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원사화》가 일반에 공개된 것은 1925년 간행된 《단전요의(檀典要義)》에 일부가 인용된 것이 최초로 여겨진다. 그 내용은 1929년 간행된 《대동사강》에서도 인용되었고 전체 내용은 1932년 5월 이전에 등사되었다.[1] 1934년에도 그 내용이 직접 인용되었으며[2] 1940년에는 양주동이 필사본을 소장하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후에 국립중앙도서관 측에서 해방 직후(1945~1946년) 조선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필사본을 구입하여 귀중본으로 등록하였다.[3] 이후 위서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1972년에 고서심의위원 이가원, 손보기, 임창순의 3인이 심의하여 조선 왕조 숙종 1년인 1675년에 작성된 진본이라 판정하였다.
이미 1972년, 조선 왕조 숙종 1년인 1675년에 작성된 진본이라고 판정하였다, 이는 귀중본중에서 확인한 것으로 이 서 이외의 내용은 기본이, 권람의 작으로 보이고 내용을 판독하는 것이 아니고 현재까지도 북애자가 숙종 1675년에 쓴 것이 아니다 맞다고 하는 말도 안되는 魏書론으로 倭鬼가 쓴 적이 없어요, 아저씨, 좃던 인성 아저씨 교회똥통에서 허우적 거리든지 말든지 한국고대사에서는 나가주세요. 헬렐루야, 아브라함의 좃던네 아저씨는 빠져주세요. 이 문영은 물론이고 야스페르츠, 위키백과 서 아사달 아저씨 등등 주류똥통도 아닌 것들이 놀고 있네요.
역사서 '규원사화'의 가치와 그 의미
[국학칼럼] 국학을 통해 바라본 우리 역사
우리 역사의 그 기원을 알 수 있는 상고사를 기록한 사서로는 『규원사화』『환단고기』『단기고사』등이 있다. 이러한 사서들은 다른 사서들과 다른 특징이 있다.
[산] 우선 上古史라는 용어는 현재 우똥이가 병신도의 한국역사 시대구분 오류로 三代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이미 구분이 된 것으로 상고는 배달신시로 神檀이라는 "신시배달"시대를 말한다고 명명이 된 것입니다, 즉 上古라는 것은 남의 나라가 아니고 고 조선 삼대 조선중 태고, 상고, 고대입니다, 즉 규원사화는 상고사만이 아니고 삼대사 그리고 그 윗대 신화시대까지 포괄한 조판기, 조대기의 내용으로 시대구분의 명목도 밝히고 있습니다.
신화시대 하늘의 하늘나라 마고지나 그 위 하늘의 신화이야기 : 삼신개벽기, 삼신오제본기 등 조판기
태고사 - 이 땅의 하늘나라 天國으로 桓國 기원전 7,197년 ~ 기원전 3,897년 환인천제
상고사 - 이 땅의 땅의나라 地國으로 檀國 기원전 3,897년 ~ 기원전 2,333년 환웅천왕
고대사 - 이 땅의 사람나라 人國으로 韓國 기원전 2,333년 ~ 기원전 238년 환검천군
상고사는 배달신시, 신단이라고 하고 배달나라라고 합니다.
고대사로 인국인 한국은 나라를 朝鮮이라고 처음으로 칭한 나라로, 삼한조선으로 한조선이라고 하나 협의의 고조선으로 고대 하면 고조선을 의미하고 환단한은 일체 고조선으로 고나라입니다, 우리가 고 조선으로 고리아, 古國으로 古는 예 고로 천부 十의 말씀으로 任한 나라라는 뜻입니다.
선사시대로 전설시대가 태고사로, 구전의 서로, 문자발명은 상고사, 즉 배달신시 신지씨 혁덕의 녹도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즉 전설의 시대/선사와 역사시대의 구분은 개천으로 기원전 3,897년의 전후입니다.
즉 무조건 상고사다 아니고 그 내용이 상고선인, 상고신인 종 등으로 한문의 훈에서도 가림어로 가림이 된 시대구분으로 三代는 할아버지 아버지 나의 삼대가 아니고 역사, 한국의 역사에서는 태고, 상고, 고대로 고조선의 삼대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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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오래된 역사이다 보니 당대의 기록이 아니고 후대의 기록을 옮겨 적은 것이다. 그런데 옮겨 적은, 즉 저본(底本)이 되는 사서또한 남아 있지 않기에 위서 논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기서 위서(僞書)란 무엇을 뜻하는가?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① 가짜 편지 ② 비슷하게 만든 가짜 책 ③ 남의 필적을 흉내 내어 씀 ④ 위조 문서. 고조선 역사와 관련되는 위서 논쟁은 그 중 두 번째, 즉 ‘비슷하게 만든 가짜 책’이냐, 아니냐를 놓고 벌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의도된 가짜 책이냐 아니면 옮겨 적는, 즉 필사하는 과정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오류까지도 위서로 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산]
《규원사화》가 일반에 공개된 것은 1925년 간행된 《단전요의(檀典要義)》에 일부가 인용된 것이 최초로 여겨진다. 그 내용은 1929년 간행된 《대동사강》에서도 인용되었고 전체 내용은 1932년 5월 이전에 등사되었다.[1] 1934년에도 그 내용이 직접 인용되었으며[2] 1940년에는 양주동이 필사본을 소장하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후에 국립중앙도서관 측에서 해방 직후(1945~1946년) 조선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필사본을 구입하여 귀중본으로 등록하였다.[3] 이후 위서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1972년에 고서심의위원 이가원, 손보기, 임창순의 3인이 심의하여 조선 왕조 숙종 1년인 1675년에 작성된 진본이라 판정하였다.
