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맥의 태백일사 제5 소도경전본훈
★문자의 기원과 그 자취
우리나라의 문자는 옛날부터 있었으나, 지금 남해현 낭하리(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양아리)암벽에 신시시대의 옛 글자가 새겨져 있다. 부여 사람 왕문이 쓴 서법은 부(符)나 전서(篆書)와 비슷하다. 또 자부 선생의 삼황내문과 부루태자의 오행은 모두 환단(桓檀)시대에 나온 것이다. 은나라의 갑골문자에서 유래한 한문은 왕문이 남긴 법이다. '유기(留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신령한 글자 획이 일찍이 태백산의 푸른 암벽에 새겨져 있는 데, 그 형태가 'ㄱ'자와 같다. 세상에서는 이것을 신지선인이 전한 것이 라고 하고, 혹자는 이것을 문자의 기원으로 삼는다. 그 획이 곧게 나가서 굽은 형으로 관제(管制)하는 뜻이 있으며, 그 형태와 소리는 어떤 의도된 뜻에서 나온 것 같다.
그러므로 신인의 덕으로 이 세상을 구하고자 법도를 만들어 놓은 것이니, 즉 신교의 참된 가르침이 행해짐이 반듯이 인사(人事)도 모두 바르게 되었을 것이다. 현자와 유능한 자가 벼슬에 있고, 노인과 어린이들을 공동으로 부양하고, 장정이 의무를 다하고, 많이 가진자가 베풀고, 간사한 자가 송사를 그치고, 전쟁 도모를 막으니, 이것이 신교의 진리로 세상을 다스려 교화하는 한결같은 도리였던 것이다.
*신지씨가 발명한 소위 태고문자는 녹도서로 고조선 때부터 사용하였다.
*유기는 진역유기로 본다.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2012), p521
#한자원문 해설은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을 참고 바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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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비사의 전래와 내용
*신지비사의 기원과 참뜻
'신지비사(神誌秘詞)는 6세 달문단군 때 사람인 신지(神誌) 발리(發理)가 지은 것이다. 이것은 본래 옛적에 삼신께 제사 지낼 때 서원하던 글이다. 무릇 상고 시대에 하늘에 제사 지낸 근본 뜻은 백성을 위해 복을 빌고 나라가 잘 되도록 신께 축원드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일을 벌이기 좋아하는 자들이 '신지비사'가 도참과 성점과 서로 같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음을 가지고, 사실을 추측하고 설명을 더붙여서 진단구변도라 하고, 또 감결과 예언의 처음이라 하는 데 모두가 잘못된 것이다.
·도참과 성점~도참은 천문과 지리를 통하여 인사의 흥망과 땅의 길흉 등을 예언하는 것이며 성점은 천체의 운행을 보고 인생과 사회현상을 예언하는 점성술이다.
*삼한의 지세 : 삼한의 수도 이름과 위치,
'신지비사'에서 저울대는 부소량이라 한 것은 진한의 옛 수도를 말한다. 그곳은 바로 단군조선이 도읍한 아사달이며, 지금의 송화강 하얼빈이다.
저울추 오덕지라 한 것은 번한의 옛 수도를 말한다. 그곳은 지금의 개평부 동북쪽 70리에 있는 탕지보이다.
저울판 백아강이라 한 것은 마한의 옛 수도를 말한다. 지금의 대동강으로 마한의 웅백다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마한산이 비로 그곳이다. 가만히 삼한의 지세를 저울에 비유해 보면 부소량은 '나라의 저울대'와 같고, 오덕지는 '나라의 저울추'와 같고, 백아강은 '나라의 저울판'과 같다. 이 셋 가운데 하나라도 없다면, 저울이 물건을 달 수 없듯이 나라가 백성을 보호할 수 없다.
