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말해 성·명·정(性·命·精)을 모든 존재에게 주긴 주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이 세가지를 옹글게 받았으나 만물들은 치우치게 받았다는 거예요.
그럼 신은 공평하다 했으면서 왜 또 불공평하게 주는가. 어떻게 생각해 보면 이런 의문이 생기는게 당연해요.
그런데 사실 이런 의문은 결국 헛생각이라는 것. 왜냐하면 역시 신은 공평하기 때문이에요. 사람들 생각으로 '불공평'이라는 것을 만들었지만, 불공평 그 자체가 공평이라는 겁니다.
만물들이 치우치게 받았다 했는데,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치우치게 받았다고 하는 기준이 있을게 아닙니까?
예를 들어서 어떤 동물은 성·명·정(性·命·精) 가운데 성 80%, 명 60%, 정 50%를 받고, 또 어떤 곤충을 성 50%, 명 40%, 정 70%를 받고, 또 어떤 식물은 성 15%, 명 50%, 정 30%···. 이런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으로 정하여 분류하기에는 너무나 애매하지 않아요? 앞으로 고우하다보면 좀 더 자세하게 깊은 내용이 나올 거예요.
그렇지만 기본적인 핵심을 알고 넘어가야만 공부의 진행속도에 차질이 생기지 않으니 오늘은 요점만 비유법으로 얘기해 볼게요.
성·명·정(性·命·精)이라는 각기 몸통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몸통 하나에 여섯 개의 날개가 있거든요. 그리고 그 날개 하나하나에 각기 다른 기능들이 있습니다.
성(性)에도 날개가 6개, 명(命)에도 날개가 6개, 정(精)에도 날개가 6개.
모두 합쳐서 18개의 날개가 있으며 그 기능들은 하나도 같은 것이 없이 다 다르다는 거예요.
사람은 이 18개 날개의 기능들을 모두 다 100%씩 받았기 때문에 옹글게 받았다고 하는 것이며 다른 만물들은 이 18개이 기능들을 서로가 조금씩 치우치게 받았다는 거예요.
그러나 18개 날개의 기능들은 저 멀리 우주 밖에서 날아 들어온 것이 아니라, 대우주 본성의 성품으로써 본래부터 있던 것입니다.
비록 모습도, 향기도 빛깔도 없지만 대우주 속에 꽉 차있으며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함께 있는 거예요.
오직 사람만이 100%씩 옹글게 받았기 때문에 인간을 다름 아닌 소우주라고 하며 또한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것이랍니다.
그래서 모세가 창세기를 설명하면서 차원 높은(?) 비유법으로
「하나(한)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한)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라고 말씀하신 것을 후세대 사람들이 그대로 믿고 전하는 거예요.
정말로 사람과 똑같은 형상을 갖춘 하나(한)님이 하늘 저 너머 높은 곳에서 다 내려다보고 계신다고 뻥 아닌 뻥을 치고 있다는 거지요.
지금이야 덜하겠지만 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는 교인들이 꽤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게 아니라 하나(한)님의 본성에 있는 성·명·정(性·命·精)을 100%씩 옹글게 받고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한)님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하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겁니다.
한편 '찰스 다윈'이라는 사람이 진화론을 얘기하면서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내놨잖아요.
그런데 그 두툼한 책 어디를 보아도 종의 기원에 대해서는 단 한 줄도 없어요.
돌연변이를 합리화시켜서 얘기하는데 사실 돌연변이라는 것은 없는 거예요.
이를테면 부모에게 하나도 없는 어떤 형질의 유전자가 자신들한테서 나왔을 때 돌연변이라고들 얘기하는데 그건 잘못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우리가 깊은 의식의 차원에서 들여다봤을 때, 한 생명의 인간이 탄생할 때는 열네 사람의 DNA 유전자가 복합적으로 인연에 따라 하나가 된다는 거예요.
단, 확률적으로는 통계학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림으로 한 번 그려볼게요.
단 여기서 생각해야 되는 걳은 본인이 태어날 때 받은 DNA 유전자 속에 모든 것이 담겨져 있지만, 그 유전자를 바탕으로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 어떻게 교육 받고 성장하느냐에 따라 유전자는 달라지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형태를 유전자 진화라고 합니다.
아까 돌연변이 얘기가 나왔지만 방금 그린 그림을 보면 돌연변이라는 게 없잖아요.
이를테면 돌연변이라는 것은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자기네들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으면 미신으로 취급해 깔아 뭉게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미신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없는 거예요. 어떠한 현상이든지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거지요. 바로 그 원인을 확실히 모를 때 '불가사의', '미신', '돌연변이'라는 말로 묻어버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결론은 종(種)은 창조되는 것이며 절대로 다른 종(種)으로 진화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닭이 진화되어 개가 되고 개가 진화되어 고양이가 될 수 없다는 거예요.
단, 어떤 종(種)이든지간에 환경과 조건에 의해 오랜 세월 적응하면서 자연스럽게 진화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예요.
왜? 필사적으로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아 종족번식을 본능적으로 해야 되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럼 여기서 하나하나 정리해 들어가 봅시다. 원숭이가 진화되어 사람이 되었따는 것, 어떻게 생각하세요?
원숭이가 몇 천 년, 아니 몇 억 년, 몇 십억 년 동안 진화되어도 모습은 좀 달라질 수 있지만 절대로 사람으로 진화될 수 없어요.
그렇다면 유인원으로까지는 진화될 수 있느냐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유인원도 한 생명체의 종(種)입니닫.
