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근
40여년 족보·역사 연구
[저서] 마고할미로부터 7만년/홍익인간 7만년 역사/천부경 인간완성-제1부 천부경과 음양오행 ·역원리 이해 등
<고조선 문자> 검증역 · 허대동 저. 이민화 감수 / 공학사·법학사·언론학사·인문학사(중문학·영문학·국문학)
참한역사신문 감사 / 씨알문화축제 조직위원회 밝달장 / 한국성씨총연합회 자문위원 / 민족회의 대표 / 역사광복군 총사령 / 개천절 세계평화 축제 조직 위원회 대표 / 단수학회 이사 / 한뿌리사랑세계모임 자문위원 / 한문화사업총단(해달별아리랑.천부역사태학원) 대표 |
[조선(朝鮮) 제23대 아홀(阿忽) 천왕(天王)의 역사]
엄(淹), 서(徐), 회(淮)를 봉하다.
서기전1236년 을유년(乙酉年)에 남국군(藍國君) 금달(今達)이 청구군(靑邱君0과 구려군(句麗君)과 주개(周愷)에서 만나 몽고리(蒙古里)의 군사와 합쳐 이르는 곳마다 은(殷)나라의 성책을 부수고 깊숙이 오지로 들어가 회대(淮岱)의 땅을 평정하더니 포고씨(蒲古氏)를 엄(淹)으로, 영고씨(盈古氏)를 서(徐) 땅에, 방고씨(邦古氏)를 회(淮) 땅에 각각 봉하니, 은나라 사람들이 우리의 기풍을 우러러보며 겁을 먹고 감이 접근하지를 못하였다.
남국과 청구국과 구려국의 임금은 일반 제후(諸侯)가 아닌 군(君)으로서 단군조선의 천군(天君)에 해당한다. 그 외 고죽국, 진번국, 부여국의 임금도 군(君)이다. 몽고리의 임금을 한(汗)이라 하나 천왕의 아우가 봉해졌으므로 군(君)에 해당하게 된다.
남국과 청구국과 구려국과 몽고리국의 군사가 연합하여 은나라를 공격하였는데, 회대(淮岱)지역 즉 대종(岱宗)인 태산(泰山) 지역에서 양자강 북쪽에 위치한 회수(淮水)에 이르는 지역을 정벌하여 각각 제후를 봉한 것이다.
엄국(淹國)은 고대중국의 역사기록에서 엄이(淹夷)라 하는 나라이며, 태산(泰山)을 중심으로 한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것이다. 태산지역이 주(周)나라의 제후국인 노(魯)나라 또는 제(齊)나라에 속하게 된 때에 엄국이 축소되거나 망한 것이 된다.
서국(徐國)은 산동지역의 남방에 위치한 나라로서 고대중국의 역사기록에서 서이(徐夷)라 하는 나라이며, 후대 주(周)나라를 압박하여 36국(國)의 종주(宗主)가 된 서언왕(徐偃王)이 다스리던 단군조선의 제후국이다. 서기전1236년에 세워져 서기전512년 오(吳)나라의 합려왕에게 망하기까지 725년의 역사를 가진다.
회국(淮國)은 서기전2267년에 도산(塗山)회의가 열렸던 회수 지역에 서기전1236년에 세워진 단군조선의 제후국으로서, 고대중국의 역사기록에서 회이(淮夷)라 하는 나라이며, 서기전221년경 진시황의 진(秦)나라에 망하기까지 1,016년의 역사를 가지는 나라이다.
