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단군조선 하고는 47대 단군들을 보고는 마치 해모수가 단군직계처럼 이야기하는 바보들속에서 속고 살고 있습니다.
마치 예맥족중 맥족이 단군조선 성씨로 착각하게 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맥족은 마한계로 9韓중 "말갈, 거란 여진 예맥"으로 마한이라는 북막, 북맥으로 맥족입니다.
신라 제1로 日本이다 이는 알[●]로 一이라는 뜻입니다.
卵生이다. 여기에서 한가지 박혁거세의 어머니는 선도산 聖母로 많이 나와 있습니다 한가지 착각이 古로 이는 천부삼인 부명으로 나라이름 마고의 나라 마고의 일체로 古로 고나라로 이는 古里로 우리가 고다, 마고지나지태자로 麻古다 三神이고 三辰이다 金閼智다 三辰 알이[斡伊 兒伊]다 알자다 천자라는 소리로 태자다.
사소로 고두막한 동명성왕은 단군으로 리얼 천자다, 천제가 아니고 천자로 단간이시다, 그 따님이시다 우리는 皇帝를 칭하지 않는다, 그런데, 皇孫이다 天孫이다 천제의 자로 천자로 천제의 손으로 천손으로 전부 帝室로 종손은 異斯夫 거칠부 등 夫=宗이다 썼다고 황족, 제실지녀는 천자의 자손이다는 소리로 聖骨로 眞骨로 썼다.
사소로 "중국의 제실지녀라고 하는데 한문을 들여다 보고는 파안대소한다.
즉 古有帝室之女[고유제실지녀]를 엿/옛날에 제실의 딸이다 즉 엿날에 제실이니 황제?? 기원전 57년 전이니, 제실이면 한나라다?? 웃기고 있다.
古에 이는 제실의 딸이다 즉 古里로 고조선이다 고유명사지 엿 이라고 맨날 엿같은 놈들이라고 하는데 제발 좀 그만하라고 고조선은 고나라 고 천자국이다.
무엇을 말하나, 기원전이라도 천자에 대한 개념이 있었다, 즉 황제 나부랭이 劉邦가와는 상대가 안된다는 소리다, 즉 천자의 가문으로 성골이란, 그 천자의 직계로 혈통이 가장 순수하고 높다는 뜻이다.
고두막한은 "고열가" 단군천자의 후손으로 나오고 그 혈통이 빵빵함을 말한다, 즉 아무나 마구 대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천자의 자손으로 없애려고 해도 그리 쉽게 없앨 수 없다.
바로 숫으로 雄이시다, 천자의 자손이다, 그 천자의 외손으로 역시 숫될 서열 제1위다, 고추모? 고 주몽 따위가 박 혁거세에 비교를? 어림없다는 소리다 지 혈통도 몰라서 解씨인지? 言씨인지 무슨 고신씨의 高씨라고 하는 자체가 웃긴 일이다, 즉 해모수의 자손이면 해씨 해야지 해모 추모하든지...
鄒는 나라이름 추다 이는 빼도 박도 못하는 맥족이 몽골족의 추나라이름 추다,아무나 추하라고 나라이름 鄒로 몽골의 표상문을 쓸 이유는 없다다, 鄒牟로 "추나라 추족의 우두머리다.
朱蒙이다 우두머리 몽골의 몽의 우두머리라는 소리다 "활은 잘 쏘는 이"라고 해도 이는 몽고리의 추장 우두머리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다,
박 혁거세는 그 외할아버지가 천자다, 고열가-고두막한으로 박혁거세로.. 즉 聖母의 자로 성자 천자다.
신한 6부란 대부여에서 고열가 단군이 신한 오가에게 명하여 공화정을 하라?? 이 신한은 신한조선으로 대부여가 신한이다.
북부여로 인해 마치 대부여-북부여로 알았는데 항복 하질 않고, 즉 단군천자로 인정도 안했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의 이야기다, 즉 해모수가 기원전 232년 제2차 정변으로 장당경을 찬탈해도 단군위로 화백 오가의 회의에서 공화정으로 단군천자로 해모수를 정식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는 소리다.
