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혁명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우리의 조선철학 1988년 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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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배달문화원
작성일 : 2021-01-20 조회 : 2,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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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혁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간의 조언을 하려 한다.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한 변혁을 원한다면 첫째, 자본주의를 거부하지 마라. 둘째, 철저한 개량주의자가 되라. 셋째, 가장 작은 일꾼이 되라의 세가지이다.
첫째의, 자본주의를 거부하지 말라는 말의 의미는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위해 자본주의를 부정한다는 도식에서 벗어나 자본주의를 인정함으로써 자본주의 자체를 변화시켜 내라는 것이다. 현재 존재하는 자본주의 체제건 사회주의 체제건 노동의욕의 저하현상은 심각한 상태에 이르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노동의욕 저하현상은 불평등 경쟁원리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며 사회주의 체제에서의 노동의욕 저하현상은 기계론적 세계관의 기계적 적용으로 인한 것이다. 따라서 무산계급에게 자본주의 체제는 굶는 자유를 주었고 사회주의 체제는 먹을 자유를 주었으나 결국 인간으로서의 본질적 자유함은 아무데서고 찾을 수 없다.
필연적으로 자주성 - 창조성 - 통일성을 실현해 나가고자 하는 노동주체로서의 근로민중들은 노동의욕을 저하시키는 양대체제 속에서 심각한 갈등에 직면하게 되었다. 복지사회를 이룩했다는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인간의 무력감만 심화되고, 시장경제 원리를 도입한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주의적 범죄의 급증만을 낳고 있다. 이처럼 인간의 본질적 자기실현의 문제는 자본주의적 복지사회 이념으로도 사회주의적 시장경제 원리의 도입으로도 결코 기계적으로 해결되어 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산력 발전에 의한 모든 문제의 해결이라는 환상으로부터 해방되지 않는 한 노동의욕의 저하와 그로 인한 자기실현욕구의 좌절은 해결되지 않는다.
인류 역사에 있어서 서양적 사고방식의 소산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지배하는 시대는 가장 불행한 시대이다. 결국 이 문제해결의 열쇠는 우리들 자신의 역사 속에 있으며 이 시점이야말로 새롭게 모든 상황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문제해결의 출발점이다. 또한 양대 시장으로 분할되어 있던 세계는 자기체제의 한계로 인한 필연적 귀결로 자연스러운 혼합시장의 조짐마저 나타내고 있는 시점에 있으므로 우리 사회도 그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길은 없다.
자본주의를 위한 지구상의 마지막 시장인 중국과 소련등으로의 침투나, 사회주의를 위한 자본주의 시장에의 침투나 어차피 불가피한 일이다. 이미 한국 자본주의는 세계자본주의에 장악되어 있는 상태이며 이러한 현실로부터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는 제기되어진다. 이 문제해결의 방향이 사회주의를 위한 자본주의의 거부라는 도식은 이미 낡은 것이며 아무런 효용성을 주지 못할뿐더러 감당못할 피해만을 안겨주게 된다.
마르크스의 탁월함은 유럽에서 빛났고 레닌의 영광은 봉건왕조의 필연적 몰락 속에서 쟁취되었으나 이미 유럽에서조차 마르크스는 고물이 됐고 레닌은 빛바랜 사진첩이 되었다. 김일성의 위대함은 왕조말 탐관오리의 가렴주구와 대비될 때만 빛나고, 그의 주체사상은 근로민중의 소외 속에서만이 실현될 수 있는 것임을 숨길 수가 없게 되었다.
자본주의는 반드시 사라져야 할 체제이나 서양식 사회주의 역시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에는 다름이 없다. 결국 한국사회에서 자본주의를 거부하는 것은 자기모순에 봉착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어차피 절대 자본주의도 없고 절대 사회주의도 없다. 자본주의를 치유하는 것과 사회주의를 치유하는 것에는 치료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치유대상임에는 틀림없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라면 자본주의를 치유하는 입장에 서야 하며 치유가 된 상태는 서양식 사회주의도 아니지만 지금의 자본주의도 결코 아닐 것이다.
둘째의, 철저한 개량주의자가 되라는 말의 의미는 앞의 말을 이어받는 것으로, 보다 책임성 있는 활동가이자 보다 성실한 생활인이 됨으로써 우리 사회의 발전이 가능해 질 수 있다는 얘기이다. 혁명가적 위상을 품고 활동하여온 사람들의 경우 자신을 솔직하게 되돌아 보았을때 과연 얼마나 혁명적 원칙에 충실했고 또한 얼마나 혁명과업 수행에 철저했는가 자신있게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느 기간 어느 상황만큼은 밤도 수없이 지새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경찰에 끌려가 고초를 겪으며 나름대로 몹시 고생스럽게 보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식으로는 결코 오래 버틸 수 없음은 물론이다. 결국 자신이 사랑하는 혁명으로부터 자책감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탈할 수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성실한 생활만큼 자신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고, 주변의 신뢰를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성실한 생활은 그 자체가 운동가로서의 책임일 뿐만 아니라 책임질 수 있는 운동가가 되는 비결이기도 하다.
거리를 걷거나 일을 할 때나 불타는 도시, 군중의 함성을 연상하기 보다 하나라도 더 불편한 것을 편리한 것으로 고칠거리를 찾아내고 또한 고쳐나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자신과 모든 이들을 위해 도움이 된다. 자기 자신에게 있어서도 매일 매일 새로 태어나는 새로운 의미의 부여 속에서 갈고 닦으며 보다 자신있고 떳떳할 수 있는 자기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것은 지속적으로 일생에 걸쳐서 진행되어야 하는 생활이다.