부도지(符都誌)에서 부루씨(夫婁氏)가 일찍이 운해족(雲海族)과 긴밀히 연락하여 하토(夏土)가 하나로 돌아오기를 시도하더니 이도(異道)가 점차 번성하게 되어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는 바, 여기서 부루씨는 곧 색불루 천왕의 후대 시기의 천왕들을 가리키는 것이며, 운해족은 황하 이남의 산동지역의 황족(黃族)과 남족(藍族) 및 회수(淮水) 지역의 남족(藍族) 등 내륙의 소위 동이족(東夷族)과 양자강 유역의 적족(赤族, 南蠻)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제22대 색불루 천왕이 서기전1285년에 즉위하자마자 그해 11월에 직접 은(殷)나라를 정벌하였고, 서기전1266년에는 서남방의 빈기(邠岐)의 땅을 점령하여 여(黎)라는 제후국을 세웠으며, 이후 아홀 천왕 때인 서기전1237년과 이듬해에 대대적으로 은(殷)나라 땅을 공략하면서 엄(淹), 서(徐), 회(淮)라는 제후국을 산동지역과 회수(淮水)지역에 걸쳐 세우면서, 하(夏)나라의 대를 이은 은(殷)나라를 통제하고 통합하려는 차원에서 전초기지로 삼은 것이 된다.
그런데, 이미 이도(異道)가 번성하여 단군조선의 정치문화제도에서 벗어나, 은(殷)나라도 하나라의 제도를 답습함으로써 독자적으로 폐쇄정치를 하고, 이후 주(周)나라를 거치면서 춘추전국시대로 말마암아 이탈(離脫)이 심화되고 고착화되어 더 이상 되돌리기에는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버렸던 것이 된다.
춘추(春秋)시대 이전까지만 하여도 주(周)나라는 천자국(天子國)으로서 단군조선을 천왕(天王)의 나라인 상국(上國)으로 모시고, 주나라의 제후국들은 주나라를 상국(上國)으로 모신 정치체제를 유지하였으나, 춘추시대 이후 패권주의(覇權主義)가 남발하면서 종주국(宗主國)인 주(周) 조정을 무시하게 되고, 전국시대에는 제후들이 아예 스스로 천자(天子) 즉 왕(王)이라 칭하면서 전쟁을 일삼게 되니, 천하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었으며, 이후 진시황의 출현으로 주(周)나라 땅이 평정되었으나 이로 말미암아 요순하은주(堯舜夏殷周)의 상국(上國)이던 단군조선의 후계국을 상국(上國)이 아닌 전쟁으로 차지하려는 정벌(征伐)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왕도(王道)와 인도(人道)가 사라진 말세(末世)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로써 이후에는 신제자(臣弟子)의 나라였던 고대중국(古代中國) 땅에서 일어난 나라들이, 군사부(君師父)의 나라였던 고대한국(古代韓國)을 오랑캐나 미개인으로 날조함으로써 그들의 종주(宗主)이자 스승(師)이자 조상(祖上)을 업신여기는 패륜아적(悖倫兒的)인 족속이 되어 버린 것이다.
[조선(朝鮮) 제23대 아홀(阿忽) 천왕(天王)의 역사]
영고탑(寧古塔) 천도(遷都)를 건의하다.
서기전1233년 무자년(戊子年)에 마한(馬韓) 여원흥(黎元興)이 명을 받고 진조선(眞朝鮮)의 도읍인 백악산아사달에 들어가 도읍을 영고탑으로 옮기라고 간하였는데, 천왕이 마한(馬韓)과 번한(番韓) 및 오가(五加)들을 불러서 불가하다며 따르지 않고 영고탑으로 도읍을 옮길 것을 의논하는 것을 중지하도록 하였다.
서기전1280년에도 신지(臣智) 육우(陸右)가 영고탑으로 천도할 것을 건의한 적 있었으며, 47년이 지난 서기전1233년에도 마한(馬韓) 여원흥이 영고탑으로 천도할 것을 건의하였던 것이나, 천왕이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조선(朝鮮) 제23대 아홀(阿忽) 천왕(天王)의 역사]
태자 연나 즉위
서기전1162년 기해년(己亥年)에 천왕께서 붕하시고 태자(太子) 연나(延那)가 즉위하였다.
서기전1285년 이후 단군조선의 천왕의 대를 거의 태자가 이으면서 그냥 아들로서는 3분이 잇게 되는데, 전기 단군조선에서는 우가(牛加) 7분과 양가(羊加) 2분이 천왕으로 즉위한 것으로 된 것과는 비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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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원 9218년 · 배달개천 5918년 · 단기435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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