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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뿌리없는 사상적 흐름을 경계하며
  
   작성자 : 배달문화원
작성일 : 2021-01-20     조회 : 2,570  

2. 뿌리없는 사상적 흐름을 경계하며

단기 4313년(서양기원 1980년) 이후 한국의 소위 사회운동권의 변화 속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면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폭발적인 확산 사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 이전에만 해도 일서 복사판으로 극히 소량만이 조심스럽게 뒷거래되던 소위 이념서적들이 단기 4313년 광주항쟁 이후에는 마치 사상의 개화기라도 맞이한 것처럼 넘쳐흘렀다.

대학생운동권을 주무대로 하여 운동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마르크스, 레닌의 말을 인용하고 변증법이라는 말이 일상어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상적 논의의 확산은 한국 사회의 현정세와 이에 대응하는 민주화 운동세력의 통일된 방향설정에 일정 기여한 측면이 없지 않으나, 유럽중심적 세계관인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역사적 한계를 옳게 지적해내지 못하고 소화시키지 못한 상태에서의 기계적 적용으로 인하여 혼란을 가중시킨 면도 없지 않다. 

결과적으로 민주화운동권이 극도의 분열과 종파놀음의 대결장으로 화하게 된것은 당현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외국의 오래된 혁명 사례들을 그것도 극히 제한된 시각에서의 사료들을 중심으로 하여 한국 사회에 적용시키려했다는 것은 사상적 자기 뿌리의 부재와 한국 사회에 대한 몰이해, 운동에 대한 기본적 입장과 자세의 결여 등이 빚어낸 필연적 귀결이었다. 단어의 앞뒤 배열만 바꾸는 식의 여러가지 명칭을 갖는 종파들로 갈라서서 민주화운동권을 세력다툼의 격전장으로 몰아간 흐름에 대해서는 이미 내부적인 비판과 현실 적용에의 실패 등으로 대략 정리가 되어가고 있는 모습도 보이고는 있다. 

주로 중산층의 자제들로 구성되어 지식과 정보를 독점하고 자신들의 얄팍한 이론지식수준을 진리로 위장하여 순수한 청년학생들을 끌어모으는데만 혈안이 되었던 이들에 대해서 아직 옳게 평가가 마무리 되어진 상태는 아니다. 노동자운동권까지 침투한 이러한 분열과 대결이라는 흐름이 초래한 결과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그 피해가 막심하였음이 운동선상의 노동자들이면 누구나 통감한 사실이다.
이제 이러한 흐름은 수없이 부침을 거듭하고 여러가지로 모습을 바꿔나오면서 드디어 김일성주체사상을 전면에 내걸고, 보다 본격적으로 노동자 위에 군림하려 획책하고 있는 현실에 이르렀다. 

레닌의 교시에 의하여 스스로 자의적 전위가 되어 '전위에 의하지 않으면 천년이 지나도 스스로 정치의식을 가질 수 없는 노동자'들을 정치적 각성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 '일떠선 진보적 청년학생'들은 도처에서 주체사상을 연호하며 노동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침투해 들어가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역대정권들에 의해 국적 제1호로 규정되어온 김일성에 대한 논의는 일체의 객관적 판단이 제압되고 극도의 비난만이 허용되어 왔다.  이러한 졸렬한 반공정책으로 인하여 정권과 대결하는 입장에 선 세력들에게 오히려 김일성신화가 심화되어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다. 

김일성에 대한 관제적 위상은 진보적 청년학생들로부터 급속히 궤멸되고 민족영웅의 위상으로 부각되기에 이르렀다. 김정일에 의해 수차례에 걸쳐 수정되어 온 주체사상의 급속한 확산은 마르크스 레닌의 창조적 계승자라 자처하는 김일성에 대한 우상화를 부추기며 한국 사회운동권 일각에 일대 세력을 형성하는데 성공을 거두고 있는 듯이 보이고 있다. 이것은 그동안의 러시아혁명과 레닌의 절대성을 무기로 하여 근로민중 위에 군림하려던 때의 양상보다도 한층 더 전진한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이라는 세계적 인물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미흡하기 짝이 없는 실정이다. '김일성이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관제적 김일성관이 아니면 '세계 인민들의 무한한 존경과 찬사를 한 몸에 모으고 있는 위대한 영도자'라는 한국내 김일성 세력들의 의한 선전만이 전해질 뿐이다. 따라서 김일성에 대한 연구는 한국 정부에 의해 수조원의 자금이 투입되어 이루어진 정권안보용 선전물을 배제하고 그들 자신의 선전물에 기초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일성이 항일무장투쟁부대를 지도하였다는 것을 자신의 주장대로 인정한다 해도 그 기간은 무척 짧은 기간이다. 김일성의 항일운동에 있어서 대표적으로 드는 것이 통일전선전술에 의한 좌우익의 통합작업과 그 뒤를 이은 국내 진공 제1호 작전인 보천보 습격작전이다. 

