거울이 조작된 것인지 아니면 신무왕이 천황을 참칭하면서 임의제작하였는지 불명인데, 만약 천조대신이 선대로부터 받은 것이라면 소시모리 반란 이후에 비전된 것일 수도 있겠다.
▲ 일본 청동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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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언파불합과 배반명(일본 기록에는 도반명, 벼 도로서 배와 발음이 거의 같음)은 단군조선의 명령을 받고 반란 진압을 하였던 것으로 보면, 반역자 신무가 조작하거나 후대에 임의 제작하였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 된다. 실제로 서기600~700년대에 원시한글이 새겨진 청동거울이 제작된 사실이 있기도 하다.
이상으로 춘천의 우두산으로 역사를 추적해 보면 일본의 뿌리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 물론 삼국사기에는 지금의 춘천지역에 맥국(貊國)이라는 나라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원래 맥(貊)이라는 말은 소수맥(小水貊), 대수맥(大水貊)에서 처럼 구려맥(句麗貊)을 가리키는 것이 되는데, 후대에는 물가, 바닷가의 의미를 지니는 예(濊)와 구별되는 명칭으로 북방족의 의미로 사용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맥은 모래를 삼키어 불을 뿜는 동물로 묘사되기도 하는데 이는 역사적으로 제련 기술을 비유하는 것이 된다.
*후차적으로 춘천 중도 유물과 유적지에 대한 측정 연대가 확인되면 다시 역사적 고찰을 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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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홍 근 40여년 족보 · 역사 연구 / [저서] 마고할미로부터 7만년 · 홍익인간 7만년 역사 · 천부경 인간완성-제1부 천부경과 음양오행 · 역원리 이해 등 / <고조선 문자> 검증역 · 허대동 저. 이민화 감수 / 공학사 · 법학사 · 언론학사 · 인문학사(중문학 · 영문학 · 국문학) / 해달별문화원 - 천부역사태학원 대표 / 민족회의 상임부대표 / 민족회의 역사광복군 총사령 / 기천검학 범사 / 참한역사신문협의회 감사 / 한뿌리사랑세계모임 자문위원 / 도선풍수지리신문 편집인 / 법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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