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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 역사 무식의 비극 [노중평]
  
   작성자 : 배달문화원
작성일 : 2020-02-10     조회 : 577  

춘천, 역사 무식의 비극
 
[노중평]
 
 우리나라의 역사학계에서는 역사의 상한선을 『삼국사기』에 기록된 삼국시대 이상을 올라가지 않는다. 『삼국사기』는 삼국시대 이상의 역사를 배제한 역사서이기 때문에 삼한시대 이전의 역사를 규명할 수 없도록 막아 놓았다. 이렇게 한 것이 관학官學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그래서 삼국시대 전 시대인 삼한시대로 가려면 삼한시대라는 역사용어를 쓰지 못하고 애매모호한 원삼국시대라는 고고학적 용어를 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원삼국시대는 중국역사에서 춘추전국시대에 해당한다. 중국에서 춘추전국시대 이전 시대의 역사는 동이東夷와 화이華夷가 중원의 역사에서 물고 물리며 역사를 이끌어 갔던 시대였다. 그러므로 원삼국시대라고 하면 대륙에 있었던 조선의 역사가 대륙에서 퇴출당하지 않을 수 없는 역사가 되고 만다.
 
 중국 대륙(당시에 중원中原이라 하였다)에서 춘추전국시대가 갑자기 생겨나기 시작한 때는 조선의 멸망과 깊은 관계가 있다. 조선이 진시황 8년(BC 238)에 진에게 멸망하면서 춘추전국시대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학계에서 원삼국시대를 쓰기보다 춘추전국시대를 쓰는 것이 우리의 고대역사를 해명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춘추전국시대를 쓰면 삼한시대에서 조선시대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역사는 강역이 방대하고 조선에 속한 열국도 다양한 역사였다. 이 역사가 다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중원 대륙과 만주에서 퇴출당한 조선과 조선 이전의 역사를 규명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힘이 들게 되어 있다.
 
 이 역사를 규명하려면 『한단고기』류의 역사서를 참조하지 않으면 역사 해명이 전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귀중한 역사서를 위서로 판정하고 배척하는 역사학계의 반성 없는 고질적인 풍토가 우리 역사를 오리무중으로 빠뜨린다. 그래서 청동기시대니, 철시시대니, 구석기시대니, 신석기시대니 하는 애매한 역사구분에 매몰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러한 행태는 우리의 고대 역사를 버리고 찾지 않는 역사학자들의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이 직무유기의 피해가 춘천 중도 유적발굴에서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중도유적은 발굴보고서에 따르면 역사의 명칭을 조선역사로 부르지 못하고 애매한 고고학 명칭을 쓰면서 얼버무리고 있다. 이렇게 되니까 역사에 문맹인 이 나라 사람들이 이 역사의 중요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포크레인으로 긁어내며 마구 훼손하고 마는 사태에 이르고 말았다.
 
 이 역사유적에서 지극히 중요한 것은 고조선의 국가단위 규모의 대규모 취락지가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고대의 국도를 읍邑이라 했는데, 邑은 문자학에서 보면, 풍이족(우리의 조상으로 뱀<巳> 족표를 쓰는 인종이라는 뜻)의 도읍都邑을 의미하는 문자이다. 國+巴자인데 巴자는 國의 의미를 한정하는 문자이다.
 
 巴는 용龍자 금문金文이 제곡고신帝嚳高辛 시대에 오기 이전에 썼던 용龍을 의미하는 문자였다. 이 용을 의미하는 문자는 풍이족의 족표族表인 사巳자에서 나온 파생문자이다. 따라서 용이라는 문자가 풍이족에게서 나온 문자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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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고고학자들이 홍산문화유적을 발굴한 이후에 유물을 한국시대 2개의 마을에서 출토된 유물로 정리하였다. 풍이부락風夷部落은 한인천제가 이끌어갔던 풍이족 마을로 『삼성기』에서 한국이라 하였다. 조이부락鳥夷部落은 한반도에 사는 인종을 조이鳥夷 또는 도이島夷라 했는데, 춘천인의 조상이 된다. 풍이부락은 풍이부락에 속한 인종이 치우천왕과 황제가 탁록에서 싸운 이후에 동이와 화이로 갈라졌음을 말한다.
 