동명 [夫餘]의 동명성왕의 공주로 박혁거세의 어머니 파소.
박혁거세의 어머니, ‘파소’는 부여황실의 딸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파소가 부여 황실의 딸이라는 <환단고기>의 기록은 ‘신라가 부여에서 나왔다’ 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 주는 획기적인 내용이다.
斯盧始王은 仙桃山聖母之子也라
昔에 有夫餘帝室之女婆蘇가 不夫而孕하니 爲人所疑하야
自嫩水로 逃至東沃沮하고 又泛舟而南下하야
抵至辰韓奈乙村하니
時에 有蘇伐都利者하야 聞之하고 往收養於家러니
而及年十三에 岐嶷夙成하야 有聖德이라
於是에 辰韓六部가 共尊하야 爲居世干하니
立都徐羅伐하고 稱國辰韓이오 亦曰斯盧라.
사로의 첫 임금(박혁거세)은 선도산 성모의 아들이다. 옛적에 부여 황실(동명 부여,고두막단군)의 딸 파소가 지아비 없이 잉태하여 남의 의심을 사게 되었다. 이에 눈수(흑룡강성 눈강)에서 도망하여 동옥저에 이르렀다가 또 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 신한의 나을촌(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따르면 서라벌 나정蘿井)에 이르렀다.
그때에 소벌도리라는 자가 이 소식을 듣고 가서 아이를 집에 데려다 길렀다. 나이 13세가 되자 뛰어나게 총명하고 숙성하며 성덕이 있었다. 이에 신한 6부가 함께 받들어 거세간이 되었다. 서라벌에 도읍을 세워 나라 이름을 신한이라 하였고, 사로라고도 하였다. <환단고기 태백일사>
환단고기 태백일사로 "동명성왕" 고두막한의 帝室의 딸로 파소고 그 아들이 박 혁거세로 고무서 단군 즉위 기원전 60년 재위 2년 기원전 58년 음 10월 붕어로, 다음 대통을 맥족의 고주몽에게 넘겼다는 것은 말 자체가 안되는 것으로 신한 6부란 신한 6가 부여 6가로 이는 그 자체가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夫餘"로 신한 6부가 존재했다는 소리입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夫餘는 "동명"이고 夫餘는 "나라"로 천자지국이다, 政體로 "나라"로 이 부여를 쓸 수 있는 나라는 "천자"로 화백제도에서 만장일치로 옹립이 되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고조선 유풍.
우리는 짱개와 쪽발이 그리고 우똥이가 병신도의 "秦韓"으로 오독하는 경우 즉 "진한"으로 하라는 의미는 이미 삼국유사에는 이에 대해서 "또한 조작"이다, 亦作으로 "역시 조작"이다고 일축한 사실을 해석이랍시고 "또한 이리 불렀다?" 亦作은 "역시 조작"이다.
양서 등에 나오는 진나라 노역을 피해서 왔다는 둥, 남삼한에 대한 이야기와 신라는 辰韓이라고 하고는 이를 秦韓으로 1. 진나라의 노역민, 즉 노비출신, 2. 진나라 속국인 韓으로 마치 한학자로 놀고 있다.
중국 <양서梁書>의 견강부회
종래에는 사대주의 사관의 왜곡날조에 의해 중국 진秦나라 사람들이 한반도로 들어와 신라를 세운 것으로 잘못 인식돼 왔다. 중국의 [양서梁書]<신라기>에 이렇게 나온다.
