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경은 9000년전 한인 천제께서 우리 민족의 시원을 연 때부터 전해져온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으뜸인 경전이다.
우주생성의 원리가 담겨 있으며
인간중심의 사고 또한 천부경에서 비롯된것이다.
후대의 유불선 삼교가 모두 천부경을 모태로 탄생하게 된다.
천부경은 수천년 동안 그 뜻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경전으로 알려져왔다.
단순한 한문 지식으로만 풀리지 않는 글이다.
시중에 천부경 해설서가 20여권 나와 있으나
여기 올린 구름 이경숙님의 글이 가장 올바른 해설이라는 생각이 들어 여기 싣는다.
나도 상고사를 접하면서 많은 사서들을 읽다보니
가슴에 와 닿는글과 닿지 않는 글의 차이를 느끼게 되었는데
구름님의 해설은 가슴에 와닿는 것이 그대로 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글들은 구름님 표현대로 수학책이나 괴기 문서 같았다.
구름님의 천부경 해설을 음미해 보자.
이글은 <이상한 나라>라는 사이트에 연재형식으로 통신상에 올렸을 때 퍼놓은 글인데
지금은 그사이트가 없어져서 출처를 말할수 없게되었다.
통신상의 글이라 예의가 없어보이거나 좀 거친 표현이 있기도 하나
그렇게 거부감을 느끼게 하지는 않는다.
진실 규명을 위한 것이니 독자들의 이해를 구한다.
天符經 천부경 (구름 이경숙님 해설)
유대민족이 구약을 가졌던 것처럼 상고시대에 우리민족도 고유한 경전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에 이르러 세계최고(最古)의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이라 자랑스레 떠들면서도
우리 민족의 정신적 뿌리인 경전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다.
우리민족의 삼대경전은
천부경과, 고구려의 재상 을파소가 쓴 참전계경, 그리고 삼일신고의 세가지다.
그 중 가장 오래된 천부경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일 뿐 아니라
유불선과 음양오행, 그리고 주역이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었으므로
우리 민족만의 경전일 뿐 아니라 전체동양의 경전이며, 세계인의 경전이다.
이 천부경은 원래 환인시절부터 있다가 훗날 환웅에게 전해진
삼부인 세 개 중의 하나인 거울(용경)에 새겨졌던 것인데
환웅천황이 백두산 기슭에 신시를 개국한 다음 백두산 동쪽에 큰 비를 세우고
거기에 글로 새겨 훗날 통일신라시대까지 전해져 왔던 것이다.
이 비에 새겨진 천부경은
우리민족의 옛글자(훗날 훈민정음의 모체가 됨)인 가림다로 새겨진 것이어서
후세사람들이 판독치 못하다가
통일신라 시대에 해동공자로 추앙받았던 당대의 세계적 석학인 최치원이 백두산을 찾았다가
이 비석에 새겨진 글을 읽고 한자로 번역해서 전하는 것이 바로 여든한 글자의 천부경이다.
이 여든 한글자로 우주의 법칙 모두를 압축해 담은 번역문을 볼때에
최치원의 학식의 깊이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천부경을 가지고 책을 써낸 사기꾼들이 워낙 많아서
서점에 가보면 한 20종이 넘는 천부경 어쩌고 하는 맹랑한 책들이 팔리고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정말 가관이다.
얄구진 그림들에다가 황당무계한 숫자들을 잔뜩 늘어 논 것들이라
얼핏 보면 고등학교 수학책인 줄 착각할 정도이다.
그래놓고서 이 작자들은 꼭 도망갈 구석을 만들어 놓는다.
천부경의 진리는 워낙 심오한 것이어서 풀이자체가 난해할 수 밖에 없단다.
어렵고 난해해야만 진리인줄 착각하는 바보들이다.
그러나 진리는 어려운 것이 아니고 어렵다면 이미 진리가 아니다.
천부경은 가장 단순하고도 명확하게 설명해 놓은 글이다.
추측이나 가설의 여지가 없는 글자의 뜻 그대로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경전이다.
그렇지 않다면 해동공자는 허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반만년 동안 풀지 못했던 천부경의 비밀을 구름이 풀어드리겠다.
그리고 이 천부경을 통해서 숨겨진 세계사의 비밀을 알려드리겠다.
천부경의 전문을 먼저 올려드린다.