위서론자의 주장은 1675년 17세기작이 아니고 20세기의 조작, 만들어진 역사이야기다, 이는 1972년 이미 진본이라고 확인된 바 있습니다, 거짓말장이 좃던 인성의 換父易祖보다는 더 진본 확정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씨다 후손이다는 것이 위사, 위증입니다 이를 엿같은 닭대가리 똥통소리다. 닭똥은 너나 먹고 닭똥집이나 소주하고 내와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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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가 역사를 알고자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지나간 과거의 사실을 통해 자기 자신이 속해있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배경을 이해하고 자기 자신의 참모습을 알고자 함일 것이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한 개인과 그 개인이 속한 국가와 민족은 하나의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에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이 우선 확립되어야 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 이야기 이다. 또한『규원사화』『환단고기』『단기고사』등과 같이 한국 상고사를 기록한 사서들은 기존의 한국사와는 완연히 다른 데도 세상에 등장한 이래로 상당한 기간 동안 국민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이유도 기존의 역사가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려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사서들은 주류 사학자들의 위서 시비와 무관심 속에서도 이미 사회ㆍ문화적으로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많은 국민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재발견하고 민족 정체성을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인식되어 왔던 것이다.
[산] 규원사화에서도 밝혔듯이, 나라가 있는데 역사가 없다, 이는 형은 있고 혼이 없는 것으로 얼빠진 껍데기라는 소리입니다, 얼빠진 나라는 망한다는 것으로 북애자가 예언했듯이 양대 왜란과 호란에도 이좃시대 사대부는 알과 얼이 빠진 짱개들로 미친 선비들이다, 고로 수백년내에 나라를 잃는 수모를 겪게 될 것이라고 안타가와 했습니다, 실제로 일어난 상황으로 이는 다시 노론이 아니고 기리사독교 유태 닭대가리들의 닭똥사학으로 다시 역사가 없는 나라, 얼빠진 외형, 껍데기 나라로 이상한 나라 엘리트들의 나라 엘리스가 되면 나라는 망하게 된다, 이를 "正體性"으로 이미 단군왕검께서는 聖言으로 남긴 바 있습니다. 규원사화는 논고형식으로 자신의 주장이 많이 가미되어 서술형이고 역사서란, 기사형식입니다, 즉 규원사화는 역사서을 기준으로 한 論考로 논문식 편집입니다,
辛未四年. 帝復神巿舊規, 創立倧敎, 頒布國中, 以親九族設講ㅁ誥于天下, 敎化萬民, 宣告神政于四海,盖不言而信不怒而威. 無爲而化, 淳厖之治, 熙洽四表. 命三僊官四靈師主治人間三百六十六事, 盖以誠信愛濟禍福報應八理敎人, 人無賢愚, 易於達天理通人理, 無爲而化, 故人化湥於至治之世也. 寔神巿天皇開國, 敎化之神政也.
辛未(신미, BC2330) 4년. 帝(제)는 다시 神巿(신불)의 옛 규범을 되돌리고 上古神人(상고신인)의 가르침을 창립하여 나라안에 반포하였다. 친히 九族(구족)에게 삼일신고를 천하에서 강론하고 만민을 교화하였으며 神政(신정)을 四海(사해)에 널리 알리었으니, 말하지 않고 믿게 하며 화내지 않고 두려워하게 하고 행함이 없이 교화시켜서 淳厖(순방)의 다스림을 四表(사표)에 널리 드날리었다. 三僊官(삼선관)과 四靈[3]師(사령사)에게 명하여 인간의 366가지 일을 주관하고 다스리게 하였다. 대개 誠(성) 信(신) 愛(애) 濟(제) 禍(화) 福(복) 報(보) 應(응)의 8가지 도리로 사람을 가르쳤는데, 사람이 현명하거나 어리석거나 보다 쉽게 天理(천리)에 도달하거나 人理(인리)를 통달하였으며 행함 없이 변화되었다. 그래서 세상이 잘 다스려지는 데까지 사람들의 변화가 흘러 들어갔으니 이것은 오직 神巿(신불) 天皇(천황)이 개국하여 교화한 新政(신정)인 것이다.
