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7만년 역사] 달문 천왕의 역사2 - 상춘 구월산 제천문(祭天文), 신지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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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배달문화원
작성일 : 2021-02-09 조회 : 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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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태백의 홍익인간 7만년 역사<70> 상춘 구월산 서효사 제천 고대중국의 왕들은 모두 배달나라와 단군조선의 지방 제후국의 왕
[상춘(常春) 구월산(九月山) 제천문(祭天文), 신지(神誌) 발리(發理)의 서효사(誓效詞)]
서기전2049년 임자년(壬子年)에 모든 한(汗)들을 상춘(常春)에 모이도록 하여 구월산(九月山)에서 삼신(三神)께 제(祭)를 올렸는데, 신지(神誌) 발리(發理)로 하여금 서효사(誓效詞)를 짓게 하였다.
서효사는 아래와 같다.
“아침 해가 먼저 비치는 땅에, 삼신(三神)께서 밝게 세상에 내리시고, 한인(桓因)께서 모습을 나타내어 먼저 덕을 심으시니 크고 깊어라. 모든 신께서 의논하여 한웅을 보내시니 한웅(桓雄)께서 조칙을 받들어 개천(開天)을 시작하셨도다. 치우(蚩尤)께서 청구(靑邱)를 일으키고 만고(萬古)에 무(武)의 위엄을 떨치시니 회대(淮岱) 지역이 모두 왕께 돌아왔으며 천하가 능히 침범치 못하였도다. 왕검(王儉)께서 대명(大命)을 받으시니, 기쁜 소리가 구한(九桓)에 울려 퍼지고, 고기잡이 백성과 물가의 백성들이 깨어나고, 풀이 자라고 바람이 부는 육지에도 덕화(德化)가 새롭도다. 원한 있는 자는 먼저 원한을 풀고, 병이 있는 자는 먼저 병을 없애며, 한마음으로 인(仁)과 효(孝)가 있을 따름이며, 사해(四海)가 모두 광명(光明)이로다. 진한(眞韓)은 나라 안을 맡으니 다스림의 도(道)는 모두 새로우며, 마한은 그 왼쪽을 보좌하고 번한은 그 남쪽을 보좌하여, 험준한 바위가 사방의 벽을 쌓음이라. 성스런 임금께서 상춘의 신경(新京)에 행차하심은 저울대와 저울추와 저울그릇과 같도다. 저울그릇은 백아강이요, 저울대는 소밀랑이며, 저울추는 안덕향이라. 머리와 꼬리가 수평을 이루어 고르며, 신뢰와 덕(德)이 신(神)의 정기(精氣)를 보호하고, 나라를 흥하게 하여 태평을 보장하니, 조공하는 나라가 70국이며, 영원토록 삼한(三韓)의 뜻을 보장하도다. 왕업(王業)에 흥함과 융성함이 있을지니, 흥함과 폐함을 말하지 말지로다. 정성은 하늘님(天神)을 섬김에 있도다!(朝光先受地 三神赫世臨 桓因出象先 樹德宏且深 諸神議遣雄 承詔始開天 蚩尤起靑邱 萬古振武聲 淮岱皆歸王 天下莫能侵 王儉受大命 懽聲動九桓 魚水民其蘇 草風德化新 怨者先解怨 病者先去病 一心存仁孝 四海盡光明 眞韓鎭國中 治道咸維新 慕韓保其左 番韓控其南 峻岩圍四壁 聖主幸新京 如秤錘極器 極器白牙岡 秤幹蘇密浪 錘者安德鄕 首尾均平位 賴德護神精 興邦保太平 朝降七十國 永保三韓義 王業有興隆 興廢莫爲說 誠在事天神)”
이에, 달문 천왕께서 모든 한(汗)들과 약속을 세워 이르기를, “무릇 나와 함께 이를 약속하는 사람은 한국(桓國)의 오훈(五訓), 신시(神市)의 오사(五事)로써 영구토록 준수하는 일로 삼느니라. 하늘에 제사하는 의식은 사람을 근본으로 삼고, 나라를 위하는 길은 먹는 것을 우선으로 하느니, 농사는 사람 사는 모든 일의 근본이며, 제사는 다섯 가르침의 근원이니라. 마땅히 백성과 더불어 함께 다스리는 것을 산업으로 삼을 것이니라.” 하셨다.
