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지구상에서 수 십억년의 진화라는 과정을 거쳐
자연계의 모든 요소를 고루 느낄 수 있는 두뇌구조를 갖추게 되었을 때
그 인간에게 비로소 영혼이 생기게 되었다고 지난 이야기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주실체와 개체인간사이에 어떠한 상관관계가 존재하기에 그런 원칙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일까요 ?
우주실체는 자기자신이외에는 타 존재가 없는 것이기에 존재차원 자체가 全體性이라는 성질을 가집니다.
여기서 전체성이라는 것은 이 우주의 모든 요소를 골고루 가지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므로
개체인간이 진화를 통하여 자연계의 모든 요소를 골고루 느낄 수 있도록 두뇌구조가 진화되었다는 것은
개체로 이루어져 있는 자연계에서 전체성의 우주실체를 개체적 한계내에서 최대한 구현해 내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조직에서 그 조직의 모든 정보를 파악하고 있으면서 조직 전체를 통솔하고 이끌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만이
그 조직의 대표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즉, 유한한 존재이긴 하지만 개체가 전체성을 구현할 수 있을 때
그 개체는 전체성을 대표함은 물론 전체성의 일부를 나눠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성서 창세기에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의인화하여 매우 적절히 표현한 것입니다.
영혼이 생긴 개체인간과 우주실체의 관계는 개체와 전체라는 상대성은 존재하지만
그 존재양상과 구조가 매우 동일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개체인간의 존재양상을 탐구함으로써
우주실체가 과연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 거꾸로 추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분석해보면,
인간은 물질로 구성된 육체가 있고, 기쁨 슬픔등 정서작용을 하는 마음이 있으며,
이해하고 판단하고 추리하는 이성적 기능이 있습니다.
현실을 예로 들어,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아무 이유없이 지나가는 사람이 내 몸에 폭력을 행사했다고 가정합시다.
내 육체는 즉각적으로 고통을 느낄 것이고 그에따라 내 마음엔 억울함과 함께 상대방에 대한 분노의 마음이 일어나
상대방에게 반격하거나 방어하도록 내 몸에 명령을 내릴 것입니다.
그러나 가만 살펴보니 그 행인이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고 정신병을 앓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면
그 상황을 이해한만큼 분노하던 마음도 가라앉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분노하던 마음을 차분히 잠재워주는 이성이야말로 영혼의 본모습입니다.
육체와 마음과 이성은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육체와 마음체와 영체라는 삼중구조를 대변해 주는 것입니다.
물질로 이루어진 육체는 자연계에 속하며,
마음이라는 실체는 마음계에 속하며,
영혼이라는 실체는 영계에 속하는 것입니다.
이 자연계와 마음계와 영계를 무한히 확장해 보면
바로 그 존재 전체가 지금까지 이야기해 온 우주실체임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즉, 인간과 우주실체는 개체와 전체라는 상대성은 있지만 존재구조가 전적으로 동일한 것입니다.
고대로부터 동양에서 人乃天의 종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 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당시 사람들이 우주의 실체를 우리보다 더 정확하게 직관적으로 깨닫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혼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일까 ?
이런 의문이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앞에 든 행인의 예를 들어 살펴보면 동물에겐 이해하고 추리하는 이성의 기능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외부자극에 대하여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정서단계, 즉 마음의 단계까지만 인정할 수 있습니다.
식물도 마찬가지로,
인간의 好,不好라는 감정이 식물의 生育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백스터 효과”를 비롯하여
식물에도 정서를 느끼는 마음이 있다는 여러 연구가 이미 발표되었습니다.
식물보다 차원이 낮은 광물의 영역도 그 광물의 각종 특유한 성질등이 그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것이므로
세포, 분자, 원자, 소립자 등등....에 이르기까지
이 물질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는 그 나름의 마음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
그것은 우주실체의 일부인 자연계와 마음계가 물질과 비물질이라는 상대성은 있지만
개체소립자와 개체소립자心으로 이루어진 개체구성의 세계로서 원래부터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가고자 하는 곳을 그 몸이 따라가듯이
소립자心이 움직이기 때문에 물질소립자도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흔히 심령과학분야에서 얘기하는 念動 (Psycho Kinesis)이라는 현상은
인간의 마음으로 물질자체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 물질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모두 종합해 보면,
인간은 육체, 마음체, 영체가 있으나 동물, 식물, 광물등은 육체와 마음체만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죽음이라는 것은 물질로 구성된 육체와 비물질의 마음체가 해체됨을 의미하므로
죽음과 동시에 그 사람의 영체가 영계에 존재하여야 하지만,
사후에도 이 세상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한 사람은 그 念에 따라 마음계에서 새로운 마음체를 구성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연계와 마음계는 동일한 개체구성의 세계이긴 하지만 반드시 1 : 1 대응의 세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연계의 소립자가 형성하는 세계는 공간이 무수히 존재하지만
같은 개체구성이라도 마음계를 구성하는 개체소립자心은 서로 공간이 없이 빽빽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마음계에 존재하는 별도의 소립자心을 동원하여 미련과 애착이 가 닿는대로 그 사람의 마음체를 형성하므로
자연히 그 사람은 마음계에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계에 존재하다가 다시 태어나고 싶은 강한 욕망에 휩싸이게되면
자연계에서 부모를 통해 만들어지는 태아에게 再生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육체는 다르지만 영혼은 동일한 사람입니다.
한편, 마음계에 오래 머물던 마음체가 자연계에서 습득한 인간세상의 인습이나 애착등을 벗어나게 되면
비로소 그 마음체는 해체되고 영체만 남게되니 그때부터 이 사람은 영계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동물의 경우는 죽게되면 육체와 마음체 모두 해체되므로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다만, 동물이 죽을당시 분노나 원망, 간절한 바램등의 강력한 念을 지닐때는
그 念의 강도에따라 마음계에서 그 동물의 마음체를 형성할 수도 있습니다.
이 동물마음체들이 자연계에 있는 어린아이나 의지가 박약한 성인에게 빙의(憑依)되는 경우
일시적으로 동물의 몸짓이나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동물이 인간에게 재생한 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습니다.
동물은 본래 육체와 마음체만 존재하기 때문에 영혼이 있는 인간에게 재생할 수가 없습니다.
잠시동안 동물마음체가 인간에게 빙의될 수는 있지만.......
또한, 인간이 동물로 재생할 수도 없습니다.
동물에겐 인간의 영혼을 담을 수 있는 존재론적 그릇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리해보면,
인간과 동물사이에는 재생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재생은 영혼이 존재하는 인간사이에서만 성립합니다.
그렇다면 우주실체가 이 우주를 움직인 근본적인 이유,
즉 “느끼고 싶은” 그 대상체인 개체영혼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수 많은 영혼들이 느끼는 다양한 느낌들을 우주실체도 동일하게 느낄 수있기 때문에......
따라서 이 우주에 인간의 영혼이 보다 많이 생겨야만 하겠고
부모로부터 새로 태어나는 어린아이의 두뇌구조가 완성됨에따라 생기게 될 그 아이 고유의 새로운 영혼이
탄생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재생”이라는 방법은 마땅히 중지되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再生하면 안된다는 깨달음이 먼저 필요합니다.
욕망과 번뇌로 한평생을 달구다가 빈손으로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죽음에 대한 공부를 철저히 하고 가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