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思想)이란 무엇인가?
사상(思想)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읽으면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이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생각과 생각이 합쳐지고 축적되어지는 산술계산적 방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최고의 생각으로 정리되어진 것이 사상의 의미로 이미 단순한 생각의 집합개념 차원을 벗어난다. 무엇을 어떻게 생각한다는 사유만으로 일맺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출된 최고의 생각대로 이미 자신이 움직여 가고 있을 때 그것을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여러 추리와 행위를 거쳐서 통합된 체계의 토대위에서 그를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으로 진행되어지는 것이다. 사상에 의해 행동하는 사람은 일거수 일투족이 목적을 관철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나가게 된다.
보통 우리는 사람들의 어떠한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의 사상이 건전하다든가 아니면 불량하다든가 하는 식의 판단을 한다. 또한 배움이 많거나 훌륭한 말을 하고, 훌륭한 글을 쓰는 사람을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만약 자신의 말과 행동이 달리 나타나는 경우를 확인하게 되면 판단도 달리하게 된다. 이처럼 사상이란 행위로 나타나는 것에 의해 확인되어지므로 많이 안다는 것과는 구별된다. 단순한 생각도 아니고 지식만도 아닌 것이 사상이다.
어느 여성이 여성해방을 외치며 권익신장을 위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면 그 여성은 여성해방사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여성이 자기 집에서는 여성 파출부에게 가혹할 정도로 일을 시키고 욕을 하면서 적은 인건비마저 지불을 미루는 사람이라면 그 여성의 진실한 사상은 반여성해방 사상, 반인간적 사상의 소유자임을 증명하는 것으로 된다.
민중의 지팡이라고 자처하는 경찰이 말 그대로 민중을 위해 봉사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면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라는 사상이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지팡이를 몽둥이처럼 휘둘러 민중을 고통으로 몰아간다면 그 사상은 기만적인 것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사상은 '한(恨)과 유사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을 품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한을 푸는 방향'으로 진행시킨다. 한을 품었다 함은 삶에서 제기된 어떤 문제가 가슴에 맺혀 그것이 자신의 운명에 작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에는 개인적인 것만이 아니라 사회적, 역사적인 한도 있다. 또한 개인적인 한도 사회역사적 소산일 수 밖에 없다. 사상도 자신의 삶에서 사회적 역사적으로 제기되는 문제에 대한 해결을 강요받는 현실에서 생성되어진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한'과 '사상'이 결코 무관할 수 없다. 민중의 역사적 한은 우리 사회의 공통된 한이다. 이러한 민중의 한은 민중의 사상으로 통일되고 체계화된다.
그러나 '한'은 감정의 응어리와도 같은 에너지가 작용하고 있으며, 개인과 전체와의 체계적인 연관성이 무시될 수 있고, 통일적인 가치체계로 정립되지 않을 수 있다. 사상은 인생과 연관한 사회역사적 견해와 합치되며 나아가 이상과 선악, 또는 예술과 종교에 이르기까지 가치지향적 목적성을 지니게 된다.
따라서 '사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사상이란 바로 '사람의 행동양식을 지배하는 통일된 체계의 최고의 목적의식'이라 정의하고자 한다.
사상과 철학의 관계
사람의 행동양식을 지배하는 통일된 체계의 최고의 목적의식이 사상이라면 그것은 곧 철학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있다. 자연과 인간의 삶을 포함한 존재하는 모든 세계에 관한 근본원리를 해명하는 것이 철학이므로 사상의 형성은 당연히 철학적 해명 속에서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다. 철학적 판단 역시 사상이라는 인간존재의 최고의 목적의식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양자의 관계는 절대적인 것으로 된다.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았다'라는 말은 정확히 철학적 진리이다. 뼈를 깎던 삭풍이 어느덧 미풍으로 바뀌고 얼음이 풀려 새싹이 돋아나고 자신의 씨앗을 파종하게 될 날이 반드시 오리라는, 이러한 진리는 사상적 신념을 키워주는 커다란 힘이 된다. 어려운 세상 살아가는 지혜를 잘 나타내고 있는 이러한 철학은 곧 어떠한 어려움이나 기만도 물리치며 자기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강력한 무기이다.
'내일 사형대에 올라가는 사형수처럼 오늘을 살아라'는 말이 있다. 이 말도 철학임과 동시에 사상을 잘 표현하고 있다. 내일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질 사형수의 마지막 하루인 오늘은 모든 것이 소중하다. 일분 일초가 새롭고, 철창틈새로 보이는 하늘도, 뛰고 있는 맥박조차도 새롭게 느껴진다. 지나온 과거도 무척이나 살갑게 가슴을 저리게 한다. 사실 사람의 운명이란 내일 갑자기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설사 내일도 모래도 결코 아무일이 없을 것이라 치더라도 오늘이라는 지금이라는 이 시간은 가장 본질적인 것임을 일깨워 주는 지혜인 것이다.