대개의 경우 이 천부경은 끊어 읽는 단락부터가 틀리고 있다.
옛 환인천제 시대의 사람들은 아침 저녁으로 이 천부경을 계송하여 낭독해 왔건마는
단락구분조차 틀리니 이걸 노래로 운률에 맞추어 읽을 수가 없는 것이다.
구름이 아래 적은 끊어 읽기가 가장 정확한 것이다.
이래야 운률이 맞는 계송이 되고 정확한 해석이 가능하다.
天 符 經 천부경
一 始 無 始 一 일시무시일이니
析 三 極 無 盡 本 석삼극 무진본이고
天 一 一 地 一 二 人 一 三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이라
一 積 十 鉅 無 櫃 化 三 일적십거 무궤화삼이니라
天 二 三 地 二 三 人 二 三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이니
大 三 合 六 生 七 八 九 대삼합육 생칠팔구하고
運 三 四 成 環 五 七 운삼사성 환오칠하니
一 妙 衍 萬 往 萬 來 일묘연 만왕만래라
用 變 不 動 本 용변 부동본이요
本 心 本 太 陽 본심 본태양이니
昻 明 人 中 天 地 一 앙명인중천지일할지니
一 終 無 終 一 일종무종일이니라
자 이제 천부경의 첫문장부터 그 뜻을 알아보자.
♣ 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 ♣
한자의 뜻 그대로 풀어보면
"일은 시작되지 않고 시작된 일이며"라는 뜻이다.
이 일(一)이 무엇인가를 놓고 많은 학자들이 온갖 소리들을 늘어놓고 있는데,
시중 책들에 나열한 것만 해도 십여가지가 넘는다.
그러나 몽땅 다 틀린 것이 전부 다 지맘대로 추측해서 쓰기 때문이다.
이 일(一)이 무엇인가는 지레짐작할 필요도 없이 천부경의 다음 문장에 나와 있다.
즉 天一一地一二人一三(천일일지일이인일삼)이라고
천부경에서 밝히고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된다.
이문장의 뜻은 글자 그대로 읽으면 된다.
황당무계한 학설을 동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즉, "하늘(天)의 수는 일일(一一)이요,
땅(地)의 수는일이(一二)요,
사람(人)의 수는 일삼(一三)이다." 라고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즉 일(一)은 하늘을 뜻하는 수이다.
천부경에서 사용된 모든 일(一)이란 수는 하늘이고
이(二)란 수는 땅이며
삼(三)이란 수는 인간을 지칭하는 대명사이다.
한문을 아는 중학생도 그 뜻을 알 수 있도록 써진 것이 천부경이다.
그런데 이것을 가지고 어리석은 후학들이 황당한 장난을 친 탓에
마치 난해한 기문둔갑술의 주문으로 인식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첫째문장 <일시무시일>의 뜻은?
어려울 것도 없다.
글자그대로, "하늘은 시작됨이 없이 시작된 하늘이니."라는 뜻이다.
이런 문장이 해석이 안되어서 어려울게 뭐 있노 이말다.
이거 못 읽는다 하면 빙신들이다.
이 천부경은 최치원이 한문으로 번역할 때 싯적인 멋을 조금 부린데가 있다.
즉, 당시의 한시의 형태를 따서 시종대귀법을 사용했다.
첫장과 종장을 댓귀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해석을 위한 목적에서는 천부경의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붙여서 읽어야 한다.
♣<일시무시일 일종무종일>♣
자 설명 안해도 총명한 사람은 이말의 뜻을 알 것이다.
하늘 즉, 우주는 시작됨이 없이 시작되고 끝남이 없이 끝나니라 하고
이 우주의 생성원리를 한마디로 짤라서 말하고 있다.
천부경의 첫문장은 우주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요, 결론이요, 정의이다.
천부경의 이 여섯글자가 바로 전체 동양의 우주론의 핵심이고 골자임을 부정할 사람이 있을까?
시작이 없는 우주, 끝이 없는 우주.
이것이 고대의 우리 선인들이 이미 밝혀 놓은 우주의 실체이다.
스티븐 호킹은 일만년 이 지난 지금에사
이 우주는 시작이 있을 수 없다, 고로 우주의 종말은 없다카고
마치 지가 처음 발견한 진리인 것처럼 책 팔아묵고 있다.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다"고 하는
유치한 우주론과는 그 차원이 다른 것이다.