新羅者, 其先本辰韓種也, 辰韓亦曰秦韓, 相去萬里, 傳言秦世亡人, 避役來適馬韓,
馬韓亦割其東界居之, 以秦人故名之曰秦韓
신라의 선계는 본래 진한종辰韓種인데, 진秦나라의 유망민이 한반도로 건너와 신라의 전신前身인 중삼한 중의 진한辰韓을 건설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진한은 분명 고조선의 ‘전삼한 중의 진辰韓’ 을 말하는 것이다. 신라의 전신인 ‘중삼한의 진한’ 을 세운 주체 세력을, 단군조선의 진한 유민이 아니라 중국 진秦나라의 유망민으로 억지 부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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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확실하게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日月星辰[일월성신] 三辰[삼신] 北辰[북신] 이다.
즉 발음의 문제로 중국원음주의라고 辰을 "별 벼리 마루 신"이 아니고, "별 진???" 혹은 미르/지지 진으로 읽는데 이는 분명 국호로 북극성,북두칠성으로 "일월성신" 신"으로 신한입니다 1920년대 신채호이 조선상고사에는 "신한조선"을 분명하게 "신"한으로 해서 신한=신라로 신한을 이은 것으로 전음법이라는 소리고 신한조선이 고조선의 태자국이다는 내용을 확실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무리 시간이 변해도 중국음이 "진"이고 金[금/김]이 [진]이라도 우리가 따라서 원음주의랍시고 "진한"하는 것은 저렇게 동음이의어로 진한으로 아무도 辰國은 진국으로 秦과 같이 진에서 혹은 진을 사모한 집단이라고 짱개설사똥을 싸고 질엘하고 있다 우똥이가 병신도가 가장 싫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日 나〮ᅀᅵᆯ〮 衆陽之宗人君之表
月 ᄃᆞᆯ〮월〮 太隂之精隂不可抗陽故日圎月缺
星 별〯셔ᇰ
辰 별〯신 日月會次又北辰北極也又미르〮진地支屬龍
두번째가 양서라도 기원전 57년이라고 하고, 쪽발이는 아예, 조작이라고 기원후 356년이후다면서 꼬박꼬박 秦나라를 들먹거리는데 상식입니다 진나라는 기원전 221년 통일하여 기원전 206년으로 기원전 57년 혹은 기원후의 일이 아니고 기원전 221년이고 한나라전으로 뭘 이런 소리를 계속하는지 즉 짱개는 전부 개똥새끼들이다. 말이 되야 말이 되고 이해라도 오해없이 삼해를 쌈이라도 싸서 먹지 정말 저런 장개새끼도 사관이고 학자였냐, 완전 짱개똥이다.
秦韓, 相去萬里, 傳言秦世亡人,
삼한으로 韓으로 위만의 번한 찬탈로 남하한 것으로 그래도 기원전 194년이고 마한이 먼저 세워져도 이는 邑단위다.
즉 기웡전 194년으로 진나라 기원전 206년후 10년동안 진나라/ 노역?? 하다 왔다고 해도 바로 신한 12국이 건국? 이게 나라인가?
"정미년(丁未年, 기원전 194년) 한(漢) 혜제(惠帝) 때 연(燕) 유민들의 우두머리 위만(衛滿)이 서쪽 변방 땅 일부를 도적질하여 차지했다. 이에 번한(番韓)의 왕인 준(準)이 맞서 싸웠으나 당해내지 못하고 바다로 도망하였다. 이로부터 삼한(三韓)에 속해있던 백성들은 대부분 한수(漢水) 이남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
기원전 194년으로 이는 이미 한나라 건국후 연을 멸하자 연나라 장수 위만이 번한에 들어와서 찬탈한 후, 기 준이 해를 건너 남하한 것이다, 이는 신라의 신한 6부가 아니고 남삼한이다. 그 강역이 사방 4000리로 한반도 사방 3000리보다 크다. 알고서 씨부리자.
韓
<韓>在<帶方>之南, 東西以海爲限, 南與<倭>接, 方可四千里. 有三種, 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韓>. <辰韓>者,古之<辰國>也. <馬韓>在西. 其民土著, 種植, 知蠶桑, 作綿布. 各有長帥, 大者自名爲臣智, 其次爲邑借, 散在山海間, 無城郭.