법구경에 '쇠의 녹은 쇠에서 생긴 것이지만 차차 쇠를 먹어버린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 마음이 옳지 못하면 그 옳지 못한 마음이 그 사람 자신을 먹어버리게 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에는 쇠에서 발생한 쇠의 녹이 쇠 자신을 먹어버린다는 철학적 진리를 명심하여 자신의 옳지 못함을 항상 헤아려야 올바른 삶을 이룰 수 있다는 사상이 내재되어 있다.
고대의 사상가 '장자'는 '갈구리를 훔친자는 주륙을 당하고, 나라를 도적질하는 자는 제후가 된다.'고 일갈하였다. 당시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찌른 말이다. 이러한 장자의 말에는 세상을 개탄함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진리를 거역하는 이러한 세상은 반드시 망하고야 말 것이라는 자신의 철학이자, 동시에 반드시 인간존엄의 세상이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으로 그를 실현해 나가고자 하는 사상의 표현이다.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대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를 일컬어 '말하는 가축' 또는 '말하는 도구'라고 하였다. 당시 로마 그리스의 노예제도는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것이었다. 인간을 무차별하게 사냥하여 쇠사슬로 얽어매어 감옥에 수용한 채 영원히 노예의 멍에를 씌워 혹사시키고 있는 약탈계급의 사상을 대변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형이상학, 자연학, 영혼론, 니코마스 윤리학, 시학, 논리학, 동물학 등을 저술한 변증법론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위대한 수제자로서 서양학문의 시조로 추앙받으며 서양역사 전체에 끼친 영향은 절대적이다. 실증적 동물학자이기도 했던 그가 노예를 인간류에서 배제시키고, 말하는 가축 또는 도구라고 규정했다는 것은 철학을 노예지배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음에 다름아니다.
우리나라 고려시대 노비였던 '만적'은 공사노비들을 모아놓고 다음과 같은 혁명이론을 펼쳤다.
'우리나라는 정중부의 난 이래 국가의 고관이 천노계급에서 많이 생겼으니 왕후장상이 어찌 처음부터 씨가 따로 있을까보냐. 때가 오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상전의 매질 밑에서 어찌 뼈를 갈며 남의 일만 할 것인가.'
동료 노비들의 환호 속에 지도자로 받들어진 혁명가 만적은 누런 종이 수천장에 고무래 정(丁)자를 써 휘장을 만들어 노비혁명군의 표식으로 삼았다. 여기서 나타나는 것은 그의 사상이 노비해방의 혁명사상이라는 점이며, 그의 혁명사상에는 대담한 혁명철학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왕후장상이 어찌 처음부터 씨가 따로 있을까보냐' 이 말은 만고의 철학적 진리이다. 더구나 고무래 정(丁)자를 혁명군의 표식으로 하였다는 것은 고래로부터 내려온 조선철학에 의한 것이다. 축적될대로 축적된 힘이 드디어 솟구쳐 발하는 순간을 의미하는 자연생성 변화법칙의 철학적 상(象)을 취하고 있는 글자가 바로 고무래 정(丁)자이다. '드디어 혁명의 때가 왔다'는 철학적 선언이었던 것이다.
또한 유명한 무학대사의 일화 중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인다'는 말이 있다. 철학적 진리와 사상적 의미가 통일적으로 함축되어 있는 말이다. 높은 정신력의 소유자다운 무학대사의, 철학적 원리로써 사상적 자기실현을 대담하게 행한 이 말은 만금보다 값진 진리를 담고 있다.
사람을 돼지로 취급하고 싶은 사람의 사상은 사람을 돼지로 보는 철학을 진리로 말하게 되고, 마찬가지로 사람을 돼지로 보는 철학을 가진 사람은 사람을 돼지로 취급하는 사상을 실현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다 부처가 있다는 철학을 가진 사람은 사람을 부처로 공경하는 사상을 형성하게 되고, 역시 사람을 부처만큼이나 공경하고자 하는 사상을 실현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는 부처가 있다는 철학을 갖게 된다. 노예를 지배하고자 하는 사상은 노예지배가 하늘의 뜻이고 세계의 질서라는 철학을 내세우게 되며, 노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상은 노예의 존재란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며, 세계의 질서는 노예해방의 때가 있음을 증거하는 철학을 내세우게 된다.
기계적 사상은 기계적 철학을 낳고 신비적 철학은 신비적 사상을 낳는다. 유심론적 철학은 유심론적 사상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유물론적 사상은 유물론적 철학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이와같이 사상과 철학은 통일적인 관계에 있다. 하나로 형성되고 하나로 발현되는 사상과 철학은, 인간과 사회와 역사의 방향을 가리킴과 동시에 추동해 나가는 절대적인 에너지인 것이다.
글 : 천지자연의 법 유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