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전1891년 경인년에 번한(番韓) 계전(季佺)이 도해(道奚) 천왕의 명을 받아 탕지산(湯池山)에 삼신단(三神壇)을 설치하고 관리들의 집을 이사하게 하였는데, 탕지(湯池)는 옛 안덕향(舊安德鄕)이다.
이때 탕지산에 삼신단을 설치하고 번한의 수도로 삼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탕지(湯池)를 구안덕향(舊安德鄕)이라 하고 있으니, 탕지를 수도로 삼은 이후에 삼은 안덕향은 번한(番韓)의 오덕지(五德地)인 오경(五京) 중에서 중경(中京)에 해당하는 개평(開平)이 된다. 개평은 지금의 고하(沽河)와 난하(灤河) 사이에 위치하는 당산(唐山) 부근에 있다.
번한(番韓)의 수도는 서기전2333년 단군조선 개국 당시에는 난하 동쪽에 위치한 험독(險瀆)에 두어 동경(東京)에 해당하며, 서기전2311년 순(舜)이 요(堯)임금에게 등용된 뒤 3년차가 되는 때에는 산동반도의 남쪽에 있던 낭야성(琅耶城)을 개축하여 가한성(可汗城)이라 하여 남경(南京)으로 남은 것이 된다.
또, 서기전2049년 상춘(常春)의 구월산(九月山)에서 하늘에 제를 올리고 신지(神誌) 발리(發理)가 서효사(誓效詞)를 지은 때에는 번한의 수도가 안덕향(安德鄕)인 개평(開平)으로 중경이 되며, 탕지는 구안덕향이므로 서기전2049년 이전에 수도로 삼았던 적이 있는 곳으로서 북경(北京)에 해당하는 것이 되고, 다시 서기전1891년에 탕지를 수도로 삼은 것이거나 삼신(三神) 제천단(祭天壇)을 둔 곳이 된다..
그리고 번한 수도인 오덕지의 하나가 되는 서경(西京)으로는 고구려 요서10성 중의 하나인 한성(韓城)이 되는 한성(汗城)이 거의 틀림없다. 서기전323년에 연(燕)나라가 왕을 칭할 때 번한의 읍차(邑借)이던 기후(箕詡)가 스스로 번조선왕이라 칭하며 보을(普乙) 천왕에게 윤허를 구할 때, 처음에는 번한성(番汗城)에 머물며 연(燕)나라에 대비하였다 하는데, 이 번한성(番汗城)이 한성(汗城)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고 본다. 만약 당시 번조선의 수도였던 험독(險瀆)에 머물며 연(燕)나라에 대비하였다면 굳이 번한성(番汗城)이라 할 이유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번한의 오경(五京)은 서기전2333년, 2311년을 거쳐 2049년 이전에 약 300년 사이에 정립(定立)된 것으로 되며, 단군조선 초기에 이미 서보(西堡)로서의 기능을 번한(番韓)이 다 하고 있었던 것이 된다. 번한의 수도는 저울추(秤錘)처럼 서쪽 즉 요순(堯舜), 하은주(夏殷周)의 군사적 정세에 따라 동서남북중의 오경(五京)을 오가며 조절(調節)한 것이 된다.
번한의 수도가 되는 오덕지(五德地)의 산에 삼신단(三神壇)을 축조하여 하늘에 제사를 올린 것이 된다. 오덕지 외에 번한 관경에 속하는 산동 서쪽의 태산(泰山)에도 제천단이 있었는데, 아마도 단군왕검이 염제신농국의 후계국인 단웅국(檀雄國)의 비왕으로서 섭정을 할 때인 서기전2357년부터 서기전2333년까지 사이에 몸소 천제(天祭)를 올렸던 것이 되고, 서기전2267년 태자부루(太子扶婁)가 도산회의(塗山會議)를 주관할 때 번한(番韓) 낭야(琅耶)로 하여금 하늘에 제를 올리게 한 이후, 노(魯)나라 땅에 속하게 된 뒤에는 주(周)나라 천자(天子)가 봉선(封禪)을 행하는 등 진한(秦漢)을 거치면서 태산을 제천행사지로 숭앙한 것이 된다.
[유위자(有爲子) 선인(仙人)이 웅씨군(熊氏君)에게 설파한 도(道)]
유위자(有爲子) 선인은, 배달나라 시대인 서기전2700년경의 도학자(道學者)였던, 자부선생(紫府先生)의 학문을 이은 분이다. 단군조선의 마한(馬韓) 땅이 되는 한반도의 묘향산에 은거하던 때에 웅씨군을 방문하자 웅씨군이 도(道)에 관한 가르침을 요청하였고, 이에 유위자 선인은 웅씨군에게 도(道)를 설파(說破)하였다. 아마도 유위자 선인이 단군조선 도해(道奚) 천왕 시절의 국자랑 사부가 되기 이전의 젊은 시절이 될 것이다.
웅씨군(熊氏君)은 웅씨(熊氏)인 작은 임금(君)을 뜻하는데, 서기전2333년경 단군왕검 천왕께서 마한에 웅백다(熊伯多)를 봉한 이후 마한의 임금은 서기전1286년까지 웅씨가 이은 것이 된다. 유위자 선인은 서기전1891년경에 국자랑 사부(師傅)로 계셨으니 늦어도 서기전1950년경 출생이며 서기전1727년에 돌아가시어 최소한 약 220세이상 사신 것이 된다.