'한'은 '대방'의 남쪽에 있다. 동쪽과 서쪽으로 바다를 한계로 한다. 남쪽은 '왜'와 접해 있으며, 사방 사천리이다. 세가지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마한'이고, 둘은 '신한'이고, 셋은 '번한'이다. '신한'은 고조선의 '신국'이다. '마한'은 서쪽에 있는데, 백성들은 토착을 하며 씨를 뿌리며 양잠을 알고, 갈포를 짓는다. 각각 장사가 있는데 큰 자는 스스로를 '신지'라 하고, 그 다음은 '읍차'라 한다. 산과 바다사이에 흩어져 있는데, 성곽은 없다.
신지는 사방 100리? 읍차는 읍의 장 현재로는 읍장으로 사방 50리로 78국의 사방 4000리로 각 사방 50리라도 58이 40으로 사천리다 사방 4000리에 대한 개념이 없다면 어떻게 서울대 인문대학을 들어가서 졸업했는지 이해가 안간다. 한반도 기준 대략으로 "사방 3000리"라고 해도 정말 사방 4000리가 "사방 400리"가 되어 있는 이유를 설명해야 삼한설, 우똥이가 병신도 개새끼론, 삼한설로 반도 삼한설이 설명이 된다고 사방 4000리로 한반도를 훨씨 넘는 것에 가야까지 넣어서 덤탱이? 무슨 옥저 동예 사군이 한군데 오골오골하는가?
한사군은 기원전 108년 그리고 다시 이부로 설치는 '기원전 82년, 이 모든 것, 번한조선-위만조선 -한사군-이부는? 濊에 나오는 이야기로 예국 사방 1000리-1500리의 내용중 이부고 현토군은 옥저로 사방 1000리로 그 안에 현토군이 있었다, 즉 예/동예, 옥저/동옥저는 하북성으로 사방 2000-3000리로 이 또한 두개 옥저와 예만 해도 한반도 전체 사방 3000리내에 있는 작아도 사방 2000리내고 어디다 꾸역꾸역 집어넣는지 참으로 신가한 똥눌러맨 엘리트 기독교종자들이다 그만 다져요.
신기하게 그린 지도로 낙랑군은 이부로 다시 濊貊에 소속된 것인데 이 무슨 낙랑군은 따로 떡 있는지?
부여 [사방 2000리] 동쪽 읍루 [사방 천리 북부는 알 수 없슴]
옥저 [현토군 사방 1000리]
句麗 남옥저 [사방 800리]
[사방 2000리] 예/동예 [조선/예맥 사방 1500리] 한사군지중 이부
대방군/낙랑군
남대방군/발해 한해
남삼한 [사방 4000리]
남북으로 사방 12000여리....
한반도 사방 3000리의 4배로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내용만으로도, 韓[삼한] 사방 4000리는 한반도를 넘는다.
부여-읍루는 만리장성의 위로 빼도 그 남쪽 대륙으로 산서성-하북성 = 사방 6000리, 남삼한=4000리
총 사방 1만리로 이는 고조선의 변한조선 + 신한의 옛 땅으로 사방 1만리다.
짱개의 위만조선 + 마한지구?
한국보다 더 황당하나 지도. 정말 사방 12000리를 사방 4000리를 사방 400리에 1/10으로 넣는 재주는 뭐라고 해야할까????
Y BELT로 이는 북맥 - 대부여 그리고 변한조선/번한 + 삼한으로 황하가 료하라는 사실 그 동쪽이 료동이고 황하남쪽 하남성 - 발해 남대방군 한해, 산동성 회수와 양자강의 한수이남까지 사방 4000리.
