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근 40여년 족보·역사 연구
[저서] 마고할미로부터 7만년/홍익인간 7만년 역사/천부경 인간완성-제1부 천부경과 음양오행 ·역원리 이해 등
<고조선 문자> 검증역 · 허대동 저. 이민화 감수 / 공학사·법학사·언론학사·인문학사(중문학·영문학·국문학)
해달별문화원 · 천부역사태학원 대표 / 민족회의 상임부대표 / 민족회의 역사광복군 총사령 / 기천검학 범사 / 참한역사신문협의회 감사 / 한뿌리사랑세계모임 자문위원 / 도선풍수지리신문 편집인 / 법무사 |
[조선(朝鮮) 제15대 대음(代音, 후흘달後屹達) 천왕(天王)의 역사]
금(金)과 쇠(鐵)와 원유(原油)를 캐다.
서기전1652년 기축년(己丑年)에 천왕께서 서쪽으로 약수(弱水)에 행차하고 신지(臣智) 우속(禹粟)에게 금철(金鐵)과 고유(膏油)를 채취(採取)하도록 하였다.
약수(弱水)는 단군조선의 진한(眞韓) 땅으로 볼 때 서쪽에 위치하는데, 서기전2177년에 열양(列陽) 욕살(褥薩) 색정(索靖)이 약수(弱水)에 종신금치(終身禁置) 당하였다가 뒤에 사면받아 봉해져 흉노의 조상이 되었다고 기록되는 바, 이 약수가 곧 여기서 말하는 약수라는 강이 틀림없는 것이 된다. 즉 지금의 오르도스 지역에서 황하의 북단(北端) 지역과 남류(南流) 시작 지역에 있는 황하의 지류가 되는 강이 된다.
여기서 말하는 신지(臣智)는 신지(神誌)와 소리가 같아 동일 관직을 가리키는 것이 되는데, 문자(文字) 및 명령(命令)을 담당하는 직책이다. 우속(禹粟)은 인명(人名)이 된다.
금철(金鐵)의 금(金)은 쇠로서 황금(黃金)이며, 철(鐵)은 무기나 농기구 등을 만드는 재료인 일반적인 쇠(釗)를 가리키게 된다. 원래 철(鐵)이란 글자의 옛 글자는 銕(철)인데 이족(夷族)의 쇠라는 뜻으로서, 동이족이 발명하여 주조(鑄造)한 쇠라는 의미가 된다.
고유(膏油)는 찐득찐득한 기름을 가리키는데 원유(原油)를 가리키는 것이 된다. 즉 이때 이미 천연(天然)의 석유(石油)를 채취하여 연료로 사용하였다는 것이 된다. 아마도 약수(弱水) 지역은 예전에 동물이 번성하였던 곳이거나 물고기가 많이 살았던 바다였다는 것이 된다.
한편, 나무가 울창하던 지역에서는 석탄(石炭) 종류가 나게 되는데, 석탄은 나무가 썩으면서 탄소화(炭素化) 한 것인데, 원래부터 식물이 자라던 육지였음을 나타내는 것이 된다.
[조선(朝鮮) 제15대 대음(代音, 후흘달後屹達) 천왕(天王)의 역사]
우루(虞婁) 사람 20가(家) 투항
서기전1652년 가을 7월에 우루(虞婁) 사람 20가(家)가 와서 투항하였는데, 천왕께서 염수(鹽水) 부근지역에 정착하도록 하였다.
우루(虞婁)는 서기전3897년 이전의 한국(桓國) 시대부터 존속하였던 12한국(桓國) 중의 하나인 우루국(虞婁國)을 가리키는데, 이때 투항한 우루 사람들은 이 우루국의 후예(後裔)가 되는 것인데, 우루(虞婁)는 지역적으로 보아 파미르고원의 서쪽에 있었던 소위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되는 옛 수메르 지역의 우르(크)로 추정된다.
서기전2220년경 유호씨(有戶氏)가 무리를 이끌고 가르침을 펴러 서방(西方)으로 갔던 월식주(月息洲)가 높은 층대가 되는 지구랏을 많이 만들었던 수메르 지역이 되는 것이며, 이 수메르 땅에 있던 우르(UR)라는 나라의 사람들이 서기전2000년경에 이르러 바빌론에게 망하면서 수메르 땅을 벗어나 사방으로 흩어져 살다가 이때에 이르러 동쪽으로 이동해 와 단군조선에 투항한 것이 되는 셈이다.
역사적으로는 서기전2348년경에 소위 노아홍수가 수메르 지역에서 발생하였던 것이며, 이후 서기전2000년경에 바빌론의 함무라비왕이 정복하면서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시조가 되는 아브라함이 서기전1950년경에 가족을 이끌고 갈데아 우르(UR)를 탈출하여 서쪽의 가나안 땅으로 갔으며, 이후 이삭과 야곱의 시대를 거쳐 12지파로 불어났고, 약 300년이 지난 서기전1652년에 이르러 야곱의 후손 중 일파가 20가(家)를 이끌고 동쪽으로 이동하여 단군조선 땅의 염수(鹽水)에 정착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20가(家)는 사람의 수로 보면 단순히 20명(名, 口)이 아니라 약 4,000명 정도가 된다. 가(家)는 한 집안을 가리키며 보통 4대(代)가 1가(家)를 이룬다고 볼 때, 1대(代) 약 30년에 10명 정도의 자녀를 둔다면, 2대째에는 약 10명이 되고, 3대째에는 약 100명이 되며, 4대째에는 최소한 100명이 넘게 되는데, 모두 합하면 최소한 약200명이 넘는 것이 된다. 여기서 20가(家)이면 최소한 4,000명이 되는 것이다.