서기전1891년경 유위자 선인이 도를 말씀드린 마한의 웅씨군은 아화(阿火, 서기전1938년~서기전1864년)이다. 유위자 선인은 도(道)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도(道)의 큰 원천은 삼신(三神)에게서 나왔으니, 도는 이미 상대도 없고 명칭도 없고, 상대가 있으면 도가 아니며, 명칭이 있으면 또한 도가 아닙니다. 도는 무상(無常)의 도이며 때에 따르니 이에 도가 귀한 바입니다. 칭하되 무상(無常)의 칭이며, 백성을 편안하게 하니 이에 칭이 실재(實在)하는 바이며, 그 밖이 크지 않고 안이 작지 않으니, 도는 이에 포함하지 않는 바가 없습니다.
하늘에는 틀(機)이 있으니 내 마음의 틀에서 보고, 땅에는 모습이 있으니 내 몸의 모습에서 보며, 사물에는 다스림이 있으니 내 기(氣)의 다스림에서 봄이니, 이에 하나를 잡아서 셋을 포함하고, 셋을 모아서 하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일신(一神)이 내리는 바 이는 사물의 이치이며 이에 천일(天一)이 물을 낳는 도리입니다. 성통광명(性通光明)은 삶의 이치이며 이에 지이(地二)가 불을 낳는 도리입니다. 재세이화(在世理化)는 마음의 이치이며 이에 인삼(人三)이 나무를 낳는 도리입니다.
대개 대시(大始)에 삼신(三神)이 삼계(三界)를 만들어 물로써 하늘을 본 따고 불로써 땅을 본 따고 나무로써 사람을 본 땄으니, 무릇 나무라는 것은 땅에 뿌리를 두고 하늘로 나오는 것은 또한 처음 사람이 땅에 서서 나와 능히 하늘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유위자 선인은, 도(道)의 큰 원천은 삼신(三神)에게서 나왔으니, 도는 이미 상대도 없고 명칭도 없고, 상대가 있으면 도가 아니며, 명칭이 있으면 또한 도가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삼신(三神)은 일신(一神)을 나누어 칭하는 말로서 물리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일(一)은 곧 무(無)에서 시작하고 무(無)에서 끝나므로 상대가 있을 리 없으며, 명칭이 있을 리 없는 것이다.
즉 무극(無極)은 일극(一極)이기도 하며, 무극은 절대적인 유(有)로서 상대적인 무(無)로 칭할 뿐인 것이고, 일극(一極)은 하나뿐인 극(極)이므로 상대가 없어 무극이며 원래 무(無)이나 상대적인 유(有)가 되는 것이다. 결국 무와 유는 같은 것이나 상대적인 구분일 뿐인 것이다.
이에 신(神)은 곧 무(無)가 되나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절대적인 유(有)이며, 그리하여 신(神)을 그 원천으로 하는 도(道)는 상대가 있기 이전의 도이며 명칭이 생기기 이전의 도인 것이다.
또, 도는 무상(無常)의 도이며 때에 따르니 이에 도가 귀한 바이고, 칭하되 무상(無常)의 칭이며, 백성을 편안하게 하니 이에 칭이 실재(實在)하는 바이며, 그 밖이 크지 않고 안이 작지 않으니, 도는 이에 포함하지 않는 바가 없다라고 하였는 바, 일(一)은 무(無)에서 시작하여 상대적인 유(有)가 되어 수억만번을 오고가며 다시 무(無)로 되돌아가는 무상(無常) 그 자체로서 항상(恒常)스런 모습이 없어 귀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도는 명칭을 붙이기 이전의 무상(無常)의 칭으로서 번잡하게 명칭을 쓰지 않으므로 백성들의 마음이 귀착하는 바가 없어 편안하게 하는 반면에, 그 근본은 변하지 아니하는 절대적 존재로서 실재(實在)하는 것이며, 도는 생각할 수 없는 그러한 존재가 아니므로 그 밖이 생각할 수 없는 정도로 무한하다 하지 않는 것이므로 크지 않다고 하는 것이며, 모든 만물의 원천으로서 모두 담고 있으므로 그 안이 작지 않다고 하는 것이고, 도가 모든 만물을 포함한다고 하는 것이다.
하늘에는 틀(機)이 있으니 내 마음의 틀에서 보고, 땅에는 모습이 있으니 내 몸의 모습에서 보며, 사물에는 다스림이 있으니 내 기(氣)의 다스림에서 봄이니, 이에 하나를 잡아서 셋을 포함하고, 셋을 모아서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라 하였는 바, 틀(機)은 골격으로서 그 의도된 바가 꾸며진 것인데, 하늘이 만물을 만들 때 그 의도대로 틀을 만드니, 사람이 사람의 골격을 가지고 사람 모습을 띄게 되는 것처럼, 하늘이 의도하는 틀을 사람의 마음의 틀에서 볼 수 있는 것이며, 또 땅에는 하늘의 틀로 만들어진 모습들이 있으니 곧 내 몸과 같이 하늘의 의도대로 만들어진 모습이 있는 것이며, 모든 사물에 기(氣)가 순환을 하니 이는 내가 내몸과 내마음으로 기를 다스리는 것과 같은 것이며, 기(機)와 상(象)과 기(氣)는 삼위일체인 것이다.
