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삼극적 조선철학과 양극적 음양론 및 변증법
2. 가진자와 못가진자를 나누기 위한 음양철학사상
양극적(兩極的) 세계관으로서의 음양론
존재하는 세계의 모든 현상을 음양(陰陽)으로 설명하는 철학사상이 음양론이다. 음양철학 사상에서는 우주가 음과 양의 두 기운의 조화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따라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양 하나만으로도 음 하나만으로도 이루어질 수 없다. 음과 양중에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우주라는 존재는 성립되지 못한다. 음과 양은 우주를 이루는 가장 지극한 두 개의 기본 요소이며 이것을 존재의 본질로 파악한다는 입장에서 음양론은 양극적 세계관으로 된다.
음양개념을 사물에 적용시키는 데는 사물의 성질, 위치, 현상 등에 따라 광범위하게 세분되어진다. 또한 음양가들의 판단과 입장에 따라 여러가지로 대입될 수도 있는 것이 음양개념이므로 구체적인 적용에 있어서 혼란스러운 면도 발견된다. 음양개념 자체의 성질과 관계에 대해서도 약간씩 설명을 달리하고 있는 것도 있으므로 여기서는 가장 보편적인 음양개념을 기준으로 하여 설명한다.
사물에 음양을 대입시키는 기준은 상관적 관계의 설정에 있다. 서로 관련을 갖고 있는 사물 중 특히 관계가 깊어서 다른 하나를 예상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는 것으로 즉 위와 아래, 밤과 낮 등이다.
이러한 상관적 관계에는 특정의 사물과 사물이 서로 비교상태에서 마주 서 있는 -대립- 상대적 관계도 있고, 서로 반대되는 성질을 나타내며 마주서 있는 상반적 관계도 있다. 또한 상반관계에는 어느 일방이 다른 일방을 누르고 제압하거나 서로 반발하는 대립관계도 있고, 서로 돕고 의존하는 관계에서의 대립인 상보(상호보완적) 관계도 있다. 이러한 상관적 관계는 음양을 대입시킬 수 있는 사물간의 관계에 대한 전제조건이며 무엇이 음이고, 무엇이 양인가 하는 것의 기준은 일반적으로 대략 다음과 같다.
양(陽) + 고(高) 상(上) 명(明) 강(强) 외(外) 표(表) 화(火) 열(熱) 전(前)
음(陰) - 저(底) 하(下) 암(暗) 유(柔) 내(內) 리(裏) 수(水) 한(寒) 후(後)
이와같이 위와 아래에서 위(上)는 양이 되고 아래(下)는 음이 된다. 밝음(明)은 양이 되고 어둠(陰)은 음이 된다. 이것을 기준으로 하여 자연과 사회현상의 모든 것에 음양을 대입하는 것이다.
양 하늘 하늘 산 땅 태양 아침 낮 봄 여름 동쪽 남쪽 확산 활동
음 땅 사람 들 물 달 저녁 밤 가을 겨울 서쪽 북쪽 응축 정지
양 부모 임금 남편 남자 군자 귀한것 복 정신 상체
음 자식 신하 아내 여자 소인 천한것 재앙 육체 하체
음양의 대입은 상관적 관계가 상황에 의해서 바뀌게 되면 음양도 따라서 바뀌게 된다.
하늘과 땅에서 땅은 음이 되지만 땅과 물에서는 땅이 양이 된다. 어머니는 부부관계에서는 음이 되지만 자식과의 관계에서는 양이 된다. 이처럼 음양은 상반적 관계의 변화에 의해서 바뀌어지는 개념적인 것이다.
또한 음양을 사회현상에 대입시켜 임금은 양이라 하고 신하는 음이라 한다. 그렇다면 양반은 양이 되고 상민은 음이 된다. 이와같은 식으로 지금의 사회에 적용시키면 사장은 양이 되고 종업원은 음이 된다. 관리자는 양이 되고 노동자는 음이 된다. 정신은 양이고 육체가 음이라면, 정신노동은 양이 되고 육체노동은 음이 된다. 이것은 곧 정신노동자는 양으로 되고 육체노동자는 음으로 되는 것이다.