종교에 대한 개념과 종교 창립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이에 대한 해석은 각자 할 일이나, 宗敎라는 용어는 고조선에서 시작된 말이다, 삼위일체의 하나님 삼일신, 삼위일체 일신 하나님에 대한 가르침을 한 분이 上古 배달신시의 神人으로 천왕, 천신불인 거발환 환웅천왕이시다 이 분을 문으로 상고 신인 종[倧]으로 문자의 어원까지 표하고 있습니다, 즉 상고신인 종은 宗을 가르침한 종교의 시조 종이라는 뜻이다, 宗敎를 가르침한 분이 倧敎로 신교라는 말로, 이는 耶蘇敎 등 예수의 가르침과 같은 성인으로 '상고 신인" 종이라는 문까지 있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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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子三十三年. 帝命元輔彭虞曰.., 祭天報本敬神愛人爲治國之大道也. 汝以祭天敬神之事敎百姓曰..,天, 有一位神無所不在, 有大德大慧大力, 主無數世界, 創造万物宇宙, 無限之大圈也. 天道無限之正圈也. 人道無限之正軸也. 物情無限之橫軸也. 自其正圈直射乎正軸者諸思想也. 自其正軸反射乎正圈者誠力也. 判斷之主體卽我而思想之實體, 是爲一身之靈主也. 自其宇宙自然之體互相融會交換其秘情之處卽靈䑓也. 今人宗敎之心始發於此也. 惟一允執厥中不失其正也. 彭虞[18]承命頌誥于天下九桓之民咸歸于一.
庚子(경자, BC2301) 31년. 帝(제)는 元輔(원보) 彭虞(팽우)[19]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하늘에 제사하고 근본에 보답하며 하나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큰 도리이다. 너는 하늘에 제사하는 것과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을 백성이 가르치면서 이렇게 말하라. 하늘에는 하나의 하나님이 있으고 어느 곳에나 있으며 큰 덕과 큰 지혜와 큰 힘이 있으니 무수한 세계를 다스리고 우주 만물을 창조하였고 무한의 큰 권역이다. 天道(천도)는 무한한 正圈(정권)이며 人道(인도)는 무한한 正軸(정축)[20]이다. 物情(물정)은 무한한 橫軸(횡축)이다. 그 正圈(정권)으로부터 直射(직사)함이여, 正軸(정축)이라는 것은 모든 사상이다. 그 正軸(정축)으로부터 反射(반사)함이여, 正圈(정권)이라는 것은 모든 誠力(성력)이다. 판단의 주체 즉 나는 사상의 실체인데 이것이 하나의 육신의 靈主(령주)이다. 그 宇宙(우주)로부터 自然(자연)의 근본과 상호 融會(융회)와 交換(교환)하나니 그 비밀스런 뜻이 있는 곳이 곧 靈䑓(령대)이다. 현재 사람들의 종교에 대한 마음은 여기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다. 비록 그 하나를 진실로 잡아[21] 그 중에 잃은 것이 있을지라도 그 진실된 바른 것은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彭虞(팽우)[22]는 명을 이어 천하에 頌誥(송고)하니 九桓(구환)의 백성들이 하나로 다함께 돌아왔다.
말 그대로 단군왕검의 聖言입니다, 이를 규원사화에서는 풀어서 설명한 것인데, 그 문맥이 자신의 주장이 들어가서 단순한 역사의 설명인지 종교인지? 그 성언의 말씀의 중요성에서 조금은 벗어난 것으로 이는 단군왕검의 聖言으로 토를 달 말이 아닙니다, 이를 가지고 철학, 신학, 한국의 신학, 종교학 등이 있슴을 말한 것이지, 이에 북애자는 자신의 의견을 중국사서로 설명하므로써 혼선이 된다는 내용분석입니다, 즉 기사는 기사고, 논평을 하려했으면 논고로 해야하는데 주석으로 따로 달아야 했다, 내용의 취지는 알겠지만 그 내용설명이 중국사상으로 집중, 즉 단군왕검의 말씀은 간단하게 설명이 된 정의지 구구절절 설명은 따로 하라는 것입니다.
즉 나 我란?
1. 판단의 주체로서 나
2. 사상의 실체다.
3. 일신의 령주다.