·개평부~지금의 하북성 당산시 지역인데, 시행정 구역이 개평구가 있어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저울대 부소량(소밀랑), 진한의 수도 아사달(하얼빈)
·저울추 오덕지(안덕향), 번한의 수도 탕지보(당산시)
·저울판 백아강, 마한의 수도, 대동강
*제사는 오직 참되고 올바르게
옛날 삼신하느님께서 제사를 지낼 때 서원한 것은 오직 삼한으로 나눈 영토를 다스리는 것과 백성을 진실로 기쁘게 하는 것이었다. '신지비사'가 전하는 바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나라를 위하는 일념으로 충(忠)과 의(義)를 함께 장려하고, 제사를 지내 신을 기쁘게 하고 복을 내려 주시기를 기원하면, 신은 반드시 참된 마음(衷)을 내려 주시고, 복은 반드시 나라를 흥하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를 올바르게 참되게 행해야 된다.
만일 삼신하느님을 섬기되 진실하게 행하지 아니하고, 실천하되 바른 길을 구하지 않는다면, 행동하고 구하는 바가
무엇을 좇아 공덕을 이룰 수 있겄는가?
#역저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2012), pp519~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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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삼신, 땅의 삼한, 사람의 삼진
*삼계우주가 곧 삼신이요. 삼계의 통치자 삼신하나님!
우주의 한 조화기운(一氣)에서 세 가지 신령한 변화 원리가 일어난다. 이 기운(氣)은 실로 지극한 존재로, 이 지극함이란 곧(유.무를 포용한)무를 말한다. 무릇 하늘의 근원은 천.지.인 삼극(三極)을 꿰뚫어 허하면서 공하니 안과 밖을 아울러서 그러한 것이다. 천궁(天宮)은 광명이 모이고 온갖 조화가 나오는 곳이다. 하늘에 계신 일신(一神)하느님께서는 능히 이러한 허(虛)을 몸으로 삼아 만유를 주재하신다. 따라서 이 우주의 한 조화의 기운이 곧 하늘이고 또 한 우주 생명의 공(空)인 것이다. 그러나 저절로 중도일심(中一)의 경계에 머무는 신이 계셔서 삼신이 되시니, 삼신은 곧 천일(天一), 지일(地一), 태일(太一)의 신이다.
·허와 공의 정신~만물의 본성은 그 근원을 보면 허(虛)하고 공(空)하다는 말이다.
*천지 역사의 주체 '한(韓)'의 뜻
우주의 한 조화기운(一氣)이 스스로 운동하고 만물이 창조하여 조화(造化), 교화(敎化), 치화(治化)라는 세 가지 창조 원리를 지닌 신이 되신다. 이 신은 곧 우주의 기(氣)요, 기는 허(虛)요, 허는 곧 하나이다. 그러므로 땅에 삼한이 있으니, 삼한은 삼경(三京)이 있는 진한(辰韓).변한(弁韓).마한(馬韓)을 말한다. 한(韓)은 역사의 통치자인 황(皇, 임금)이라는 뜻이다. 이 황은 크다는 뜻이며, 크다는 것은(시작과 뿌리와 통일을 의미하는) 하나라는 뜻이다.