천왕께서는 먼저 겨레(族)가 소중함을 가르치고 다음으로 죄인들을 용서하며 아울러 사형을 없애고, 책화(責禍)와 국경을 지키는 것과 화백(和白)을 공개하였다. 전적으로 함께 화합하는 마음으로 하나로 베풀고, 겸손하고 낮추어 스스로 기름으로써, 어진 정치의 시작이 되었다. 때에 동맹을 맺어 조공을 바친 곳이 큰나라가 둘(2)이며, 작은나라가 스물(20)이며, 마을부락이 3,624곳이나 되었다.
서효사(誓效詞)는 신지가 지은 비밀스런 글이라 하여 신지비사(神誌祕詞)라고도 한다. 실제로 신지비사인 서효사는 서기전2049년에 달문(達門) 천왕(天王)이 상춘(常春)의 신경(新京)에 행차하여 구월산(九月山) 제천단(祭天壇)에서 모든 한(汗)들과 함께 삼신(三神)께 제사를 올릴 때, 신지(神誌)의 직에 있던 발리(發理)라는 사람이 글을 지어 바친 것이다.
위 서효사는 단군조선 이전의 역사로서, 우리나라가 삼신께서 화신(化身)하여 내려오신 나라이며, 한인(桓因) 천제의 역사와 한웅(桓雄) 천왕의 개천(開天)의 역사와 치우(蚩尤) 천왕의 위세(威勢)의 역사를 적고 있다.
또 단군조선의 시조이신 단군왕검께서 대명(大命)을 이었음을 적고 있으며, 진한과 마한과 번한의 역할을 적으면서 만대에 삼한(三韓)의 역사가 무궁할 것인 바, 오로지 나라에 흥함이 있을 뿐이지 나라의 폐함은 말조차 꺼내지 말 것이며, 다만 하늘을 섬김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汗)이라는 직위는 단군조선의 제도로 볼 때 지방장관격인 욕살(褥薩) 위의 자리가 되는 일반적인 제후(諸侯)에 해당하는데, 경우에 따라 넓은 의미로 진한, 마한, 번한의 한(韓)을 포함하기도 하고, 때로는 군(君)을 포함하는 경우도 있으며, 좁은 의미로는 한(韓)이나 군(君)의 아래인 지방의 왕(王)이 되는 일반적인 제후가 된다. 즉 통상적으로 일반제후인 공후백자남(公侯伯子男)이 한(汗)에 해당하는 것이다.
단군조선의 한(汗)은 지방 제후국의 왕이 되며 군사권은 제한된다. 일반적으로 왕(王)은 군사권을 가지는데, 한(汗)은 명을 받아서 군사권을 행사하게 된다. 즉 한(韓)과 한(汗)은 보위(補衛), 보좌(補佐)의 뜻을 가진다. 군사권을 행사할 때는 왕(王)이라 칭하게 된다.
성(城)의 책임자인 성주(城主)는 일반적으로 지방장관격인 욕살(褥薩)이 맡으나 경우에 따라 욕살(褥薩)을 승진시켜 한(汗)으로 봉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우 한(汗)으로 봉해진 성(城)은 제후국(諸侯國)이 된다.
단군조선의 제후국은 자세히 구분하면, 진한(眞韓), 마한(馬韓), 번한(番韓)의 삼한(三韓)과 이들 삼한의 관경에 속한 군후국(君侯國)이 있어 한국(韓國), 군국(君國), 후국(侯國)이 있는 것이다.