부자는 양이고 가난뱅이는 음이다. 귀하신 몸은 양이고 별볼일 없는 놈은 음이다. 부동산 투기꾼은 양이고 셋방신세는 음이다. 양의사는 양이고 한의사는 음이다. 서양은 양이고 동양은 음이다.
이와같이 음양론은 자연현상에 관한 설명에 있어서는 가치와 선악에 관한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별로 없지만 사회현상에 관한한 심각한 문제가 드러난다.
밤(음)이 지나면 아침(양)이 오고 겨울(음)이 오면 봄(양)이 멀지 않았다라는 것을 보면 음양은 교차하는 것으로 된다. 그런데 하늘은 영원히 양이고 땅은 음이 되지만 물과의 관계에서는 양으로 된다. 따라서 물은 영원히 음이다. 이렇게 자연현상에 있어서도 음양은 규칙적으로 교차하는 것과 상관적 관계에 따라 변하는 것과 고정불변하는 것 등이 있다.
사회현상에 있어서 부자(양)가 빈자(음)가 되기도 하고 빈자(음)가 부자(양)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인간에게 다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신라, 고구려, 이조의 역사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쿠데타가 발생하지 않는한 왕족은 계속 양이고 인민은 계속 음으로 이어지는게 대부분이었다. 이와같이 사회현상에 대한 음양개념의 적용은 지극히 임의적이며 일방적인 것으로 된다.
주역과 음양오행론
음양론은 음양개념 그 자체만을 가지고 자연현상이나 사회현상의 드러나지 않는 변화의 법칙적 운동을 그대로 해명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음양개념은 동양철학의 방법론적 명제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이며 보다 다양하고 복잡한 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가지 역학체계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음양이 둘로 나뉘어 사상(四象 : 태양-소음-소양-태음)이 되고, 사상이 둘로 나뉘어 8상(八象 : 건(하늘) 곤(땅) 진(우뢰) 손(바람) 감(물) 이(불) 간(산) 태(못)이 되고, 8상이 16상이 되며, 16상이 32상으로, 또 64상으로 세분된다. 이렇게 음양을 둘씩 계속하여 나누는 방식을 처음 사용한 것은 지금은 중국으로 바뀐 땅에 살고 있던 환족인(조선민족 형성의 전신단계) '태호복희'씨로 서방계와 남방계 종족-한(漢)족화 되어진-들이 밀려들어오기 전인 단기 전 2000년 쯤의 존재로 추정하는 인물이다. 태호복희씨는 음양으로부터 4상과 8상으로 나뉘는 과정을 부호로 표현하였다고 전해온다.
이것을 복희8괘라고 하는데 양은 [ㅡ]로 음은 [--]로 표시하고 환국(단군조선의 전단계)의 철학사상인 천지인을 상징하여 괘를 세개씩 겹쳐 8괘를 만들었다. 복희8괘는 소수종족들에게 환국의 천지인 합일사상에 기초하여 자연현상과 사회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법칙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체계가 되었다.
복희8괘 이후 단기 1300여년경 한(漢)족 형성의 맹아기인 은나라시대에, 은의 제후국이었던 주나라 문왕이 은의 마지막 임금인 주왕에 의해 유리옥중에 갇혀 있을 때 8괘를 풀이하고(문왕8괘), 이것을 그의 아들 주공이 이어받아 효사(각 괘의 음양각위에 따른 길흉을 설명한 것)를 지음으로써 주나라의 역(易)이라 이름하는 점술과 결합된 주역의 토대를 세웠다.
공자는 주역의 원문을 해석하여 그 이치를 밝힌 십익(새가 날때 날개의 도움을 받는다는 이치처럼 주역의 이해를 돕는다는 것)을 달아 주역을 완성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공자의 '십익'은 후세인들에 의해 가필되고 손질된 것이라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이렇게해서 완성된 주역은 '사서삼경'중 으뜸인 역경의 대표적인 상위 지위를 고수하며 이후 역대 지배계급의 중요한 철학사상적 도구로 활용되었다. 주역이 성립되던 시기는 단군조선의 천지인 합일사상에 반하여 계급지배세력이 창궐하던 때이며 이러한 군웅할거의 틈바구니에서 지금의 중국을 표방하는 종족의 뿌리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주역은 복희8괘의 천지인에 기초한 괘의 형상만을 그대로 사용할 뿐이었으며 오히려 삼극론에 대항하는 양극적 세계관으로 되어 자연과 사회현상을 해석하고 지배계급의 양으로서의 변하지 않는 질서를 합리화해냄으로써, 동북아 역사에서 최초의 피비린내나는 침략전쟁의 도구로까지 활용되었다. 소위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라는 군웅할거의 대살육전에 의해 강력한 계급지배국가가 형성됨으로써 이들은 끊임없이 단군조선을 침략하여 단군조선은 장기간에 걸친 항쟁으로 사회적 위기를 초래하게 되었다.