(韓=皇=大=一)
·삼한은 진한.변한.마한 삼경은 부소량, 오덕지, 백아강이다.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2012), p522~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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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삼신, 땅의 삼한, 사람의 삼진
*우주 역사정신의 최종 목표
진선미의 실현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삼진(三眞)이 있으니 성품과 목숨과 정기(性.命.精) 세가지를 부여받아 참됨(眞)을 실현한다. 참이란 하늘이 내려준 참마음(衷)이다. 이 참마음을 밝혀 세상사에 참여하여 큰 업적을 이루면 그 업적은 지속되고, 지속되면 모두 하나가 된다. 그러나 모든 일이 한 번 시작하고 한 번 맺는 것(一始一終)은 바로 삼신께서 내려 주신 참(眞)을 회복하는 끊임없는 과정이다(그것이 우주의 역사다) 그러므로 일신 즉 삼신이요. 삼신 즉 일신이 되는 창조원리(삼신일체의 신관과 우주생명관)를 지켜 살아가는 것은 삼신(대자연)의 선(善)에 부합한다. 작은 낟알이 풍성한 알곡이 되어 본래의 제모습(근원 씨앗)돌아가는 것은 곧 하나로 돌아가는 아름다움(美)다. 이것은 하늘에서 부여빋은 인간의 성품이 본래 선하고, 생명은 본래 맑고, 정기는 두터운 까닭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다시 유(有)가 어떻고 무(無)가 어떻다고 말을 하는가? 성품.목숨.정기의 삼진의 참됨은 더렵혀지지 않나니, 더럽혀지는 것은 거짓된 것이다. 본성이 선한 것은 쉬지 않나니, 더렵혀지는 것은 흐린 것이다. 목숨이 맑은 것은 흩어지지 않나니, 흩어지는 것은 흐린 것이다.
정기가 두터운 것은 오그라들지 않나니, 오그라드는 것은 얇은 것이다.
*우주의 기와 삼신의 일체작용
이처럼 우주와 인간은 집일함삼
(執一含三)의 원리로 이루어져 있는 까닭은 우주의 기는 하나로되, 그 속에 깃든 우주의 조화 정신은 세 가지 손길(三神)로 창조작용을 하는 신이기 때문이다. 또 회삼귀일(會三歸一)인 까닭은 신에게 세 가지 창조정신으로 삼신으로 계시지만 신이 자유자재하는 조화 기운은 일기(一氣)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릇 만물의 생명을 이루는 본체는 바로 이 우주에 충만한 한 기운(一氣)이니, 이 속에 삼신이 계신다.
지혜의 근원 또한 이 삼신에 있으니, 삼신은 밖으로 우주의 한 조화기운(一氣)에 싸여 계신다. 그 밖에 있는 것도 하나요. 그 안에 담고 있는 것도 하나요. 그 통제하는 근본성신 또한 하나이다.
모든 것은 삼신의 창조원리를 간직하여 서로 나누어질 수 없으나, 문자가 만들어진 근원에도 '집일함삼'하고 '회삼귀일'하는 뜻이 담겨진 것이다.
·집일함삼(執一含三)~하나 속에 셋이 있고(성.명.정) 그 셋은 근본이 하(一神)이다.
·회삼귀일(會三歸一)~우주의 근원의 조화(一神)에는 세 신성(三神)이 담겨 있고, 이 삼신의 원리를 일체로 본다.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2012), pp525~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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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의 원형 가림다와 후세의 자취
배달신시 때는 산목(算木)이 있었고, 치우천황 때에 투전목(鬪佃目)이 있었으며, 부여 때 서산(書算)이 있었다.
'단군세기'를 보면, 갸륵단군 3세 2년에 삼랑 을보륵이 정음 38자를 지어 가림다(加臨多)라 하였다.
'이태백 전서'의 옥진총담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발해국에서 당나라에 글을 써 보냈는 데, 온 조정에 그 뜻을 아는 자가 없었다. 이태백이 능히 이를 해석하여 답하였다.
'삼국사기'의 기록은 이러하다.
헌강왕 12월 봄에 북진에서 "대진국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 편목을 나무를 걸어 놓고 돌아갔음니다"라고 아뢰고 편목을 왕께 갖다 바쳤다. 그 나무에 쓰여진 열다섯 글자의 내용은 곧 "보로국이 흑수국 사람과 함께 신라국과 화친을 하고자 한다" 것이다.