우리는 고구려 초기 강역이 사방 2000리에서 기원후 3세기 위나라와 전쟁으로 겨우 사방 1000리로 즉 고구려-위의 전쟁으로 고구려 위축 사방 1000리, 위나라 멸망 5호 16국시대로.. 멸망입니다, 그리고 광개토대왕, 장수왕을 거쳐 수나라와의 전쟁후 구당서에서는 "사방 6000여리"로 남북 2000리, 동서 3100리로 나와 있는데?? 즉 고구려-옥저/남옥저-예/동예 즉 사방 2000리 1000리/800리 1500리로 "산서성과 하북성을 합치면 사방 6000여리로 이는 위로 아사달지역, 혹은 섬서성 료서와 북방초원지대까지 넓혀도 그 중심강역이 료주/산서성과 유주;/하북성으로 고정하고 봐야 앞뒤가 나옵니다.
대방은 중요한 고구려/낙랑, 신한의 위아래 지점으로 "대방"군 등, 그리고 발해로 '海"라는 勃起海로 료동의 진입로로 대료택 대야택 등 수.당의 고구려 침입시 늘상 나오는 海 즉 대방군 아래 남대방군으로 이는 고려시대 남원부/ 호남으로 이곳이 현재 남원시?? 그 곳에 1000리 호수가?? 도대체 머리가 아파서 말을 못하겠다 전부 처음으로 끝까지 거짓말 즉 "조선반도사"로 우똥이가 병신도는 쪽발이 대가리로 집안전체가 대대로 당나라 목자 개새끼종자들이 나라팔아 100조원으로 10대는 눌러 앉아서 개새끼집안으로 9족이 아니고 27족을 멸문으로 문을 걸어닫게 해야 아니면 木子로 성을 달리하라고 이이로 하라는 명령을 내려야만 하지 않을까? 도대체 해도 해도 너무하다.
북대방(北帶方)[편집]
북대방(北帶方)은 본래 죽담성(竹覃城)이다. 신라 노례왕(弩禮王) 4년(기원전 27년)에 대방인들과 낙랑인들이 함께 신라에 투항했다.[101] 이는 모두 전한(前漢) 때에 설치한 두 군의 이름인데, 그 후에 주제넘게도 ‘나라’라고 부르다가 이제 항복한 것이다.
남대방(南帶方)[편집]
조위(曹魏) 때(220~265년)에 처음으로 남대방군(南帶方郡)지금의 남원부(南原府)이다을 두었기 때문에 남대방이라불렀다. 대방의 남쪽으로 바닷물[해수=호수]이 1천리인데 이를 한해(澣海)라 한다후한(後漢)의 건안 때(196~220년)에 마한 남쪽의 황무지를 대방군으로 삼으니 왜(倭)와 한(韓)이 이에 속했다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바보라도, 조위 대방태수와 낙랑태수가 고구려가 동예를 복속하자, 쳤다 그럼 남에서 북으로 즉 대방군수/낙랑태수는 구려 남쪽으로 한사군을 그린 이병도와 그 제자새끼들의 이야기는 대방군? 그거 낙랑군아래야? 황해도와 경기북부/? 그럼 그곳도 위나라? 땅이었다? 남대방 발해는 고려의 남원부?? 인데 현재 호남 전라도 남원시와 남원군.. 그곳에 발해, 해남인가요? 호수로 1천리가 있어요, 그곳을 조위때 "남대방군"이면 한반도에 그린 현 지명은 뭐냐고 전부 위나라 땅?? 倭鬼가 그리도 좋냐?
삼국유사의 내용에 고려? 현재 남원부 하니 이게 전부 한반도다?? 거짓말로 목자 조선국의 미친선비들의 개조작이다,
삼한이라는 곳은 대방군아래면 대륙 남쪽으로 전부 대륙이다 '백제"는 특히 마한 54국을 정복하고, 세운 맥족 해부루의 서손 구태의 아들 온조,혹은 고구려 고추모의 아들이라도 맥족입니다.
신한[辰韓]은 언제부터? 즉 고조선으로 우리는 箕子朝鮮하면서도 단군조선은? 檀朝로 이는 신한조선으로 "신한"입니다. 국명으로 韓을 쓴다. 썼다입니다.
