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가 B를 창조하였다.
그렇다면 B의 質料는 A의 일부분이었을까 ? 아니었을까 ?
만일, B가 A의 일부분이 아니었다면 B의 질료는 A아닌 어떤 것으로부터 존재하게 된 것일까 ?
A아닌 어떤 존재로부터 연유하였다면 A는 우주의 유일한 존재일 수 없다.
또, B가 A의 일부분이었다면 A가 B를 창조했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A의 일부분이 B로 변화된 것이기 때문에.........
신과 인간의 관계를 생각해볼 때 전통적인 서구기독교는 creatio ex nihilo 무(無)로부터의 창조를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무는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이며 무라는 말이 뜻하는 개념의 內包와 外延은 무엇일까 ?
전통적인 기독교는 이 무라는 개념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기독교 신자들 또한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았다.
이제 신과 인간의 관계를 위에 언급한 A와 B의 내용에 대입해보자.
신은 인간을 창조하였다.
그렇다면 인간이라는 몸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적인 질료와, 영혼이라고 주장하는 영적인 질료는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
신으로부터 왔다고 하면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말이 성립하지 않는다. 신의 일부가 인간이 되었으므로 ...
신 아닌 어떤 것으로부터 왔다면 그 어떤 것은 누가 만든 것이며, 그 누구는 신과 어떤 관계일 것인가 ?
그리고 그 누구는 또 누가 만든 것일까 ? .....
누가 만든 것이라면 그것은 신이외로 존재하는 존재자일 것이므로 신은 이 우주 유일의 창조자가 될 수 없다.
서구 신학은 본체와 현상을 구분하는 플라톤 철학의 신학적 변형태로써 신과 인간을 철저히 분리하는 2원론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모순을 피해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인간과 자연을 하나의 유기적인 생명체로 보고 철저하게 구분해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와같은 서구신학의 의문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자연등 모든 존재들을 생명의 연속성이라는 관점에서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서구신학에서 제기되는 존재론적 의문은 가질 필요도 없고, 거기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고심하지 않아도 된다.
가치관 혼란, 환경문제, 공해문제, 인구과잉과 자원문제등등...
신과 인간을 분리시키고 자연과 인간까지 분리시키며 2천년을 이끌어 온 서구신학이 현대인류에게 부담지운
갖가지 난제들의 해결을 위해서도 이제 전통적인 서구적 신관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최근 동양사상에 관한 서구학자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過程哲學의 발전과 더불어
汎在神論(panentheism)이라는 새로운 신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미국의 과정철학자 찰스 핫츠혼(1897 ~ 2000)이 제시한 범재신론의 요건은 아래와 같다.
C : consciousness 신은 자기의식을 가지고 있는가
E : eternal 신은 영원한가
K : knowing 신은 이 세계를 알고 있는가
W : world 신은 이 세계를 자기 속에 포함하고 있는가
T : time 신은 변하는 시간에 의해 제약을 받는가
핫츠혼은 전통전인 유일 타자신관에는 CEK를,
이 개념에 대항해 성립한 범신론에는 CEKW를,
범재신론에는 범신론의 범주에 T를 추가하여 CEKWT를 배정하였다.
즉, 신은 자기의식을 가진 존재로서 이 세계를 인식하면서 영원토록 존재하는데
인식의 대상인 이 세계자체가 신의 존재속에 포함되어 있으며 시간을 초월하여 이 세계를 지배하고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의 과정적 흐름속에 자기자신의 존재가 의존되어 있기 때문에 변화하는 시간의 제약을 스스로도 받는다는 뜻이다.
다시말하면 신은 자의적인 존재가 아니고
자기자신도 시간내의 온갖 법칙과 원칙을 준수하는 원칙적 존재라는 뜻인데
이 T라는 개념속에는 요한복음에서 상정된 태초의 로고스 개념이 오버랩되어 있다.
이 범재신론 개념을 우리나라 전통사상인 동학에 적용하는 학자도 있다.
동학이 주장하는 신의 內在性과 超越性을 동시에 그리고 적절하게 표현해주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새로운 신관을 이해하기 좋게 표현해 보자.
신이외에 다른 존재를 전제하지 않고, 신과 인간을 분리하지도 않는다면 결국 신안에 인간이 존재하는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해 온 두 가지 상대적인 신관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면 아래와 같다.
그림 [가]는 전통적인 기독교의 신관이다.
신과 인간사이에는 넘어설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하며, 인간은 결코 신이 될 수 없다.
신 외부에 인간이 존재하므로 필연적으로 신과 인간사이에 존재하는 공간과 인간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에 대하여
추가 해명해야할 존재론적 이유가 생긴다.
그림 [나]는 범재신론적 신관이다.
신과 인간사이에 넘어설 수 없는 간격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인간이라는 몸과 그 몸을 이루고 있는 각각의 세포사이 관계와 같다.
인간이 신에 이미 포함되어 있는 관계이기 때문에 인간의 질료적 기원에 대하여 별도로 설명할 필요가 없으며
신외부의 공간을 따로 설정할 필요도 없다.
지난 번 “[ 1 ] 존재하는 이유” 라는 글에서 우리는 우주실체의 느끼기 위한 목적에 따라 우리 우주역사가 시작되었고
그 느끼기위한 최종 대상체는 영혼을 지닌 인간이었다고 말했다.
부연하면,
우주실체는 느끼기위한 목적을 정했고 그 느낌을 느끼기 위해서는 느낌의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상대적인 존재가 있어야만 했는데 우주실체 자신이외는 다른 존재가 없었으므로
결국 자기자신이 개체로 분리되어 인간 개체와 우주실체 전체라는 상대적인 관계를 통하여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주실체 전체가 느끼기위한 목적으로 이미 움직임이 시작되었다면 그 느끼고자 하는 목적이 모두 충족되기 전에는
또 다른 목적을 가질 수가 없게 되므로 이미 움직이고 있는 우주의 어느 특정시점에 별도의 목적을 또 다시 정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니
위에서 말한 T(time)라는 속성 즉 신이 시간의 제약속에 있다는 것은 이것을 뜻함이며,
정하는 것은 하늘이 하지만 실제 이루는 것은 개체 인간이 하게되는 이치를 말함이다.
이처럼 우주실체가 존재 전체라면 인간은 개체이며, 개체는 전체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동시에 작은 우주실체, 곧 개체 우주실체가 되며, 다른 말로 하면 개체신이며 개체하느님이 된다.
이렇게 인간과 우주실체를 한 덩어리의 생명체로 파악하는 새로운 신관은
환경문제와 공해문제를 포함한 현대인류의 산적한 난제들을 효과적으로 해결해 낼 수 있다.
인간이 터잡아 살고 있는 우리 자연환경은 물론 내 가족, 이웃, 직장동료 나아가서는, 민족과 지구상 전 인류에 이르기까지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느님이기에 그 무엇도 그 누구도 거짓이나 위선으로 대할 수 없고 미워하거나 질투할 수 없으며
그 어떤 존재도 무시당하거나 생명의 자리에서 제외될 수 없다.
모든 존재가 소중하고도 유일무이한 가치가 있는 것이므로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이 땅에 떨어져 추구해야 할 것과 말아야 할 것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비극적인 우리 시대에,
모든 존재가 존중받고 존중해주는 새로운 신개념으로 우리의 의식을 반드시 전환해야 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느님이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이다.
내가 바로 하느님이다.
당신이 바로 하느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