또 광종 때는 장유가 접반사(接伴使)에 명성을 났는 데, 초기에 난을 피해 오.월에 가 있었다. 월나라 사람 중에 일을 벌리기를 좋아하는 자가 있어 우리 동국의 '한송정곡(寒松亭曲)을 거문고 밑어 새겨 역류하는 물결위에 띄워 놓았다. 월나라 사람들이 그 뜻을 풀지 못하던 차에 장유를 만나 절하고 그 문장의 뜻을 물었다. 장유가 즉석에서 한시를 풀어 말하기를
"한송정 달 밝은 밤에
물결 고요한 경포대의 가을
가을의 마음 실어 나르는
저 백사장의 갈매기 한마리"
라고 하였으니, 아마 거문고 밑에 새겨진 글은 옛날 가림다 종류인 것 같다.
*가림다~이미 3,600년 전 3세 갸륵단군 때 만든 가림다를 원형으로 훈민정음의 원형이며 모태글자다.
*접반사~외국 사신을 접대하는 임시관직
*한송정곡~작자 미상의 고려초기의 가요
#역주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2012), pp526~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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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한겨레의 시원 문자의 발전과정
한글과 한자는 본래 우리의 것
고조선의 진한과 부여와 왜국은 혹 횡서하고 혹은 노끈을 맺고(結繩), 혹은 나무에 새겼는 데, 오직 고구려는 붓글씨를 썼다(摸寫穎法),생각컨대 필시 환단(桓檀)의 상고 시절에 문자를 본떠서 새기는 방법이 있었으리라.
일찌기 최치원이 신지(神誌)가 옛 비문에 새겨 놓은 '천부경'을 얻어 다시 첩(帖)으로 만들어 세상에 전했으니, 낭하리 바위에 새겨져 있는 글자와 함께 확실히 모두 실제했던 자취이다. 세상에 전하기를 신시시대에는 녹서(鹿書)가 있었고, 자부 선생 때는 우서(雨書)가 있었고, 치우천황 때는 화서(花書)가 있었다고 했는 데, 투전문(鬪佃文) 등은 바로 그것이 오늘날 남아있는 흔적이다. 복희 때는 용서(龍書)가 있었고 단군 때는 신전(神篆)이 있었는 데, 이러한 문자는 백두산, 흑룡강, 청구, 구려지역에 널리 사용되었다.
부여 사람 왕문(王文)이 처음으로 전서(篆書)가 복잡하다 하여 그 획수를 줄여 새로 부예(符隸)를 만들어 사용했다. 진(秦)나라 때 정막(程邈)이 사신으로 숙신에 왔다가 한수에서 왕문의예서 빌법을 얻어 그 획을 조금 변형시켰는 데, 이것이 지금의 팔분(八分)체이다. 진(秦)나라 때 왕차중(王次仲)이 해서(楷書)를 만들었는 데, 차중은 왕문의 먼 후손이다. 이제 글자의 내력을 살펴 고찰해보면 모두 배달신시 시대부터 내려온 법이다. 지금의 한자도 역시 그 한 갈래를 계승한 것이 분명하다.
*결승~문자가 없던 시대에 새끼나 가죽끈을 매어 그 매듭의 수나 간격 등으로 의사소통을 하던 방법이다.
*모사영법~목판에 판각하거나 바위에 암각된 원본을 붓으로 베껴 쓰는 방법이다.
*첩~문서, 탁본 등을 뜻하는 말이다. 비석에 새긴 글씨나 그림을 그대로 박아 내는 일, 또 그 박은 종이를 탁본이라한다.
최치원은 단순히 탁본이 아니라 번역하여 두루마리를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정막~진나라 때 하두사람, 전서에서 복잡한 것을 생략하여 예서로 만들었다. 사실은 왕문의 예법을 배워 간 것이다.
*팔분~전서와 예서의 중간되는 한자 서체, 중국 한나라 채옹이 만들었다.
*왕차중~중국 후한의 장제 때의 서예가, 해서를 만들었다.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2012), pp529~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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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신고의 뿌리는 천부경의 중일정신
삼일신고는 옛 판본에 장이 나누어 있지 않았다. 행촌 선생이 처음으로 장을 나누어 제1장은 허공, 제2장은 일신, 제3장은 천궁, 제4장은 세계, 제5장은 인물이라 하였다.