단기 4268년(서양기원 1935년) 국제공산당 7차 대회에서 결정된 좌경노선 청산에 의한 반파쇼인민전선전술의 채택으로 단기 4269년(서양기원 1936년) 6월 조국광복회가 결성되었는바 이것을 김일성세력이 주도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빨치산 활동을 위한 청년들을 모집하여 단기 4270년(서양기원 1937년) 6월 4일 국내진공 제1호 작전으로 압록강변 보천보를 공격하여 전사에 길이 남을 대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당시는 일제의 중국대륙 침공을 위한 준비가 시시각각 전개되고 있었던 바로 그 시점이었으므로 일제는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 대규모 보복작전을 감행하여 수많은 양민을 도륙하고 만주일대의 군사력을 확고히 장악했다. 일제는 쉬지않고 당년 7월 노구교사건을 조작하여 중일전쟁을 개시하고 12월에는 중국의 수도 남경을 점령하여 수많은 중국인의 학살을 자행하였다. 이 전쟁은 태평양에서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당시 정세 속에서 국내진공을 위한 보천보 습격작전이 가장 옳은 노선이었다는 김일성세력의 주장과  이후 수많은 양민의 참살, 무장부대의 퇴각, 중일전쟁의 발화 등은 좋은 대조를 이룬다. 이것이 단지 일제의 잔학함만을 강조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군사작전에 있어서 대규모 확전을 준비하고 있던 적에게 지엽적 타격을 가함으로써 조선민족만이 아니라 전세계 피압박 민족들의 사기를 크게 고무시켰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김일성 자신도 무력한 상태가 되어 소련으로 건너가 소련군 정보장교가 되어 일제 패망이후에나 귀국한 사실을 북한 역사에서 취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그의 군사적, 정치적 과오를 은폐하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 

당시 정세에 대해 무지했고 이후 상황대처에 무력했다는 뼈아픈 과오는 당시 무장투쟁 세력간에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경쟁적 대결 속에서 기선을 잡기 위한 결단이 초래한 것일 수도 있다. 국내진공이라는 매력적 슬로건 하에 근로민중들은 피가 끓고 가슴이 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방심하고 있는 적을 궤멸시켜 대승리를 거둠으로써 먹이가 있어야 하는 투쟁조직의 생리에 정확하게 부합되었던 것이다. 이와같은 경우는 지금의 한국사회에서도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운동세력간의 경쟁적 대결을 위해 정세를 조작하고 상황을 과장함과 동시에 전력의 과대평가로 수많은 사람들을 소모전으로 몰아넣는 방식이다.

김일성은 6.25 동족대살육전쟁에 있어서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박헌영과 남 - 북 노동당으로 권력을 양분하고 있었던 김일성은 6.25전 남노당에 의한 무력봉기에 함께 관계하고 있었으며, 남한 단독정부에서조차 정권피탈의 위기에 놓인 이승만이 북침 분위기를 돋우고 있었던 상황이었으므로 북침이냐 남침이냐의 문제는 애당초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6.25는 이러한 정권위기 - 체제대결 - 권력경쟁이 강대국들의 세계질서 재편과정과 연관되어 발발하게 된 것이므로 이승만, 박헌영, 미국(트루만), 소련(스탈린)과 함께 김일성은 동족상잔 5원흉의 하나가 틀림없다.

그럼에도 김일성은 휴전 후 박헌영과 남로당세력을 미국의 간첩으로 몰아 전쟁 실패의 속죄양으로 처단하였다. 박헌영이 해방직후 발표한 8월테제에서 드러나듯 미국에 대한 관점이 적대적이지 않았다는 점은 이미 노출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김일성은 미국의 간첩이라는 박헌영을 이용해왔던 것으로 된다. 따라서 전쟁실패의 책임은 미국의 간첩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지도 못했고 오히려 상황판단을 그르쳤던 총사령관 김일성 자신도 함께 져야 마땅한 것이었다.

다음은 한국의 진보적 청년학생들이 참신한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김일성주체사상에 관한 문제들을 살펴보자. 김일성이 조선민족의 독립을 조선의 방식에 의한 조선민족의 힘에 의거해야 하며 그 구체적 실천방안으로써 무장투쟁노선을 천명하였다고 한 것이 그의 나이 18세 때인 단기 4263년(서양기원 1930년)의 일이다. 그런데 당시 상황은 사회주의 세력들이 극도의 분열과 혼란을 조장함으로써 근로민중들은 이들을 외면하고 독자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였다.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단기 4262년(서양기원 1929년)의 원산노련 총파업의 경우도 이러한 맥락에 의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미 근로민중들은 스스로의 힘에 의거해야 하는 조국광복의 원칙을 당연하게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일제하에서 주체성에 대한 강조가 문헌으로 실증되는 것은 김일성이 태어나기 전이나 어린 아기일때 이미 신채호, 신규식 선생들에 이해 이루어진 것들이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역사적 전통에서 근로민중 속에 뿌리깊게 새겨져 있는 것이 주체성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일제하라는 시기의 근로민중은 동학농민혁명군에 직접 참여했던 이들과 이들의 자식이었음을 안다면 근로민중의 주체적 입장의 견지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이러한 당시의 흐름을 적당히 덮어버리고 종파투쟁에만 혈안이 돼있던 사회주의 세력들의 분열상으로 상황을 가리며, 18세의 김일성이 획기적으로 새역사의 전기를 이룬것 같이 주장하는 행위는 근로민중의 이름으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주체사상이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킨 것이라는 주장에 의해서도 김일성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김일성은 나름대로 전후의 어려운 실정에서 그리고 중 - 소 관계의 틈바구니에서 독자노선을 견지하며 사회주의체제를 구축하는데는 성공했을지라도 자기 역사에 대해서는 결코 주체성을 확립하지 못했던 것이다.