천기(天機)의 일부가 사람의 심기(心機)이며, 지상(地象)의 일부가 사람의 육신(肉身)이며, 물재(物宰)의 일부가 사람의 기재(氣宰)인 바, 심기신(心氣身)이 원래 하나로서 셋으로 나누어지고 셋을 포함하여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이며, 심기신의 원천인 성명정(性命精)이 다시 원래의 하나(一)로 되돌아 가므로, 집일함삼(執一含三), 회삼귀일(會三歸一)이라 하는 것이다.
일신(一神)이 내리는 바 이는 사물의 이치이며 이에 천일(天一)이 물을 낳는 도리이고, 성통광명(性通光明)은 삶의 이치이며 이에 지이(地二)가 불을 낳는 도리이며, 재세이화(在世理化)는 마음의 이치이며 이에 인삼(人三)이 나무를 낳는 도리이다라고 하였는 바, 물은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서 하늘에서 비나 이슬이나 서리나 눈처럼 보이는 물이 되어 땅으로 내리므로 하늘이 물을 낳는다 하는 것이며 하늘님, 일신이 땅으로 내리어 사물을 만드는 이치가 된다.
또, 불은 땅에서 하늘로 향하여 타므로 땅이 불을 낳는다는 것이며 하늘의 태양처럼 본성을 통하고 밝게 비추므로 생명을 있게 하는 이치가 되며, 나무는 땅으로 내리듯 뿌리를 내리고 하늘로 솟아 오르고 사람이 또한 땅을 딛고 하늘로 향하여 서 있으므로 사람이 나무를 낳는다고 하는 것이며,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마음으로써 세상을 다스리므로 마음의 이치라 하는 것이다. 이는 천지인(天地人)의 삼태극의 원리를 천일(天一), 지이(地二), 인삼(人三)의 이치로 나누어 말한 것이 된다.
삼신(三神)이 만든 삼계(三界)는 곧 하늘과 땅과 사람인데, 물로써 하늘을 본 따고 불로써 땅을 본 따고 나무로써 사람을 본 땄다고 한 것은, 천지인(天地人)의 이치를 변화형상(變化形象)의 모습으로 설명한 것이며, 보이지 않는 신(神)을 음(陰), 보이는 사물(事物)을 양(陽)이라 하고 사람은 천지 음양의 조화로 나타난 존재로서 중(中)에 해당하는 바, 나무(木)가 천지 음양의 조화로 생긴 사람과 같은 모습이 되어 중(中)에 해당하는 것이 된다.
여기 유위자 선인의 도에 관한 말씀에서, 삼신오제론(三神五帝論) 중 오제(五帝)에 대응하는 오행(五行)의 원리를 바로 보게 된다. 즉, 북방의 흑제(黑帝)가 물(水)을 관장하며, 남방의 적제(赤帝)가 불(火)를 관장하며, 동방의 청제(靑帝)가 나무(木)을 관장하는 원리가 된다. 북과 남, 흑제와 적제, 물과 불은 상대적인 명칭이며 상대적인 성질을 지닌 존재인데 오방(五方)에 따른 오행(五行)의 배치와 일치하는 것이다.
서기전3500년경 태호복희가 팔괘역을 만들기 이전에 배달나라 초기부터 이미 존재하였던 일월수화목금토(日月水火木金土)에 따른 칠회제신력(七回祭神曆)에서 보듯이 음양오행의 기초 이론이 정립되어 있었던 것이 되는데, 음양은 곧 천지(天地) 기(氣)의 이치이며, 오행(五行)은 곧 오행성(五行星) 기(氣)의 이치가 된다.
태호복희가 천지운행(天地運行)에 관한 팔괘역(八卦易)을 만들기 이전에 발견한 하도(河圖)가 곧 배달나라의 음양오행도(陰陽五行圖)인 것이며, 음양사상(陰陽四象)의 원리가 성립된 이후에 나온 음양중의 원리를 내포한 천부경(天符經)의 삼태극(三太極)의 원리에서 나온 천지인의 원리로서 최종 음양오행의 원리로 정립된 것이 된다. 즉, 오행은 음양에서 나오는 중(中)에 해당하며 다시 이 중(中)이 음양중(陰陽中)으로 개념이 분화되는 것이다.
