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영모 (1890 ~ 1981)
우리는 분명히 노여움(anger, 瞋)을 타고났기에 삼독(三毒)이 내 속에 들어 있다.
이 삼독을 이겨나가는 일은 올라감이지만 삼독에 지면 떨어지는 것이다.
분명히 노여움을 타고난 것은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그 짓을 해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짐승 노릇을 해서 짐승의 성질을 타고 난 것이다. 삼독은 짐승의 성질(獸性)이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그 짓을 하지 않았다면 나라는 것은 이 세상에 나오지도 않고
이런 일을 당할 리도 없다. 죽은 뒤와 같이 영원한 생명인 얼나로 허공에 있을 우리가
아닌가?
세상에 나왔다는 것은 거짓나인 제나(自我)로 떨어져 나온 것이다. 없음(無)에서
노여움을 타고 난 것이다. 그러므로 삼독(三毒)이 잔뜩 뱃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
나와서는 어머니를 못살게 탐욕을 부린다. 커서는 어리석기 짝없는 치(痴)를 저지른다.
그 짓을 해 어리석은 껍데기 자식 하나 낳는다. 이 짓을 되풀이해 가면서 인류가 살아간다.
그래도 삼독의 요소가 싫기 때문에 정신수양이니 도의 교육이니 한다. 이는 우리 마음
깊이에 줄기차게 올라가려는 '신격(神格)'의 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름지기 이 신격의 나(얼나)를 깨달아 힘껏 솟아나야 한다. 그래서 불교, 예수교에
다같이 십계명이 있다. 삼독을 쫓아 버리고 솟아나게 하려는 계율이다.
사람에게는 남을 해치려는 수성(獸性)에서 나오는 마음과 남을 도우려는 영성(靈性)에서
나오는 두 마음이 있다. 옳은 길에 와서는 자기를 죽이면서까지 남을 살리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이것이 예수의 정신이요 석가의 정신이다. 이 영성(얼나)에서 나오는 사랑의 마음을
길러야 한다.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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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자녀 낳는 일을 금욕주의적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유영모의 견해가 매우 아쉬운
글이긴 하지만, 人性을 수성과 영성 두 마음으로 파악한 후 짐승의 성질에서 벗어나
신격의 영성(얼나)으로 솟나자는 탁월한 인성분석을 만날 수 있는 글입니다.
유영모는 자신의 人性論을 "성직설(性直說)"이라 했고 사람의 천성이 원래 곧은 것이므로
정직한 그 마음만이 하느님과 진리에 통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貪瞋痴로 대변되는
수성과 眞善美로 대변되는 영성 중에서 영성부분을 특히 강조하여 말한 것입니다.
조선시대 儒敎에서 理發이냐 氣發이냐로 오랜 기간 논쟁을 벌인 예가 있습니다. 여기에
유영모의 獸性靈性論을 적용시켜 보면, 탐진치의 수성이나 진선미의 영성이나 모두
"몸"과 "얼"이라는 氣에서 각각 발현되어 나오는 本能들입니다.
(性善說, 性惡說의 대립은 性本能說로 대체할 필요 있음)
이에 반해 理는 우주와 인간사를 규율하는 법도나 이치, 원칙 등을 뜻합니다.
氣가 발할 때 그 氣가 따르는 원칙이 바로 理입니다.
理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우주의 법칙이므로 理가 무엇인가를 발할 수는 없습니다.
理에는 선악을 비롯한 이원론적인 개념이나 가치적인 일체의 판단이 적용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退溪는 영성의 진선미인 氣가 발하는 것을 理가 발하는 것이라 착각했습니다.
인간의 氣적 본능이 영성과 수성으로 두 가지라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理氣論은 맞으나 理發說은 틀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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