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제례와 牛頭山유적
<노중평>
12월 들어서 어느 분으로부터 내게 민족단체에서 단군상을 주겠다는데 받겠느냐고 물어왔다. 그분은 자기도 타고, 내가 아는 다른 분도 탄다고 한다. 그래서 그분들의 면면을 알고 있으니 승낙하였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12월 22일 3.1빌딩 스카이라운지에서 민족대표자회의 겸 민족진영 전체 송년회가 오후 3시부터 열린다고 하였다. 이런저런 명칭을 붙여 단군상을 받게 된 사람들이 최소한도 10분은 되는 것 같다.
민족단체라면 2종류의 민족단체로 한 단체는 정치운동을 하는 단체이고, 다른 한 단체는 역사운동을 하는 단체이다. 불행하게도 문화운동을 하는 단체는 없다. 단군운동을 하는 단체가 300여 개나 되는데 단군문화운동을 하는 단체는 단 하나도 없다. 이점이 취약점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상을 탈 수 있는 근거라면, 삼각산축제를 기획하고 삼각산축재 중에서 삼성제례三聖祭禮를 복원하여 서울의 삼각산에서 20년 가까이 되는 햇수를 한인천제, 한웅천왕, 단군왕검 3분에게 강북문화원에서 제사를 지낼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삼성제례는 『조선왕조실록』에 나와 있는 국조제례國祖祭禮이다. 고열가단군이 조선이 BC 238년에 진秦에게 멸망하자, 중국 대륙을 떠나 황해도 구월산九月山으로 들어와 삼성사三聖祠를 짓고 3분의 신상神像을 모시고 1년에 봄과 가을 2번 제사를 지냈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한인 한웅 단군왕검 세 분을 삼성三聖이라고 하고, 이들 삼성에 올리는 제사를 삼성제례라고 한다. 유교를 숭상하던 시대에 이분들을 삼성으로 호칭한 것은 이분들이 임금이기 때문에 성인聖人으로 호칭한 것이다.
이분들의 신주를 모신 곳을 삼성당, 또는 삼성사라고 하는데, 구월산 문화현에 있다. 단군사를 평양에 짓고 옮겨가면서 삼성당에서 올리던 제사를 폐지하였다. 그러나 삼성당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고열가 단군이 삼성당 벽에 천부삼인을 걸어두었는데, 단군사로 위패를 옮겨가면서 천부삼인을 옮겨가지 않았기 때문에 무당들이 이곳에 와서 치성을 드릴 수 있었다. 천부삼인을 지금은 명두明斗라고 한다.
국토가 남북으로 갈라진 지금, 구월산 삼성사에서 제사를 지낼 수 없으므로, 필자는 강북구에 문화원을 만들 때 참여하여, 삼각산축제라는 이름으로 삼성제례를 복원한 것이다. 문화원에서 국고지원을 받아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였는데, 서울 한복판에서 나라 돈으로 제사를 지내는 유일한 제사가 되었다.
구월산에서 매년 수천년 동안 제사를 주관한 성씨들이 문화유씨文化柳氏들이었다. 이들이 집성촌을 이루었는데, 그 촌이 발전하여 문화현文化縣이 되었다. 삼성사는 우리나라에서 당주무당堂主巫堂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천부삼인天符三印이 무당의 손으로 전수되어 온 곳이기도 하다. 무당은 이 천부삼인을 명두明斗라 하였다.
삼성사에서 모셔오던 신상은 조선왕조 태종 때 하륜이 신상을 위패로 바꾸자고 건의하여 이때부터 신상이 위판位版으로 대체된 역사도 가지고 있다. 황해도굿도 이 삼성사에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필자는 추측하고 있다.
강북문화원에서 지내는 삼성제례는 초헌 아헌 종헌의 3헌관이 유교식으로 차를 올려 지내는데, 절은 삼육구배三六九拜를 올린다. 축문은 「천부경天符經」을 초헌관이 봉독하고, 대축이 「원방각경圓方角經」을 봉독한다.
당시에 축문을 「천부경」으로 대체한 이유는, 첫째, 「천부경」이 한인천제 때부터 용도문자로 기록해 오던 인류 최고의 경문이기 때문이며, 둘째, 「대변설大辯說」에서 천부경을 우리 민족신앙인 삼신신앙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대축이 「원방각경」을 봉독하게 한 이유는,「원방각경」이 「천부경」의 보조경문이기 때문이다.