음양은 중(中)을 내포한 원리가 되어 중(中)을 낳는 원천이 되는데, 사상팔괘(四象八卦)에서 태음(太陰)과 태양(太陽)에서 파생되어 나온 소음(少陰)과 소양(少陽)이 소위 중(中)에 해당하며, 건(乾)과 곤(坤) 이외의 태리진감간손(兌離震坎艮巽) 6괘는 음양의 조화로 나온 소양과 소음으로서 소위 중(中)에 해당하는 것이 되는 바, 사상팔괘와 소위 오행(五行)은 방향을 놓고 볼 때는 일치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상팔괘(四象八卦)는 방향과는 거의 무관하게 시간(時間)에 따른 순환변화(循環變化)의 원리를 나타낸 것이고, 오방(五方)의 오행(五行)은 기(氣)의 작용을 나타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호복희의 팔괘역(八卦易)에 방향을 배당하는 것은, 하늘에는 방향이 없음에도 지구라는 땅에서 사람이 동서남북으로 방향을 설정하는 것처럼 방향을 억지로 설정하는 것과 같이 되는데, 굳이 태호복희팔괘역에서 방향을 설정한다면, 지구가 시계침이 도는 방향의 반대방향으로 북, 북동, 동, 남동, 남, 남서, 서, 북서의 순서가 되는 것이다.
즉, 태호복희팔괘역의 건태리진곤간감손(乾兌離震坤艮坎巽)을 방향으로 대입하면, 순방향(順方向)으로서 남, 남서, 서, 북서, 북, 북동, 동, 남동이 되는 것이다. 이 방향은 시계침이 도는 방향의 반대방향으로서 지구의 자전과 공전 방향이며, 자전으로 생기는 밤낮의 순행 방향이며, 공전으로 생기는 사계(四季)의 순행방향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건(乾)은 하늘(天)로서 기(氣)이자 태양(太陽)으로 한낮(午), 여름(夏)을 가리키고 남방(南方)이며, 태(兌)는 화산(火山)을 나타내고 소양(少陽)으로 오후(午後), 초가을(立秋)을 가리키고 남서(南西)이며, 리(離)는 불(火)로서 소양(少陽)으로 저녁(夕), 가을(秋)을 가리키고 서방(西方)이며, 진(震)은 벼락을 나타내고 소양(少陽)으로 늦저녁, 초겨울(立冬)을 가리키고 북서(北西)가 되며, 곤(坤)은 땅(地)으로서 토(土)이자 태음(太陰, 달, 月)으로 한밤(子), 겨울(冬)을 가리키고 북방(北方)이며, 간(艮)은 일반적인 산(山)을 나타내고 소음(少陰)으로 새벽, 초봄(立春)을 가리키고 북동(北東)이며, 감(坎)은 물(水)로서 소음(少陰)으로 아침(朝), 봄(春)을 가리키고 동방(東方)이며, 손(巽)은 바람(風)을 나타내고 소음(少陰)으로 오전(午前), 초여름(立夏)을 가리키고 남동(南東)이 된다.
이에 반하여, 태호복희 팔괘역에 대한 중국역(中國易)의 해석은 지구가 자전(自轉)하거나 공전(公轉)하는 방향이 아니라 태양이 출몰(出沒)하는 방향으로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도는 방향이 되어 눈에 보이는 것만을 기준으로 방향을 설정하고 있어 천체 순행원리의 본질을 벗어나고 있는 것이 된다. 이에 따라 주문왕팔괘도(周文王八卦圖)는 태호복희 팔괘역을 벗어난 것이기도 하며 그 방향설정의 면에서 본질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순행원리에 따른 역이 아닌 것이 된다.
그래서, 중국역의 풀이에 의하면, 남과 북은 건괘와 곤괘가 맞으나 그 외의 괘는 동과 서로 뒤바뀌어 있는 것이 된다. 그리하여 리(離)를 방향으로는 동(東)이라 하고 계절로는 봄(春)이라 하며 소양(少陽)이라 잘못 대입하는 것이 되고, 감(坎)은 방향으로 서(西)라 하고 계절로는 가을(秋)라 하며 소음(少陰)이라 잘못 대입하는 것이 된다. 이에 따라 건곤(乾坤)의 남북(南北)을 제외한 다른 괘에 해당하는 방향이 모두 뒤틀리게 되는 것이다.
태호복희팔괘역(太皞伏羲八卦易)의 본질은 바탕이 되는 하괘(下卦)가 기준이 되고 중괘(中卦)와 상괘(上卦)가 아무리 양(陽)이라도 하괘가 음(陰)이라면 소음(少陰)의 괘가 되고, 반대로 아무리 중괘와 상괘가 음(陰)이라도 하괘가 양(陽)이라면 소양(少陽)의 괘가 되는 것이다. 이는 여자가 아무리 남성적인 성질(性質)이나 기질(氣質)이나 체질(體質)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여자이며, 남자가 아무리 여성적인 성질이나 기질이나 체질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남자인 것과 같은 이치가 된다. 즉 본질은 변함이 없는 것이며, 겉으로만 나타난 현상이나 형상을 기준으로 구분한다면 본질(本質)을 망각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 된다.
음양의 원리는 음양중의 원리보다 근원적이 되며 음양은 중(中)을 낳는 원천이 되어, 서기전27178년경 마고성(麻姑城) 시대에 정립된 기화수토(氣火水土)의 원리가 사상(四象)이 되는 건곤감리(乾坤坎離) 즉 태양(太陽), 태음(太陰), 소음(少陰), 소양(少陽)을 나타낸 것이 되며, 이후 서기전7197년에서 서기전6200년경 사이에 정립된 천부삼인(天符三印)에서 보듯 천지인(天地人) 즉 음양중(陰陽中)의 원리가 정립되어 음양오행의 원리가 기초잡혀졌던 것으로 된다.