이게 정의지, 이를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는 철학논의라고 합니다, 이는 "단군왕검"의 聖言으로 말하면 끝인데 북애자 권람의 구구절절한 내용은 좋으나, 집중이 안되는 유교인지 선도인지 등이 한참을 봐야 아는 문맥상의 단절을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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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인식하게 된 이유는 민족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사가 상고시대 역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주류사학계에서는 이 시기 우리 겨레의 역사에 대한 사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단군조선의 역사조차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삼국사기』『조선왕조실록』 등 정사로 분류되는 사서에서도 상고시대 역사가 기록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책이름들이 상당수 나타난다. 문제는 그 책들이 현재까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다행히 그 책들 중 일부를 인용한 내용이 『규원사화』『환단고기』『단기고사』등에 실려 있는데, 학계에서는 이 책들을 ‘재야사서’, ‘비사’, ‘도가사서’, ‘선가사서’ 등으로 부르면서, 그 속에 포함된 옛 책의 내용이 중국사서의 내용과 일치하거나 유물ㆍ유적등 고고학적 발굴 성과에 따라 사실임이 확인된 것조차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기를 망설인다. 상고시대와 관련된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면, 비록 다소의 비논리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오랫동안 구전되는 과정에서 왜곡이 충분히 있을 수 있고, 기록되는 과정에서 기록자의 생각이 작용될 가능성도 있다고 인정해야 하며, 그 속에서 잊혀졌던 상고시대 역사를 바로세울 수 있는 작은 실마리라도 찾아내려고 하는 것이 역사 연구를 하는 자의 바른 자세일 것이다.
[산] 규원사화에 대한 구분으로 역사서보다는 "역사논평"으로 이는 단순 역사이야기 史話가 아닌, 기록이 아닌 논문의 수준으로 주석위주의 논고입니다, 즉 역사서로 단순 기록편을 넘어, 사료와 중국의 기록, 지명의 추론과 사실, 백두산의 의미고찰 등이 들어간 하나의 역사서에 대한 논문으로 이는 역사서의 차원을 넘는 역사서에 대한 설명과 사료로 고찰한 논문입니다, 즉 단순 기록의 발췌나 베껴쓰기가 아니고 자신의 의견을 넣은 역사학의 논문에 해당하는 역사논고입니다, 단순히 기사를 발췌하고 편집한 여타 역사서와는 다르게 그 내용에 대한 비평, 주석으로 틀린 부분도 있고 몰랐던 사실을 장황하게 당시의 고대의 사료로 보충하여 설명하는 형태의 논집으로 서지학적 논문으로 자칫 그 내용이 역사서의 기사로 오인할 수도 있는 사료로 오인하고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신지비사의 내용은 그 자체가 다른데 단군고로 단군왕검기에 나오는 것으로 했지만 내용이 조금 다른 것입니다.
甲辰三十七年. 命史官神誌述九變震檀之圖, 預言歷代定都, 盖九變其局. 命蒲衣子爲太師, 其材器能於理氣之變化, 兼有德望.
甲辰(갑진, BC2297) 37년. 史官(사관) 神誌(신지)에게 명하여 九變震檀(구변진단)의 圖(도)를 짓도록 하였는데 도읍이 정해질 것을 예언하는 것으로 대개 9번 변하는 그 구획을 말하는 것이다. 蒲衣子(포의자)에게 명하여 太師(태사)가 되도록 하였다. 그는 材器(재기)가 능하여 변화의 기운을 다스릴 수 있었는데 겸하여 덕망이 있었다.
이에 대한 내용은 신지비사로 별도의 내용인데 기원전 2297년 갑진년의 내용이 단군세기에 나와 있는 것처럼 넘겨 집었습니다, 바로 아래에 그 구변진단의 도로 9 도읍의 위치로 제후들에게 봉한 내용이 나옵니다, 즉 9변진단의 도로 "도읍지"에 대한 중요도를 감안하여 단군왕검시에 3홀과 9변진단의 중심지를 정해서 제후들로 봉했다는 내용입니다, 즉 이리저리 머리를 돌리는 것이 아니고 다음 기사에서 나오는 것을 이렇다 저렇다고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삼홀에 낙랑홀 대동강변이 나옵니다.
戊午五十一年. 洪水旣平, 化被四土. 北曁大荒, 東窮滄海, 南至海岱, 西率獗猶, 東西五千餘里, 南北六千餘里. 區劃天下之地, 分封勳臣爲諸侯. 環南西地封蚩尤氏之後, 曰藍國侯, 在遼河近地, 宅奄慮忽. 環北東地封臣智氏之後, 曰ㅁ侲國侯, 在黑水東南地, 宅夙沙忽【肅愼】. 環南東地封高矢氏之後, 曰靑丘侯, 在大同江近地, 宅樂浪忽. 封朱因爲蓋馬侯, 在太白山東南地. 封余守己爲濊國君, 在黑龍江近地, 治濊城. 封緋天生爲南海長, 在渤海上, 守閻洋. 封夫餘爲餘州侯, 在濊地南. 封夫宇爲眞蕃侯. 封夫蘇爲句麗侯.
戊午(무오, BC2283) 51년. 홍수가 이미 평정되고 교화가 사방을 덮었다. 북쪽은 大荒(대황)에 미치고 동쪽은 滄海(창해)에 닿으며 남쪽은 海岱(해대)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獗猶(궐유)[32]를 다스렸으니 동서 5000여리이고 남북으로 6000여리이다. 천하의 땅을 나누었는데 군신은 공적에 따라 제후로 임명하였다.
