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朝鮮) 제22대 색불루(索弗婁) 천왕(天王)의 역사]
수도 녹산(鹿山) 개축
서기전1285년 병신년(丙申年) 1월에 색불루 천왕이 명하여 녹산(鹿山)을 수축(修築)하게 하고, 마침내 녹산(鹿山)에서 즉위하였다.
녹산(鹿山)은 상춘(常春, 지금의 長春)에 있으며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에 있는 산이다. 수축(修築)이라 함은 개축(改築)과 같은 의미로서 기존의 건물을 보수(補修)한 것이 되어 이미 녹산에는 궁궐이 있었던 것이 된다.
즉, 후기 단군조선의 수도는 백악산아사달인데, 녹산(鹿山)에 있는 기존의 궁궐을 수축하였다는 것이 되는 바, 상춘에 백악산아사달이라 불리는 곳이 있어, 그 안에 백악산(白岳山)이라는 산이 소재한 아사달이라는 지역이 있으며, 이 백악산아사달의 땅 안에 궁궐을 수축한 녹산(鹿山)이 있는 것이다.
상춘(常春)은 서기전2049년에 신경(新京)이라고 불린 지역이며, 서기전1984년에 이 상춘 땅 안에 있는 구월산(九月山)의 남쪽 기슭에 이궁(離宮)이 되는 신궁(新宮)을 건립하였던 것이고, 구월산(九月山)이 곧 아사달산(阿斯達山)으로서 아사달이라고 불린 것이 된다.
그리하여 상춘에는 대표적인 산으로 가장 높은 산이며 밝은산, 밝산의 이두식 표기가 되는 백악산(白岳山)이 있으며, 그 산줄기에 아사달산 즉 아침산(朝山)이라는 뜻의 구월산(九月山)이 있고, 이 구월산 줄기에 궁궐이 있는 나즈막한 산으로서 사슴같이 생긴 모양의 녹산(鹿山)이 있는 것이 된다. 즉 서기전1984년에 건립한 구월산 남쪽 기슭의 신궁(新宮)이 있는 산이 녹산(鹿山)이 되는 것이다.
[조선(朝鮮) 제22대 색불루(索弗婁) 천왕(天王)의 역사]
은나라 무정(武丁)이 예를 올리다.
서기전1285년 은(殷)나라 무정(武丁)이 사신을 파견하여 조공을 약속하였다.
은나라 왕 무정은 제22대 왕으로서 서기전1325년부터 서기전1266년 사이에 재위하였는데, 이름에서 보듯이 전쟁을 즐긴 인물이 된다.
무정은 서기전1291년에 단군조선 진한(眞韓)의 서남방이자 번한(番韓)의 서방 즉 태원(太原)의 북쪽과 동북쪽에 위치한 귀방(鬼方)을 정벌하고 이어 색도(索度), 영지(永支) 등을 침공하였다가, 색도와 영지 등의 전쟁에서 당시 개사원(蓋斯原) 욕살(褥薩) 고등(高登)과 상장(上將) 서여(西余)에 의하여 대패하여 화해를 청하고 조공을 하였으며, 이후 서기전1289년에 개사원 욕살 고등이 귀방을 습격하여 멸망시켰고, 이 당시 상장 서여는 은나라의 북박(北亳)을 습격하여 격파하였다.
[조선(朝鮮) 제22대 색불루(索弗婁) 천왕(天王)의 역사]
서우여를 번한에, 여원흥을 마한에 봉하다.
서기전1285년에 천왕이 서우여(徐于餘)를 번한(番韓)에 봉하고, 여원흥(黎元興)을 마한(馬韓)에 봉하였다.