훗날 석가의 우주관이 여기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했음을 알아야 한다.
저 문장을 보면 누구나 떠오르는게 있을 것이다.
그렇다. 바로 불가의 반어법이 천부경에서 나왔음이다.
석가는 이 문장을 바꾸어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 말했고,
"이 세상은 나는 곳이 없으므로 돌아가는 곳이 없느니라."라고 말했다.
"가장 큰것은 가장 작은 것과 같고, 영원은 찰나와 같으니라."
불가의 비장의 보도인 반어법은 모두 천부경에서 베낀 것이다.
그렇다면 석가가 이 천부경을 알고 있었는가?
답은 그렇다이다.
유불선이 천부경에서 비롯된 내막들을 설명할 차례이다.
재밌는지 몰겄네요?
이 쉬운 문장이 왜 해석이 안 되었을까요? 이해가 안되시죠?
콜롬부스의 달걀이에요.
심안이 떠지지 않은 탓에 장님처럼 글자만 더듬어왔기 때문이지요.
계속해 드릴께요.
내가 일전에 자게옥에 "반야심경 해설"을 연재할 때 말씀드렸지만
불경을보면 부처님이 설법을 하시기 전에 얼마나 그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왔는지
불경을 읽다보면 그 서두가 지리해서 부처님 말씀 나오기도 전에 졸게된다는 얘기를 한적이 있다..
부처님이 설법하실 때는 무량겁의 과거세로부터,
무량광의 온 우주에 있는 부처와 보살과 천신과 나한들이
부처님의 설 법을 경하하기 위하여 자리에 함께해서
그 설법에 원력과 위광을 보태주고있음을 알수있다.
이때 자리를 빛내준 여러 부처, 천신들의 면면을 보면
그 설법의 중요도 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반야심경이나 법화경, 화엄경같은
지극히 공덕이 높은 설법의 자리라야 참석하는 천신이 있는데
이이가 바로 환인 천제시다.
불경을 보면 부처님 설법자리에 납시어 지켜보는 환인천제를 확인할 수 있다.
불경에 왜 환인이 나오는가?
그것도 아미타불, 미륵불, 관세음 보살, 지장보살, 천수보살, 제석천왕, 도솔천왕과 같이
VIP로 귀빈석에 폼 잡고 앉아 계시는가 말이다.
부처님의 설법에 자리를 빛내는 들러리로 초빙되어 온 이 귀빈들은
모두 실제로 왔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의 원력이 화신되어 그 자리를 함께했다는 뜻이다.
즉 부처님은 모든 하늘나라의 끗발있고 쟁쟁한 실세들을
모두 경복궁 33경비단에 모으시고 그것을 백그라운드로 삼아 설법을 하셨던 것이다.
전두환이 청와대로 가는데 바로 갈 수 없는 법,
공수여단장, 청와대 경비단장, 수경사령관, 보안사령관을 차례로 거쳐야 했듯이
부처님도 마찬가지였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무량겁의 과거세를 통해서 공덕을 쌓는 과정에
여러 부처의 생애를 보냈고 한 때는 도솔천에서 오야를 하기도 했고,
자리를 옮겨 제석천에서 사바세계의 감독관일도 하셨는데,
한 때는 천계에서 환인천제로 직접 중생의 세계에 신정을 펼쳐주시기도 했는데
역대 환인 중의 석제인 환인이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공덕 중의 하나였다.
이때의 인연으로 석씨성을 가지고
마침내 해탈하여 우주궁극의 원력을 보이는 석가모니부처가 되셨음이다.
이 과정은 내가 "개천록"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는 부분인데
인연이 있다면 이상한 나라에 "개천록"의 진본을 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머나먼 남국 인도에서 하고 많은 나라 중에 하필이면 신라에 공주를 보내어
부처님의 사리를 전했겠는가?
다 부처님의 전생 인연에 의한 귀향이었다.
이 넓은 지구 위에서 신라의 유적에서 발견되는 물고기 문양이
오직 인도와 바이칼호 부근에서만 발견되겠는가?
천계와 한민족과 불교의 혈연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석가모니 자신의 혈통이 아리안이 아니었고, 동이족이었다.
모든 초상화의 특징이 그것을 보여준다.
