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관경본기_태백일사 제4 [이맥 찬]
마한세가 하
★삼한에서 삼조선 시대로 전환
22세 색불루단군께서 할아버지(우현왕 고등)의 공덕을 계승하여 병권을 장악하니, 진한이 스스로 무너지고, 마한.번한 역시도 한 번 이기지 못하고 패멸하였다.
이에 21세 소태단군께서 사람을 보내어 옥책과 국보를 전하여 선양하셨다. 새로 등극한 22세 색불루께서 도읍터를 백악산으로 정하시자모든 욕살(지방장관)이 불가하다고 하였다. 여원홍과 갑천령 등이 조칙을 받들어 설득하니 마침내 욕살이 복종하였다.
#역주 안경전, 상생출판, 2012년, pp449~451
#한자원문해설은 태백일사 제4, 삼한관경본기 마한세가 상하를 참조바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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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세 색불루 단군, 백악산 아사달(장춘)로 천도(1)
재위 원년 병신년(BCE 1285) 정월에, 색불루단군께서 마침내 녹산에서 즉위하시니 이곳이 백악산 아사달이다. 3월에 조칙을 내려 이렇게 말씀하셨다
"근자에 아사달(수도)에서 사람을 보내 옥책과 국보를 짐에게 전하여 제위를 선양하였느니라. 21세 소태단군께서 아직 존호를 사용하고 계시지만 해내의 산천과 백성의 명부가 이미 짐에게 돌아왔으니, 하늘에 제사 지내는 예법은 나라의 전례(왕실이나 나라에서 경사나 상사가 났을 때 행하는 일정한 의식)에 합당하게 하여 너무 지나치게 하지 말지어다.
반드시 옛 전통을 잘 헤아려서 정성과 공경을 지극히 하라. 이제 천제일(대영절, 3월16일)을 맞이하여 먼저 가서 몸과 마음을 재계하며, 천제 지낼 장소를 살펴 잘 청소하고, 희생과 폐백을 깨끗하게 준비하여 삼신께 보답토록하라"
*음력3월16일~한맞이, 대영절, '삼신일체 하느님을 크게 맞이하는 날' 3월16일은 대영절, 10월 3일은 개천절이다.
이 때 색불루단군께서 7일을 택 해 재계하시고, 향과 축문을 여원흥에게 내려 주시며 16일 이른 아침에 삼한의 대백두산 천단에서 제사를 봉행하게 하고, 임금께서 몸소 백악산 아사달(장춘)에서 제사를 지냈다. 그 백두산 '서고문'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소자 색불루는 두 손모아 머리를 조아려 절하나이다.
천자(하느님의 아들)의 수신(악을 물리치고 선을 북돋음)이 백성에게 미침은 반드시 공경스럽게 하늘에 제사 지냄에서 비롯하나, 시조단군께서 삼신의 밝으신 천명을 받아 보은대덕으로 이미 삼한의 5만리 강토와 더불어 다함께 '홍익인간'의 큰 뜻을 누려왔음니다. 그리하여 마한 여원흥을 보내 삼신일체 하느님의 제단에 제사를 올림니다. 하느님의 성신은 밝고 밝으시어 만유에 그 은혜를 베푸심이 빠뜨림이 없음니다. 이에 심신을 깨끗이 재계하고 정성스럽게 제물을 바치오니 강림하여 흠양하시고 말없이 도우시어 반드시 새로 보위에 오른 임금의 건극(지극한 건강)을 보살펴 주옵소서.! 세세토록 삼한의 왕업을 천만 년 무궁토록 보존케 하옵시고, 매년 풍년이 들어 나라는 부강해지고 백성은 번영하게 하여 우리 성제(시조단군)께서 품으셨던, 나를 비우고 만물을 살리는 지극한 생각을 밝혀 주옵소서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 2012, pp45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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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제도를 삼한에서 삼조선으로 개편(2)
5월에 제도를 고쳐 삼한을 삼조선이라 하였는 데, 조선은 관경(영토 관할)을 말한다. 진조선은 천왕(22세 색불루)께서 친히 다스리고, 통치 영역은 옛날 진한 땅 그대로다. 정치는 천왕에게서 나오니 삼한이 모두 하나로 통일되어 명령을 받았다. 여원홍을 마한 왕 20세로 삼아 막조선(마한)을 다스리게 하고 서우여를 번한 왕으로 번조선을 다스리게 하셨다. 이를 총칭하여 단군관경이라 하니 곧 진국이다. 역사에서 일컫는 단군조선을 말한다.
*진국~고조선 사회의 구조는 읍-거수국-국읍~아사달.평양성
고조선은 부여, 고죽, 고구려, 예, 맥, 추, 진번, 낙랑, 임둔, 현도, 숙신, 청구, 량이, 발, 유, 옥저, 불류, 해두, 개마, 구다, 한 등 거수국을 거느린 거수국제 국가였다.