그런데 이와같은 정도는 혁명가연 하는 입장에서도 주장되어질 수 있는 내용이다. 즉 혁명적 인간 또는 혁명적 품성에 관한 것들이 그것이다. 여기서 대물림의 혁명론이 도출되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대물림의 혁명을 생각하는 사람은 그 자체가 이미 개량적일 수밖에 없다. 관념으로만 혁명을 그리고 있을 뿐이지 사회적인 혁명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 대에 이루지 못하면 내 자식 대에 이루고, 내 자식대에 못이루면 또 그 후대에 이루고 하는 따위는 자칫 개량조차도 못하는 혁명론으로 전락하기가 쉽다. 그럴바에야 철저한 개량주의자가 되는 것이 나쁠 이유가 없다.
만약 머리를 짓누르던 광주항쟁의 충격으로 발생된 자기모멸감에 의한 혁명적 환상이나, 광주항쟁의 몰이해로부터 갖게 된 혁명적 관념이라면 더욱 버려야 한다. 자신을 제대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에너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현실은 사실 개량조차도 쉽지 않다. 개량이 실패하면 혁명이 발하던지 아니면 퇴보를 하던지 하겠지만 결국 개량이라는 줄기 속에서의 지엽으로 나뉘는 갈래이다. 개량은 나무가 자라듯이 몰아치는 비바람과 싸워야 하고 온갖 잡벌레들을 물리쳐야만 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을 먹고 자란다.
'개량은 혁명의 적'이라는 특수한 시대의 사회상황 속에서 형성된 이론을 오늘날 우리 사회에 함부로 적용해서는 안된다. 자본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혁명이 아니라 개량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혁명적 환상이야말로 개량을 파괴시키는 화약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체제는 혁명적 환상을 먹고 자라왔다. 따라서 체제 자체가 혁명적 환상을 심화시켜낸다. 이것은 체제가 파놓은 함정이다. 미친 황소의 정면에 서서 같이 흥분하다가 뿔에 받히지 말고 황소의 머리 옆으로 돌아서서 채찍을 휘둘러라.
셋째의, 가장 작은 일꾼이 되라는 말의 의미는 가장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입장이 되라는 것이다. 운동이 요구하는 일은 거물이 되었을 때보다 병아리(?)때 많이 할 수 있다. 거물이 되기는 쉽다. 속된 말로 사고 한번만 쳐도 거물이 되는 것이 우리의 운동판이다. 책 몇 권 읽은 지식을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녀도 운동가요, 민중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이 또한 소위 우리의 운동판이다. 자기 위상을 높이는 것은 좋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각고의 노력끝에 쌓아올린 것이 아니라면 순식간에 무너져 버릴 수 밖에 없다.
요즈음 운동판 전술 중에 하나가 유명인사 총대 메게 하는 것이 있다. 그로 인하여 유명인사는 바람막이 역할을 하면서 더 유명인사가 되고, 총대를 메게 한 사람들은 그 안에서 실세를 형성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의도한대로 실세를 형성할 수도 있겠지만 실세 형성해서 국회의원 입후보 할 때 외에는 거의 쓸모없는 실세가 대부분이다. 정치할 사람은 당연히 그렇게 나가겠지만 혁명을 사랑하는 이들은 병아리가 되어야 한다.
수많은 활동가들의 부침을 결코 남의 일로 보아 넘겨서는 안된다. 큰 일꾼보다 작은 일꾼이 되고 폼나는 일보다 남이 돌보지 않는 일에 보람을 찾는 것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바람직하고 전체 운동과 사회를 위해서 기여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이상과 같은 세가지 조언으로 혁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사랑의 대상을 부정하라는 말을 한 것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지만 오늘 우리 사회운동의 현실을 이렇게 보고 있다는 견해 정도로 참고하기 바란다. 죽은 가죽(革)을 뚫고 새 목숨(命)이 탄생되어지기 위해서는 엄청난 용출력이 요구된다. 그 용출력은 살아있는 가죽(皮) 속에서 키워지는 것이다.
혁명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듯 개량도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개량은 당신을 위해서도 필요하고 당신의 가족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조국을 위해서 환상적 혁명보다는 가치있는 일이다. 기계마다 쌓여 떨어지는 아픔들이 기쁨으로 살아나고, 사람사는 세상이 우리의 조국이기를 위해, 환상의 삐에로에게 지탄받는 개량주의자는 떳떳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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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우리하늘 우리땅 우리의 조선철학 1988년 본 입력을 마침니다.
단순 입력작업임에도 에너지가 돌아야 타이핑이 이루어지는 바람에 기간이 오래 걸렸고 한 번 입력된 내용은 눈에 들어오질 않아서 제대로 된 교정을 하지 못한 상태임을 양해바랍니다.
재수록 입력과정에서 원본에서의 오탈자 수정 정도의 다듬는 부분들이 있었으나 원본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는데 목적을 두었습니다.
재수록 입력과정 자체에서의 오탈자 수정작업은 나중으로 미루겠습니다. 전후 맥락을 살피시면 오탈자가 있더라도 대충 의미전달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그럼...
(2006.02.04)
<천지자연의 법/조선철학> http://cafe.daum.net/smg4300/MBeQ/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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