허공(虛空)은 하늘이 바탕이고,
일신(一神)은 하늘의 주재자이시고,
천궁(天宮)은 하늘의 조화를 갖추어진 곳이고,
세계(世界)는 만세의 인물이 출현하는 큰 저자(巿)이고,
인물(人物)은 우주삼계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이다.
무릇 대광명의 동방 신교의 참된 가르침은 하늘법칙에 근원을 두고, 만물을 기르는 땅의 덕성에 부합하며, 또 인사(人事)에도 절실한 도리이다. 이 때문에 정치를 시행함에는 화백보다 앞서는 것이 없고, 덕으로 다스림에는 책화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하느님이 내려주신 신교의 진리로 세상을 다스려 깨우치는 재세이화(在世理化)의 도는 모두 하늘의 법(天符)에 근본을 두어 거짓되지 않고, 만물을 기르는 땅의 덕성을 본받아 게으르지 않으며, 인정에 합치하여 어긋나지 않는다. 이러하니 천하의 공론이 어찌 한 사람이라도 다를 수가 있겠는가?
*행촌 이암~고려 공민왕 때 인물로 단군세기를 씀
*책화~읍락 사이의 경계를 중시여겨 서로 침입하는 것을 금하였다. 이를 어겼을 때는 침법자 쪽에서 소.말.노예을 배상한다.
★언어의 장구한 역사정신과 무궁한 뜻
삼일신고의 5대 장의 근본 뜻은 천부경에 뿌리를 두고, 삼일신고의 궁극적인 정신은 천부경의 중일(中一)정신의 이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근본은 오래고, 그 문자의 뜻이 광대함을 알 수 있느니라.
세상에 전하기를 목은 이색과 복애 범세동이 모두 천부경 주해를 남겼다고 하나 오늘날 찾아볼 수가 없다.
지금의 시대 풍조가 한 자의 글이라도 정주학(程朱學)에 부합하지 않으면 뭇사람의 비판이 화살처럼 쏟아지고, 유가의 예봉이 금시라도 날아올 듯하니, 천부경과 삼일신고의 가르침을 전하고자 한들 어찌 쉽게 논할 수 있으리오?
*목은 이색~고려말의 대학자
*복애 범세동~고려말의 학자, 복애거사, 북부여기를 지음
*정주~송나라의 성리학자, 정호, 정이, 주희를 가르침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2012), pp53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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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시대부터 내려온 민족음악
신시 배달 시대의 음악을 공수 (貢壽) 혹은 공수(供授) 또는 두열(頭列)이라 했다.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삼신을 크게 기쁘게 해 드리고, 나라에 복을 내려 길하고 창성하게 하고, 백성의 마음을 진실로 해 달라고 대신 말하였다.
'백호통소의'(白虎通疏義)에는 조리(朝離)라 하고, '통전(通典) 악지(樂志)'에는 주리(侏離)라 하며, '삼국사기'7에는 도솔이라 하였으니, 대체로 "신에게 삻의 기쁨과 편안함을 빌며, 분수를 알아 천리를 좇는다"는 뜻이 담겨있다.
부루단군 때 어아지악(於阿之樂)이 있었는 데, 이것이 신시의 옛 풍속으로 제사를 지내면서 삼신을 맞이하는 노래이다. 가사에 나오는 대조신(大祖神)은 하늘의 주재신이다.
그러므로 태양을 삼신하느님의 모습으로 여기고 태양의 빛과 열기를 삼신의 공능(功能)으로 여기며, 만물이 생겨나 자라고 발전해 가는 모습에서 삼신의 심정과 뜻을 헤이리고, 재앙과 행복이 우리 인생에 보응하는 것을 삼신하나님의 정의로 여겼다. 이때부터 참전(參佺)에게 지켜할 계(戒)가 있고, 조의(皂衣)에게 율이 있어 숭상하였는 데,활을 잘 쏘는 사람은 반듯이 높은 지위를 얻었다. 착한 마음을 수행의 근본으로 삼고, 과격을 악의 우두머리로 가정하고 활을 쏘았다.