 巳자는 이 문자 안에 선을 하나 그어 巴자를 만들었는데, 巳자에서 사각의 공간 구口자는 백성(풍이족의 장손과 지손)을 의미하고, 巴자에서 가로 누운 日자는 태양 안에 점이 찍혀 있는 문자로 한桓(桓자에는 한, 환. 원의 3개의 발음이 있다)을 의미하는 문자이다. 한桓은 동쪽에 뜨는 해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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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이족의 분화. 풍이족(장손과 지손)은 동이와 화이로 분화하고, 또 풍이족의 巴족(로열패밀리)으로 분화한다. 사족은 한반도에 들어와서 도이島夷와 조이鳥夷로 불리게 된다. 올빼미(梟)는 단군왕검의 아이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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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의 중도 B지역 집단 거주지. 두지주의 우두천왕으로 불렸던 소시모리가 이끄는 예읍의 집단 거주지로 보인다.예읍은 다른 말로 삼조선에 속한 막조선이다. 또 漢은 예맥이라 하였다.
 
 용에서 족표가 분화하는데, 이 분화한 족표를 고고학 유물에서 저룡猪龍(돼지코를 가진 용)이라 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파저巴猪로 써야 맞는 문자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고고학 유물에서 보면, 파巴(용)는 저猪(돼지)로만 분화하지 않는다. 올빼미를 뜻하는 효梟로도 분화한다. 효는 나무 위에 앉은 새인 솟대에 앉은 새를 뜻한다. 梟는 동이족의 시조인 단군왕검의 인종 아이콘이 된다. 그리고 동이를 상징하는 새가 된다. 반면에 猪는 땅으로 내려와 화이를 상징하는 돼지가 된다. 우리 조상이 일제로부터 해방이 될 때까지도 지나인을 돼놈(猪)이라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풍이족은 돼지(猪加)로만 분화하지 않고, 마가馬加, 우가牛加, 양가羊加, 구가狗加로도 분화하였다. 가加는 동물 인종 아이콘을 가진 마을을 의미하고, 가家는 이들이 사는 집을 의미한다.
 
 이들은 인구가 불어가면서 다양하게 분화했는데, 조선이 진秦에게 멸망하고, 진이 한漢에게 멸망한 이후에, 한은 가加라는 호칭을 없애고 이들을 예濊와 맥貊이라 하였다.
 
 濊는 산동반도 발해만에 사는 동이족을 일컬을 때 썼고. 예穢는 내륙에서 농사짓는 동이족을 일컫는데 썼고, 예獩는 반도의 동쪽에서 사냥과 목축을 하는 인종을 호칭할 때 썼다. 獩를 달리 맥貊이라고도 했는데, 맥은 예족獩族이라는 뜻이다.
 
 한반도에 사는 도이島夷, 혹은 조이鳥夷를 달리 동예東濊라고도 했는데, 동예란 발해만에서 이주해 온 인종이 이곳에 합류했기 때문에 불려진 명칭으로 보인다. 발해만에 사는 인종을 서예西濊로 본다면, 서예가 이동하여 동예가 된 때를 대략 두지주豆只州(지금의 춘천)에서 소시모리素尸毛犂(우두천왕牛頭天王)가 종주국인 조선에 반란을 일으켰을 때로 볼 수 있다.
 
 이때에 일어난 반란을 『단군세기』(3세 가륵단군)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무신 10년(BC 2173) 두지주의 예읍(예읍은 예에서 온 사람들의 나라라는 뜻이다)이 반란을 일으키니, (가륵단군이) 여수기余守己에게 명하여 그 추장 소시모리를 베게 하였다. 이때부터 그 땅을 소시모리라 하다가 지금은 음이 바뀌어 우수국牛首國이 되었다. 그 후손에 협야노陜野奴라는 자가 있었는데, 바다로 도망쳐 삼도三島(지금의 일본)에 웅거하며 스스로 천왕이라 하였다.”
 
 이 기록은 춘천의 역사를 최초로 기록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아니 할 수 없다.
 
 조선시대엔 산동반도에 번조선番朝鮮이 있었고, 요동반도에 진조선眞朝鮮이 있었고, 한반도에 막조선이 있었다. 번조선은 동평국이라 하였고, 진조선은 망구국이라 하였다.
 
 번조선의 국읍은 고대 청주靑州의 동평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이 되고, 진조선의 국읍은 고대 유주幽州의 길림이나 심양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막조선의 국읍은 동예東濊(지금의 춘천)의 중도에서 발견이 되었다. 그러니 이 집단취락 유적지가 세계 역사상 얼마나 소중한 유적지인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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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단의 도표가 금문으로 표시한 중여곤의 가계도이다.
 
