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재한 춘천, 西安처럼 역사에 눈뜨면 대박 나는 건 물으나 마나
<노중평>
단군조선의 유적으로 최대유적이 춘천春川의 중도中島에서 발굴되었다. 이형구 교수가 발표한 논문(「춘천의 역사문화 유적의 보전과 개발」) 에 따르면, 집자리(주거지) 917기, 고인돌무덤(지석묘) 101기, 저장구덩이(수혈) 355기 등 모두 1,400여 기로 국내 최대의 유적이다. 이 교수는 중도에서 대략 6,000명~7,000명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곳이 마치 기획도시와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한다. 그렇다면 단군왕검이 세운 나라인 조선의 시대에 기획도시형의 주거지가 발굴되었다는 말이 된다. 주거지 밀집구역에 둘레가 404m나 되는 방형환호方形環壕(해자처럼 생긴 것)가 두르고 있어서 궁성유적과 같은 인상도 준다고 한다.
막조선의 집단주거유적지로 원형이 훼손된 춘천 중도 유적지와 중도 레고랜드개발조감도.
세계 유일의 고조선 유적지이다.
중도에서 발굴된 유물을 보면
40호 주거지에서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인 비파형청동단검이 출토되었고, 37호 대형 장방형 주거지역에서는 청동도끼(동부銅斧)와 청동단검자루끝장식(검파두식劍把頭飾) 이 발굴되었다.
이형구 교수는 동부와 비파형동검이 지금까지 출토된 무덤에서의 출토가 아니고 주거지에서 출토된 것은 처음이라 하였다. 출토된 곳을 수장급 인물의 주거지로 추정했다. 또한 출토지를 집무실이거나 대단위 취락의 공공건물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하였다.
(왼쪽) 조선시대에 한반도에 있었던 막조선의 유물로 추정이 되는 동부(청동도끼)와 비파형동검
(오른쪽) 처음 발굴되었다고 보도된 중도형 토기
이외에도 마제석기가 대량으로 출토된 곳을 공방工房이 있었던 곳으로 보기도 하였다.
이형구 교수는 중도 주거지가 조성된 때를 지금으로부터 3000년에서 2000년 전으로 추정하였다. 『단군세기』에 따르면, 조선시대의 말기에 취락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중도의 유물은 조선시대 말기인 26세 추로 단군 때에서 고구려시조 대까지의 주거지로 추정이 가능하다. 따라서 조선시대에서 시작하여 삼한시대까지의 주거지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놀라운 사실이 춘천의 중도가 조선역사연구와 조선역사의 실체를 밝히는데 메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삼한역사의 일부를 밝히는 데에 연결고리가 될 수 있음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근거를 가지고 우리는 다음과 같은 조선역사연구 아이템을 만들어 낼 수 있다.
1. 조선 역사 연구의 필요성
1). 대문구문화(번조선문화), 홍산문화(한국문화), 우아량문화(배달나라문화), 춘천문화(막조선문화)의 실체 규명.
2). 조선시대와 하국夏國시대가 공존할 때의 청주靑州(산동반도-번조선), 유주幽州(요서-진조선), 도이島夷(한반도-막조선)의 실체 및 강역 규명. 이들을 합한 것이 대조선제국大朝鮮帝國이다.
3). 강원도 일대에 있었던 동예東濊에 비견하는 산동반도 발해만 일대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서예西濊, 산동반도 내륙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예穢, 만주일대에 있었던 예獩(맥족貊族)의 실체 규명.
4). 진시황 8년(BC 238)에 진秦에게 멸망한 조선 멸망 당시의 조선과 진의 관계. 서안西安(진조선의 땅)에 조성한 진시황릉과 병마용은 무슨 역사의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인가?
5). 중원中原의 역사가 조선이 멸망하자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로 넘어간 이유는 무엇인가?
6). 조선이 멸망하자 산동반도에 생긴 래국萊國(래이족萊夷族이 세운 나라)의 실체는 무엇인가?
7). 백제를 맥貊이라 불렀던 이유는? 왜 양직공도梁織貢圖는 래이萊荑를 마한馬韓이라 했고, 마한을 백제百濟라 했는가?