단군조선의 단군(檀君)은, 시조 단군왕검은 처음 배달나라의 천군(天君)에서 조선개국 시조로서 천왕(天王)이 되셨고 이후 태자부루를 천왕격인 진한(眞韓)에 봉함으로써 천제(天帝)로 받들어진 것이며, 제2대 부루 천왕부터는 천왕(天王)이 되어 마한과 번한은 천왕격(天王格)의 비왕(裨王)이 되고, 진한과 마한과 번한의 관경에 속한 군국(君國)의 왕은 천군(天君)이 되며, 그 외 일반 제후국의 왕은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에 해당하게 된다.
그리하여 소위 삼황오제(三皇五帝)와 하은주(夏殷周) 등 고대중국의 왕들은 모두 배달나라와 단군조선의 지방 제후국의 왕이 되는 천자(天子)인 것이며, 고대중국의 기록에서도 스스로 천자(天子)라고 적고 있는 것이다.
상춘(常春)은 부여(扶餘) 특히 북부여에 있는 땅으로, 고구려의 초기 수도인 눌현(訥見)이라고도 불렀는데, 늘봄이라는 뜻을 가지는 말이다. 단군조선 진한의 3경(京) 중 이궁(離宮)이 있던 곳으로서 서기전1285년부터는 단군조선의 수도가 된 곳이기도 하다.
상춘에 구월산(九月山)이 있는데, 이 구월산은 아흐달산으로서 곧 아사달산이라는 말의 이두식 표기가 된다. 서효사에 의하면 서기전2049년의 상춘은 신경(新京)이라고 적어 이미 단군조선의 이궁(離宮) 이상으로 간주되고 있던 있던 상태가 된다. 실제로 상춘에 신궁(新宮)을 축조한 때는 서기전1984년인데, 이때는 청해(靑海) 욕살(褥薩) 우착(于捉)이 반란을 일으켜 아사달궁을 침범하여 제9대 아술 천왕이 피난한 때이며, 여기에 3년을 머물렀다 아사달로 되돌아 왔다.
신지(神誌)는 문자담당 즉 기록담당의 관직 명칭이다. 천왕(天王)의 명령(命令)을 관장한 직책이기도 하다. 서기전3897년 배달나라 초기부터 있어온 관직이며, 배달나라 초기에 신지(神誌) 혁덕(赫德)이 상형문자인 녹도문(鹿圖文)을 만들었다라고 기록되고 있다. 후대에는 외교문서 등 문서담당으로서 한림원(翰林院)이라는 관청(官廳)이 있었다. 한인(桓因) 천제가 다스리던 한국(桓國)은 모두 12한국이 있던 시대의 중심이 되던 나라로서, 흑수백산(黑水白山)의 땅에 있었는데, 이 흑수백산은 곧 지금의 흑룡강과 백두산을 가리키며 단군조선의 진한 땅이 된다.
파미르고원의 동쪽에 9족(族)으로 이루어진 12한국(桓國)이 황하(黃河) 이북이 되는 천산, 몽골, 시베리아, 만주, 한반도 등 대황원(大荒原)에 걸쳐 퍼져 있었던 것이며, 한웅천왕(桓雄天王)의 배달나라 중심지는 흑수백산을 중심으로 한 한국(桓國)의 저 먼 서남지방으로서 호족(虎族)과 웅족(熊族)의 전쟁터였던 황하 중상류 지역이며, 황하 부근이 되는 지금의 서안(西安) 남쪽에 위치한 태백산(太白山) 아래에 신시(神市)를 열어 수도로 삼았던 것이다.
한국(桓國) 말기가 되는 서기전3900년경에 황하 중상류 지역의 선주민이던 호족(虎族)은 사막지대에 살던 백족(白族)이 되고, 남하하여 이주하던 웅족(熊族)은 황하 이북에 살던 황족(黃族)의 일파였다.
한인(桓因) 시대 이전에 이미 9족이 형성되었는데, 황족(黃族), 백족(白族), 남족(藍族), 적족(赤族), 현족(玄族), 양족(陽族), 우족(于族), 방족(方族), 견족(畎族)이다. 이중 양족, 우족, 방족, 견족은 모두 황족의 파생족이다. 황족은 황인종, 백족은 백인종, 남족은 청인종, 적족은 적인종, 현족은 흑인종 계통이 된다.
