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운동은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노동자로서의 자주성을 쟁취하기 위한 창조적인 투쟁으로 노동자계급의 통일성을 이루어 나가는 운동이다.
주체란 생명의 본체로서 주동적 실체를 의미한다. 주체는 자기 자신의 피와 살을 갉아먹고 크는 것이 아니라, 외부세계를 자신의 목적에 맞게 변화, 개조시킴으로써 그 성과 위에서 자신의 발전을 이루어 나간다.
사회역사발전의 주체는 기본적으로 노동주체이며 자주성 - 창조성 - 통일성을 주체의 자기 생명으로 하고 있다.
오늘날 노동자운동은 자본치하 임금노동자계급이 당면한 문제의 현실로부터 그 출발점이 주어지게 되나, 생산담당자로서 근로민중의 역사를 자신의 역사적 뿌리로 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노동자운동은 장구한 조선민족의 역사를 자신의 역사로 하고 있으며 산업사회에 이른 오늘날에는 임금노동자계급으로 노동주체로서의 자신의 실체를 구현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의 노동자운동은 다른 여타 사회운동과는 달리 생산의 주된 담당자라는 가장 중심적인 계급으로서의 지위와, 역사발전 방향에 따른 인간해방의 내용을 자신의 운명으로 하고 있는 이념성과, 가장 거대한 실세적인 주도세력으로서의 역할에 의해 그 중요성이 날로 더해가고 있다.
노동자운동의 발전이 없으면 한국사회의 민주화는 기대할 수 없으며, 모든 인간들의 고통과 불행, 온갖 범죄와 반인간적 횡포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주체로서의 노동자계급이 자기생명으로 하고 있는 자주성 - 창조성 - 통일성이라는 운동의 근원적 힘만이 이 사회의 모든 아픔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노동자로서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
자주성이란 모든 예속과 억압을 거부하며 자신이 자기운명의 주인으로서 스스로의 힘에 의하여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인간의 본질이다.
노동자에게 가해오는 사회적인 예속과 억압은 곧 정치 - 경제 - 문화적 자기실현의 가능성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는 현실로부터 나타난다. 그러나 한국사회에 있어서 노동자의 정치 - 경제 - 문화적 자기실현이 제도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제도 그 자체는 틀림없이 보장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며 다만 노동자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노동자만이 아니라 다른 계급, 계층의 경우도 처지가 비슷하다. 심지어 자본가의 경우도 정치 - 경제 - 문화적 자기실현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따라서 어떻게 능력을 키우고 발휘하느냐가 문제해결의 관건이다.
정치적 자주성의 실현에 있어서 그 범위가 어느 정도까지인가는 제한되어 있지 않다. 노동자가 국회의원이나 나아가서 대통령도 될 수 있는 것이며 노동자의 정치적 입장을 관철시켜 나가기 위한 정당의 건설도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직접 참여에 의한 것외에 기존의 국회 - 행정 - 사법에 대하여 노동자의 입장을 반영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만약 이러한 것들이 힘들다고 하면 다른 계급, 계층들도 마찬가지이다. 직업적으로 정치하는 사람들 조차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되기가 힘든 것과 다른 차이가 없다.
노동자로서의 정치적 자주성의 실현은 운동을 통하여 발휘되는 것이며 어느 사회에서나 노동자운동은 강력한 정치적 실세를 형성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자주성의 실현에 있어서도 그 범위가 어느 정도까지인가는 제한되어 있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는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경제적 자주성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이다. 사글세 보다는 전세가 좋으며 전세보다는 자기집이 좋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임금을 만원 인상하는 것보다 십만원 인상하는 것이 좋고 십만원 보다는 백만원을 인상하는 것이 훨씬 좋을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은 것을 원한다면 아예 임금을 받지 않고 노동하면서도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한국사회에 있어서 임금노동자의 생활 수준은 가히 바닥 수준임이 틀림없다. 이로 인하여 노동자는 무능력함의 상징이 되고 있다. 그러나 가난과 고통과 불행한 노동자의 삶은 노동자 자신도 원치 않겠지만 자본가도 정치가도 원치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자본의 논리는 끝없는 이윤추구에 있으며 이러한 자본의 운동은 이윤추구에 실패한 자본가를 도태시켜 나간다. 결국 노동자의 가난은 자본가의 무능력함이자 동시에 노동자 자신의 무능력함의 결과이다. 따라서 노동자운동은 능력있는 노동자의 상징이며 노동자운동을 인정하는 자본가도 능력있는 자본가의 상징인 것이다.
문화적 자주성의 실현도 그 범위는 제한이 없다. 만화책을 보아도 되고 탈춤을 추어도 되고 볼쇼이 발레단의 공연을 관람해도 된다. 자신이 직접 노래를 만들어 불러도 좋고 소설을 써도 좋고 한국의 역사를 집필해도 좋은 것이다. 이 모든 것 역시 운동적 역량에 의하여 결정되어지는 것이다.
노동자운동을 통하여 발휘되는 정치적 - 경제적 -문화적 자주성의 실현은 그 범위가 제한이 없지만 자주성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만큼의 원칙을 분명히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스스로의 힘에 의하여 스스로의 삶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즉 자주역량에 기초하여 자기 존재를 실현한다는 것이다.
