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12. 인간이 이룬 사회의 5가지 의미
그러면 이제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구체적으로 알아볼까요?
(1) 종교
살아가는 원인이고 목적이며 존재의 의미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은 인간 행동의 중심이지요.
인간의 행동은 자신에게 닥쳐진 어떤 여건을 앎으로 사고(思考)한 결과이기에,
목적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삶의 목적을 일으키는 원인인 종교사상의 앎은
인간에겐 가장 중요한 것이지요.
(2) 문화
연극이나 영화, 소설은 나만의 인생행로에서는 느껴 볼 수 없는
다른 인생을 짧은 시간에 보다 많이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보다 고루(0), 깊고 넓게 느끼기 위해 살아가는
인간의 목적을 가장 잘 충족 시켜주는 것이기에
문화의 어느 부문보다도 대중화가 되었지요.
음악은 세상의 가능한 모든 소리를 응용하여
보다 조화가 맞는 소리로 아름답게 들리도록 하고,
곡조로서 더욱 맛을 살리는 것입니다.
미술은 경치, 인물, 정물 등 어느 구성의 조화에 0느낌이 있는 것을
그림에 옮김으로 인하여 여러 사람이 오래도록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요.
시(詩)는 살아가며 느낀 감정의 흐름을, 언어로써 보다 아름답게 표현하여
누구나 손쉽게 그 감정의 흐름을 느낄 수 있게 한 것이지요.
체육은 육체의 기능을 위주로 승리나 기록 갱신 등의 경쟁을 함으로써
그 기능의 0를 느끼려고 하는 것이지요.
(3) 과학
인간이 삶을 이어가고 0의 느낌을 느끼려면,
우선 육체가 살아야 하지요.
그러려면 번식과 식,의,주의 문제가 절대적입니다.
즉 과학이란 인간이 살아가며 깨달은 물질의 원칙을 필요에 따라 응용하여,
보다 육체가 살기 좋은 0의 환경을 만들기 위하여 발달된 것입니다.
(4) 정치 :
국가를 구성한 국민들이 모든 느낌을 보다 0에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사회질서의 이념입니다.
그 사회에 흐르는 유형(有形)의 체제는
개개인의 재량권에 완전히 맡기는 자유민주주의이어야 하고,
그 사회에 흐르는 무형(無形)의 사상은
유일(唯一)의 전체 영이신 하느님을 중심으로 공생, 공산, 공배, 공존사상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과 존재목적에 가장 알맞는 이상적인 사회체체이지요.
(5) 경제
인간의 육체가 존재하려면 물질의 해결이 우선이지요.
이렇게 필요한 물질을 전체 사회의 모든 인간들에게 골고루 분배함에 있어서,
공급의 비중에 0를 이루기 위한
생산과 유통체제의 발달이 바로 경제입니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0느낌을 느끼기 위하여 살아갑니다.
그렇게 0의 느낌을 느끼기 위한
목적 및 방법과 원인을 찾는 것이 종교이고,
보다 넓고 깊게 느끼기 위한 것이 문화이며,
각자의 뜻대로 고루(0) 느끼고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사회의 질서를 이루는 것이 정치이고,
육체의 유지를 위해 여건의 발달을 이루는 것이 과학이며,
필요한 물질을 개개인 모두에게 골고루 취할 수 있도록 하는 생산과 유통의 발달이 경제입니다.
13. 육체와 영체의 존재 순간
육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모든 물질을 필요로 하듯이,
영체 역시 존재하려면 0의 모든 느낌을 필요로 합니다.
육체가 섭취하는 음식물은
단백질, 무기질, 비타민, 지방, 탄수화물의 다섯 가지로,
이 기본 영양소가 혼합 흡수되면 이미 체질을 이루고 있는 기존물질과,
육체 존재목적의 0를 중심으로 원칙이 흐르게 되니,
그 과정이 육체가 존재하고 있는 순간이에요.
영체 역시,
느낌은 기쁨, 슬픔, 괴로움, 두려움, 분노의 다섯 가지로,
이 느낌이 혼합되어 느껴지면
기존 느낌의 축적인 앎과 영체 존재목적의 0 앎을 중심으로 원칙이 흐르게 되니,
그 과정이 곧 영체(앎)가 존재하고 있는 순간입니다.
14. 거부감이 따르는 육체와 영체의 체질개선
새로 흡수한 물질이 기존 체질을 이루고 있는 물질보다
육체 존재목적의 0에 가까우면,
새로 흡수한 물질로 육체의 체질이 바뀌기도 하지요.
그래서 보약을 흡수하면 체질이 바뀌기도 합니다.
영체(앎)도 기존 앎보다 새로운 느낌이
영체 존재목적의 0 앎에 가까우면, 새로 느낀 앎으로 바뀌지요.
그러나 전혀 생소한 물질을 흡수할 때에는 거부반응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김치를 먹어 이미 체질화 된 관계로 김치가 맛있게 느껴지지만,
김치를 처음 먹는 서양인들은 거부반응을 일으키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처럼 새로운 앎인 혁신적인 학설이나 사상 등,
아주 생소한 내용은 처음엔 사람들로 하여금 거부반응을 일으키게 하니,
그 예가 지동설을 주장하던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에 대한 생명을 위협하던 박해였고,
진화론의 다윈과 개신교의 마틴루터에 대한 박해였으며,
예수에 대한 유대인의 냉대였지요.
(※ “正常” 이라는 용어 대신 “0(제로)”라는 용어로 변경사용합니다)
다음 시리즈 2편은 더욱 재미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