오행은 오방(五方)에 배당된 오행성(五行星)의 기(氣)로서 이미 한국시대(桓國時代)에 오방에 배당된 오가제도(五加制度)가 있었던 것에서도 오행의 이론이 있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한편, 삼사(三師)는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 음양중(陰陽中)의 원리에 기초한 제도가 된다.
유위자(有爲子) 선인(仙人)이 말씀하신 도(道)에 관한 내용에서 이미 유위자 선인 시대 이전에 천지인, 음양중의 삼태극(三太極)의 원리가 정립되어 있었던 것이며, 유위자 선인이 자부선생(紫府仙人)의 학문을 이은 것이므로 자부선인도 이미 천지인, 음양중의 삼태극의 원리를 정립하여 놓았던 것이고, 태호복희와 동문으로서 서기전3500년경의 배달나라 선인이던 발귀리(發貴理) 선인이 삼태극(三太極)을 노래한 시(詩)도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삼태극의 원리를 가르치고 있는 천부경(天符經)은 이미 배달나라 시대에 존재하였음이 증명되는 것이 된다.
실제로 첨부삼인(天符三印)이라는 천지인(天地人) 삼인(三印)의 원리를 가르친 경전(經典)으로서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參佺戒經)이 한국(桓國)의 중기가 되는 서기전6200년경 이전에 이미 정립된 것이 되고, 서기전3897년경에 한웅천황이 웅족(熊族)과 호족(虎族)을 가르칠 때 이미 이들 천부삼경(天符三經)이 존재하였던 것이다.
[절구(臼)와 띠풀지붕]
서기전1879년 임인년(壬寅年)에 일토산(一土山) 사람인 왕조명(王朝明)이 박(泊) 땅의 민장(民長)이 되어 다스린 공적이 뛰어 났는데, 곡식을 찧는 그릇인 절구(臼)를 제작하고 백성들에게 띠풀(茅)을 뽑아 지붕을 이는 방법을 가르쳤으며 이 방법이 편리하여 백성들에게 오래오래 전해졌다.
여기서 특히 절구(臼)는 곡식을 찧는 도구로서 단군조선의 화폐가 되는 소위 명도전(明刀錢)에도 절구를 가리키는 문자가 새겨져 있기도 한데, 절구라는 발음이 곧 절구모양을 본따 만든 글자를 읽는 소리로서, 글자의 소리로는 가림토 글자이며 모양으로 보면 상형문자로서 전체적으로 상형식가림토라 할 수 있다.
소위 명도전에 새겨진 글자의 형태로 보면, 상형문자, 상형-표음문자, 표음-상형문자, 표음(가림토)문자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절구라는 글자는 상형-표음문자 또는 표음-상형문자가 된다. 상형-표음문자는 원래는 상형문자인데 이를 가림토로 읽히는 글자이고, 표음-상형문자는 원래는 가림토 글자인데 상형식으로 표기된 글자이다.
일토산(一土山)은 왕산(王山)의 파자(破字)가 되는데, 왕씨(王氏)의 본거지가 되는 셈이다. 후대인 서기전1122년경에 은나라 왕족 기자(箕子)가 단군조선으로 망명하여 제후가 되어 기후국(箕侯國)을 다스릴 때, 일토산 사람 왕수긍(王受兢)이 기자의 사사(士師)가 되어 단군조선에서 읽혀지던 삼일신고(三一神誥)를 박달나무판(檀木板)에 새겨 기자에게 주어 읽게 하였다고 기록되고 있기도 하다.
왕씨는 황제헌원(黃帝軒轅)의 후손으로도 전하는데, 황제헌원은 배달나라 제후국의 천자 중 천자로서 오방(五方) 중 중부(中部)의 황제(黃帝)였으며, 그 후손들은 모두 배달겨레로서 단군조선 시대에 이미 단군조선의 백성으로서 살고 있었던 것이 된다. 즉, 고대중국의 실질적인 시조가 되는 황제헌원의 후손들은 물론 배달겨레로서 황제헌원을 이은 나라인 웅국(熊國)에서 사느냐 아니면 웅국을 제외한 그 외의 배달나라 땅에서 사느냐, 요순 하은주의 땅에서 사느냐 아니면 단군조선 땅에서 사느냐의 차이일 뿐 혈연족보(血緣族譜)상 아무 차이가 없는 것이다.
후대에 왕조명의 손자인 왕해월(王海月)도 민장이 되어 배를 만들어 곡식을 운반하는 등 바다무역이 트이게 하였으며, 왕해월의 증손자인 왕명지(王明知)도 민장이 되어 농사를 권장하고 독려하여 농사짓는 때를 어기지 않도록 하였다.
[방물(方物) 진설소(陳設所) - 박람회(博覽會)]
서기전1864년 정사년(丁巳年)에 장소를 마련하여 사방의 물건들을 모아 진귀한 것들을 전시하니 천하의 백성들이 다투어 헌납하여 진열한 것이 산과 같았다.