노동자로서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해 노동자운동은 전체 노동자계급의 필연적인 운명으로 된다.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노동자운동에의 참여 그 자체는 이미 노동자로서의 자주성의 실현이다. 결국 사회적 예속과 억압이란 노동자운동의 역량과 반비례 하는 것이다.
- 창조적인 투쟁으로 -
자주성이 없는 인간은 이미 인간이 아니다. 그것은 가축이거나 아니면 기계와 같은 도구일 뿐이다. 그렇다면 노동자에게 있어서 그 어떤 힘이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가? 그것은 노동자의 가슴 속에 끓고 있는 노동자의 운명 그 자체이다. 쓸모없는 것을 쓸모있는 것으로 변화, 개조시켜 나가는 창조적인 힘은 노동의 주체 그 자신의 운명을 변화시켜 내는 것이다. 노동자는 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만들어 낸다. 세상의 모든 노동생산물에는 노동자의 창조적인 삶이 새겨져 있다.
인간의 노동은 자연의 예속으로부터의 자유함을 의미하는 인간실현 그 자체이다. 그러나 노동생산물의 수탈자는 노동자의 삶을 함께 수탈해 간다. 따라서 노동자의 운명은 반노동자적 예속과 파괴에 대한 저항으로 창조성의 방향이 설정되어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노동주체는 창조적 본질의 발현으로 올바른 사회건설을 위한 변혁의 주체로 서게되는 것이다.
노동자운동에서 기계적 교조주의와 모방과 답습은 설 자리가 없다. 창조란 단순히 모습을 자기 취향대로 바꾸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정한 창조란 기존의 역량과 수준을 뛰어 넘는 새로운 단계로의 발전을 의미한다. 자본가들도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제조방식을 변화시키며 새로운 시장개척을 위해 창조성을 발휘하지 않는 한 도태되고 만다.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노동자운동은 노동자 자신과 사회의 모든 이들을 위해 더욱 더 새로운 방식을 이루어 내야 하는 운동이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노동자운동은 사례를 남긴다. 노동자운동의 사례는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하나의 새로운 성과는 반드시 새로운 방식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와같이 노동자운동은 자기 속의 창조적인 힘의 본질로 매일 매일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매일 매일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운동이다. 사회는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발전만큼 앞으로 나아간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예상치 못한 결과를 이루어 내는 창조의 비밀을 터득한다면, 인간으로서의 가능성의 날개를 활짝펴고 빛나는 하늘을 날아오르는 세계가 막연한 꿈이 아니라 노동자운동을 통하여 창조되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 노동자계급의 통일성을 이루어 나가는 운동 -
통일성이란 공동운명체를 통하여 자주적인 인간의 존재를 실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통일성은 모든 인간행위의 전제이다. 통일성이 전제되지 않는 자주성 - 창조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운동이라는 것 자체가 공동의 목적을 위한 공동의 실천을 의미한다. 노동자의 자주성을 담보할 것을 원하는 자들은 노동자의 분절화를 시도하고, 자주성의 실현을 원하는 자들은 노동자의 통일성을 실현한다.
우리 역사의 생명은 노동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에 있었다. 이러한 공동체는 이 나라를 지켜온 힘의 근본이다. 노동자계급으로서의 통일성의 실현은 노동자운동의 숭고한 목적을 실현하는 것이자 단군조선 우리 역사의 위대한 계승이다. 하늘과 땅과 인간이 하나되어 영생불멸을 이루어 내는 통일성의 실현은 노동자운동의 절대적인 방향이다.
자주성의 실현은 하나되기 위한 것이다. 창조성의 실현도 하나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운동에서의 하나 하나의 활동들이나 실력행사는 노동하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하나되어 나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노동자계급의 통일성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자주성에 기초하여야 하며 창조적인 방식에 의해야 한다. 자주성 - 창조성 - 통일성은 나뉘어 질 수는 있으나 그 자체는 하나이다. 노동자운동은 이와같은 자주성 - 창조성 - 통일성의 조화 속에서 발전되는 것이므로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닌 인간의 본질 그 자체인 것이므로 노동자의 운명 속에서 구현되어지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계급의 통일성을 실현하지 않는 한 제도적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음은 물론이며 사회 모든 사람들의 인권과 안녕은 보장되지 못한다. 더 나아가 노동자계급의 통일성이 실현되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게 된다.
노동자계급의 통일성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태에서의 노-학연대나 노-농-학연대나 민중연합을 운위한다는 것은 환상이다. 소모임을 조직하고 운영할 능력도 없이 단위사업장 전체의 조직을 이끌 수 없는 것이고, 단위사업장의 조직역량 없이 지역 - 전국조직을 통일시켜 낼 수 없음은 분명하다. 작은 조직하나 제대로 통일성을 이루어내지 못하면서 한 나라를 다스릴 꿈을 꿀 수 없듯이 통일성을 이루기 위한 노력은 운동에 있어서 사활의 문제이다.
노동자계급의 통일성은 자기 철학과 사상의 통일 속에서 실제적인 역량에 기초하여 이루어지게 된다. 노동자계급의 통일성이 온전하게 실현되는 상태는 곧 노동자계급의 정치 - 경제 - 문화적 자주성 실현의 극점이 된다.
이러한 극점 하에서 노동자계급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정치역량이 발휘되어 질 수 있는 것이므로 결국 전체 사회 구성원들의 통일성을 이끌어 내게 되며 나아가 조국의 통일도 비로소 가능해지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