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朝鮮) 제22대 색불루(索弗婁) 천왕(天王)의 역사]
신지(臣智) 육우(陸右)의 영고탑 천도 건의
서기전1280년 신축년(辛丑年)에 신지(臣智) 육우(陸右)가 상주(上奏)하여 아뢰기를, “아사달은 천년 제업(帝業)의 땅이라 해도 대운이 이미 다 했으며, 영고탑(寧古塔)은 왕기(王氣)가 짙어 백악산(白岳山)을 오히려 능가하는 듯합니다. 청컨대 성을 쌓고 그곳으로 도읍을 옮기시옵소서”라 하니, 천왕께서 허락하지 않으시고 이르시기를, “새로운 도읍에 이미 집이 있는데 다시 어찌 다른 곳으로 가리오”라고 하셨다.
단군조선의 수도는 서기전2333년부터는 송화강 아사달(阿斯達)이며 이궁(離宮)으로 상춘(常春)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의 구월산(九月山, 아사달산) 신경(新京)과 장당경(藏唐京)과 영고탑(寧古塔)을 두었던 것이 되며, 서기전1285년부터는 수도를 상춘의 백악산아사달에 두고 영고탑과 장당경이 이궁이 되고, 서기전425년부터는 수도를 장당경에 두고 이궁은 장당경의 남쪽에 위치한 해성(海城)에 두었던 것이 된다.
신지 육우가 색불루 천왕이 수도로 삼은 백악산아사달보다는 영고탑이 왕기가 더 훌륭하다며 수도를 옮길 것을 건의한 것이 되는데, 천왕이 백악산아사달에 이미 수도를 정하였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된다.
[조선(朝鮮) 제22대 색불루(索弗婁) 천왕(天王)의 역사]
은나라의 조공
서기전1280년에 은(殷)나라 왕 무정(武丁)이 번한(番韓)을 거쳐 천왕께 글을 올리고 방물(方物)을 바쳤다.
이는 은나라 무정이 서기전1285년에 조공을 약속한 데 따른 실천이 된다. 즉, 은나라 무정은 제22대 왕으로 단군조선의 서남방 즉 번한의 서방이 되는 귀방(鬼方)을 점령하고 색도(索度), 영지(永支) 등을 침범하였다가 패퇴되었는데, 특히 색불루 천왕의 조부인 고등(高登)이 귀방을 습격하여 멸망시키는 등 하여 군사력을 바탕으로 우현왕에 봉해졌고, 색불루 천왕은 우현왕 고등의 손자로서 세습하여 우현왕이 되었던 것이며, 서기전1286년에 군사혁명에 성공하여 소태 천왕으로부터 선양받았는 바, 서기전1285년에 은나라 무정이 사신을 보내어 조공을 약속하였던 것이다.
번한(番韓)은 번조선(番朝鮮)의 임금을 가리킨다. 번한은 단군조선의 오른쪽인 서방(西方)을 지키는 비왕(裨王)으로서 제후들에게는 천상의 왕이 되는 천왕격에 해당하는 바, 은나라 왕은 천하의 왕으로서 천자(天子)이므로 천왕께 직접 글을 올리지 않고 예를 갖추어 단계적으로 바로 위 상국(上國)이 되는 번조선에 글을 올리고 허락을 받아 천왕께 조공을 한 것이 된다. 즉 은나라는 번조선의 관할(管轄)에 있는 제후국이 되는 것이다.
[조선(朝鮮) 제22대 색불루(索弗婁) 천왕(天王)의 역사]
황무(黃霧)가 끼다.
서기전1276년 을사년(乙巳年) 겨울 10월에 누런 안개(黃霧)가 끼었다.
황무(黃霧)는 누런 안개로서, 당시에도 황사현상(黃砂現狀)가 있었던 것이 된다. 즉 사막의 모래가 바람에 날려 공중에 떠서 하늘을 뒤덮은 것이 된다.
