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이 된 한국 고인돌 유적지의 역사적 의미
[노중평]
우리나라에는 강화, 고창, 화순 3곳에 있는 고인돌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만약에 춘천의 고인돌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될 수 있다면 한국은 4개의 고인돌세계문화유산을 가진 나라가 될 것이다.
강화도의 고인돌 세계문화유산은 학자들이 조선의 실체를 인정해 오지 않았던 직무유기로 조선의 고인돌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고, 고창과 화순의 고인돌은 자료부족으로 어느 국가의 역사문화유물인가를 밝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 있다.
만약에 춘천의 고인돌이 래버랜드 개발로 훼손되지만 않았다면, 아마 역사상 최초로 3조선시대의 막조선의 유물로 인정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는 유물이라고 본다. 그러나 지금은 현장이 모두 파괴되었고 돌들은 잡석이 되어 역사적 가치를 상실하고 말았으니, 통탄하고 애석해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인돌을 검은 비닐로 포장하고 잡석이라고 써놓았다. 이들 돌이 어디론가 이동되었다. 비가 와서 현장은 거의 다 망가졌다.>
화순고인돌유적을 인용하여 타산지석으로 삼고자 한다.
홈페이지 [남상학의 시솔길]에 보면, ‘시솔길산책’ / ‘나의 글모음’ 중에서 제목 「세계문화유산 화순고인돌 유적」에 여러 장의 현장 사진과 홈페이지 주인의 글이 올라와 있다. (본문에 인용)
지금 사라져 없어진 춘천 중도의 고인돌 유적과 비교하기 위하여 전문을 인용하기로 한다.
필자는 언젠가 화순군에서 고인돌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군청에서 열리는 학술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 이후에 화순군의 고인돌군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은 화순군에서 이 유적지를 공원화하고 다양한 행사를 벌여 역사문화유적지로서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고인돌은 선사시대 돌무덤의 일종으로 영어로는 돌멘(Dolmen)이라고 한다. 고인돌은 거석기념물의 하나이며 피라미드(Pyramid), 오벨리스크(Obelisk)등 이집트나 아프리카 대륙의 각종 석조물과 영국의 스톤헨지, 프랑스 카르낙의 열석(列石)등이 모두 거석문화의 산물이다.>
춘천시는 고인돌 유적을 사랑하는 사람들, 고인돌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서 보고 즐기는 재미를 빼앗았다. 1열로 늘어서 있던 고인돌 유적지는 포크래인으로 모두 파헤쳐 어디론가 이동시켜 버렸기 때문에 역사성과 현장성을 훼손하여 고인돌이 무의미한 잡석이 되어 버렸다.
춘천시는 화순, 고창(이상 전라남북도), 강화도(경기도)와 함께 4번째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킬 수 있었던 문화유산을 파괴해버림으로써 강원도를 상고시대 역사를 없애고 래고랜드라는 위락시설을 만들어 세기말적인 감각문화로 떼돈을 벌 생각을 하고 있다는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중의 하나인 고인돌은 세계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으며 지역에 따라 시기와 형태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동북아시아 지역이 세계적인 분포권에서 가장 밀집된 곳으로 그 중 우리나라가 그 중심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학자들이 말하는 청동기시대는 재야사학서인 『단군세기』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세운 조선시대에 해당한다. 조선시대는 진조선(요서), 번조선(산동), 막조선(한반도)의 3조선시대를 의미한다. 이들 3조선 중에서 진조선과 번조선은 BC 238년에 秦에게 멸망하였고, 막조선은 BC 108년에 漢에게 멸망하였다. 진과 한은 조선의 역사와 유적과 유물을 철저하게 없애버렸다. 그래서 땅속에 묻혀 있는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제 하늘의 조화로 막조선의 집단주거지역이 춘천시민 앞에 노출이 되었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역사의식이 전혀 없는 시청공무원들에 의하여 또 한 번 더 그나마 남은 유적지가 파헤쳐지고 난자되었다.
<BC 108년에 漢에게 멸망하여 철저하게 파괴된 춘천의 중도 유적지. 고대에 춘천을 漠(莫)이라 하였는데, 막이란 뜻은 한이 철저하게 없애버렸다는 뜻이다. 漠은 파자하면 氵+莫이 되는데, 氵는 漢을 의미하는 氵로 볼 수 있다. 한반도는 漠(莫)朝鮮이라 했는데, 이 역시 한이 철저하게 파괴해버린 조선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유적지가 관리하지 않아서 2014년 12월 연말에 내린 겨울비에 모두 함몰되고 말았다.>
<위락지로 개발될 개발예정지 중도 조감도>
다음 글은 ‘남상학 홈페이지’에서 인용한 글이다.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약 30,000여 기에가까운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중 이번에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Gochang, Hwasun, and Ganghwa Dolmen Sites)은 밀집분포도, 형식의 다양성으로 고인돌의 형성과 발전과정을 규명하는 중요한 유적이며 유럽, 중국, 일본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특색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 화순고인돌군은 영산강 지류인 지석강 주변에 형성된 넓은 평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평지의 남쪽 산기슭을 따라 고인돌들이 연이어 분포하고 있는데, 이 고인돌군은 약 5km에 걸쳐 나타난다. 화순 고인돌군은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를 잇는 고개의 양 계곡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이 고갯길은 옛부터 교통로의 역할을 해 온 곳이기도 하며 구전으로는 보검재, 보성재, 보금치 등 여러 명칭으로 부르고 있으나 보검재가 일반적이다.