1. 남서쪽을 둘러싸도록 蚩尤(치우)씨의 후손을 봉했는데 藍國(람국) 侯(후)라고 하였으며 遼河(료하) 근방의 땅이고 奄慮忽(엄려홀)에 도읍하였다.
2. 북동쪽을 둘러싸도록 臣智(신지)씨의 후손을 봉하여 ㅁ侲國(속진국)[33] 侯(후)라고 하였고 黑水(흑수) 동남쪽의 땅이고 夙沙忽(숙사홀)【肅愼(숙신)】에 도읍하였다.
3. 남동쪽을 둘러싸도록 高矢(고시)씨의 후손에게 봉하여 靑丘(청구) 侯(후)라고 하였는데 大同江(대동강) 근방에 있고 樂浪忽(락랑홀)에 도읍하였다.
4. 朱因(주인)씨를 봉하여 蓋馬(개마) 侯(후)가 되게 하였고 太白山(태백산) 동남쪽의 땅에 있다.
5. 余守己(여수기)를 봉하여 濊國(예국) 君(군)이 되게 하였고 黑龍江(흑룡강) 근처에 있으며 濊城(예성)에서 다스렸다.
6. 緋天生(비천생)을 南海(남해) 長(장)에 봉하였고 渤海(발해) 위에 있는데 바다의 관문을 지킨다.
7. 夫餘(부여)를 봉하여 餘州(여주) 侯(후)가 되게 하였고 濊(예)의 땅 남쪽에 있다.[34]
8. 夫宇(부우)를 봉하여 眞蕃(진번) 侯(후)가 되게 하였다.
9. 夫蘇(부소)를 봉하여 句麗(구려) 侯(후)가 되게 하였다.
정확한 일치는 아니더라도 구주와 구변진단의 도로, 배치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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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상고사를 기록하고 있는 사서 중『규원사화』를 살펴보면, 『규원사화』는 한국의 상고사와 만설(漫設)을 적은 역사책으로 1675년(숙종2년) 북애노인(北崖老人)이 지은 책이다. 북애노인은 실명이 아니라 필명과 같은 것이다. 여기서 ‘북애’는 ‘북쪽 벼랑’을 뜻하는 것으로 사대주의사관에 빠져 중국 서책만 중시하는 당시의 역사관 때문에 ‘벼랑 끝에 선 우리 역사’를 상징적으로 표현했을 수도 있으며, 옛 영토인 요동벌판을 바라보기 위해서 올랐던 평안북도 의주군 삼각산 정상에 위치한 정자인, 통군정(統軍亭)을 의미한다고 할 수도 있다. 통군정은 1천여 년 전 고구려 시대에 중요한 군사 지휘처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지던 곳이다. 북애노인이 통군정에 올라 내려다 본 것은 압록강 너머의 요동벌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 옛날 요동벌판을 호령하던 고구려와 그 이전에 웅대하게 펼쳐졌던 고조선의 역사일 것이다.
『규원사화(揆園史話)』에서 ‘규원(揆園)’은 저자가 부아악(負兒岳, 북한산) 기슭에 있던 규원서옥(揆園書屋)이라는 자신의 서재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여기서 ‘규원’은 ‘천법이 내려온 성지’라는 뜻으로 ‘환웅’이 ‘환인’의 뜻에 따라 내려왔던 태백산 정상을 말한다. ‘사화’는 역사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로 『규원사화』는 ‘환단고사(桓檀古史)’, 즉 환인, 환웅, 단군 이래로 전해져 내려오던 우리의 옛 역사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규원사화』의 내용 구성은 다음과 같다. 「조판기」와 「태시기」는 일대주신(一大主神) 환인(桓因)이 천지를 열어 창조하고, 환웅천왕(桓雄天王)이 태백산에 내려와 선정을 베푸는 과정이 서술되어 있으며, 「단군기」에는 환검(桓儉)으로부터 고열가(古列加)까지 47대 왕명과 재위기간 및 각 당대의 치적이 쓰여 있다. 「만설」에서는 이 책을 제작할 당시 조선이 만주를 잃고 약소국으로 전락한 것을 탄식하면서, 부강한 나라가 되기 위한 3가지 조건으로 지리(地利)·인화(人和)·보성(保性)을 내세웠다.
[산] 이러한 구성중에서 조판기외 태시기는 신화와 역사를 구분하지 못한 조선시대 유교의 한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단순 필사가 아니고 자신의 의견으로 神에 대한 개념을 인격신으로 즉 환인이 조화주로, 환웅을 교화신으로 그리고 단군을 치화신으로 나눈 우를 범했습니다.
역사서로써는 가능한 이야기이나, 원본과는 달리 권람/ 북애자의 신관으로 역사서술을 왜곡한 것입니다.
한국신화는 비인격신으로 초월적 존재에 대한 "신"의 개념이 분명하게 나옵니다.
