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 백공 종사님의 삼일신고 (한밝뫼 제139호에 실린 내용)
-1994년 부산 전포동 배달학당에서 하신 강의를 녹취한 것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쓰고 있는 마음이라는 것은 몸의 상대개념으로, 분명코 오고감이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커발한 한웅께서는 이 심(心)·기(氣)·신(身) 모두 허망하다고 하신 거예요. 그러할진데, 일반 사람들은 심·기·신이 영원히 있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는 거고요.
필요 없이 욕심이 과하다보니 마음에 상처를 입고 괴로워하고 있는 거예요.
돈에 대한 욕심, 사랑에 대한 갈망, 권력에 대한 욕구, 명예욕, 종교전쟁 인종갈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착각들 속에서 지구촌이 난리법석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할아버지(커발한 한웅)께서는 해결할 수 있는 그 방법까지 삼일신고 진리훈편을 통해서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여기서 정리를 잘하고 넘어가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또 헷갈려서 버벅거리며 헤맬지도 몰라요.
이제부터 심·기·신을 이야기할 때, 성·명·정 이야기는 개입될 수가 없어요.
하나의 예를 들어볼게요. 정신 바짝 차리고 깊게 생각하면서 들어야 합니다. 비유적으로 하는 얘기니까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얼음으로 만들어져 있다고 가정합시다. 사람도, 동물들도, 식물들도, 집도, 가구도, 도로도, 자동차도, 기차도, 배도, 비행기도, 꽃도···. 어떻든 간에 모든 것들이 다 얼음으로 되어있는 세상에 살고 있어요.
그렇지만 얼음으로 되어있는 모든 것들 안에는 물의 성품들이 들어있겠지요. 그러나 물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는 거예요.
그러다 언젠가 하나하나의 존재가 수명이 다할 때, 저절로 물이 되어버립니다. 얼음이라는 모양의 형태가 사라져버리는 거지요. 이러한 변화를 우리는 죽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얼음이 죽은 다음에 어디로 갈까요? 가긴 어디 갈 데가 있습니까? 다시 원점인 물로 돌아가 버리는 거예요. 이러한 상태를 순환의 법칙이라고 하며 자연윤회라고 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얼음들의 세계는 심·기·신이요, 환상이요, 꿈이요, 아침 이슬이요, 그림자요, 물거품이요, 번갯불이요, 드라마요, 연극이요, 영화의 스크린이라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망(忘)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얼음 속에 있는 물의 성품을 성·명·정(性·命·精)으로 표현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죽거나 사라질 경우 성·명·정으로 돌아간다는 거지요.
죽고 나서 가는 특별한 곳이 어디 없어요. 단, 사람과 고등 동물들(유인원, 고릴라과, 원숭이과, 짐승과 가축과)은 죽고 나서 그 종류에 따라 잠시 쉬었다가는, 중음의 세계라 불리는 에너지 차원이 있습니다.
이름하야 '영가'라고도 하며 귀신이라고도 하지만 실체가 없는 에너지로서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세계입니다.
그 현상 역시 시간이 지나면 성·명·정으로 환원하여 돌아가는 거예요. 그 부분에 대한 것은 나중에 시간을 내서 따로 이야기 나누기로 하구요.
기운은 숨 쉬는 것에 의지해서 생긴 것이고 몸뚱이는 정기라는 것에 의지해서 생긴 것입니다.
미혹한 땅에서부터 비로소 심·기·신이 정착한 것이고 그 이전까지는 아직이였던 것이죠.
심·기·신, 비로소 사람의 형태를 갖춘 몸뚱이가 만들어졌고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정착이 됐고 기운을 낼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하는 거예요. 100일째 되는 날부터요.
그 때부터 사실 인간이라고 평가를 해줘야 되는 거예요. 그 때부터는 태아가 밖에 있는 소리, 느낌, 다 압니다.
엄마가 무슨 생각 하느냐에 따라서 그 영향이 태아에게 미치는 거예요. 왜? 이미 태아에게는 100일 된 이후부터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뿌리를 박았기 때문에. 만약에 마음이 뿌리를 박지 못했다고 하면 그것 또한 가능하지 않은 것이죠.