이때 소위 만국박람회(萬國博覽會)를 열었다는 것이 된다. 즉, 단군조선 시대에 지방 제후국(諸侯國)들과 우방국(友邦國)들의 특산물을 전시하는 박람회장을 설치하였던 것이다. 물론 배달나라의 수도가 되는 신시(神市)라는 말이 신(神)들의 도시라는 말도 되며 저자(市) 즉 시장이 있어 교역이 이루어지는 장소라는 의미가 되는데, 단군조선 시대에도 10년에 한번씩 신시(神市)를 열었다는 기록이 있음을 볼 때, 박람회와 같은 행사가 정기적으로 열렸던 것이 되며, 교역이 이루어지는 경제적인 행사 뿐만이 아니라 제천행사를 벌이는 종교적, 공물을 바치는 등의 정치적 행사였을 것임이 분명하다고 본다.
오늘날의 세계박람회는, 인류공영의 목적으로 벌이는 행사인 점에서 단군조선 시대에 이미 개최된 박람회가 그 원류가 되며, 전세계적인 홍익인간 세상을 위하여 신시(神市)라는 경제교류 제도를 계승발전시킨 것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만 할 것이다.
[선사(選士) 20명의 국훈(國訓) 전파(傳播) - 스승(師)의 나라 조선(朝鮮)]
서기전1854년 정묘년(丁卯年)에 백성들 가운데서 장정(壯丁)을 징집하여 모두 병사로 삼고, 선사(選士) 20명을 하(夏)나라 서울로 보내어 나라의 가르침(國訓)을 처음으로 전함으로써 위세를 보였다.
이 기록은, 단군조선의 마지막 47대 고열가(古列加) 천왕 시절이 되는 서기전268년에 위(魏)나라 사람 공빈(孔斌)이 동이사절(東夷使節)이 위(魏)나라를 방문하였는데 그 위세가 등등하였다는 등으로 기록하는 것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서기전268년 당시의 동이사절이 단군조선 진한(眞韓)의 사절인지, 번한(番韓)의 사절인지 불명한데 번한과 접한 연(燕)나라가 아닌 위(魏)나라이므로 일단 진한의 사절로 추정되기는 한다. 공빈(孔斌)은 공자(孔子)의 7세손으로 전한다.
선사(選士) 20명을 하(夏)나라 수도로 보냈다는 것에서 당시 단군조선과 하나라의 관계는 불편한 관계는 아니었으나, 가서 단군조선의 국훈(國訓)을 가르쳐 위세(威勢)를 보였다는 것에서 하나라가 단군조선의 가르침을 받는 입장으로서, 단군조선이 하나라의 군사부(君師父)의 나라가 되는 셈이다.
당시 국훈(國訓)은, 주나라 춘추시대의 공자(孔子)가 말하였듯이 하은주(夏殷周) 삼대(三代)에 있었던 것을 기록하였을 뿐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하은주의 윤리도덕의 기반이 되었던 가르침으로서 곧 단군조선에서 전파된 것이 된다. 그리하여 삼강오륜(三綱五倫) 등 소위 유교적인 기본 원리는 이미 단군조선에서 하은주의 고대중국에 전수(傳授)되었던 단군조선의 윤리도덕을 응용한 것이 되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써 서기전2240년경 단군조선의 초기 중신(重臣)이던 대련(大連)과 소련(少連)의 효(孝)를 공자(孔子)는 예기(禮記)에 인용하면서, 대련과 소련을 동이(東夷)의 아들이라 하며 효(孝)의 본보기로 극찬하고 있다.
단군조선 이전의 배달나라 시대에 이미 가정과 사회와 국가라는 공동체에 관한 인간윤리가 정립되어 있었다. 즉, 삼륜구덕(三倫九德) 또는 삼륜구서(三倫九誓)라는 윤리도덕적 가르침이 배달나라 시대에서 정립되어 단군조선으로 전해진 것이며, 이러한 가르침들이 하은주(夏殷周)로 전파(傳播)된 것이 되고, 이러한 고대중국의 윤리도덕이 공자(孔子)로 이어져 중국 유교(儒敎)의 가르침을 정립한 것이 된다.
선비(儒)라는 말은 조의선인(皁衣仙人)이라는 말과 연관되어 있는데, 원래 선비라는 말은 배달조선의 선인(仙人)의 무리를 가리키고, 단군조선과 고구려 시대에 소도제천(蘇塗祭天)하고 경당(扃堂)에서 독서(讀書, 글읽기), 습사(習射, 활쏘기 익히기), 치마(馳馬, 말달리기), 예절(禮節), 가악(歌樂), 권박일술(拳撲釰術) 등 육예(六藝)를 닦던 심신수련(心身수련) 단체의 구성원을 가리키는 것이다.