辛未四年. 帝復神巿舊規, 創立倧敎, 頒布國中, 以親九族設講ㅁ誥于天下, 敎化萬民, 宣告神政于四海,盖不言而信不怒而威. 無爲而化, 淳厖之治, 熙洽四表. 命三僊官四靈師主治人間三百六十六事, 盖以誠信愛濟禍福報應八理敎人, 人無賢愚, 易於達天理通人理, 無爲而化, 故人化湥於至治之世也. 寔神巿天皇開國, 敎化之神政也.
辛未(신미, BC2330) 4년. 帝(제)는 다시 神巿(신불)의 옛 규범을 되돌리고 上古神人(상고신인)의 가르침을 창립하여 나라안에 반포하였다. 친히 九族(구족)에게 삼일신고를 천하에서 강론하고 만민을 교화하였으며 神政(신정)을 四海(사해)에 널리 알리었으니, 말하지 않고 믿게 하며 화내지 않고 두려워하게 하고 행함이 없이 교화시켜서 淳厖(순방)의 다스림을 四表(사표)에 널리 드날리었다. 三僊官(삼선관)과 四靈[3]師(사령사)에게 명하여 인간의 366가지 일을 주관하고 다스리게 하였다. 대개 誠(성) 信(신) 愛(애) 濟(제) 禍(화) 福(복) 報(보) 應(응)의 8가지 도리로 사람을 가르쳤는데, 사람이 현명하거나 어리석거나 보다 쉽게 天理(천리)에 도달하거나 人理(인리)를 통달하였으며 행함 없이 변화되었다. 그래서 세상이 잘 다스려지는 데까지 사람들의 변화가 흘러 들어갔으니 이것은 오직 神巿(신불) 天皇(천황)이 개국하여 교화한 新政(신정)인 것이다.
신
삼위일체 일신, 상제 신
즉 神과는 다른 신으로 삼위일체에 대한 신관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습니다, 즉 삼신오제본기의 내용을 왜곡한 것으로 이는 한국신학, 종교학의 기본인 神話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의 조화경, 교화경, 치화경, 즉 조화주, 교화주, 치화주의 삼위일체로 이는 비인격신으로 초월적 무형의 신으로 삼위일체 일신, 하나님 신이다, 삼황상제로 이는 상제의 천하대장군, 오제를 아래로 그 아래 삼천의 하천으로 지하여장군은 오령으로 하여 다스린다는 한국의 신의 체계,
신
三神=三皇
五帝
五靈
의 기본 구조를 설명치 못하고 역사서의 내용으로 신격을 성인 추존의 례로 말한 것으로 기리사독교 역사학자들의 공격을 받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된 것입니다, 한국신의 기본은 하늘공경으로 경천보본애인으로 성신애로, 이는 三身으로 사람도 神靈으로 人乃天의 기본 三身 三眞의 성명정, 즉 대덕, 대혜, 대력의 삼위가 사람에게도 령혼백으로 심기신으로 성명정으로 삼진으로 三身일체로 神으로 즉 지하여장군의 오령의 개념으로 단군은 천궁으로 하늘로 가지 않고 이 땅의 一山一水의 神靈[神]이 되어 다스리고 있다는 神話의 이야기입니다.
이와는 달리, 환인, 환웅, 환검의 삼성은 성인입니다, 즉 추존의 예로 삼성으로 삼황의 조교치주로 조화옹, 교화옹, 치화옹으로 군사부일체의 삼황으로 추존하여 三聖으로 聖은 三聖만이 존재한다, 이에 五帝는 5분으로 한국의 삼성오제는 삼황오제로 추존의 예지, 이것이 신으로 삼위일체 일신이 아니다.
즉 역사의 이야기로 신화를 역사에 대입하여 설정한 것으로 이는 신화의 역사서술법입니다, 하늘나라 신국의 이야기 신화가 아니고 역사로 이 땅의 역사나라는 천지인으로 황아래 제로 제는 하늘나라로 환국으로 땅나라는 단국으로 즉 천제는 하늘나라 임금으로 천제라고 합니다, 그 아래 단, 배달신시는 천제의 자로 천자로 천왕이라고 합니다, 즉 환웅천왕이고 그 다음이 인간의 나라로 삼한 조선, 즉 고조선으로 이 분은 임금으로 천제의 손, 天孫으로 환검으로 천검으로 왕검으로 바로, 天君으로 사서에는 天干으로 王, 천자의 아들로 천손으로 天干으로 표합니다, 이는 역사로 역사서입니다 신화시대와는 다른 것으로 북애자는 이를 믹스하여 인격신으로 바로 신화로 표현한 것으로 신화와 역사의 역류현상으로 잘못된 신학과 종교학, 그리고 역사학의 기본에서 온 유교적 사고이고 우리는 인격신이 아닌 비인격신을 신으로 하늘이 인격신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바로 주재천이라고 하는 서학의 논리입니다, 신학과 신에 대한 개념이 180도 다른 서양, 중국의 군자와 소인, 즉 음양이원론이 아니고 삼신일체론이라는 개념에서 온 착각입니다, 즉 필사본인데 그 내용에 비인격신 대덕, 대혜, 대력 등의 이야기를 환인, 환웅, 단단군으로 신격에 격으로 대입한 결과입니다.