4,000명이면 대이동이 된다. 최소한 20개의 마을(里) 합친 것이 되는 큰 읍(邑) 하나가 움직이는 것이 된다. 아브라함의 시대는 서기전1950년경이 되고, 이삭의 시대는 서기전1900년경이 되며, 야곱의 시대는 늦어도 서기전1800년경이 되는데, 이때부터 서기전1652년까지는 약150년이 지난 것이 되며, 이에 야곱의 아들 중 한 사람으로부터 불어난 후손은 약4~5대를 지난 기간이 되어 20가(家)가 충분히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기서 적고 있는 우루 사람 20가(家)는 역사적으로 수메르 지역의 우르국 출신이 되는 아브라함의 후손을 가리킬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 된다.
12한국(桓國) 중에서 일군국(一群國)은 수밀이국에서 거리로 따지면 서쪽 또는 서북쪽으로 5만리나 떨어져 있는 나라가 되는데, 지금의 송화강에서 서북방으로 5만리 즉 2만킬로미터가 되는 지역을 찾아보면 영국에 가까운 북유럽 지역이 된다. 일군국은 아마도 영국의 스톤헨지 유적과 관련된 나라가 아닌가 한다.
12한국 중에서 우루국은 위치가 불명한데, 앞에서와 같이 서기전1652년의 기사를 보면 아마도 서방에 있었던 수메르지역의 우르일 가능성이 농후하며, 또 사납아국(斯納阿國)도 위치가 불명한데, 아마도 인도지역에 있었던 나라가 아닌가 추정된다.
파미르고원의 동북지역과 동쪽 지역으로 이동한 황궁씨족(黃穹氏族)과 청궁씨족(靑穹氏族) 외의 백소씨족(白巢氏族)과 흑소씨족(黑巢氏族)은 각 수메르지역과 유럽지역, 인도지역으로 이동한 것이 되는데, 12한국 중에서 소재가 불명한 우루국(虞婁國)과 사납아국(斯納阿國)은 수메르 지역과 인도지역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조선(朝鮮) 제15대 대음(代音, 후흘달後屹達) 천왕(天王)의 역사]
태백산(太白山)에 공적비(功績碑)를 세우다.
서기전1634년 정미년(丁未年)에 천왕께서 태백산에 올라 비석을 세워 열성조(列聖祖)와 여러 한(汗)들의 공적을 새겼다.
단군조선 시대의 태백산(太白山)은 지금의 백두산(白頭山)을 가리킨다. 물론 태백산이라 불리는 산이 단군조선의 영역 안에 많이 있었다고 보이는데, 단군조선의 역사기록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태백산은 백두산이 되는 것이다.
백두산을 태백산이라 한 기록은 대진국(大震國:발해) 제3대 문황제(文皇帝)의 삼일신고봉장기(三一神誥奉藏記)에 보이고, 신라시대 인물인 박제상(朴堤上)이 지은 부도지(符都誌)에서 강원도 태백산을 서기400년경에 남태백산(南太白山)이라 부르고 있어 백두산이 원 태백산이 됨을 알 수 있게 한다.
열성조(列聖祖)는 역대 단군을 가리킨다. 한(汗)은 단군조선의 군후(君侯)를 가리키는데, 단군조선 중앙조정을 천(天)이라 하면 단군(檀君)은 천왕(天王)이 되고 그 아래 천군(天君)이 있으며, 천군 아래 일반 제후가 되는 하늘나라의 공작인 천공(天公), 후작(侯爵)인 천후(天侯), 백작(伯爵)인 천백(天伯), 자작(子爵)인 천자(天子), 남작(男爵)인 천남(天男) 등이 있는 것이다.
단군조선의 여러 군후국(君侯國) 중에서 구려국(句麗國), 진번국(眞番國), 부여국(扶餘國), 청구국(靑邱國), 남국(藍國), 고죽국(孤竹國), 몽고리(蒙古里), 낙랑국(樂浪國) 등은 군국(君國)에 해당하고, 숙신(肅愼), 개마(蓋馬), 예(濊), 옥저(沃沮), 졸본(卒本), 비류(沸流) 등은 공후백자남(公侯伯子男)의 일반 제후국(諸侯國)에 해당하며, 남선비(南鮮卑)는 대인(大人)의 나라에 해당한다.
비석을 세운 예는 제12대 아한(阿漢) 천왕께서 요하(遼河)의 동쪽인 번한(番韓) 땅에 서기전1833년에 세운 순수관경비(巡狩管境碑)가 있으며, 제30대 내휴(奈休) 천왕께서 청구국(靑邱國)을 둘러보고 배달나라 제14대 한웅(桓雄)인 치우천왕(蚩尤天王)의 공덕을 새긴 역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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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원 9218년 · 배달개천 5918년 · 단기435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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