화순지역에는 사적 제410호인 화순 고인돌유적을 중심으로 한 반경 5km 주변일대에 50개군 400여기의 고인돌이 밀집분포하고 있다. 화순군에는 160개군에 1,323기가 분포하고 있다. 전남 내륙지역에서 가장 밀집도가 높으며 또 많은 분포수를 보인다. 이의 분포는 다른 지역보다 월등한 숫자이다. 즉 전북 고창지역이 약 1200여기, 인천 강화가 80여기인 점과 비교해 볼 때 단위면적에서의 밀집도가 가장 높다.
화순에는 100톤 이상의 커다란 기반식 고인돌 수십 기가 존재한다. 크게는 280여톤 규모의 국내 최대 규모(무게)의 상석이 있다. 춘양면 대신리에 있는 길이 7.3m, 폭 5.0m, 두께 4.0m의 고인돌은 280여톤에 이르며, 도곡면 효산리에는 길이 5.3m, 폭 3.6m, 두께 3.0m로 약 100톤 이상의 고인돌이 있다. 도곡면 대곡리에는 길이 7.1m, 폭 3.0m와 도암 도장리에 길이 6.1m, 폭 5.2m, 두께 3.9m인 고인돌군이 있다.
고인돌의 분포는 마을앞 평지와 마을안에도 있지만 대부분 계곡의 동쪽 산기슭을 따라 군집되어 입지해 있다. 춘양면 대신리 고인돌은 해발 65m에서 125m 사이에 분포하고 있으며 도곡면 효산리는 45m에서 90m 사이로 평지에서의 상대높이인 비고는 각각 60m와 40m이다.
고인돌의 가장 큰 특징은 덮개돌이다. 이 덮개돌은 자연 암석을 이용하기도 하나 대부분은 암반에서 떼어내야 한다. 춘양면 대신리, 도곡면 효산리 고인돌 유적지에서는 고인돌의 덮개돌을 채석하는 장소가 고인돌군 위 산기슭에서 발견되었다. 채석장에서 채석하다 만 석재 등이 남아 있어 고인돌의 상석 채석과정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채석장 아래에 지석이 고인 기반식 고인돌, 석실이 노출된 고인돌, 덮개돌이 없는 석실 등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고인돌의 축조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또한 화순 대신리 고인돌에서는 고인돌의 축조연대를 알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였다. 대신리 고인돌에서 나온 목탄의 방사성탄소연대가 기원전 2500±80년(27호, 중심연대 555년, 보정연대 720∼390년)으로 측정되었다. 이는 2500년경에 고인돌이 축조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채석장 아래에서 출토된 아가리부분에 삼각문과 점열문이 있는 토기는 전기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출토되는 것으로 기원전 9∼10세기까지 올라갈 수 있는 유물이다. 이로 보면 화순 고인돌은 약 3000년 무렵부터 축조되기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고인돌은 선사시대 문화상을 파악할 수 있고 나아가 사회구조, 정치체계는 물론 당시인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선사시대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는 보존가치가 높은 유적이다.
화순의 고인돌군은 비교적 최근(1996년)에 발견된 데다 개발이 안 된 지역이어서 주변 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일부는 개간으로 고인돌의 주변이 훼손된 상태이지만 약 10km에 걸친 계곡의 산기슭을 따라 띄엄띄엄 군집되어 있고 산기슭의 소나무 숲에 위치한 경우가 많아 고창이나 강화 등의 다른 유적보다도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화순에서는 매년 고인돌축제를 연다. 2000년 12월 2일 효산리 및 대신리 고인돌유적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이를 경축하고 고장의 우수한 문화를 홍보하기 위한 축제로 2001년 제1회를 시작으로 4월 넷째 주 토요일 군민의 날 행사와 함께 4일간 개최된다. 이 때는 고인돌축조과정 재현행사를 비롯하여 고인돌 움집만들기, 원시인체험행사 등 프로그램을 구성하여 고인돌 유적지에서 개최한다.
화순에서 고대국가의 존재를 밝힐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움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화순과 관련된 역사기록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춘천은 고대 역사를 밝힐 수 있는 기록의 단서들이 남아 있다. 춘천이 고대에 막으로 불렸다는 점, 또 예백으로도 불렸다는 점, 우수국으로 불렸다는 점, 소시모리라는 인물이 있었다는 점들이 그것이다. 그리고 한반도가 막조선으로 불렸다는 점도 중요하다.
아울러 춘천이 막으로 불렸을 때, 평양이 북막으로 불렸었다는 사실도 밝혀 야 할 과제로 생각된다.
춘천시는 앞으로 더 현장을 훼손하여 역사와 후손에게 죄인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3조선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중국과 일본에 진상하여 사장시키지 말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