 춘천의 지명을 두지주豆只州라 했는데, 두지주豆之州로 볼 수 있는 말이다. 두가 이곳에 국가 제사터가 있기 때문에 썼던 지명으로 볼 수 있다. 주州는 조선에 속한 州였다고 볼 수 있다.
 
 에읍濊邑은 예국의 국도라는 뜻이다. 즉 동예의 국도라는 뜻이다. 예는 원래 조선의 청주靑州에 속한 발해만에 살던 동이족을 의미하였다. 이들이 농사를 짓기 위하여 이곳으로 이주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당시의 추장을 소시모리素尸毛犂라 하였다. 소시素尸는 그가 흰 옷을 입은 천왕이라는 뜻이다. 시尸자는 그가 치우천왕의 후손임을 나타내는 말로 볼 수 있다. 尸자가 치우천왕을 의미하는 문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볼 수 있는 것이다. 모리는 머리로 볼 수 있는 말이다. 우두머리라는 말이다.
 
 소시는 소시모리가 군장君長이자 제관祭官으로서 입고 있는 관복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소시와 유사한 복장으로 조의선인皁衣仙人이 입고 있는 조의皁衣를 들 수 있다. 조의란 제관이 칠성에게 제사지낼 때 입는 제관의 복식인 백색장삼白色長衫이라 볼 수 있는 복식服飾이다. 칠성거리할 때 입는 복식은 백색장삼에 칠성이 장식된 복식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오늘 날도 이 복식은 무당이 칠성거리할 때 입는다.
 
 모리를 분해하면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다. 모리에는 모우旄牛라는 뜻이 있다. 모우는 제사지낼 때 잡아 제물로 올리는 소와 벼농사를 짓는 소의 2가지 뜻이 있다. 그러므로 소시모리는 농사지어 제사지내는 제관이라는 뜻이다.
그가 농사 지어 제사지내는 곳이 우두산牛頭山이 있는 중도의 지금의 우두동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두지주를 토벌한 여수기余守己라는 문자를 해석해 보면 이 문자에도 엄청난 역사가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余에는 중여곤衆艅鯀의 후손이라는 뜻이 있다. 중여곤은 공식적으로 국가제사를 처음 시작한 사람이다. 중衆은 그가 천문을 살펴 제사지내는 날짜를 잡는 일관日官을 의미하는 문자이다. 수守는 그가 성읍을 지키는 장수라는 말이다. 기己는 그의 성이 기성己姓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여기수에는 제관의 임무와 장수의 임무를 띤 기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 있다. 그가 가륵단군의 명을 받고 소시모리를 토벌하러 출동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이름을 보면, 가륵단군 당시에 국가에서 이름을 지어 주지 않으면 이름을 갖지 못했던 시대였다고 볼 수 있다.
 