*대동강의 왕검성을 막조선 여원흥이 주재함
원흥이 임금의 명을 받고 대동강을 굳게 지키니, 이곳을 왕검성이라고 불렀다. 천왕께서 매년 중춘에 반드시 마한을 순행하여 머물며 백성을 위해 부지런히 정사에 힘쓰셨다. 이에 지나치게 많이 올리고 많이 거둬들이는 폐단이 없어지게 되었다. 이에 앞서 먼저 조칙을 내려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직 짐(임금) 한 사람을 봉양하기 위해 거두는 일은 백성을 번거롭게 한다면, 이는 바른 정사기 아니니라. 바른 정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임금이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그리고 엄명을 내려 이를 그만두게 하셨다.
무자(BCE, 1233)년에, 마한 왕이 명을 받아들여 천자의 수도에 들어가 영고탑으로 천도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간하니 이를 따르셨다. 원흥이 세상을 떠나고 기축(BCE 1232)에 아들 아실(21세 왕)이 즉위하였다. 아실이 세상을 뜨자 아우 아도(22세)가 즉위하였다.
*기자의 은둔생활
기묘(BCE 1122)년에 은나라가 멸망하였다. 3년이 지난 신사(BCE 1120)년에 자서여(기자)가 태행산 서북 땅에 피하여 사는 데, 막조선 왕이 전해 듣고 모든 주군을 순행하여 살피고 군대를 사열하고 돌아왔다.(나라의 안위을 점검)
아도가 세상을 뜨자 경술(BCE 1091)년에 아들 아화지(23세 왕)가 즉위하였다. 아화지가 세상을 뜨고 병술(BCE 1055)년에 아사시(24세 왕)가 즉위하였다. 아사지가 세상을 뜨니 마휴단군(진한 29세 왕) 정해(BCE 934)년에 형의 아들 아라손(25세 왕)이 즉위하였다.
아라손이 세상을 뜨자 아들 소이(26세 왕)가 즉위하였다.
소이가 세상을 뜨고 정해(BCE 754)년에 아들 사우(27세 왕)가 왕위에 올랐다.
*태항산~산서성 동쪽의 하북성 경계를 따라 남북 방향으로 형성된 산맥
*기자~기자의 성은 자, 이름은 서여, 기자의 기는 국명이고, 자는 작위 명칭이다. 기자는 은나라 왕실의 혈족인 다자 출신의 제후로 은나라 마지막 폭군 때 현자(비간, 기자, 미자) 가운 데 한 사람이다. "은 나라를 멸망시킨 주나라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는 것은 '사기'이래 중국측이 날조한 기자조선설이다. 기자가 고조선이어 기자조선을 이은 것은 날조된 사대주의 사관이다.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2012) pp453~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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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야후가 왜인의 반란을 평정함(3)
무자년(BCE 753)년에, 주나라 임금 의구(주나라 13세 평왕의 이름)사신을 보내 새해 축하 인사를 올렸다. 사우(마한왕 27세)가 세상을 뜨자 갑진(BCE 677)년에 아들 궁홀(28세)이 즉위하였다. 갑인년에 협야후에게 명하여 전선 500척을 거느리고 가서 해도를 쳐서 왜인의 반란을 평정하게 하셨다.
*협야후~협야후는 배반명이라하는 데, 일본서기에 나오는 사누노미코토로서 일본왕가의 뿌리인 진무왕이다.
BCE 667년은 일본서기에 진무왕이 등장하는 해이다.
*해도~곧 삼도로 일본 열도이다.
궁휼이 세상을 뜨고, 아들 동기(29세 왕)가 즉위하였다. 동기가 세상을 뜨자 다물단군(진한 38세 왕) 계유(BCE 588)년에 아들 다도(30세 왕)가 즉위하였다.
다도가 세상을 뜨니 임진(BCE 509)년에 아들 사라(31세 왕)가 즉위하였다. 사라가 뜨고 아들 가섭라(32세 왕)가 즉위하였다. 가섭라가 세상을 뜨자 갑인(BCE 427)년에 아들 가리(33세 왕)가 즉위하였다.
을묘(BCE 426)년에 융안 사냥꾼 수만 명이 반란을 일으켰는 데, 관병이 이들과 싸울 때마다 이기지 못하였다. 드디어 반란군이 도성을 공격하여 상황이 매우 위급해지자 가리왕이 출전하였다가 날아오는 화살을 맞고 세상을 떠났다.