미혹한 땅일 때부터 마음이라는 것이 비로소 뿌리를 박게 되기 때문에 앞으로 엄마될 사람은 그 때부터 행동이라든가 모든 것을 굉장히 조심해야 돼요.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조금 권고하고 싶은 것은, 태교를 보통 엄마가 하잖아요. 그런데 사실 엄마가 하는 게 아니에요. 엄마 혼자 사는 가정일 때, 태교는 엄마가 하는 거예요.
그런데 보통 누가 같이 사느냐면 우선 사랑하는 남편이 있죠. 또 시부모님, 또는 시누이, 시동생···. 한 가정 안에서 살고 있는 식구들이 있단 말이에요.
그럼 결국 엄마의 마음 상태가 좋고 나쁘고 스트레스 받고 하는 여러 가지 그 원인들이 어디에서 생기느냐. 상대적이라. 때로는 남편, 때로는 시부모, 때로는 시누이, 때로는 시동생. 가장 많이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 부분들이 가정 안에서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란 말이에요.
즉 태교는 온 가족이 함께 하는 거예요. 어느 누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하는 거예요.
여기 이제 앞으로 장가 갈 사람도 있고 시집 갈 사람도 있고 며느리 볼 사람도 있고 사위 볼 사람도 있겠지만, 이 사실을 알고 난 다음에는 함께 태교를 해줘야 되는 거예요.
가정 안에 임신한 사람이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합해서 될 수 있는 대로 신경 건드리지 말고 좀 거슬려도 참고 또 안아주고 하는 각별한 마음 씀씀이가 필요한 거예요.
왜? 그게 다 자기 자신들을 위해서라. 그럼 자기 자신들을 위한다는 게 뭐냐. 가정, 또는 국가, 더 나아가서 사실 인류를 위한 길이라는 거죠.
어떻게 보면 현재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간접적으로 태교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새로운 생명들이 태교의 영향을 받고 태어났다지만 동시에 태어난 순간부터 태교를 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한 순간순간들을 모두 같이 허투루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가정과 이웃, 나라와 인류를 위해서라면 말이에요.
여기서 보면 마음은 성품에 의지해서, '심(心)은 의성(依性)하야'라고 나오죠? 의성(依性)이라는 것은 성품에 의지해서 마음이 정착됐다는 거예요.
그 마음을 통해서 느끼는 것이 선과 악이에요. 선과 악은 마음을 통해서 사람이 짓기에 달렸어요.
심(心), 마음 그 자체는 사실상 좋고 나쁨이 아니란 말이에요. 마음이라는 것에 의해서 선도 짓고 악도 짓는 거예요.
이를테면 우리가 쓰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여러 가지 어떤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물질이 뭘까요?
돈. 하지만 돈은 그냥 돈일 뿐이지, 그 자체로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란 말이에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좋은 돈이 되고 나쁜 돈이 되고.
그와 마찬가지로 마음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 '선이다, 악이다' 그게 없는 거예요. 쓰기에 달려있는 거라. 쓰기에 따라 선과 악이 나눠진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선한 마음을 계속해서 꾸준히 갖고 꾸준히 일으키면 복을 많이 받고 약한 마음을 많이 가지면 화를 당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선복악화(善福惡禍)라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사람들은 굉장히 좀 계산적인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왜? 자기 나름대로 좋은 일 하고 싶으면 조용히 하면 되는데 유난히 표를 내고 어떤 대가를 은근히 바라는 마음을 항시 갖고 있어요.
할아버지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선한 일을 많이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일을 많이 하면 결국 여러 가지 재앙, 화를 많이 받는다고 그랬는데 이 말에 정면으로 반항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는 아닌 게 아니라 좋은 일도 많이 하고 베풀기도 많이 했는데 왜 이렇게 사는게 참 쪼들리고 가난한 거야.' 하는 분들. 그리고 자꾸 안 좋은 일만 생기고.
또 동네의 어떤 사람은 못된 짓을 많이 해서 많은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손가락질하고 욕하고 그러는데, 부자인 거예요.
복 받는 게 뭘까요? 부자로 사는 게 복 받는 거고 가난하게 사는 것이 복 안 받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거의 그렇게 생각을 하죠. 아주 넉넉하고 풍족하게 부자로 살면 복 받고 사는 거고, 가난하게 살면 복 목 받고 사는 거라고, 이런 생각이 벌써 잘못됐어요.
그럼 복과 복 아닌 것의 그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 기준이 분명히 있을 거잖아요. 어떤 사람이 복 받는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덜 복 받는 사람인가.