그리하여 백족(白族)에 해당하는 호족(虎族)과 황족(黃族)에 속하는 웅족(熊族)이, 호족이 텃세를 부리는 틈에 웅족이 이주(移住)를 하면서, 전쟁을 하였던 것이다.
이에, 홍익인간 세상을 펴칠 뜻을 품고 있던 한웅천왕이 한인천제(桓因天帝)의 명을 받아, 밝은 하늘나라인 북쪽의 한국(桓國)에서 지방이 되는 남쪽의 밝은 땅 나라인 박달로 내려와,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神誥)와 참전계경(參佺戒經)이라는 하늘나라의 가르침을 주어 짐승같은 짓을 그치게 하여 인간(人間)이 되게 함으로써 배달나라 백성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러나, 호족(虎族)은 한웅천왕의 가르침을 끝내 따르지 않아 백성으로 받아들여 지지않고 사방으로 추방을 당하였다. 뿔뿔이 흩어진 호족(虎族)의 일부는 후대에 황제헌원(黃帝軒轅)의 백성이 되기도 하였고, 서안(西安) 서쪽에 살던 백족(白族)은 후대에 서이(西夷)로 불리면서 주(周)나라 세력의 주축이 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주나라 문왕과 무왕을 서이(西夷) 출신이라 부른 것이 된다.
고려사 김위제전에 소위 신지비사(神誌祕詞)에 관한 글이 전하는데, 원래의 서효사의 문장이 변형되어 있다. 여기서는 신지비사의 글을 빌어 지금의 서울인 한양(漢陽)을 오덕지(五德地)라 여겼던 것이며, 고려시대 남경(南京)으로 삼았던 것이 된다.
단군조선 시대의 오덕지가 되는 번한(番韓)의 오덕지는 곧 번한의 5경(京)이 되는데, 동경(東京)이 되는 험독(險瀆), 서경(西京)이 되는 한성(汗城), 남경(南京)이 되는 가한성(可汗城)인 낭야성(琅耶城), 북경(北京)이 되는 탕지(湯池) 그리고 중경(中京)이 되는 개평(蓋平)이다. 개평은 안덕향(安德鄕)이라고 부르며 탕지는 그 이전의 수도로서 구안덕향(舊安德鄕)이라 부른다.
소위 신지비사인 서효사에 의하면 번한(番韓)은 저울추와 같아서 번한의 수도(首都)가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면서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하는 것이 되는데, 번한의 오덕지(五德地)는 바로 번한의 동서남북중(東西南北中) 다섯 곳의 수도인 5경제도를 가리키는 것이 된다.
이에 반하여, 고려시대에 오덕지(五德地)라 본 한양(漢陽)은 동서남북중의 덕(德)을 한꺼번에 가진 중앙(中央)에 위치한 땅으로서의 오덕지가 된다.