*일본 왕가의 뿌리는 한국
고사기에는 일본의 신화가 조화삼신으로 시작되었다고 기록되어있다. 삼신은 동방 한민족인 받든 주재신이다. 일본서기 '신대기'를 보면 조화 삼신에 이어 신세 7대가 보인다. 이것은 환국의 7세 환인천제를 마찬가지로 일본 건국신화에 넣어 모방한 사실이 나타난다. 일본 민족은 한머리땅에서 건너 온 기마민족은 주장한 '에가미나미오'는 가락국의 수로왕이 내려온 구지봉과 연결하여 '구시후루' '구지의 마을'이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니니기노미코토'가 하늘에서 내려올 때, 거울.칼.구술이라는 세 가지 신의 보물를 갖고왔다는 것은 환웅천황이 천부인 3개를 가지고 내려왔다는 내용과 유사하다.
'니니기노미코트' 자신이 내려 온 곳은 "카라구니(한국)를 향하고 있고...아침 해가 바로 쬐는 나라, 저녁해가 비추는 나라 이니라"하였다. 단군세기를 보면 35세 사벌단군 재위 50년(BCE723)년에 장군 언파불합을 보내 일본 큐슈지방 남부의 구마소를 평정하였고, 36세 매륵단군 38(BCE 667)년에 협야후 배반명을 보내 삼도(일본열도)를 평정하였다. 이 배반명이 일본왕가의 뿌리인 초대 진무왕이다.
'대진국본기'에 의하면은 의려국의 왕자 의라가 일본에 건너가 오진왕이 되었고 삼신부명에 응한다. 응신이라 하였다.
2001년 12월에는 일본의 아키히토 왕(125세)이 "나의 조상인 칸무왕의 어머니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고백하여 자신도 백제계의 피가 흐른다고 시인하였다. 6세기 중반부터 7세기 초에 고도의 기술집단이 일본열도로 건너가 고대 일본 문화의 정수를 일컫는 데, 바로 아스카문화를 만드는 주역이 되었다.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 2012, pp456~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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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충의 대역모와 기후의 반란(4)
병진(BCE425)년에 상장 구물(후에 진조선 44세 단군)이 마침내 사냥꾼 두목 우화충을 죽이고 도읍을 장당경(단군조선의 3번째 도읍지 개원)으로 옮겼다.
먼저 가리(막조선 33세 왕)의 손자 전내로 하여금 막조선을 계승(막조선 34세 왕)하게 하였는 더, 이 때 국정이 더욱 쇠퇴하였다. 전내가 세상을 떠나고, 아들 진은례(막조선 35세 왕)으로 즉위하였다. 진은례가 세상을 뜨자, 을묘(BCE 366)년에 아들 맹남(37세 왕)이 즉위하였다.
*우화충의 역모~43세 물리단군(진조선) 때 융안의 사냥꾼 우화충이 스스로 장군이라고 칭하고 무리 수만 명을 모아 서북 36군을 함락시켰다. 임금께서 군사를 보냈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삼신사상에 기초한 삼한관경제를 무너뜨린 직접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 '우화충의 역모사건'이다. 단재 신채호가 '조선 역사상 우화충의 역모사건과 '조선 역사상 1천 년 이래 제일 대사건'이라 망명한 고려 시대 중기의 '묘청의 난(사대주의 김부식 일당에 의한 서경 천도 사건')을 계기로 대륙을 향한 자주독립의 불꽃이 시들게 되었다.
*44세 구물단군 이전에는 진조선의 천왕(대단군) 한 분이 중앙집권적으로 삼한의 병권을 집행하였다. 그러나 이때부터 삼조선 체제로 바뀌어 삼조선이 각기 전쟁 수행권한을 갖게 되었다. 바로 이런 병권 분립이 단군조선 체제가 약화되어 붕괴의 길을 걷는 큰 원인이 되었다.
무술(BCE323)년에 수유 사람 기후가 군사를 이끌고 번한에 들어가 웅거하고 스스로 번조선 왕이라하였다. (70세 번조선 왕) 연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아군과 함께 이를 정벌하고자 하였으나 막조선이 응하지 않았다.
계해(BCE238)년에 고열가단군(진조선 47세)께서 마침내 아사달에 은둔하셨다. 진조선은 오가가 공동으로 집행하는 공화정체제(BCE232)를 6년 유지하다가 끝내 국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종말을 고했다.
*기후~44세 보을단군 때 재위19년 무술(BCE 323)년 정월에 읍차(국읍의 군장에 대한 칭호)가 병사를 이끌고 번조선 궁에 들어가 스스로 70세 번조선 왕이 되고, 사람을 보내어 윤허를 청하셨다. 임금께서 윤허하시고 연나라에 대한 방비를 강화하셨다.
*번조선의 기씨계보
70세 기후~71세 기욱~72세 기석,~73세 기윤~74세 기비~74세 기준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 2012년, pp457~459
#한자원문해설은 삼한관경본기 마한세가 하를 참고바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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