천부경을 만든 환인천제의 인연이 그대로 불가로 전해졌음이다.
천부경은 불경보다 5천년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족히 자신의 뿌리를 찾는 날 개벽이 있으리로다.
그럼 다음 문장을 보자.
♣ 析三極無盡本(석삼극 무진본) ♣
이 문장은 학자들이 대충 3극 = 3태극 = 음양중 = 천지인의 뜻으로 눈치 때려잡고
3태극의 원리다 하고 겐또를 치고 있다.
여기서 쓰인 삼(三)은 사람(人)의 상징이 아닌 석삼(三)의 뜻이다.
이 문장은 여기에서 말하는 세가지의 극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
그 밑의 문장을 먼저 해석하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 이해하기 좋다.
잠깐 보류해두고 다음 문장으로 SKIP하자.
♣ 天一一地一二人一三(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
이 문장은 앞에서 설명했지만
천부경이 사용할 수에 대한 정의를 내려 놓은 문장이다.
하늘을 일이라는 수로, 땅을 이라는 수로 사람을 삼이라는 수로 대치해서 설법하겠노라 하는 말이다.
그냥 그대로 받아 들이면 된다.
그런데 왜 천지인에 각각 일이라는 수가 하나씩 더 들어갔느냐 하면
여기에 천부경의 기막힌 압축법 (즉 여든한 글자를 가지고 우주를 설명하는 놀라운 비결)의 요체가 있다.
이 극도의 압축을 시도한 천부경의 성격을 모르는 사람들은
첫째 줄, 두째 줄 까지는 어찌 어찌 겐또를 치다가 여기서부터는 기냥 오리야 기리야다.
황당한 궤변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처음에 얘기 했지만 천부경은 댓귀법을 쓰고 있으므로
같은 형태의 두 문장을 찾아 한꺼번에 보지 않으면 뜻이 숨어서 안 나타난다.
이 문장과 같은 형태의 문 장을 찾아보면 바로 네번째에 있음을 알 수 있다.
天二三地二三人二三(천이삼 지이삼 인이삼)이 그것이다.
일시무시일과 일종무종일을 붙여서 읽고 해석하듯이
이 두문장도 붙여서 해석해야 한다.
天一一地一二人一三(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天二三地二三人二三(천이삼 지이삼 인이삼) 같은 형태의 두 문장을
나란히 붙여 놓으면 무언가 보일 것이다.
천지인에 각각 네개씩의 숫자가 있는 것이 보인다.
그것을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천(天)에 사용된 수 : 일일이삼
땅(地)에 사용된 수 : 일이이삼
인(人)에 사용된 수 : 일이삼삼
천지인은 각각 자기 고유의 수를 두개씩 가지고 있다.
천은 일을 두개 가지고 있고,
지는 이를 두개 가지고 있고,
인은 삼을 두개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천지인은 자신의 고유수외에 나머지 둘의 고유수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즉 하늘은 땅의 수 이와 인의 수 삼을 하나씩 가지고 있고,
땅은 하늘의 수 일과 사람의 수 삼을,
사람은 하늘의 수일과 땅의 수 이를 가지고 있다.
즉 하늘과 땅과 사람은 각각 자신의 고유한 성질을 나타내고 있지만
각각은 나머지의 성질을 부분적으로 다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즉 하늘은 하늘이면서 땅이고 사람이요.
땅은 땅이면서 하늘이고 사람 이며,
사람은 사람이면서 하늘이요 땅이라는 말이다.
뭔가 번쩍하고 머리를 때리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 천지인의 삼극(三極)에 음(陰)과 양(暘)과 중(中)을 대입시켜도 그대로 들어 맞는다.
이것이 음양학의 제일 원리이고 기본 법칙이다.
이런 이야기는 평소에 관심이 있는 분이면 재밌을텐데
그렇지 못한 분들한데는 머리아픈 이야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상한나라에서 삼청궁 선녀를 만났을 때가 아니면 죽어도 못 듣는 이야기이다.
어느 누구한테서도, 어떤 책에서도 이건 알지 못하는 이야기다.
관심을 가지고 읽어주시면 좋겠다.