그리하여 다섯 곳의 덕지(德地)이냐 오덕(五德)을 갖춘 한 곳의 땅이냐의 차이가 있는 것이 되는데, 이는 고려시대에 소위 신지비사를 언급하면서도 단군조선의 번한 5경제도를 오해한 것이 되며, 결론적으로 서효사의 구절을 잘못 해석한 것이 되기도 한다. 위 서효사에서 마한(馬韓)은 왼쪽을 보좌하고 번한(番韓)은 남쪽을 보좌한다고 적고 있는데, 원래 마한(馬韓)이라는 말은 남쪽의 한(韓)으로서 남쪽을 보좌하는 것이 되고, 번한은 차례(次例), 번(番)를 서서 지키는 한(韓)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즉, 단군왕검 시대에는 마한은 남쪽을 보좌하고 번한은 서쪽을 보좌하는 기능을 담당하였는데, 서기전2049년에 이르러 마한은 왼쪽인 동쪽이 되고 번한이 바로 남쪽이 되어, 나라의 중심이 동쪽의 송화강 아사달에서 서쪽에 위치한 상춘의 백악산아사달로 이동한 것으로 상정(想定)하였다는 것이 된다. 한국(桓國)의 오훈(五訓)은 다섯가지 가르침으로서, 성신불위(誠信不僞), 경근불태(敬勤不怠), 효순불위(孝順不違), 염의불음(廉義不淫), 겸화불투(謙和不鬪)이다. 즉 정성과 믿음으로 거짓되지 아니하고, 공경하고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않고, 효도하고 순종하여 어기지 아니하며, 청렴하고 의로워 음탕하지 않고, 겸손하고 화목하여 다투지 아니한다는 다섯가지 인간윤리인 가르침이다. 또 신시(神市)의 오사(五事)는 배달나라 시대에 오가(五加)가 담당하였던 직무를 가리키는데, 저가 주병(猪加主病), 구가 주형(狗加主刑), 양가 주선악(羊加主善惡), 우가 주곡(牛加主穀), 마가 주명(馬加主命)이다. 즉, 저가는 질병을 담당하고, 구가(개)는 형벌을 담당하며, 양가는 선악을 담당하고, 우가는 농사를 담당하고, 마가는 명령과 목숨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오가(五加)를 오방(五方)의 오부(五部)로 보면 저가(豬加)는 중부(中部), 구가(狗加)는 서부(西部), 양가(羊加)는 북부(北部), 우가(牛加)는 동부(東部), 마가(馬加)는 남부(南部)에 각 해당한다. 오가(五加)를 중앙의 행정조직으로 보면, 현시대의 정치조직에 대입할 때, 대통령 아래에 있으면서 실제 정치를 펼치는 행정부(行政府)에 해당한다. 저가(豬加)는 돝 즉 돼지를 상징으로 하는 부서(部署)로서 청결(淸潔)을 중시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질병(疾病)을 담당한 것이 되고, 구가(狗加)는 개를 상징으로 하는 부서로서 안녕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치안(治安)과 형벌(刑罰)을 담당한 것이 되고, 양가(羊加)는 양이나 염소를 상징으로 하는 부서로서 착한 존재라는 의미에서 선악(善惡)을 담당한 것이 되고, 우가(牛加)는 소를 상징으로 하는 부서로서 농사를 짓는다는 의미에서 농사를 담당한 것이 되고, 마가(馬加)는 말을 상징으로 하는 부서로서 명령(命令)을 전달하고 전쟁과 국방을 담당한다는 의미에서 목숨(命)을 담당한 것이 된다.이들 오가(五加)를 통할(統轄)하는 삼사(三師)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인데, 풍백은 입법담당이며, 우사는 행정담당이고, 운사는 사법담당이다. 지금으로 보면 풍백은 입법부인 국회, 우사는 행정부, 운사는 사법부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양가(羊加)의 직무는 선악(善惡) 담당인데, 교육(敎育)과 사법(司法)의 직무를 수행하는 바, 행정담당인 우사(雨師)와 사법담당인 운사(雲師)에 겸하여 속한 것이 된다. 이와 같이 오가(五加)는 삼사(三師) 아래에 있으면서 업무적으로 소속된 것이 된다. 이는 근세조선 시대 영의정(領議政), 좌의정(左議政), 우의정(右議政) 아래에 행정부인 6조가 소속된 것과 유사한 체제가 된다.단군조선 시대에도 기본적으로 배달나라의 삼사오가(三師五加) 제도가 실시되었던 것이며, 추가로 호가(虎加), 용가(龍加), 웅가(熊加), 응가(鷹加), 노가(鷺加) 등을 설치하여 각각 업무를 담당하였다고도 기록되며 단군 8가(加), 9가라고도 불리운다. 