주체사상의 전통을 우리 역사 속에서 뿌리를 찾지 못하고 유럽중심적 세계관에 기초하여 사회역사발전5단계설을 확립한 마르크스의 계급투쟁론에 뿌리를 잇고 그것을 기계적으로 우리 역사에 적용시키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한 것이다.

북한에서 기술된 우리 역사체계는 근로민중들이 지배계급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수탈과 착취에 허덕이다가 외침이라도 있기만 한다면 갑자기 애국자가 되어 궐기한다는 도식을 적용하여, 우리 역사에서 근로민중 속에 내제한 뿌리깊은 공동체의식과 그것을 지켜내려온 건강한 삶의 모습을 사장시키는 결과를 만들어버렸다. 

우리 역사의 일정한 시기이후 지배계급의 존재로 인하여 근로민중들이 막심한 고생을 해 온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서양식 지배수탈관계처럼 되어진 것은 아니었다. 만약에 서양에서와 같이 지배계급에 의해 근로민중들이 무력하게 일방적인 수탈과 착취 하에 놓여 있었다면 외침은 자신들의 해방을 위한 절호의 기회가 된다. 노예적 상태에 놓여있는 근로민중들은 모두 이 땅을 버리고 흩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와같은 사례는 서양역사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땅의 지배계급들이 근로민중의 강력한 공동체에 함부로 손을 댈수 없었던 사실을 삭제해서는 안되며 이것을 전제로 해서 외침에 대한 애국적 궐기가 가능해지는 것이었다는 점도 외면해서는 안된다.

북한에서의 우리 역사체계는 상기와 같이 계급투쟁론과 김일성식 애국론의 기계적 적용으로 인하여 혼혈아가 되어 왕조사관이나 식민사관만큼이나 그 생명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계급투쟁론과 애국론의 불협화음의 혼돈 속에서 도출되는 결론은 김일성만이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였다는 것으로 되어버린다. 

김일성도 정권장악 초기에는 자신을 단군의 위상으로 묘사하다가 나중에는 단군까지 부정하고 자신만이 위대한 '민족의 태양'이라는 것을 증거하는데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 역사를 깍아내리려고 시도하던 한(漢)나라 지배세력의 시녀인 역사학자들의 일방적 기술을 토대로 단군조선의 평가절하를 시도한 대목에서 나타난다. 이것만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에 맞추기 위한 유적과 유물의 왜곡 해석을 시도하여 그대로 역사서에 기록하고 있는게 상당부분 발견되고 있다.

김정일이 정리한 주체사상에서 '인민이 나라의 주인이며 자주성만이 역사를 추동해 나가는 힘이다'라는 명제의 귀결로 '주체사상은 김일성같은 위대한 수령에 의해서만 창조될 수 있고 역사의 창조적 전진도 김일성수령과 그를 계승할 수 있는 지도자동지의 영도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함으로써 주체사상체계를 반주체사상으로 스스로 전락시키고 있다.

따라서 북한을 보면 김일성부자의 위대함만이 하늘을 가리고 근로민중들은 거대한 김일성 동상에 가려져 나타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으로 되었다. 북한내에서는 김일성주체사상외에 어떠한 사상도 허용되지 못하고 있으며 관제 문화활동외에 모든 창조적 활동은 봉쇄되고 있음이 주지의 사실이다. 이것은 김일성이 북한의 근로민중들에게 먹을 것은 허용했지만 생각하는 것은 빼앗고 있음을 의미한다. 만약 진정으로 김일성이 조국의 통일을 염원한다면 북한의 근로민중들에게 사상문화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반김일성세력에게 정권을 내어줄 수도 있는 제반 조치를 시도하여야 하며 자신의 동상을 스스로 부수어버려야 할 것이다.

한국의 진보적 청년학생 지식인들도 자신들을 북한정권과 연결시킴으로써 자신들의 나약함을 가리려 하기 보다는 좀 더 건강하게 자기 역사와 자신의 사상적 뿌리를 찾는데 많은 노력을 기율여야 한다. 김일성주체사상을 연호하는 청년학생지식인들의 90% 이상은 결코 북한체제에는 적응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자신의 주제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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