 주)
《帝王年代曆》入阿斯達山, 化神御天. 時, 大國九, 小國十二, 皆檀氏也. 太白·平壤, 俱在遼. 滿之間, 阿斯達山卽文化縣. 九月山, 一名白岳. 國人立廟饗之, 稱以三聖祠. 桓因·桓雄·桓儉, 是謂三神, 而桓儉卽檀君也.( 崔致遠 編著)
三韓時代 : 우리 학계에서 원삼국시대로 불리는 시대는 삼한시대였다. 마한, 진한, 변한의 시대이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의 역사 말살로 삼한시대의 역사가 모두 사라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九黎族 : 배달나라를 세운 종족이다. 처음 나온 9종족이라는 뜻이다. 려黎는 희미한 빛, 즉 아침을 여는 첫 빛이다. 그러므로 구려족은 처음 생겨난 종족이라는 뜻이다. 구려족句(勾)麗族으로도 불린다. 구려족句麗族은 북극성에서 나온 종족이라는 뜻이다. 단군조선시대에 조선에 속했는데, 동평국東平國이라고도 하였다. 후에 만맥蠻貊이라고 하였다. ≪山海經 ⋅海山西經≫에서 “東胡在大澤東 夷人在東 東胡貊國在漢水東北”이라 하였다. “동호는 대택 동쪽에 있는데, 동이인은 대택의 동쪽에 있다. 동호와 맥국은 한수 동북쪽에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이인夷人은 풍이족을 계승한 구려족을 뜻한다. 이인이 동호와 맥국을 구성하는 종족이었다. 결국 맥국이 풍이족을 계승한 구려족에서 나왔음을 뜻한다고 본다. 고구려라는 명칭은 구려족에서 나왔다.
東夷族 : 구려九黎가 이夷의 원형이다. 이夷에 대하여 중원의 토착세력이라는 설과 침략세력이라는 설의 두 설이 있다. 동이가 구한-풍이-구려를 계승했으므로 토착세력으로 보아야 타당하다고 본다.
침략세력설은 구려족에서 갈라져 독립한 화이가 이를 동이東夷, 서이西夷, 남만南蠻, 북적北狄으로 나누고, 진시황이 중원에서 이들을 축출하였다. 한나라 때 공안옥孔安玉이 대표적인 토착세력논자이다. 왕숙王肅이 은나라 주왕紂王 때 융적戎狄이 침략해 들어와 살기 시작하였다는 침략세력설을 주장하였다. (심백강 설) 이夷에 대한 해석은 ≪太玄經≫에 춘분의 기, 또 角宿라 하였다. ≪후한서 115권≫에서 동방왈東方曰夷라고 하였는데, ≪태현경≫에 근거하여 동방을 이라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檀君朝鮮의 疆域 : ≪경패經稗 3권≫에 朝鮮句麗諸國 禹時實皆在靑城 “조선 구려 등 여러 나라가 실제로 모두 청주지역에 있었다.”고 하였다. 진시황 8년에 조선이 멸망하여 47세 고열가단군이 구월산에 몸을 숨긴 후에, 한무제가 진을 멸망시키고, 그 자리(청주)에 현토와 낙랑 2개 군을 설치하였다. ≪오례통고五禮通考≫201권에, “한무제가 설치한 현토玄兎, 낙랑樂浪 2군이 다 옛 우이嵎夷의 땅으로 청주지역에 있었다.”고 하였다. 옛 우이의 땅이었던 청주지역은 산동성, 요녕성, 하북성 일대에 해당한다. 후대에 와서 신라와 백제를 우이에서 나온 나라로 인정하였다. 당이 백제를 공격할 때 김춘추金春秋를 우이도행군총관嵎夷道行軍總管으로 삼았던 것이다. (심백강 설)
濊族 : 북으로 송화강 상류에서 한반도 북부에 분포했던 종족. 서단산西團山문화의 주인. ≪管子 小匡篇≫, ≪呂氏春秋 侍君賢≫ 예濊는 東海之濱 朝鮮之地이라는 지명을 의미하였다. ≪三國志 扶餘傳≫ 부여가 통치한 지역이 본래 예의 땅이었다. 부여강역 중 동남부에 속했다. ≪三國志 東夷傳≫ 예는 한반도 동북부에 있었다. ≪後漢書 武帝紀≫ 28만여인万餘人. (최무장의 예맥) 백제의 국도를 위례라고 하였는데, 례는 부여왕족의 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예濊의 변음으로 본다. 따라서 예로부터 온 사람이라는 뜻이 있다. 고구려에서는 위나尉那라고 했는데, 이 역시 예에서 나온 말이다. 위는 위 즉, 솟과 통하는 말로 솟대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貊(貉)族 : 북방의 유목민을 지칭. 사서史書에서 맥계貊系의 부락을 북발北發, 맥국貊國, 백민白民, 고이高夷, 부여扶餘, 고구려高句麗, 양맥梁貊, 소수맥小水貊이라 하였다. 맥貊은 내륙 경계가 동쪽으로 농안農安, 요원遼源 서쪽으로 통유通楡, 심양瀋陽 남쪽으로는 본계本溪 , 단동丹東 북쪽으로는 제제합이齊齊合爾(지지할)에 이르렀다. 맥의 바깥은 동은 예濊, 서는 동호東胡, 남은 동이東夷(주, 원래 東夷가 濊貊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였다고 한다. <시경노송詩經魯頌> 회이만맥淮夷蠻貊 ≪주례周禮≫ 구맥九貊 (최무장의 예맥)