서우여(徐于餘)는 전기 단군조선의 천왕의 종실(宗室)로서 한씨(桓氏)가 되고, 여원흥은 웅녀군(熊女君)의 후손이다. 웅녀군은 웅녀인 임금이라는 말로서, 서기전3897년경 배달나라 초기에 한웅천왕이 가르침을 주자 따르므로 백성으로 받아들인 웅족(熊族)의 여성 임금이다. 서기전2800년경 이 웅녀의 후손에 여(黎)가 있어 단허(檀墟)에 봉해지고, 여원흥은 이 여씨의 후손이 되는 것이다.
배달나라의 웅족(熊族)에서 웅씨(熊氏), 고씨(高氏), 강씨(姜氏), 여씨(黎氏), 공손씨(公孫氏), 희씨(姬氏) 등이 나왔다. 즉 배달나라의 제후가 되는 염제신농씨와 황제헌원씨가 모두 웅족 출신이며, 단군조선 초기에 마한으로 봉해진 웅백다(熊伯多)는 웅씨(熊氏)로서 웅족의 후손이며, 후기 단군조선의 천왕이 된 색불루(索弗婁)가 고씨(高氏)로서 웅족의 후손이며 이때 마한(馬韓)에 봉해진 여원흥은 여씨로서 웅족의 후손인 것이다.
[조선(朝鮮) 제22대 색불루(索弗婁) 천왕(天王)의 역사]
조서(詔書)를 내리고 천제(天祭)를 지내다.
서기전1285년 봄 3월에 조서(詔書)를 내려 가로되, “며칠 전에 아사달에 사람을 보내어 옥책(玉冊)과 국보(國寶)를 전하게 함으로써 전(前) 천왕께서 선양(禪讓)토록 하였노라. 이제 비록 호칭을 세습하여 존귀하게 되었으나, 그 해내산천(海內山川)은 이미 그 이름이 장부에 실렸고,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예(禮)는 당연히 나라의 법전(法典)에 있나니, 가히 남용할 것이 아니로다. 반드시 옛 실례를 따름으로써 정성과 공경을 다할 것이로다. 이제 마땅히 제사를 올리고 신(神)을 맞이함에, 먼저 가서 택일하여 목욕재계하고, 신(神)의 영역을 살피고 청소하여, 희생(犧牲)과 폐물(幣物)을 깨끗이 마련하고, 삼신(三神)께 올려 보답할지어다” 하셨다.
이에 천왕께서 7일을 택일(擇日)하여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향(香)과 축문(祝文)을 여원흥에게 주어, 16일에 이르러 이른 아침에 삼한(三韓)의 대백두산(大白頭山)의 천단(天壇)에서 공경하게 제사를 올리도록 하였으며, 천왕은 몸소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에서 제사를 올렸다.
옥책(玉冊)과 국보(國寶)는 나라의 천왕권을 상징하는 귀중품으로서 특히 국새(國璽)를 포함한 것이 된다.
선양(禪讓)은 평화적으로 적임자에게 자리를 양보하여 넘겨준다는 의미인데, 역사적으로 진정한 선양은 그 기록이 거의 없는데, 이때 소태 천왕께서 색불루 천왕에게 한 선양도 소위 군사혁명(軍事革命)에 해당하는 강압적 선양이 된다.
우리 한국의 역사상 최초의 선양은 서기전1286년에 일어난, 소태(蘇台) 천왕이 우현왕(右賢王) 색불루(索弗婁)에게 한 선양이 되는데, 이러한 역사사실에서 “소태맞는다”는 말이 유래되었다고도 보인다. 소태는 쓴 맛을 뜻하는 말인데, 옛날에는 애기 젖을 뗄 때 사용하기도 하였다. 즉 소태맞는다는 말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즉 거의 강제적으로 포기당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된다.
이미 단군조선 시대에는 법전이 있었던 것이 된다. 그리하여 국토의 지명이 장부에 기록되고,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예법(禮法)이 나라의 법전(法典)에 모두 있었던 것이다.
특히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신(神)을 맞이함에는 먼저 택일(擇日)하여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신(神)의 영역인 제단(祭壇)을 말끔히 청소하였던 것이 된다.