그러면 유인원이 진화해서 인간이 되었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유인원이라는 종(種)이 따로 있습니다. 아마 이런 얘기는 처음 들어볼 겁니다.
여기서 잠깐, 창조와 진화의 이론을 정리 좀 하고 넘어갑시다.
모든 종(種)은 창조된다고 했지요?
진화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창조된 개체가 살아남기 위해 먹을 것을 찾아 이동하면서 환경과 조건에 의해 거기에 맞는 모습으로 진화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통(전체)째로 진화한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 단순세포의 생명체에서 점점 복잡한 세포조직의 생명체로 진화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창조하면서 전체적으로 진화하는 거랍니다. 꼭 이름을 붙여 표현하자면 '창조적인 진화'라고 하는 게 알맞겠지요.
드디어 이 아름다운 초록별 한 귀퉁이 해변가에서 사람이 창조되면서 통(전체)째로의 진화와 창조적 진화의 창조가 함께 끝나버렸다는 거예요.
결국은 마지막으로 성·명·정(性·命·精)을 옹글게 받은 소우주인 인간을 창조하기 위해 수없는 세월동안 통(전체)째로의 진화를 거쳐야 했으며 생명체의 세포수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가장 많고 복잡한 인간으로 오기까지 창조적 진화를 했던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하여 간단하게 얘기하면요. 수십억 년 전 모든 만물들은 성·명·정(性·命·精)을 받으면서 탄생(창조)하였습니다. 탄생(창조)된 만물들은 성·명·정(性·命·精)과 함께 통째로 진화되었구요.
그 순서를 간단히 얘기하면 식물, 물고기, 곤충, 날아다니는 새들, 그리고 동물들, 유인원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명·정(性·命·精)을 옹글게 받은 사람을 탄생(창조)시킴으로 인해 대우주 역사의 영상프로그램의 통(전체)째로의 창조와 통(전체)째로의 진화가 막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아까 잠깐 얘기했지만 원숭이과의 종(種)이 있고 유인원의 종(種)이 있고 또한 사람의 종(種)이 있어 별개로 창조되었다고 분명히 말씀드렸잖아요. 아마 처음 듣는 얘기셨을 겁니다.
이러한 얘기의 깊은 내용은 한 20년 후 쯤이나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어쩌면 더 걸릴지도 모르지요.
다만 학자들의 '원숭이→유인원→사람' 주장 근거는 서로의 모습들이 점점 마지막 사람의 형태로 닮아갔다는 생물학적 바탕뿐인 거예요.
원숭이·고릴라·오랑우탄·침팬지 같은 동물들은 모두가 원숭이과에 속해있습니다. 그리고 베이징원인·크로마뇽인·네안데르탈인·호모에렉투스 등등은 유인원 과로 분류하면 정확할 겁니다.
요즘 학자들이 얘기하는 호모사피엔스부터 비로소 현생 인류의 시작으로 봐야한다는 거예요. 시대적으로 보면 지금으로부터 20만~30만 년 전이라 저는 보고 있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통(전체)째로 진화의 과정과 종(種)의 특징으로 나눌 수 있을까요?
원숭이과는 네 발로 다니는 동물 가운데 가장 인지능력이 발달한 종(種)이며 유인원 류에 속해있는 사람의 형태와 비슷한 동물들은 비로소 두 발로 직립보행을 처음 시도한 종(種)으로 인지능력은 원숭이과보다 조금 더 발달했다고 볼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이 탄생되었는데, 사람은 동물이라는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라는 종(種)으로 창조되어 굳이 시원을 얘기하자면 학문적인 표현으로 호모사피엔스라고 합니다.
그럼 유인원과 어떻게 다르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새로운 종(種)으로 분류할 수 있을까요?
사람은 유인원들과 모습이 조금은 비슷하면서 직립보행을 한다는 점은 똑같습니다.
그러나 사람으로 탄생되었을 때는 유인원들과 모든 생명체들은 갖추지 못한 '의문'을 할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을 갖췄다는 것이 핵심인 거예요.
모든 동물 가운데 인지능력이 제법 발달했다고 하는 개·돌고래·원숭이과·유인원들도 의문을 할 수 있는 특수능력의 DNA 유전자가 없습니다.
물론 의문을 갖는 특수능력의 DNA 유전자는 사실 현대의 첨단과학으로도 아직 확인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그것은 당연한 거예요. 왜냐하면 의문을 담당하는 특수 DNA 유전자는 뇌세포로 구성된 물질로 형성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뇌세포와 세포 사이를 흐르게 하는 에너지로 되어있기 때문이에요.
이 특수에너지로 의문을 갖는 기본 방법은 쌍으로 두 가지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는 '무엇?'이며, 또 하나는 '왜?'예요.
단, 이러한 특수에너지는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갖추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기가 커가면서 새로 만들어지는 거예요.
똑같이 뇌세포 역시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지며 아기들은 성장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의문을 갖는 특수에너지와 뇌세포들의 탄생은 사춘기 전에 끝나 멈추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바탕을 한 번 들여다봅시다.
모든 사람들은 두 가지 의문을 갖는 방법 가운데 어쩔 수 없이 타고난 성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거예요.
'무엇?'으로 깊이 파고드는 사람은 정신 분야 쪽으로 가는 편이 훨씬 빠르지요. 생각의 길이 직관으로 달리니까요.
사고(思考)의 영역이 통재로 꾸준히 간절하게 진행되어야만 뜻한 바를 얻을 수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불가(佛家)에서는 화두의 기본을 '이뭐꼬?'로 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보는 것이지요.
'왜?'로 깊이 파고드는 사람은 과학 분야 쪽으로 가면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방법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분석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