[송화강 조선소(造船所) 설치]
서기전1846년 을해년(乙亥年)에 송화강(松花江) 기슭에 작청(作廳)을 세우니 배(舟)와 노(楫) 등 여러 가지 물건이 크게 세상에 퍼졌다. 기계를 발명하는 사람들에게 상(賞)을 주었는데, 이때 상을 받은 새로운 발명품으로는, 양우계(量雨計), 측풍계(測風計), 자행륜차(自行輪車), 경기구(輕氣球), 자발뇌차(自發雷車), 천문경(天文鏡), 조담경(照膽鏡), 구석편(驅石鞭), 자명종(自鳴鐘), 경중누기(輕重漏器), 연적(涓滴), 발뇌동용기(發雷動舂器), 소금(素琴), 천리상응기(千里相應器), 목류마(木流馬), 진천뢰(震天雷), 어풍승천기(御風昇天機), 흡기잠수선(吸氣潛水船), 측천기(測天機), 양해기(量海機), 양청계(量晴計), 측우기(測雨機), 측한계(測寒計), 측서계(測暑計), 황룡선(黃龍船), 양수기(揚水機) 등이다.
송화강은 전기 단군조선의 수도이던 아사달이 소재한 땅에 남북방향으로 올라가다 다시 동쪽으로 흘러 우수리강(牛首里江)에 합류하는 강인데, 이 송화강 가에 배와 노젓는 기구 등 배와 관련된 물건과 그 외 여러 가지 물건들을 만드는 공장을 설치하였다는 것이다. 송화강은 원래 속말(粟末)이라는 강으로서 소말(소마리, 소머리), 소물, 소믈, 소므르라는 말을 나타낸 이두식 표기이며, 소머리라는 말을 표기한 것이 되는 우수리(牛首里)라는 말과 결국 같은 것이 된다.
당시에는 주로 노젓는 배를 만들었던 것이 되는데, 이 이전의 단군조선 초기가 되는 서기전2131년에 이미 살수(薩水)의 상류에 조선소(造船所)를 설치한 적이 있기도 하다. 살수는 지금의 요동반도 중부지역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강으로서, 살수의 하류가 되는 요동반도 남쪽에 접한 바다는 진한의 남해안이 되는데, 살수의 중류지역은 고구려 시대 을지문덕(乙支文德) 대모달(大謀達)이 펼쳤던 살수대첩의 현장이기도 하다.
당시 상(賞)을 받은 발명품들을 대표적으로 열거하고 있는데, 글자 자체에서 대략적으로 어떤 물건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즉, 양우계(量雨計)는 비가 얼마나 왔는지를 재는 측정계기(測定計器)이며, 측풍계(測風計)는 바람의 방향이나 세기를 재는 측정계기이고, 자행륜차(自行輪車)는 스스로 돌아가며 나아가는 바퀴달린 수레나 차를 가리키고, 경기구(輕氣球)는 공기의 부력(浮力)에 의하여 하늘로 떠오르는 기구(氣球)가 되며, 자발뇌차(自發雷車)는 자동발사되어 터지는 폭발장치를 갖춘 수레 또는 대포(大砲)의 일종이 될 것이다.
또, 천문경(天文鏡)은 하늘을 관찰하는 망원경(望遠鏡)의 일종이 될 것이며, 조담경(照膽鏡)은 인체 내부를 관찰하는 의료기구(醫療機具)가 되고, 구석편(驅石鞭)은 돌을 멀리가지 날리는 새총이나 원반돌리기 등과 같은 원리로 만든 장치가 되며, 자명종(自鳴鍾)은 일정한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울리는 종(鍾)이나 종이 달린 시계가 되고, 경중누기(輕重漏器)는 물이 새는 정도를 측정하는 그릇 모양의 기구(器具)가 되며, 연적(涓滴)은 벼루에 물을 떨어뜨리는 소형의 그릇이 되는 도구이고, 발뇌동용기(發雷動舂器)는 사람의 힘으로가 아닌 폭발장치에 의하여 방아를 찧는 자동장치로 된 기구(器具)가 되며, 소금(素琴)은 거문고의 일종이 되고, 천리상응기(千里相應器)는 거리를 재는 기구(器具)이며, 목류마(木流馬)는 나무로 만든 목마(木馬)의 일종으로서 걸어가도록 제작된 것이고, 진천뢰(震天雷)는 하늘을 울리며 폭발하는 폭탄의 일종이 될 것이다.
또, 어풍승천기(御風昇天機)는 바람을 이용하여 하늘로 떠 오르게 만든 기구(機具)이며, 흡기잠수선(吸氣潛水船)은 공기를 축적하여 물 속을 잠수하면서 사람이 숨을 쉴 수 있도록 만든 배이고, 측천기(測天機)는 날씨나 기후를 측정하는 기구(機具)이며, 양해기(量海機)는 바닷물의 썰물과 밀물 도는 바닷물의 깊이 등을 측정하는 기구(機具)이고, 양청계(量晴計)는 날씨의 맑음과 흐림 등을 측정하는 계기(計器)이며, 측우기(測雨機)는 비가 얼마라 오는지를 측정하는 계기가 달린 기구장치(機具裝置)이고, 측한계(測寒計)는 날씨가 얼마나 추운가를 측정하는 계기(計器)이며, 측서계(測暑計)는 날씨가 더운 정도를 측정하는 계기(計器)이고, 황룡선(黃龍船)은 배의 일종이며, 양수기(揚水機)는 물을 퍼 올리는 기계장치(機械裝置)가 될 것이다.