古朝鮮하면 국호가 조선으로 "나라"를 달리 불러서 조선 즉 大明天地다 이는 천자국으로 政體다.
단군세기는 신한세가로 신한은? 단군직속령 태자국이라는 알자 알토입니다.
마한세가, 그리고 번한세가, 이 번한은 弁韓으로 변한촌으로 "료하의 변한촌"으로 표하고 신한은 보통 달리 말을 안하고 변한과 마한을 중심으로 이야기합니다 단군세기의 이야기는 다 아우르나, 보통 신한을 이름한 것이다.
"만리장성 아래로 료주/산서성고 유주/하북성 사방 6000링 海아래 渤海아래로 삼한 사방 4000리로 사방 1만리인데, 그럼 신한은 어느정도인가? 바로 사방 1만리로 홍산문화권 - 아사달주,알주/간도와 연해주 그리고 강동주는? 신한이다.
참고로 환단고기의 강역 초기의 강역은?
戊午(무오, BC2283) 51년. 홍수가 이미 평정되고 교화가 사방을 덮었다.
북쪽은 大荒(대황)에 미치고 동쪽은 滄海(창해)에 닿으며 남쪽은 海岱(해대)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獗猶(궐유)[32]를 다스렸으니 동서 5000여리이고 남북으로 6000여리이다. 천하의 땅을 나누었는데 군신은 공적에 따라 제후로 임명하였다
乙巳五年. 西鄙藍國隣接之地, 舜復置幽州于遼西營州于遼東, 帝遣兵征之盡逐其衆定界于碣石西北之地盡爲朝鮮版圖. 自是遼東遼西更不置虞國州郡, 而諸侯來貢者數十. 於是封道羅爲沸流王東武爲卒本王, 旭成爲沃沮侯以表征遼之功.
乙巳(을사, BC2236) 5년. 西鄙(서비)는 藍國(람국)과 이웃하여 접한 땅이다. 舜(순)이 다시 遼西(료서)에 幽州(유주)를 설치하고 遼東(료동)에 營州(영주)를 설치하였으므로, 帝(제)는 병사를 보내 이들을 정벌하고 그 무리를 모두 쫓아 국경을 碣石(갈석)의 서북에 정하였는데 모두 朝鮮(조선)의 版圖(판도)가 되었다. 이때부터 료동과 료서는 다시는 虞國(우국)의 주와 군이 설치되지 않았고 諸侯(제후)들이 와서 조공하는 자가 수십이었다. 이때에 道羅(도라)를 봉하여 불류왕(沸流王)이 되게 하였고 東武(동무)를 봉하여 卒本王(졸본왕)이 되게 하였으며 旭成(욱성)을 봉하여 沃沮侯(옥저후)가 되게 하였는데 이는 遼(료)를 정벌한 공로를 表(표)한 것이다
료하의 서쪽 료서가 유주?? 료동은 영주를 순임금이 정하자 가서 정벌하고 이를 다시는 조선으로 들여오지 못하게 하였다 료하로 변한촌이라는 곳으로 이는 초기 강역입니다.
己酉九年. 命定全國版圖境界. 東窮滄海, 南曁閻洋, 西接碣石, 北至島拉列【今西伯利亞也】. 分封諸侯,大民族九部, 小民族十四部, 總地域全三萬餘里.
己酉(기유, BC2232) 9년. 전국의 版圖(판도) 境界(경계)를 정하도록 명령하였다. 동쪽으로는 滄海(창해)에서 끝나고 남쪽으로는 閻洋(염양)에 미쳤으며 서쪽으로는 碣石(갈석)과 접하고 북쪽으로는 島拉列(도랍렬)【지금의 시베리아이다.】에 이른다. 제후를 分封(분봉)하였는데 큰 민족은 9部(부)이고 작은 민족은 14部(부)인데 총 영역이 전무 3,0000여리이다.