천부경에 숫자가 사용된 이유는
난해한 주문이거나 뜻을 해석하기 어려운 난문이기 때문이 아니라
수백 수천의 단어로 설명해야할 것을 극도로 압축 하기 위한 방법에서 나온 것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각각 모습이 다르게 보여도
천지인은 동일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자 하면
아마 수십페이지는 족히 필요할 것을 단 두문장으로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넘어갔던 앞의 문장
석삼극무진본(析三極無盡本)으로 돌아 가자.
한자 뜻으로 풀어보면 "세극을 나누어도 그 본은 다하지 않는다"라 는 뜻이다.
여기서의 삼극은 천지인(天地人)의 삼신(三神)을 뜻한다.
이 천부경에서 나온 한 단어 "삼극"에서 한사상의 삼신사상이 나왔고,
하늘을 양, 땅을 음, 사람을 중으로 보는 음양사상이 나왔다.
무진본은 무진장과 같은 뜻의 단어이다.
엄청나게 많아서 결코 마르지 않는, 다하지 않는, 다함이 없는 그런 뜻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으로 나뉘어도 궁극적인 근본은 다함이 없다. (변함이 없다)의 뜻이다.
천지인과 음양중의 삼극이 비롯되는 이 다하지 않는 본(本)을 우리는 태극(太極)이라 부른다.
불가의 진아일여(眞我一如).
우리 한사상이 지향하는 삼신합일(三神合一)의 상태가
우주본래의 자리, 그대로의 본모습인 태극이다.
곧 무진본(無盡本)인 것이다.
그 다음에
우리는 천부경에서 가장 의미있고 중요한 한 구절과 만나게 된다.
♣ 一積十鉅無櫃化三(일적십거 무궤화삼) ♣
이제는 여러분도 한자의 뜻만 알면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대로 풀이하면 "일이 쌓여서 십이되는데 상자가 없어서 삼으로 변한다" 이다.
일이란 하늘이다.
삼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해석된 뜻은?
하늘의 정기가 쌓이고 충만해지는데
그것을 담을 상자(궤)가 없으므로 사람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여기서 동양사상의 오직 하나의 외침이 나온다.
!!!!! 인간은 하늘이 모습을 바꾼 것이다. !!!!!
동학에서 주장한 인내천이 바로 천부경의 가르침에서 나온 말이다.
사람을 섬기기를 하늘과 같이하라 했던 유교의 인본주의사상이 여기서 발원되었음이다.
공자가 동이족이었다는 것이 우연한 일이겠는가?
불가의 자재불성, 중생이 곧 부처란 사상이 여기서 나왔음이다.
하늘이 있고,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와 피조물이 나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변한 것이 사람이니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궁극의 가르침이었다.
이것이 일만년전 고대인의 종교관이었다고 누가 믿을 것인가?
우리민족의 종교적 차원은
태양신을 섬기거나 창조주를 찾던 타민족들의 그것과는
하늘과 땅민큼의 격차가 있었던 것이다.
유불선을 포함한 동양사상을 단 하나로 압축하면 바로 "인간"이란 두글자가 된다.
하늘의 기가 쌓이고 충만한 과정을 거쳐
인간(혹은 생명 이란 말로 대치해도 되겠다)으로 화한다는 이말은
이 우주에서 생명이 모습을 드러 내는 원리를 극명하게 표현한 것이다.
현대과학이 생명의 탄생을 밝히게 되는 날,
과학자들이 이 이상의 말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이란 하늘을 담아 놓은 그릇(상자)이다.>
그 그릇을 함부로 하고 가벼이 대해서야 되겠는가?
모든 사람이 다 하늘인 것이다.
서양이 신본주의라면 동양은 인본주의이다.
서양의 신과 인간이 대립관계요 종속관계라면
동양은 일체관계요 수평관계이다.
사람이 곧 하늘인데 어찌 사람 밖에서 신을 찾을 것인가?
마음 밖에 부처가 있겠는가?
천부경의 전체 문장은 그 뜻이 애매하거나 모호한 것이 한귀절도 없다.
모든 것을 가장 명료하게 분명한 문장으로 말하고 있는 경전이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셔요?
그래도 이 천부경이 해석이 불가능한 난해한 괴기문으로 보이세요?
이제 우리는 천부경에서 깊이 생각해야 할
하나의 흥미로운 수수께끼와 마주친다.
바로 이문장이다.