삼신오제본기에 이러한 추존의 례로 "고려사" 팔관잡기의 내용을 근안, 즉 추가하여 설명합니다, 이를 한국신화에 대입한 삼황오제론으로 인격, 즉 임금의 치적을 추촌하는 것을 말합니다.
高麗八觀記三神設云上界主神其號曰天一主造化有絶對至高之權能無形而形使萬物各通其性是爲淸眞大之體也
《고려팔관기》에 삼신설(三神說)이 있나니, 가로대「상계(上界)의 주신은 그 호를 천일(天一)이라 하나니, 조화(造化)를 주관하시며 절대지고의 권능을 갖고 계신다. 무형으로써 형을 삼으며, 만물로 하여금 각각 그 성(性)을 통하게 하시느니라. 이를 청진대(淸眞大)의 체(體)라 한다.
下界主神其號曰地一主敎化有至善惟一之法力無爲而作使萬物各知其命是爲善聖大之體也
하계(下界)의 주신은 그 호를 지일(地一)이라 한다. 교화(敎化)를 주관하며 지선유일(至善唯一)의 법력이 있어 하는 바 없이 만들고 만물로 하여금 각각 그 명(命)을 알게 하니, 이를 선성대(善聖大)의 체(體)라고 한다.
中界主神其號曰太一主治化有最高無上之德量無言而化使萬物各保其精是爲美能大之體也然主體則爲一上帝非各有神也作用則三神也
중계(中界)의 주신은 그 호를 태일(太一)이라 한다. 치화(治化)를 주관하며 최고무상의 덕량(德量)을 가지고 말없으면서 교화하고 만물로 하여금 각각 그 정(精)을 보전하게 하니, 이를 미능대(美能大)의 체(體)라 한다.
故桓仁氏承一變爲七二變爲六之運專用父道而注天下天下化之神市氏承天一生水地二生火之位專用師道而率天下天下?之王儉氏承徑一周三徑一?四之機專用王道而治天下天下從之
한인씨(桓因氏)는 한 번 변화하여 칠(七)이 되며, 두 번 변하여 육(六)이 되는 운을 받아 오로지 어버이의 도를 사용하여 천하에 쏟으매, 천하가 이에 교화된다. 신시씨(神市氏)는 천일(天一)의 생수(生水)와 지이(地二)의 생화(生火)의 자리를 계승하여 오로지 스승의 도를 사용하여 천하를 인솔하매, 천하가 이에서 배운다. 왕검씨(王儉氏)는 지름이 둘레를 한바퀴 도는 길이인 3,14의 기(機)를 받아 오로지 왕의 도를 써서 천하를 다스리니, 천하가 이에 따른다고 한다.
五帝設云北方司命曰太水其帝曰黑其號曰玄妙眞元其佐曰桓仁在蘇留天是爲大吉祥也東方司命曰太木其帝曰靑其號曰同仁好生其佐曰大雄在太平天是爲大光明也南方司命曰太火其帝曰赤其號曰盛光普明其佐曰?犧在元精天是爲大安定也西方司命曰太金其帝曰白其號曰淸淨堅虛其佐曰治尤在鉤和天是爲大嘉利也中方司命曰太土其帝曰黃其號曰中常悠久其佐曰王儉在安德天是爲大豫樂也
《오제설(五帝說)》에서 말한다. 「북방의 사명(司命)을 태수(太水)라 한다. 그의 다스림은 흑(黑)이니 그 호를 현묘진원(玄妙眞元)이라 한다. 그를 보좌함을 한인(桓仁)이라 하고 소류(蘇留)의 하늘에 계시며, 이를 대길상(大吉祥)이라 한다. 동방의 사명을 태목(太木)이라 한다. 그의 다스림은 청(淸)이니 그 호를 동인호생(同仁好生)이라 한다. 그를 보좌함을 대웅(大雄)이라 하며 태평의 하늘에 있으니 이를 대광명(大光明)이라 한다. 남방의 사명을 태화(太火)라 한다. 그의 다스림은 적(赤)이니 그의 호를 성광보명(盛光普命)이라 한다. 그를 보좌함을 포희(?犧)라 하고 원정(元精)의 하늘에 있으며 이를 대안정(大安定)이라 한다. 서방의 사명을 태금(太金)이라 한다. 그의 다스림은 백(白)이니 그의 호를 청정견허(淸淨堅虛)라 한다. 그를 보좌함은 치우(治尤)라 하고 구화(鉤和)의 하늘에 있으며 이를 대희리(大喜利)라 한다. 중방의 사명은 태토(太土)라 한다. 그의 다스림은 황(黃)이니 그의 호를 중상유구(中常悠久)라 한다. 그를 보좌함은 왕검이라 하며 안덕(安德)의 하늘에 있으니, 이를 대예락(大豫樂)이라 하느니라.」
五帝注曰五方各有司命在天曰帝在地曰大將軍督察五方者爲天下大將軍督察地下者爲地下女將軍也龍王玄龜主善惡朱鵲赤?主命靑龍靈山主穀白虎兵神主刑黃熊女神主病