남북 6000리 동서 5000리로 "전무 3만리, 사방 3만리'로 이는 변한조선만 해도 사방 1만리, 마한조선 1만리, 신한 1만리다. 즉 우리가 조선열전 으로 번한조선은 작아진 상태로 연나라 진개가 침공하고 위만에게 당하여 번한조선을 넘긴 것은 사군으로 郡이라는 4개군입니다, 즉 유주로 현재는 "하북성의 옛이름"이라고 하니, 유주내인데 그것도 옥저가 현토군으로 그 남쪽 남옥저 아래 예로 진번 임둔 그리로 낙랑, 그 옆으로 대방군.. 즉 전부 하북성 유주로 이 또한 원 낙랑, 낙랑국은? 단단대산령 서쪽으로 료주로 산서성이니 낙랑군과 낙랑국/주로 산서성으로 이 또한 헷갈리는 郡은 1州아래 10군 등으로 군보다는 國으로 하나의 9州로 三韓九州로 震壇九變圖로 각 나라의 수도 州都를 표하는 방법, 그리고 洪範九疇로 九州로 아홉주로 나누어서 보통 九韓도 아홉주로 우리나라 민족도 韓인데 九韓으로 지역명으로 그 족을 표했다.
《해동안홍기(海東安弘記)》[94]에 이르기를 구한(九韓)의 첫째는 일본(日夲), 둘째는 중화(中華), 셋째는 오월(吳越), 넷째는 탐라(乇[95]羅), 다섯째는 응유(鷹逰), 여섯째는 말갈(靺鞨), 일곱째는 단국(丹國), 여덟째는 여진(女真)[96], 아홉째는 예맥(穢貊)이라고 하였다.
신라는 삼한족으로 "日本"으로 알[● 丸]으로 一韓으로 "삼한일통" 신한으로 표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맥의 경우는 마한으로 상당히 다루기 힘든 족으로 고리짝부터 이름이 험윤 등으로 나옵니다.
戊申(무신, BC2293) 41년. 이때에 설유(猰[24]猶)의 난리가 있었다【설유猰猶는 즉 몽골 토착인인데 험윤獫狁[25]의 족속이다.】.
[24] 䝟로 써야 할 글자로 猰猶는 “설유”이나 반절법을 취하여 “슈”로 읽어야 한다. 濊와 같다. 濊는 강희자전에 呼會切 즉 “회”로 읽어야 한다고 나오지만 濊는 歲(세)와 水(수)이니 이들 두 글자를 이용하여 반절법을 취하면 역시 “수”이다. 즉, 상고시대 濊의 발음이 “수”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25] 獫狁은 “험윤”이나 반절법을 취하여 “휴”로 읽어야 한다. “휴”가 구개음화가 되면 “슈”이니 곧 猰猶나 獫狁이나 “슈”라는 이름을 가진 濊族이다. 즉, 험윤 중에 단군조선에게 복종한 이들이 곧 獩貊(예맥)이고 복종하지 않은 이들이 匈奴(흉노)이다.
예맥으로 몽고지역 북방초원지대의 '마한인데 몽골토착민이 료주로 들어온 것으로 흉노보다는 須臾족으로 수유, 서우여로 색부루 단군시 기원전 1285년에 번한세가 하.로 제30대 번한 제후로 봉해진 분으로 奇子조선으로 기원전 1285년 ~ 기원전 194년 제30대 수유, 서우여에서 제74대 기 준 번한 조선후라는 番汗으로 한씨족보나 태원선우의 기자조선편의 41대보다는 3대가 더 나온 것이 번한세가 하.편입니다.
맥족 북맥으로 북막, 북맥으로 마한/맥한, 막한에서 북막/북맥으로 그 이유는 기원전 426년 마한의 맥한의 '융안 우화충이 신한 북부 36개군을 탈취하고 수도 백악산을 침탈한 대란을 기워전 425년 진압한 구물장군이 제44대 단군으로 즉위하고, 국호를 대부여로, 수도를 장당경으로 옮겼다 변한조선을 번한으로 개창한 것도 기원전 425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