위 발명품의 명칭에서 계(計)는 양(量)의 정도를 가리키는 침(針)이 달린 소형(小形)의 측정장치(測定裝置)이고, 기(器)는 그릇 모양으로서 양(量)을 측정하거나 담는 기구(器具)가 되며, 기(機)는 계기(計器)를 달아 측정할 수 있도록 만든 대형(大形)의 장치이거나 작동하게 만든 기계장치(機械裝置)가 된다.
[3월 제천행사(祭天行事)]
서기전1846년 3월에 삼신(三神)을 산(山)의 남쪽에서 제사를 지냈으니 술과 음식을 갖추어 올리고 치사를 드리며 제사를 올렸다. 그날 밤 특별히 술을 하사하시어 여러 사람들과 더불어 술잔을 돌려가며 술을 마시면서 여러 가지 재주들을 관람하셨다. 이 자리가 끝나자 마침내 누각(樓閣)에 오르시어 천부경(天符經)에 대하여 논하시고 삼일신고(三一神誥)를 강연하시더니 오가(五加)를 돌아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이제부터는 살생(殺生)을 금하고 방생(放生)하며 옥문(獄門)을 열고 떠도는 사람에게 밥을 주어 살 수 있도록 하며 사형제도(死刑制度)를 없애노라” 하셨다. 이에 모든 사람들이 이를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여기서 3월은 음력으로 늦봄으로 특히 3월 15일은 단군왕검 천제(天帝)의 어천(御天日)일이며, 다음날인 3월 16일은 삼신영고제(三神迎鼓祭) 행사를 여는 날로서 소위 대영절(大迎節)이라고도 하는 날이다. 한편, 10월 상달에는 나라 전체의 온 백성들이 참여하여 삼신(三神)께 한해의 농사에 대한 감사를 드리고 한해를 여는 취지로 제천행사(祭天行事)를 벌이고 가무(歌舞)를 즐기며 문무(文武)를 겨루는 등의 국중대회(國中大會)를 열었다.
이때 삼신(三神)께 제(祭)를 올린 산(山)은 전기 단군조선의 수도가 있던 송화강 유역의 아사달(阿斯達) 부근에 위치한 산이 될 것이다.
도해 천왕께서 직접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神誥)를 강연하신 것으로 보아, 역대 단군 천왕들이 참전계경(參佺戒經)을 포함한 종교철학의 정수(精髓)라 할 수 있는 천부삼경(天符三經)을 국자랑(國子郞) 시절부터 배우고 익히고 독송(讀誦)함으로써 심신을 수련하였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도해 천왕이 살생(殺生)을 금하고 방생(放生)하며 옥문(獄門)을 열고 떠도는 사람에게 밥을 주어 살 수 있도록 하며 사형제도(死刑制度)를 없앰으로써, 죄 지은 자를 용서하여 일반백성으로 받아들이고 굶지 않도록 하여 홍익인간(弘益人間)을 실천하고, 만물이 평등하므로 미물(微物)이나 다른 동물 또는 물고기를 함부로 죽이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취하고 놓아 살려서 번성하게 함으로써 개물(開物), 홍익제물(弘益濟物)을 실천하였던 것이 된다.
[도해 천왕을 기리는 삼년상(三年喪)]
서기전1835년 병술년(丙戌年)에 천왕께서 붕하시니 만백성이 이를 슬프게 여김이 마치 부모상을 당함과 같아서, 삼년동안 근신하며 온 누리에 음악, 노래소리가 끊겼다.
뒤를 이어 우가(牛加) 아한이 즉위하였다.
도해 천왕은 명신(名臣)인 유위자 선인의 헌책을 받아들여 배달나라 개천 시조 한웅천황을 모시는 대시전을 건립하여 홍익인간, 홍익제물의 이념을 고취시키는 등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로부터 추앙받은 것이 된다.
우가(牛加)는 농사담당으로서 단군조선 시대에 삼사오가(三師五加) 중 요직(要職) 중의 요직이었다고 보이며, 우가(牛加) 아한(阿漢)은 도해 천왕의 태자(太子)가 아닌 다른 아들로서, 태자의 자리가 궐위(闕位)되었거나 즉위(卽位)를 사양함으로써 화백회의(和白會議)에서 천왕으로 추대되어 즉위한 인물이 될 것이다.
조홍근 한문화사업총단 대표/천산역사연구원장/천부역(天符易)과학원장/마고족보연구원 대표/세계무궁화축제문화사업회 이사/독도 대마도 동해 만주 수호회복단 이사/천웅도 문무원 이사/광개토황비문연구원 이사/천부어문연구원 이사/산삼문화사업단 이사/한국삼협회 고문/홍익정치연구원 이사/한문화컨텐츠개발원 이사/한문화유물문화재연구원 이사/한문화사업단 이사/행운천지인 역리풍수 대표/(주)한문화개발 고문/플러스코리아타임즈 이사/춘천고조선유적지보전협의회 총괄기획위원장/천부풍수연구원 이사/풍수지리신문 편집국장/현 법무사/저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마고할미로부터 7만년> <생활사주> <생활기문> <천부풍수> <천웅도와 홍익인간><우리말글과 세계언문역사>외 ------------------------------------------------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3년 역사를 정립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