《오제(五帝)의 주(注)》에 말한다. (오방(五方)에 각기 사명이 있으니 하늘에서는 제(帝)라 하고 땅에서는 대장군(大將軍)이라 한다. 오방을 감독하고 살피는 자를 천하대장군이라 하고 지하를 감독하고 살피는 자를 지하여장군이라 한다. 용왕현구(龍王玄龜)는 선악을 주관하며, 주작적표(朱雀赤?)는 목숨을 주관하며, 청룡령산(靑龍靈山)은 곡식을 주관하며, 백호병신(白虎兵神)은 형벌을 주관하며, 황웅여신(黃熊女神)은 병을 주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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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요소들은 각각 잃어버린 만주 땅을 되찾고, 당쟁을 버리고 단결하며, 고유한 정신과 문화를 지킴과 동시에 남의 것도 취할 것은 취하자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규원사화』가 참고로 한 책은 『진역유기(震域遺記)』로, 고려 말 청평(淸平) 이명(李茗)이 지은 사서인데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또한 이 책은 발해인들이 그들의 전대 역사를 기록한 『조대기(朝代記)』를 토대로 하였으며, 특히 『조대기』는 발해 멸망 후 왕자 대광현이 고려로 갖고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규원사화』는 고사(古史)에 있어 『삼국유사』보다 훨씬 진취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결국 단군시대부터 내려오는 민족 고유 신앙인 신교(神敎)의 입장에서 쓰여진 종교적인 사화로, 상고사의 사료로서보다는 한국문화의 저변을 이루어온 민족적 역사인식의 일면을 보여 준다는 점에 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산] 우선 내용은 좋은데, 해석이 많이 다르다, 단순 고대사, 상고사를 말한다고 정체성이 고취되는 것이 아닙니다, 조대기는 조선시대기로, 朝代記라고 한 것으로 이는 단군세기도 그렇지만 발해문으로 번역된 것으로 자칫 고조선의 전문을 발해문, 즉 한문으로 썼는데 예를 들어, 우리는 황을 쓰지 않습니다, 제로 오제로 신격의 하늘의 임금님으로 역사서에서는 분명하게 나누고 있습니다, 즉 선사시대로 이 땅의 하늘나라 환국의 임금을 하늘의 임금으로 天帝를 쓴다고 확정합니다, 즉 오제라는 신화의 오제로 천하를 환국으로 즉 이 땅의 하늘나라로 그 환국의 임금을 환인=천제로 한다는 개념이 아주 명확하게 단군왕검기에도 명시가 된 것으로 그리 발해인처럼 허리버리 할 이야기가 절대 아닙니다, 신학, 종교학 등이 너무나도 투철한 개념정립으로 서양의 삼인일신을 한국의 삼위일체로 쓴 것은 착각입니다, 삼위일체는 비인격신이고 삼인일신은/?? 무슨 신인지 모를 내용으로 데우스가 위는 位格으로 同格이다? 무슨 이런 쓰레기 논리가 있냐고 합니다, 神位 등 위는 지상지상, 삼천의 상천으로 하늘중에서 가장 높은 無上一位의 위로 무시무종이다고 하는데, 이를 무슨 동격 이퀄로 같다?? 일체는 삼즉일, 일즉삼으로 혼연일체지, 각각이 아니다는 개념정립이 된 것으로 삼일신고는 삼신일체라는 일신으로 그리 아무렇게나 말할 한국신학이 아닙니다, 종교, 신화, 신학은 서양신학과는 비교가 아니되는 불가지론으로 철학자만저도 한국의 천부경에 나오는 無에 대한 개념, 이는 삼일신고의 하늘 무로 无입니다, 이러한 것은 신학, 종교학, 철학, 사상론이지 역사학은 아닙니다, 즉 분야가 더 깊은 학문으로 그 내용을 인격으로 대입하는 것은 그 보는 눈이 역사학으로 하자는 주관적인 해석일 뿐 사실 그자체인 객관적인 역사해석이 아닙니다, 북애자 권람의 역사를 보는 시각에서 종교학, 신학 등이 유교적인 인격신에 국한된 사고로 이는 1910년대 대종교의 종교학으로 발전한 것은 단군이 아닙니다 원단군으로 종으로 즉 위에서 말한 단군왕검의 상고신인 倧의 가르침, 종교창설로 이는 宗敎의 시작을 말하는 것으로 기원전 3,897년을 신정으로 즉 거발환 환웅천왕을 상고신인 종으로 대종으로 불교의 大雄殿의 대웅=桓雄으로 천왕당의 무교, 신교의 유불선의 삼교접합의 뿌리종교임을 말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