이와 같이 오가와 별도로 가(加)를 설치하였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기본 행정부서가 되는 6부(部)나 6조(曹) 외에 별도의 업무를 관할하는 관청(官廳)을 둔 것과 같은 이치(理致)가 된다. 달문(達門) 천왕은 화합정치를 펼쳐 사형제도를 없애고, 책화(責禍)와 국경경비와 화백회의(和白會議) 등을 공개하였으며, 화합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겸손하고 낮춤으로써 어진 정치를 실행하였던 것이다. 때에 동맹을 맺어 조공을 바친 곳이 큰나라가 둘(2)이며, 작은나라가 스물(20)이며, 마을부락이 3,624곳이나 되었다 하는 바, 큰 나라는 천왕격인 비왕(裨王)의 나라인 마한(馬韓)과 번한(番韓)이며, 작은나라는 그 외의 군후국을 가리키는데, 군후국 중에서 크게는 청구, 남국(藍國), 구려, 진번, 부여, 숙신, 예, 개마, 옥저, 졸본, 비류, 고죽, 몽골, 선비, 흉노, 낙랑 등이 있으며, 천자국(天子國)이 되는 하(夏)나라도 여기에 포함되고, 그 외 제후(諸侯)가 다스리는 소국(小國)들이 있어, 모두 20여개국이 있었다는 것이다. 즉 단군조선은 16개국을 거느린 천축국(天竺國)처럼 대제국이라 풀이되기도 한다. 조공(朝貢)을 한 마을부락이 3,624곳이라 한 것은, 큰나라와 작은나라에 속한 마을의 총 숫자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불명하나, 상국(上國)인 진한(眞韓)과 대국(大國)인 마한(馬韓) 및 번한(番韓)과 소국(小國)으로서 삼한(三韓) 관경에 속한 제후국 안에 있는 마을부락의 숫자라고도 보인다. 다만, 마을부락을 삼한(三韓)과 제후국(諸侯國)들로부터 독립된 마을단위로 보면, 각 추장(酋長)들이 맡고 있던 곳으로서 별도로 조공을 바친 것이 된다. 서기전1666년의 호구(戶口) 조사에서 1억8,000만명이라는 기록을 보면, 삼한 관경내 제후국과 별개인 마을부락으로 보이며, 이 인구는 파미르고원에 있던 9족(族) 전체의 수가 될 것이다. 이떤 지역에 제후국을 봉하더라도 다른 제후국에도 속하지 아니하는 마을부락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마을부락으로서 단군조선에 조공(朝貢)을 별도로 바친 마을부락이 3,624개나 된다고 한 것이 된다. 서기전2048년 계축년(癸丑年)에 달문(達門) 천왕께서 붕어하시니 양가(羊加) 한율(翰栗)이 즉위하였다. 제7대 한율 천왕은 달문 천왕의 태자가 아니라 차자나 삼자 등의 다른 아들이 되며 양가(羊加)의 직에 있었던 것이 된다. 양가(羊加)는 선악(善惡) 담당으로서 착한 사람이 되도록 교육을 하고 악(惡)한 자는 처벌하는 관청이며, 지금의 교육부와 법무부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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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근 한문화사업총단 대표/천산역사연구원장/천부역(天符易)과학원장/마고족보연구원 대표/세계무궁화축제문화사업회 이사/독도 대마도 동해 만주 수호회복단 이사/천웅도 문무원 이사/광개토황비문연구원 이사/천부어문연구원 이사/산삼문화사업단 이사/한국삼협회 고문/홍익정치연구원 이사/한문화컨텐츠개발원 이사/한문화유물문화재연구원 이사/한문화사업단 이사/행운천지인 역리풍수 대표/(주)한문화개발 고문/플러스코리아타임즈 이사/춘천고조선유적지보전협의회 총괄기획위원장/천부풍수연구원 이사/풍수지리신문 편집국장/현 법무사/저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마고할미로부터 7만년> <생활사주> <생활기문> <천부풍수> <천웅도와 홍익인간><우리말글과 세계언문역사>외 ------------------------------------------------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3년 역사를 정립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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