*백호통소의~후한 때의 반고가 지은 '백호통'에 주해를 붙인 책이다.
*통전~당나라의 두유가 지은 200권의 책, 권 185, 186의 변방(1, 2에 동이)는 우리나라 고대사 자료가 되다.
*악지~당나라 재상 두우가 편찬한 제도사
*참전~고구려의 명재상 을파소가 국상이 되어 나이 어린 영명한 준재들을 뽑아 선인도량으로 삼았다. 이들 중 교화를 주관하는 자를 '참전'이라 하였다. 무예를 관장하는 자를 '조의'라고하였다.
★제사의 마음가짐
제사를 지낼 때는 반드시 근신해서 근본에 보은하는 것을 알게하고, 한마음으로 단결하여 스스로 뭇생명과 어울렸다. 안으로는 덕을 닦고 밖으로는 외적을 물리치는 것이 모두 때에 알맞게 이루어졌으니, 배달의 영광이 수천 년 동안 높이 쌓여 이루어진 큰 은덕임을 어찌 한시라도 잊을 수 있으리오.
옛적에 하늘에 제사 지낼 때에는, 하늘맞이 음악(舞天之樂)이 있었다. '요사(遼史) 예지(禮志)'에 전하는 요천(繞天)이다.
대저 민족의 제사는 반듯이 살아 계신 것과 같이 하였으니, 항상 조상이 살아 계신 것처럼 정성을 들였던 것이다. 신주를 모시고, 상을 차리고 제물을 올리는 것은 친견하는 듯한 예의를 나타내고자 함이다.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여 선령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은 지금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고 후손으로 하여금 계승하게 하려는 것이다.
*신주~위패를 말함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2012), pp533~535
#한자 원문해설은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을 참고 바람니다.
#좌우를 넘어 한겨레의 1만년의 정체성을 찾아라!
★단군조선 후기의 국제와 호칭 변경
'대변경'에 "구물단군 44세께서 국호를 대부여라 하고, 도읍을 장당경으로 옮기셨다"라고 했는 데, 그곳은 지금의 개원(開元)이고 평양으로도 불렀다. 삼조선이란 명칭은 22세 색부루 단군때에 시작되었으나 이 제도는 미비하였는 데, 이 때에 이르러 완전하게 정비하였다. 삼한을 삼조선으로 바꾸었다.
*삼한과 삼조선의 뜻
삼한이라는 말에는 "조정하여 통치한다"는 뜻이 있고, 삼조선은 "권력을 나누어 통치하는 제도를 둔다"는 말이다. 이에 앞서 우리 민족의 위대한 가르침은 여러 갈래로 나누어 능히 실행하는 사람이 없더니 연나라의 침략을 받은 이후로는 전화가 거듭되고 해마나 흉년이 들었으며, 또 정치와 교화를 그르쳐 국력이 더욱 쇠약하였다.
·삼한은 국가 권력이 진조선을 중심으로한 중앙집권적인 것으로 삼신 사상에 따라 고조선의 영토를 셋으로 나누어 다스리는 삼한관경제다. 진한은 단군이 직접 통치하고, 보좌역인 번한.마한은 부단군 격인 왕을 두어 다스렸다.
삼조선은 통치권력을 나누어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22세 색부루 단군 때에는 국제를 개편해 삼한을 삼조선으로 개편하였다. 여전히 진한의 진왕 한 분이 병권을 집행하였다. 그러나 44세 구물 단군 때에는 '삼조선 체제'로 전환하면서 삼조선 모두가 전쟁 수행 권한을 갖게 되었고 이러한 병권 독립이 고조선 말기의 국력 쇠퇴와 몰락을 가져 온 중요한 요인이다.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 pp535~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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