[조선(朝鮮) 제22대 색불루(索弗婁) 천왕(天王)의 역사]
남국(藍國)이 엄독홀에 진출하다.
서기전1266년 을묘년(乙卯年)에 남국(藍國)이 매우 강성하여 고죽군(孤竹君)과 더불어 여러 적들을 쫓아 남으로 이동하여 엄독홀(奄瀆忽)에 이르러 그곳에 머물렀으니 은나라 땅에 매우 가까웠다.
남국(藍國)은 서기전2333년경에 세워진 단군조선의 군국(君國)으로서 치우천왕의 후손들이 봉해진 나라가 되며, 산동지역의 서부에 위치하고 청구국(靑邱國)의 서쪽에 위치한 나라가 된다. 청구국은 치우천왕이 도읍한 지역이다.
고죽국은 단군조선의 군국(君國)으로서 은나라의 동북쪽에 있는 나라로서 지금의 북경(北京)과 천진(天津)을 중심으로 한 나라가 되는데, 남동쪽에 위치한 남국(藍國)과 합공(合攻)으로 남하하여 엄독홀(奄瀆忽)에 진출한 것이 된다.
엄독홀(奄瀆忽)은 태산(泰山)을 중심으로 한 지역으로서 은나라 서울인 은허(殷墟) 즉 박(亳)의 동쪽에 위치하며, 서기전1236년에 세워진 엄국(淹國)의 땅이 된다. 엄(淹)은 엄독(奄瀆)을 포함한 지역이 될 것이다.
[조선(朝鮮) 제22대 색불루(索弗婁) 천왕(天王)의 역사]
빈-기의 땅에 여(黎)를 세우다.
서기전1266년에 여파달(黎巴達)로 하여금 병사를 나누어 진격하여 빈기(邠岐)의 땅에 웅거하도록 하면서 그곳의 유민(遺民)과 서로 단결하여 나라를 세워 여(黎)라 칭하고 서융(西戎)과 더불어 은나라 집안의 제후들 사이에 섞여 차지하고 있도록 하였으니, 남씨(藍氏)의 위세가 매우 성하여 황제(皇帝)의 교화(敎化)는 멀리 항산(恒山) 이남의 땅까지 미치게 되었다.
빈기(邠岐)의 땅은 빈(邠)과 기(岐)로서 은나라의 제후국이던 주(周)나라가 일어난 곳인데, 주나라가 번창하기 이전이 되는 이때 여파달이 빈기의 땅에 진출하여 나라를 세워 여(黎)라 하였던 것이며, 서융(西戎)과 섞여 다스린 것이 된다.
서융(西戎)은 서이(西夷)로서 한배달조선의 9족에 속하는 백족(白族)과 황족(黃族)의 일부가 되며, 배달조선의 자치세습 제후국이 된다. 주나라를 세운 주축세력이 곧 서이(西夷)인데, 주나라가 서이(西夷)의 힘으로 은나라를 멸망시킨 것이 되며 주문왕(周文王)과 주무왕(周武王)을 서이(西夷) 출신이라고도 부른다.
빈기(邠岐)와 지금의 서안(西安)을 포함하는 서이(西夷) 지역에 견이(畎夷)가 남하하여 섞여 살았던 것이 되고, 황족(黃族) 즉 황이(黃夷)에 속하는 웅족(熊族) 출신이 봉해진 소호국(少昊國)과 염제신농씨의 아버지인 소전씨(少典氏)의 유웅국(有熊國)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또 후대에는 서이(西夷) 즉 서융(西戎) 지역에 흉노족(匈奴族)도 진출하여 섞여 살았던 것으로 된다.