『성종실록』에는 나라에서 삼성제례를 기우제로 지내고 있으며, 제관은 현관縣官이 맞는다고 하였다. 신주는 한인천제의 신주를 남향으로 모시고, 한웅천왕의 신주를 서향으로 모시고, 단군왕검의 신주를 동향으로 모신다고 하였으나, 삼각산 삼성제례에서는 모두 남향으로 모신다고 하였다.
조선조 세종 때 호조에서 임금에게 올린 상소문에, “구리를 세금으로 바치게 하는데, 정, 종일품은 10근,8품은 8냥쭝, 국무당國巫堂은 9근, 전의 국무당은 8근, 송악松嶽무당은 8근, 덕적德積무당은 6근, 삼성三聖무당은 6근, 당무녀堂巫女는 2근, 무녀는 1근을 수납하도록 하였다.”고 하였다. 당시에 무당이 내는 세금을 업세業稅라고 하였다.
국무당은 나라무당, 송악무당은 최영장군을 모신 덕물산신당의 무당, 덕적무당은 덕적도의 무당이다. 덕적도에는 단군조선의 마지막 단군인 고열가 단군 때 만든 것으로 보이는 제천단지가 있고, 당집도 많았다고 전해 온다. 삼성무당은 구월산에 있는 삼성사의 무당이다.
삼성사의 무당이 세금을 구리로 6근을 내었다면, 상당히 높은 액수의 세금을 내었다고 볼 수 있다. 보통 무당이 1근의 구리를 내었으므로, 6배를 냈던 것이다.
삼성당 무당이 세금을 많이 낸 것을 보면, 평상시에 삼성사를 백성들에게 개방해 놓았던 것으로 보이며, 백성들이 이곳에 와서 굿을 하거나 치성을 드렸을 것으로 생각된다.
강북문화원에서 지내는 삼성제례는 초헌 아헌 종헌의 3헌관이 유교식으로 차를 올려 지내는데, 절은 삼육구배三六九拜를 올린다. 축문은 「천부경天符經」을 초헌관이 봉독하고, 대축이 「원방각경圓方角經」을 봉독한다.
축문을 「천부경」으로 대체한 이유는, 첫째, 「천부경」이 한인천제 때부터 구전해 오는 인류 최고의 경문이기 때문이며, 둘째, 대축이 「원방각경」을 봉독하게 한 이유는,「원방각경」이 「천부경」의 보조경문이기 때문이다.
평양에 단군사를 짓고 나서, 삼성당에서 제례를 폐지하자, 괴질이 돌아 민가가 모두 공가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단종실록』, 『성종실록』) 만약 우리가 삼각산에서 삼성제례 폐지한다면 어떠한 결과가 올까? 혹시 서울시내에 괴질이 돌게 되는 것이나 아닌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우두산이 있었던 우동이 있는 중도
이러한 충고를 춘천에도 해 줄 수 있다. 이 시대에 조선시대의 두지주에 있었던 유물(막조선의 유물)이 우두산에서 발굴되었다는 것은 예사 일이 아닐 것이다. 만약애 이 유적과 유물을 훼손하고 제사도 지내지 않는다면 이후로 춘천은 상상을 초월하는 재앙이 밀어닥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들리는말로 선거로 뽑은 도지사와 시장이 이 유적을 없애고 영국의 레고다국적기업에서 1000억 원을 들여와 위락시설을 짓는다고한다. 아무리 잘 짓는다고 한들 롯데를 따라가기 힘들 것이다. 조상이 남겨준 유물을 법을 위반해가며 제멋대로 옮기고 묻어버리고 훼손한다고 하니, 이 사람들이 과연 대한민국 사람들인지 의심스럽다. 2014년 12월 23일 "고조선 유적지 보존 및 개발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발족하였다. 이 운동단체에서 앞으로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레고상품 불매운동이다. 우리나라국민이 레고재벌을 외면해 버리면 위락시설 개발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할 것이다.
춘천시는 민족단체 300여 개가 입을 모아 호소하는 절규를 절대로 무시하지 말기를 바란다. 관계자 개인은 물론이고 춘천시 자체도 좋지 않은 일이 생기게 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