사람으로 태어나 가장 훌륭하게 되는 것이 가장 복 받는 거예요. 사람들은 가장 훌륭하게 된 사람을 존경한단 말이에요. 그러면 가장 많이 존경받는 사람이 가장 복을 많이 받는 사람인 거예요. 사람들은 가장 훌륭하게 된 사람을 존경한단 말이에요. 그러면 가장 많이 존경받는 사람이 가장 복을 많이 받는 사람인 거예요.
그러면 지금 많은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고 있는 분들이 누구냐? 성인(聖人)들이죠. 성인들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을 받고 살다간 사람들이란 말이에요.
자기가 성인이 될 수 있는 그러한 공부하는 곳에 살거나, 그 곳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이 가장 복을 많이 받는 사람들이에요. 다른 거 아니에요. 그리고 물론 복이라고 하는 것은 좋은 운도 따르는 거겠죠.
지금 많은 사람들은 좀 이상하게 생각을 하고 있어요. 기준을 전부 돈 또는 권력에 두는 거예요.
착한 일 하고 좋은 일 하면 반드시 평화가 오고 좋은 운도 따릅니다. 그것이 인과응보인데, 한 번 때리면 때린 만큼 아프고 세게 부딪힌 만큼 소리가 나는 것. 그건 당연한 거죠. 좋은 일 하면 반드시 좋은 어떤 반응이 자기에게 온다는 거예요.
그런데 오는 것이 시간의 차이가 있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빨리 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좀 늦게 오고. 하지만 분명히 오는 것만큼은 틀림이 없어요.
어쩌다가 자기에게 올 인연이 시간적으로 설사 안 맞았다고 합시다. 그럼 그 복이 자기 자손에게 가는 거예요.
만약 당대에 자기에게 올 수 있는 그 복의 인연이 못 닿았을 때는 반드시 자기 자손들에게 간다는 거예요. 이건 틀림없어요.
그래서 좋은 일 하고 착한 일 하는 건 복 짓는 일이예요. 그러면 역시 좋은 사람 만나고 좋은 선생님 만나고 좋은 후배들 만나고. 그리고 또 운도 트이고. 이건 분명히 있는 거예요.
이를테면 악한 일을 한 번 했다고 생각해봅시다. 요즘 세상이 하도 험악하다 보니까 자식이 부모를 정말 사정없이 죽이는 세상이 됐는데···.
나쁜 짓을 하면 항시 불안해요. 불안하면 마음이 편안하지가 못하단 말이죠. 마음을 놓을 수가 없기 때문에 사람이 또 바싹바싹 마르고 하는 일이 안돼요. 이건 당연한 거잖아요. 화를 입는 건 당연한 거예요.
좋은 일 하고 복 짓는 일 하면 항시 마음이 평화롭고 즐겁고. 그럼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운도 아주 성합니다.
심의성 유선악 선복악화(心依性 有善惡 善福惡禍)
기의명 유청탁 청수탁요(氣依命 有淸濁 淸壽濁夭)
신의정 유후박 후귀박천(身依精 有厚薄 厚貴薄賤)
마음을 통해서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것과 악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선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일을 하면 화를 입는다.(有善惡 善福惡禍)
그 다음에 '기(氣는 의명(依命)하야 유청탁(有淸濁)하니 청수탁요(淸壽濁夭)하고'
그럼 마음 씀씀이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하면 이제 뒤에 나옵니다. 기(氣), 기운. 생활 태도, 환경의 조건, 그리고 호흡하고 숨 쉬는 것. 그것에 따라서 그 사람이 맑고 또는 흐리고 하는 것이 나타납니다.
맑으면 어떻게 되느냐. 건강하게 오래 살고 흐리면 병들고 기운이 탁해져서 빨리 죽고.(有淸濁 淸壽濁夭) 그 기운은 여섯 가지로 된 기운인데 조금 뒤에 나옵니다.
후하면 귀하고 박하면 천해진다고 했어요.(有厚薄 厚貴薄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후해지고 어떻게 해야 박해지느냐.
후해진다는 것은 우선 외관상으로 봤을 때 사람이 귀하게 보인다는 거예요. 그런데 외관상으로 봤을 때 귀하게 느껴지고 상당히 지적으로 보인다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음 또한 다를 바 없다는 거예요. 심신이 일의(一意)라고, 그대로 나타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