發族 : 발인發人. 발과 맥의 발음은 같다. 맥의 다른 칭호이다. ≪逸周書 王會篇≫ 發人 鹿者若鹿 迅走 <공조 주 孔晁 注> 發亦東夷. 발족의 분포범위는 발해 밖 동북지구로 산융山戎(지금의 대능하 유역) 및 숙신肅愼(지금의 송화강 동쪽) 사이에 있었다. (최무장의 예맥)
예와 맥을 하나로 묶어서 예맥으로 부르는 경향이 있는데 이점은 오류로 본다. 이 점에 대하여 최무장 교수는 논문 <예맥>에서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인용문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였다.
“≪管子經重甲≫에는 ”발發에서 제齊까지 8천여 리이며, 조선과 인접되었고, 두 곳은 제와 거리가 그리 멀지 않으며 발이 비교적 가깝다.”고 하였다.
“발은 조선 앞에 있다. 이 조선은 지금의 한반도 서북쪽에 있으며, 제齊는 현재의 산동성山東省에 있었다. 즉 발은 대략 지금의 요녕성 동북부에 있었다. 고힐강顧頡剛의 ≪中國歷史地圖集≫에 발發을 지금의 휘발하輝發河 유역에 있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곳은 모두 산융과 발의 연속적 칭위가 맞지 않는다. 그리고 두 곳에서 발견된 고고학적 문화는 예계濊系에 속하고 있다. 그래서 발이 맥계에 속함은 타당치 않다고 본다. 이 두 가지 설을 채택하지 않고 북발을 지금의 심양 일대라고 보는데, 이점도 장래의 고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渤海灣 : 발해만渤海灣의 발渤의 어원은 발發이다. 이 발은 족足과 같은 뜻이다. 족足이 모여서 족族이 된다. 발인들이 바닷가에 살았으므로 발해로 불렀다고 볼 수 있다. 발해는 발해發海로 바꾸어 쓸 수 있다. 따라서 발해만은 발해만發海灣으로 바꾸어 쓸 수 있는 것이다.
濊邑 : 예읍濊邑에는 문자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2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읍邑을 국國으로 보는 경우이다. 읍邑은 국囗+파巴로 파자가 되는데, 국囗은 국國으로, 파巴는 임금으로 볼 수 있다. 한국桓國을 세운 한인천제桓因天帝의 이름이 안파견安巴堅인데, 안파견에는 “집안에서 여자가 용을 모시고 제사지내는 제관”이라는 뜻이 있다. 이때의 파巴는 뱀족의 임금인 용을 뜻한다. 그러므로 예읍에는 임금이 다스리는 예국濊國이라는 뜻이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예읍을 예국의 국도, 즉 예국의 서울로 보는 경우이다.
貊邑 : 예읍濊邑이 있었으므로 맥읍貊邑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牛頭天王 : <檀君世紀>, ≪朝鮮紀≫ 등의 기록에, 무신 10년에 예읍이 반란을 일으켜 여수기余守己를 시켜 토벌하고 그 추장 소시모리素尸毛犁의 목을 비었다고 하였다. 소시모리를 우수주牛首州라고 하였고, 그 자손 협야노가 해상으로 탈출하여 삼도(일본)에 가서 천왕이라 잠칭하였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기온사(祗園社-지금의 야사카신사八坂神社)에서 우두천왕을 모신다. 우두천왕은 소시모리이거나 그의 자손 협야노 두 분 중의 한분일 것이다.
소시모리는 소머리를 말한다. 소머리는 우가의 인종 아이콘이다. 청구국의 치우천왕이 소머리 형상으로 도깨비 탈을 만들었으므로 소머리의 근원이 치우천왕에게 있다고 볼 수 있다.