8). 무슨 이유로 한반도 서해 중심부에 소래蘇萊(소도蘇塗를 관리하던 래이족이 상륙했다는 뜻)라는 지명이 생겼는가?
2. 춘천중도박물관의 필요성
인류의 미래는 역사문화 콘텐츠로 문화경제를 이끌어가야 할 시점에 와 있고, 14000년 전에 마고지나麻姑之那를 세운 마고, 10000년 전에 한국桓國을 세운 한인, 6000년 전에 배달나라倍達那羅를 세운 한웅桓雄, 4400년 전에 조선을 세운 단군왕검, 춘추전국시대 초기에 소래로 들어온 소벌도리蘇伐都利가 역사문화 콘텐츠로 대한민국 국민을 먹여 살리는 시대가 곧 오게 될 것인즉, 중도조선문화는 중도역사문화 콘텐츠의 무대로서 온갖 작품의 무대가 될 것이 틀림이 없으므로, 춘천시민은 절대로 이 보물덩어리를 덮고, 훼손하고, 파괴하여 역사에 죄를 짓고 후손에게 죄를 짓은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아니 된다.
중국이 대문구유적, 홍산문화유적, 우하량문화유적을 막대한 국가예산을 들여 보존하고 개발하는 이유는 우리의 역사를 싹쓸이하여 중국의 역사에 편입하고자 하는 데에 있는 만큼, 우리는 여기에 지지 않도록 우리의 역사정체성을 찾고 역사정통성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하여 종도고조선문화유적을 보존하여야 한다. 춘천이 중도조선문화와 삼한문화의 중심에 설 수 있을 것이다.
3. 중국과의 역사문화교류의 필요성
앞으로 우리는 중국과 상고시대 문화를 공유하고 교류해야 하는데, 이때 만약에 우리에게 한반도에 하국夏國에 비견하는 막조선漠朝鮮의 역사문화 현장이 춘천에 없다면, 우리의 동이역사문화는 화이역사문화에 종속당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중도조선문화(막조선문화)를 보존하고 개발하고 연구하지 않는다면, 한반도의 상고시대 문화는 완전히 중국의 하국역사문화에 편입되고 말 것이다. 역사현장이 없는 책속의 역사는 후대에 가서 왜곡과 폄하와 말살의 길을 조선이 멸망하여 조선의 역사문화의 실체가 거의 사라졌듯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중도조선과 삼한역사의 현장은 하늘이 우리에게 주신 마지막 보존기회로 인식하고, 단 하나라도 보존해야 하고, 역사에 관심이 있는 국민과 온갖 예술가들을 동원하여 역사문화콘텐츠를 만들어 조선역사문화를 꽃피워야 하고 한류로 수출의 길을 열어야 할 것이다.
미국영화의 한 예를 들어 보기로 한다. 미국의 신화영화, 우주영화를 보면, 최고의 여신이 나오고 선인과 악인이 등장하여 싸우는데, 우주의 현장이 모호하고 역사의 현장도 모호하다. 이러한 스토리 패턴은 우리 역사에서 사라진 마고지나역사 콘텐츠의 변형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가 타국들보다 역사 연대가 월등한 한제국, 배달나라제국, 조선제국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므로, 실증사학의 발에 묶여, 이 보물단지 역사현장을 위서니 위작이니 왜곡이니 무어니 하고 연구를 무시하거나 막아서는 아니 될 것이다. 미래산업의 콘텐츠가 이 속에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미국의 신화영화와 우주영화를 보면 불확실한 역사를 어떻게 콘텐츠화 할 수 있는지 길이 보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말하면, 중국의 서안은 연간 관광객 방문수가 5,000만명이라고 중국의 언론들이 밝히고 있다. 우리 춘천이 중도를 막조선과 예맥족의 역사문화 현장으로 훼손하지 않는다면 세계고대역사문화 메가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장기판에서 동이족인 초楚와 화이족이 한漢이 영원한 맞수로 싸우게 하듯이, 한국과 중국이 협조하여, 조선을 멸망시킨 진秦과 진에게 멸망당한 조선이 영원한 맞수로 싸우는 역사문화 콘텐츠를 방대하게 수없이 개발한다면 대한민국이 미래에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 한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춘천이 역사문화로 대한민국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나올 때가 올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