♣ 大三合六生七八九(대삼합육 생칠팔구) ♣
대삼합육은 글자 그대로 큰 세개를 더하면 육이 된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큰 세개란 무엇일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바로 천지인의 삼극 이다.
즉 천의 수 일과, 지의 수 이와, 인의 수 삼을 합하면 육이 된다는 말이다.
이 당연한 덧셈을 왜 하고 있을까?
앞에서 하늘의 수가 네 가지였다. 일일이삼,
땅의 수는 일이이삼,
사람의 수는 일이삼삼,
여기에서 천지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수 하나씩을 빼면
1+2+3은 모두 6으로 같다는 말이다.
즉, 천지인은 동본이상(同本異象)이다 이말이다.
하늘의 수도 6이요, 땅의 수도 6이요, 사람의 수도 6이다.
따라서 천지인의 삼극이 모여있는 합일된 상태인 태극의 수가 바로 <666>이다.
삼극이 한자리에 모인 대삼의 수인 것이다.
천부경 여든 한글자를 세개의 숫자로 압축하면 <666>이란 수가 나온다.
많이 본것 같은 수일 것이다.
맞다. 요한이 묵시록에서 짐승의 수로 지칭했던 바로 그 숫자이다.
동양사상을 숫자로 상징하면 <666>이 나오는데
환상을 보고 있던 요한의 혼돈된 뇌리에 왜 이 숫자가 떠올랐을까?
그렇다,
말세에 기독교의 가장 커다란 적이 바로 동양의 정신이라는 것을
요한은 예언적인 환각 속에서 보았던 것이다.
기독교를 붕괴시키고, 멸절시킬 거대한 힘의 상징을 이 숫자로 보았다.
그리고 요한은 그 정체를 사탄을 추종하는 짐승으로 적었던 것이다.
이 요한의 묵시록과 우리 한민족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두개의 대립되는 예언서 요한계시록과 정감록을 대조 분석하면 미래세의 방향을 알 수 있다.
정다운 스님의 정감록해설은 모두 틀렸다.
정감록의 뜻은 그렇게 푸는 것이 아니다.
이 <666>이란 수자에 얽힌 동서양 이대 문명의 충돌과 그 종말을
천부경 해설이 끝나는 대로 구름이 해 드리겠다.
그건 일단 뒤로 미루고, 뒷 구절을 보자.
생칠팔구(生七八九),
칠팔구가 생긴다고 했는데,
이 칠팔구를 더하면 천하의 절기가 스물네개이다.
일년의 운행이 24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물론 훗날에 하루의 시간 역시 24로 나뉘어진다.
삼극이 존재하면서 우주의 운행이 시작됨을 말하고 있다.
음양이 조화를 이루면서 천지가 돌기 시작하는 것이다.
<666>이란 수자를 본 김에 잠깐만 옆길로 새자.
경문 풀이만 하니까 지루하신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잠깐 분위기 바꾸는거다.
물론 천부경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다.
요한이 계시록에서 기독교의 최후의 적을 <666>으로 상징되는 동양의 정신으로 보았고
그 화신인 짐승들로 보았는데, 그 짐승들은 누구이겠는가?
천부경으로 이어진 한사상의 아들들,
그 옛날 환인이 통치하던 천계의 후손들 ... 바로 우리민족이다.
배달민족의 이마에는 이 한사상이 지울 수 없게 각인되어 있다.
우리들의 이마에는 <666>의 표상이 찍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누구도 지우지 못한다.
설사 그가 독실한 기독교신자라 하더라도 그의 영혼은 한사상이 출렁 거리는 삼신의 세계이다.
요한에 비견되는 우리의 대예언가 천표율사의 심안에 반대로 그들은 무엇으로 보였을까?
마찬가지로 짐승으로 보였다.
그것은 푸른원숭이었다.
정다운스님이 정감록인가 하는 책 속에서 손도 못대고,
강의할 때 횡설 수설했던 정감록의 비문이 무엇이었나?
이 양반이 책 선전하면서 광고카피로 사용했던 구절이 이것이다.
정도령을 예언한 귀절이다.
청의자남래(靑依者南來)하니
성청원창해(城靑猿滄海)하고
사승즉비승(似僧卽非僧)이라.
내가 정다운스님을 만났을 때,
스님이 이 귀절의 뜻을 풀이해서 구름이를 한참 웃겼다.