희생(犧牲)으로는 주로 소(牛), 양(羊)을 사용하였다. 희생(犧牲)이라는 글자에 소(牛)가 들어 있어 소가 주로 희생동물로 사용된 것이 나타난다. 또 희생양(犧牲羊)이라는 말이 있듯이 소 대신 양이 희생으로 올려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목욕재계(沐浴齋戒)는 택일하여 행하였는데, 계불(禊祓)이라는 의식으로서 그 유래는 서기전7197년경 한국(桓國) 시대 초기부터 제사장(祭司長)을 겸하던 임금에 의하여 행해진 것이 된다. 즉, 전기 한국시대에는 황궁씨(黃穹氏)가, 중기 한국시대에는 유인씨(有因氏)가, 후기 한국시대에는 한인씨(桓因氏)가 각 계불의식을 행하며 마고성(麻姑城) 낙원시대로 회복한다는 복본(復本)의 서약(誓約)을 실천하였던 것이 된다.
색불루 천왕은 향(香)과 축문(祝文)을 마한(馬韓)에 봉해진 여원흥(黎元興)에게 하사하여 3월 16일 삼신영고제(三神迎鼓祭)를 지내게 하였던 것인데, 마한 여원흥이 이른 아침에 단군조선 삼한(三韓)의 중앙에 위치한 대백두산(大白頭山)의 천단(天壇)에 올라 천제(天祭)를 올리도록 하였던 것이다. 대백두산(大白頭山)은 당시의 태백산(太白山)으로서 지금의 백두산(白頭山)이 된다.
당시 색불루 천왕은 몸소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에서 천제(天祭)를 올렸는데, 백악산아사달은 상춘(常春)에 있고 제천단(祭天壇)은 아사달산이 되는 구월산(九月山)에 있었던 것이 된다. 상춘은 지금의 장춘(長春)이다.
[조선(朝鮮) 제22대 색불루(索弗婁) 천왕(天王)의 역사]
색불루 천왕의 제천문(祭天文) - 백두산서고문(白頭山誓告文)
서기전1285년 병신년(丙申年) 3월 16일 이른 아침에 마한(馬韓) 여원흥(黎元興)이 백두산(白頭山) 제천단(祭天壇)에 올라 천제(天祭)를 올렸다.
마한 여원흥이 색불루 천왕을 대신하여 하늘에 고(告)한 백두산서고문(白頭山誓告文)은 아래와 같다.
“짐 소자 단군 색불루는 손을 모아 머리를 숙여 절하옵니다. 스스로 천제자(天帝子)로서 나를 닦아 백성에 미치고, 반드시 스스로 하늘에 제(祭)를 올림으로써 황상(皇上)을 공경하겠사오며, 삼신(三神)의 밝은 목숨과 넓은 은혜와 큰 덕을 받았으며 이미 삼한(三韓)의 5만리 땅을 주셨사오니, 홍익인간을 함께 누리겠사옵니다. 이에 마한(馬韓) 여원흥을 보내어 삼신일체(三神一體) 상제(上帝)의 제단에 정성껏 제사올리게 하였사온데, 신께서는 밝고도 밝아 체물(體物)에 남김이 없사와, 정결히 목욕재계하고 정성으로 바치오니, 내리시어 흠향하시고 고요히 도와주시와, 반드시 새로운 임금의 자리 세움을 크게 꾸미게 하사 세세토록 삼한(三韓)의 천만년 한없는 제업(帝業)을 보존할 수 있도록 하시옵고, 해마다 곡식은 풍년이 들게 하시오며, 나라가 부강하게 하시옵고 백성들이 번창하게 하옵소서! 밝고 밝으신 우리 성제(聖帝)시어! 나를 비워 만물이 있도록 지극히 염원하옵니다!(朕小子檀君索弗婁 拜手稽首 自天帝子之修我以及民 必自祭天以敬皇上 受三神明命普恩大德 旣與三韓五萬里之土境 共享弘益人間 故 遣馬韓黎元興 致祭于三神一軆上帝之壇 神其昭昭 軆物無遺 潔齋誠供 降歆黙佑 必能賁餙新帝之建極 世保三韓千萬年无彊之祚業 年穀豊熟 國富民殷 庶昭我聖帝 空我存物之至念)”
서기전1285년 병신년(丙申年)에 제22대 천왕으로 즉위한 색불루 단군께서 3월에 조서(詔書)를 내려 천왕의 자리를 선양받았으니 이전부터 시행된 나라의 법에 따라 삼신(三神)께 정성껏 제사를 올리겠다 하였는 바, 이에 3월 16일에 백악산아사달에서 몸소 천제(天祭)를 지냈으며, 별도로 마한(馬韓) 여원흥에게는 향과 축문을 내리어 3월 16일 이른 아침에 나라의 중앙인 백두산 제천단에서 제를 올리게 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색불루 천왕이 전기 단군조선의 정통성(正統性)을 계승하였음을 천명한 것이 된다.