주역은 계급지배사상의 도구이자 괘를 뽑아 길흉화복의 점을 치는 것으로 활용되어지는데 아직까지도 중국대륙이나 홍콩, 대만 등에서는 주역식의 점술이 사회일반에서 성행하고 있다. 흔히 점괘가 잘 나왔느니 못나왔느니 하는 말이 바로 주역의 64괘를 뜻하는 것이다. 침략자들은 침략전쟁에 앞서 항상 점괘를 보고 작전에 임하였다고 한다.
음양론은 주역외에 음양오행으로도 발전하였다. 오행(五行)은 水木火土金의 5원소에서 그 원소적 성질을 취하여 변화원리를 설명하는 방식인데 본래 단군조선 사회에서 자연을 다스리고 사회를 운영해 나가는 방법론으로써, 삼극적 세계관에 의한 변화의 역학적 원리로 발전한 것이었다. 여기서 삼극적 세계관에서의 양극단인 음양에 오행을 접목시켜 음양오행론이 대세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음양개념만 가지고는 복잡한 만물의 변화를 설명할 수 없었고 그것을 주역식으로 해석하다 보면 나타나는 현상에 괘를 대입시켜 설명을 맞출 수는 있지만 앞으로의 변화에 대한 것은 추상적일 수 밖에 없게 된다. 주역은 앞일을 점괘로 풀어나갔던 것인바 이러한 점괘는 神적 상태에 좌우되므로 일관성 있는 법칙으로서는 애당초 그 한계가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별개로 성장하던 오행론과 접목하여 음양오행론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중국의 역대 지배계급들은 음양오행가들을 싫어했다. 오행에는 상생(相生)과 상극(上剋)의 작용이 있는데 일부 오행가들이 상극원리를 이용하여 지배계급의 붕괴를 법칙적으로 논증하곤 했기 때문이다.
상생원리란 木은 火를 낳고, 火는 土를 낳고, 土는 金을 낳고, 金은 水를 낳고, 水는 木을 낳는다는 것이며, 상극원리는 木은 土를 이기고, 土는 水를 이기고, 水는 火를 이기고, 火는 金을 이기고, 金은 木을 이기는 원리이다.
따라서 현 지배계급이 木이라면 金의 세력이 일어나서 木의 세력을 붕괴시키고, 다음에는 火의 세력이 일어나서 金의 세력을 붕괴시킨다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이에 대항해서 지배계급들은 상생원리로써 木의 권력은 火의 권력을 낳아주고, 火의 권력은 土의 권력을 낳아 주고 하는 식으로 권력세습의 원리로 합리화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상생원리를 사용하든 상극원리를 사용하든 지배계급으로서는 변화를 나타내는 오행의 원리가 탐탁치 못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주역식 음양론에 입각하여 임금은 하늘이고 백성은 하늘 아래 땅이므로 이는 변하지 않는 천지자연과 세상의 법도라고 규정하여 그에 맞춘 사회체제를 유지하는 것 외에, 법칙적인 변화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좋을리는 당연히 없을 것이다.
오행방법론은 하나라 우임금의 치수사업을 돕기 위해서 단군조선의 창수사자가 파견되었을때 오행원리로 홍수를 다스리는 법을 가르쳐주게 됨으로써 전해진 것이라고 한다. 음양오행론은 지금에도 동양의학, 사주추명학, 음택론, 양택론, 구궁, 기문둔갑, 천문지리학 등의 기본적인 방법론으로 되고 있다.
