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중도 고조선 유적지의 역사적 고찰]
2. 고인돌과 마을 유적
춘천 중도 유적지에서 고인돌이 101기가 출토되었다고 하는 바, 만약 이 고인돌이 지배층의 무덤이라면 길게는 약 3,000년에 걸친 역사를 가진 지역이 된다. 그리하여 마지막 고인돌이 후삼한 시대인 서기전1세기라고 보면 서기전 3000년부터 역사를 가진 곳이 되는 것이다.
비파형 동검과 도끼의 제작 연대가 드러난다면 이 유적지의 역사가 언제 시작하였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인데, 고인돌의 1/3만 직계 지배층의 무덤으로 보더라도 약 900년의 역사를 가지는 것이 되어 서기전 1000년경부터 역사가 시작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고인돌은 물론 지배층의 무덤일 수도 있고 마을 공동 무덤일 수도 있다. 그 무덤에서 출토되는 유물의 성격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 춘천 중도 고조선 유적지 중 마을 유적
마을의 호수가 900여채가 넘는 것으로 볼 때, 한 집에 약 10명이 살았다면 모두 약 10,0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살았던 것이 된다. 이러한 숫자의 사람이 사는 곳은 단순한 읍(邑) 차원의 마을이 아니라 군(郡)에 해당하는 제후국의 수도에 해당하는 것이 된다.
읍(邑)은 일반적으로 약 10가(家)로 구성되고, 지방의 제후국의 국(國)은 대체적으로 가로 100리, 세로 100리에 걸치는 나라로 볼 수 있는 바, 국(國)은 지금의 군(郡) 단위에 해당하는 나라가 된다. 1호(戶)에 약 10명, 1가(家)에는 4대가 함께 산다고 보면 최소한 평균 약 150명이 사는 것이 되어 약 15호에 해당하는 것이 되는데, 작은 읍에는 약 1,5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사는 것으로 계산된다.
일반적으로 읍에 수천명이 사는 것으로 볼 때, 약 10,0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살았다면 일반적인 읍 차원의 마을이 아니라 작은 나라의 수도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그래서, 비파형 동검과 도끼가 출토된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되는 바, 일국의 수도 즉 단군조선의 한 제후국의 수도였다라고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제후국을 봉할 때, 단군조선의 중앙 조정에서 봉할 때도 있었겠지만, 삼한제도가 있어서 단군조선 시대 당시 압록강 이남은 마한(馬韓)이 다스리던 곳이었으므로, 이 춘천 중도 유적지를 수도로 한 나라를 다스리는 제후를 마한이 봉하였을 수도 있는 것이다.
▲ 춘천 중도 고조선 유적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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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홍 근 40여년 족보 · 역사 연구 / [저서] 마고할미로부터 7만년 · 홍익인간 7만년 역사 · 천부경 인간완성-제1부 천부경과 음양오행 · 역원리 이해 등 / <고조선 문자> 검증역 · 허대동 저. 이민화 감수 / 공학사 · 법학사 · 언론학사 · 인문학사(중문학 · 영문학 · 국문학) / 해달별문화원 - 천부역사태학원 대표 / 민족회의 상임부대표 / 민족회의 역사광복군 총사령 / 기천검학 범사 / 참한역사신문협의회 감사 / 한뿌리사랑세계모임 자문위원 / 도선풍수지리신문 편집인 / 법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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