세상에 이렇게 푸는 것이었다.
푸른 옷을 입은 사람이 남쪽에서 온다는 것은
바로 승복을 입은 사람인데 고향이 남쪽지방 사람이다.
이 양반이 중이고, 고향이 전라도 남쪽이다.
성주위에 푸른원숭이가 바다처럼 무수하게 깍깍거린다.
깍깍거리는 것은 비웃는다는 뜻인데 정도령이 나타나면 사람들이 비웃는다는 말이다.
아마 정다운 스님은 자기가 욕을 많이 먹어서 그렇게 생각 하나보다.
중은 중인데 중이 아니라는 것은 바로 땡초라는 뜻이다.
정다운스님은 자기가 땡초인줄 잘 알고 있었다.
그람 스님이 정도령이네? 하고 까르르 웃고 말았다.
요즘 우편으로 사주팔자 봐주면서 돈을 솔솔히 벌고 있단다.
천부경을 난문괴서로 만든 사람들...
정감록을 만화로 만든 사람들...
구름이가 바로잡으려 한다.
연약한 소녀의 몸이라 하나 만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구름은.
청의자남래(靑依者南來)하니
성청원창해(城靑猿滄海)하고
사승즉비승(似僧卽非僧)이라.
청의, 즉 푸른 옷이 상징하는건 고래로 군인이었다.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내 청춘" 노래가사에도 푸른 옷은 군인이다.
옛날의 포졸들 옷도 푸른색이었다.
즉, 정도령은 군인이라는 뜻이다.
위대한 장군이라는 뜻이다.
다음 귀절의 첫 글자인 성(城)이 이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성은 군인에게 필요한 것이지 스님들한테는 필요없는 것이다.
원래는 보루나 요새를 말하는 명사이지만
여기서는 막아낸다는 뜻의 동사로 쓰이고 있다.
너른 바다에 가득찬 푸른 원숭이를 막아낸다는 뜻이다.
바다에서 깍깍 거리는 원숭이가 어딨노?
뒤에 중은 중인데 중이 아니고, 라는 문장을 사족으로 달아 놓은 이유는
혹시 후대에 우매한 사람들이 청의자를 군인이라고 해서
무과급제나, 육사 출신의 오리지날 군바리로 착각할까봐 염려되어 붙여논 구절이다.
즉, 박대통령이나 전두환이나 노태우 같은 군바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여기서 우리는 정도령의 역사적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너른 바다에 꽉찬 푸른 원숭이를 막아내는 일.
즉 서양의 그릇된 문화와 문명으로부터 우리의 찬란한 정신세계를 지켜 나가는 것이
장차 올 정도령의 할 일이고 정도령은 그것 때문에 오는 것이다.
여기서 요한이 말하는 "말세", 천표율사가 말한 "개벽"의 순간에
푸른 원숭이로 상징되는 서양문명의 공급자 유대민족과
666의 짐승인 동양정신의 승계자 한민족 사이에 아마겟돈이 있을 것이고
이때 우리 쪽의 지휘자가 되는 분이 정도령이다.
우리가 승리해서 동양정신이 세계정신이 되는 날 "개벽"이 있을 것이고,
그들이 이겨서 서양정신이 세계정신이 되는 날 "말세"가 올 것이다.
"개벽"이냐 "말세"냐가 인류의 두 적자인 유대민족과 한민족에 의해서 판가름 날 것이다.
이 승부가 인류사의 앞날을 결정할 것이다.
앞으로 이 아마겟돈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를 구름은 안다.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다.
인간만의 전쟁이 아니라 천상의 모든 신들이 참가 하는 전쟁이다.
온 우주의 전쟁이다.
밤의 도시에 휘황하게 늘어선 십자가의 행렬이 푸른 원숭이들의 깃발들이다.
그들은 이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누구도 그 도도한 진군을 막을 자 없어 보인다.
저 십자가가 한민족의 하늘을 모두 덮는 날 그들은 승리의 나팔을 불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이제 시작된 것에 불과하다.
저들의 빛나는 승리도 이미 예언된 바였다.
그들의 참담한 최종적인 패배와 함께....
이쯤하고, 정감록의 상세한 해설은 천부경 이후로 미룬다.
구름의 글이 끝날 때 쯤이면 이상한 나라의 사람들은 정도령이 누군지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