소자(小子) 단군(檀君) 색불루라 한 데서, 소자(小子)라는 말은 삼신(三神)을 조상신(祖上神)으로 모시는 것이며, 단군(檀君)은 배달나라의 작은 임금이었던 원래의 자리를 천명한 것이 된다.
색불루는 제22대 천왕의 원명(原名)이 되는데,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는 불명이나, 글자로 뜻을 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반면 소리로서 풀면 ‘싹뿌리’가 되어 싹과 뿌리이며 이는 후기 단군조선의 기초를 다진 인물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또는 ‘싹불‘이라 하면 불씨라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 된다.
천제자(天帝子)는 하늘님의 아들로서, 이전의 단군천왕은 하늘로 돌아가시어 삼신(三神)이 되셨으니 상제(上帝)로서 천제(天帝)가 되고, 현재의 임금은 천제자(天帝子)로서 천왕(天王)이 되는 것이다.
황상(皇上)은 이전의 단군천왕들을 가리키는 바, 하늘에 제를 올리는 것이 곧 삼신께 제(祭)를 올리는 것이며, 삼신이 되신 선제(先帝)들을 공경하여 받드는 것이 된다.
색불루 천왕은 삼신(三神)으로부터 은혜를 받았으며 삼신께서 삼한(三韓)의 5만리 땅을 내려 주신 것이라 하여, 이전부터 시행된 홍익인간의 정통성을 계승하였음을 당당히 고하고 있다.
색불루 천왕은 스스로는 백악산아사달의 제천단에서 삼신께 제를 올리고, 별도로 나라의 중앙으로서 삼신일체(三神一體) 상제(上帝)의 자리인 백두산 제천단에는 마한(馬韓) 여원흥을 보내어 정성껏 제사올리게 하였던 것이다.
백두산 서고문에서 색불루 천왕은, 삼신(三神)께 새로운 임금의 자리를 크게 세우도록 도와 달라고 기원하고 있으며, 삼한(三韓)이 함께하는 제업(帝業)이 무한이 지속되도록 바라면서, 이전의 임금들인 성제(聖帝)들이 실천하신 공아존물(空我存物)의 이념을 본받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색불루 천왕은 비록 군사적 강압으로 소태 천왕으로부터 천왕의 자리를 선양(禪讓)받았으나, 단군조선의 정통성을 계승하였음을 천명하고 홍익인간을 실천함으로써 스스로 성제(聖帝)가 되려고 하였던 것이다. 다만 수도(首都)를 아사달이 아닌 이궁(離宮)이 있던 상춘(常春)에 정하여 쇄신(刷新)하였던 것이고, 국호(國號)는 바꾸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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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원 9218년 · 배달개천 5918년 · 단기435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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