이렇듯 음양론은 동양철학사상의 기본적인 명제이자 세계관으로서 계급지배의 필수적인 철학사상으로 됨과 아울러 오행론과 결부된 부문에서는 독자적인 학문으로서의 전문영역을 구축하기도 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극기도 8괘 중에서 하늘, 땅, 물, 불의 4괘를 취한 것이다. 그리고 조선반도는 음양론에 입각하여 지세가 양에 속하므로 궁궐을 지을 때 결코 높이 세우지를 않았다. 다른 나라들의 궁궐이나 성들과 비교해 볼때 상대적으로 초라한 감을 느끼게 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음양론에 입각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조선조에 지금의 서울을 수도로 정할 때 흥인지문 쪽의 기(氣)가 허하다고 하여 성을 쌓고 흥인문을 흥인지문이라 한 글자를 더 사용한 이유도 음양의 조화를 이루기 위함이었다. 음양론을 사회철학사상으로 활용한 우리나라의 역대 왕조들이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의 장기집권을 이루어낸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특히 서방계로부터 비롯되고 남방계가 혼합된 다수 종족인 중국과 달리, 통일된 전체계를 갖는 巫를 생활화 하는 천지인 합일사상의 영향이 사회전반을 점하고 있었던 것이 우리 사회이므로, 역대 황조들은 명분없는 일방적 착취와 수탈을 함부로 감행하지 못한 측면도 있었고, 지배방식에 있어서도 강압과 타협이라는 조화와 균형에 입각한 방식을 써왔었던 것이다.
사실상 음양론은 조화개념을 끌어들임으로써 필요에 따라 철학적으로 삼극적 관점을 이루어낼 수도 있는 것이었으며, 사회사상에서는 지배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한 양극사상으로 표출시키는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양극적 관점인 음양론과 삼극개념과의 차이를 예로 들어보자. 천지인의 삼극을 양극으로 대입시키면 천과 지, 또는 천과 인으로 된다. 이정도는 개별적으로 설명하는데 있어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쉽게 드러나지 않는 현상에 대해서는 혼란이 발생한다. 기하학적 공간개념의 형성을 삼극으로 가로-세로-높이라 하는데 양극개념으로는 가로-높이 또는 세로-높이로 되어 버린다. 이렇게 현상을 올바로 설명하지 못하게 되는데 고수들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면과 높이의 대입이라는 방식으로 설명해 내게 된다. 가장 간단한 기하학적 개념이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거쳐 진리에 이를 수도 있다.
결국 음양론은 복잡한 사물의 변화를 설명하는 데에 한계가 있으므로 동양의학이나 기타 사주추명학 등에서는 삼극개념을 끌어들이게 된다. 인체의 상초-중초-하초의 삼극도 음양개념으로는 설명이 안되므로 음-중-양의 삼극적 음양론이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동양의학에서 사람의 체질을 3음과 3양으로 나누는 방식도 양극적 관점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사주추명학 등에서는 상생관계나 상극관계 외에 운명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상비(같은)관계에 대한 적용이 불가피하게 다루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양극적 관점에 삼극적 방식을 접목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이것은 세계가 삼극차원이므로 진리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사회사상, 통치사상에 있어서는 삼극적 사상이 조화와 안정된 균형 등을 전제하는 것으로 되고 삼극의 어느 한 극만이 절대적 존재가 아님을 극명하게 나타내므로 이를 가리운 채 대립적 관계설정에 의한 양극적 사회사상을 표명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지배계급의 음양사상에 대항하여 음양이 교체되는 시기가 왔다는 피지배계급에 의한 혁명사상으로 활용되기도 한 것이 또한 음양사상이다. 특히 동학농민혁명군의 인내천 사상이나 천지개벽 또는 음양개벽의 철학사상은 지배계급의 철학적 방식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것이다.
이와같이 음양론은 삼극적 세계관의 기형화를 초래시키며, 인민의 삶이 지배계급의 수중에 억압되는 시대적, 사회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사상이나 통치사상 등의 영역외에 비교적 틈새를 찾을 수 있었던 의학, 사주추명학, 천문지리학 등에서는 불가피하게 삼극적 방식을 함께 적용해 온 것이다.
지배계급의 도구로 됨과 아울러 피지배계급의 혁명적 무기로까지도 그 위력을 발휘하였고, 생활속에서는 혼합된 방법론을 구사함으로써 진리를 해명하는 과정에 임의성이 상당히 작용하고 있는 철학적 방법으로서의 음양론인 것이다.
글 : 천지자연의 법 유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