 
 
TOTAL 31
10. 춘천, 역사 무식의 비극 [노중평]
춘천, 역사 무식의 비극   [노중평]    우리나라의 역사학계에서는 역사의 상한선을 『삼국사기』에 기록된 삼국시대 이상을 올라가지 않는다. 『삼국사기』는 삼국시대 이상의 역사를 배제한 역사서이기 때문에 삼한시대 이전의 역사를 규명할 수 없도록 막아 놓았다. 이렇게 한 것이 관학官學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그래…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0-02-10  |  Hit: 578
9. 맥국의 유래와 춘천(2) [박성수]
3. 소전은 민족고유문화의 전수자 1) 진역유기와 규원사화   고려 말에 소전素佺이란 거사가 지금의 청평사의 전신인 태소암太素庵에 은거하고 있었다. 소전의 암자에는 귀중한 고기가 소장되어 있었다. 이 사실을 알고 찾아간 사람은 이명李茗, 이암李巖, 범장范樟 세 사람이었다. 때는 몽고 침략기어서 마치 한 말의 일제침략기…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0-02-09  |  Hit: 611
8. 맥국의 유래와 춘천(1) [박성수]
2012년 춘천문화원 창립 60주년 학술회의 발표 내용으로 완벽하지는 않으나 참고가 될 것 같아 올립니다.    맥국의 유래와 춘천 - 우두대촌과 청평사 - [박성수 / 국제평화대학원대학교 명예총장]   --------------------------------------------------------- 1. 머 리 말 2. 춘천은 맥국의 도읍지 1) 춘천 맥국과 太素庵 2) 조선유민의 나라…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0-02-09  |  Hit: 555
7. 단군제례와 牛頭山유적 [노중평]
단군제례와 牛頭山유적   <노중평>   12월 들어서 어느 분으로부터 내게 민족단체에서 단군상을 주겠다는데 받겠느냐고 물어왔다. 그분은 자기도 타고, 내가 아는 다른 분도 탄다고 한다. 그래서 그분들의 면면을 알고 있으니 승낙하였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12월 22일 3.1빌딩 스카이라운지에서 민족대표자회의 겸 민족진…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0-02-09  |  Hit: 584
6. 우두산은 춘천의 역사가 시작된 곳, 이곳을 없앤다니...[노중평]
우두산은 춘천의 역사가 시작된 곳, 이곳을 없앤다니... <노중평>   貊國의 조상 고시는 우리 역사에서 처음 농사를 시작한 사람으로 나오는 분이다. 이분은 배달나라1)를 세운 한웅천왕 때 농관農官을 지낸 분이었다. 우리가 들이나 산에서 음식을 먹기 전에 고시레2)!를 외치게 하는 분이 이분이다. 고시 때 비로소 밥을 먹게…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0-02-09  |  Hit: 604
5. 횡재한 춘천, 西安처럼 역사에 눈뜨면 대박 나는 건 물으나 마나 [노중평]
횡재한 춘천, 西安처럼 역사에 눈뜨면 대박 나는 건 물으나 마나   <노중평> 단군조선의 유적으로 최대유적이 춘천春川의 중도中島에서 발굴되었다. 이형구 교수가 발표한 논문(「춘천의 역사문화 유적의 보전과 개발」) 에 따르면, 집자리(주거지) 917기, 고인돌무덤(지석묘) 101기, 저장구덩이(수혈) 355기 등 모두 1,400여 기…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0-02-09  |  Hit: 450
4. 춘천 중도 고조선시대 유적지의 역사적 고찰 [천산태백 조홍근]
춘천 중도 고조선시대 유적지의 역사적 고찰 -비파형동검, 청동도끼, 집단 고인돌, 대단위 취락구조 등은 제후국 도읍지 표상- [天山太白 曺洪根 / 한문화사업단 대표 / 천산역사연구원 대표] --------------------------------------------------------- 1. 춘천 중도 유적지 유물 도끼와 비파형동검 1) 도끼와 비파형동검은 권력의 상징물 2) 비…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0-02-09  |  Hit: 402
3. [춘천관련 역사자료] 삼조선시대에 한반도는 막조선, 국도는 예읍(춘천)이었다.(2)
그렇다면 예의 땅이 아닌 맥의 땅은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맥족貊(貉)族은 북방의 유목민을 지칭하였다. 사서史書에서, 맥계貊系의 부락을 북발北發, 맥국貊國, 백민白民, 고이高夷, 부여扶餘, 고구려高句麗, 양맥梁貊, 소수맥小水貊이라 하였다. 맥貊은 내륙 경계가 동쪽으로 농안農安,&nbs…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0-02-09  |  Hit: 429
2. [춘천관련 역사자료] 삼조선시대에 한반도는 막조선, 국도는 예읍(춘천)이었다.(1)
삼조선시대에 한반도는 막조선, 국도는 예읍(춘천)이었다.   < 노중평 > 『태백일사』의 「신시본기」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단군왕검이라 하는 분이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니, 지금의 송화강松花江이다. 처음에 나라를 칭하였는데, 조선이라 하니, 삼한三韓, 고리高離, 시라尸羅, 고례…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0-02-09  |  Hit: 419
1. 춘천 중도 고조선 유적지의 중요성
2015년 5월 정의화 국회의장 당시 '춘천 하중도 고조선시대 유적지 보전'에 관하여  국회의장실에 제출된 자료입니다. <자료출처>춘천 고조선 유적지 보존협의회 다음카페 -> http://cafe.daum.net/2014.12.12./cJCd/65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0-02-09  |  Hit: 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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