은나라 집안의 제후들이란, 은나라에 속하는 제후라는 의미로서 은나라의 백작(伯爵)의 나라가 되는 제후국인 주(周)나라도 있었던 것이 된다. 주나라는 서기전1183년경에 서백(西伯) 창(昌)이 다스리고 서기전1134년에 서백 발(發)이 대를 이어 다스리다, 서백 창이 등용하였던 산동출신의 강태공(姜太公)의 보좌(輔佐)로 서기전1122년에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天下)를 평정하여 주(周)나라를 세운 것이다. 여기 천하는 천상(天上)의 상대적인 말로서 상국(上國)이 되는 배달조선(倍達朝鮮)의 지방(地方)에 해당하는 말이다.
항산(恒山)은 은나라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서 단군조선의 군국(君國)인 고죽국(孤竹國)의 서쪽에 있는 태항산(太行山)에 소재하고 있다. 항산은 요순시대 9년 대홍수를 다스릴 때 사공(司空) 우(禹)가 치수를 위하여 올랐던 북악(北岳)이다.
항산(恒山) 이남의 땅까지 황제의 교화가 미쳤다는 것은, 단군조선의 제후국이 항산 이남에 세워지는 등 천왕(天王)의 직접적인 권세(權勢)가 은나라 땅 가까이에 미쳤다는 것이다. 은나라는 단군조선의 조공국(朝貢國)이기는 하나 자치왕국(自治王國)으로서, 단군조선의 군사적 후원(後援)으로 하(夏)나라를 멸망시키고 나라를 세우며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천자국(天子國)으로 시작하였으나, 이후 하(夏)나라의 제도를 답습함으로써 단군조선의 가르침을 거의 외면한 나라인 바, 단군조선의 사상과 철학과 종교와 문화와 거의 단절되다시피한 나라였던 것이 된다.
[조선(朝鮮) 제22대 색불루(索弗婁) 천왕(天王)의 역사]
신독(申督)의 반란
서기전1250년 신미년(辛未年)에 변방의 장수 신독(申督)이 병력을 믿고 난(亂)을 일으켰는데, 이에 천왕이 잠시 영고탑(寧古塔)으로 피하니 많은 백성들이 이에 따랐다.
단군조선은 자치군후국(自治君侯國)을 많이 두었으나 군사권은 원칙적으로 천왕만이 가지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는 비왕(裨王)이나 제후(諸侯)를 한(韓), 한(汗)이라 한 이유이다. 왕(王)은 독자적인 군사권을 가지는 임금이 된다.
그런데, 단군조선이라는 나라가 대국이 2개, 소국이 20여국이 넘으며, 조공국이 70여국이 넘어 하도 크다보니 제후가 아닌 지방장관인 욕살이나 장수들이 난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 되는데, 서기전1250년에 난을 일으킨 신독(申督)은 지방장관인 욕살에 버금가는 변방에 소재한 성(城)의 장수가 된다. 성(城)은 제후가 되는 한(汗)이나, 지방장관인 욕살(褥薩)이나 욕살에 버금가는 장수(將帥)가 봉해진 곳이 된다.
영고탑은 이궁(離宮)이 있는 곳인데, 이궁은 순수(巡狩)할 때 머물거나, 천재지변이나 변란(變亂)이나 본궁(本宮)에 화재 등이 있을 때 피난하는 곳이 된다.
[조선(朝鮮) 제22대 색불루(索弗婁) 천왕(天王)의 역사]
태자 아홀 즉위
서기전1238년 계미년(癸未年)에 천왕께서 붕하시고 태자 아홀(阿忽)이 즉위하였다.
서기전1281년에 제18대 구모소(緱牟蘇) 천왕이 붕하고 우가(牛加) 고홀(固忽)이 즉위한 것을 끝으로 태자(太子)가 아닌 우가(牛加)나 양가(羊加) 출신이 천왕으로 즉위하였는데, 서기전1285년 이후에는 서기전426년까지 해모(奚牟), 마휴(摩休), 추밀(鄒密) 외는 모두 태자(太子)가 즉위한 역사를 가진다. 물론 태자가 아니면서 천왕으로 즉위한 인물은 천왕의 다른 아들이 된다.
__
한국기원 9218년 · 배달개천 5918년 · 단기4354년
ichncok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