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전1891년 경인년(庚寅年)에 도해(道奚) 천왕께서 오가(五加)에 명을 내려 열두 명산(名山)의 가장 빼어난 곳을 골라 국선소도(國仙蘇塗)를 설치하게 하였으며, 둘레에 박달나무(檀木)를 많이 심은 후, 가장 큰 나무를 골라서 한웅상(桓雄像)으로 봉(封)하여 모시고, 여기에 제(祭)를 지내며 웅상(雄常)이라고 불렀다.
국선(國仙)은 나라에서 선발된 선인(仙人)이다. 즉 단군조선 전체의 국선(國仙)이 된다. 여기서 선(仙)은 종(倧)과 전(佺) 총칭한 것이 될 것이다. 종(倧)은 선인(仙人)으로서 스승이 되며, 전(佺)은 참전계경(參佺戒經)의 가르침을 실행(實行)하는 도랑(徒郞)으로서 종(倧)의 가르침을 따르는 무리가 된다.
특히 선(仙)은 평화시대에는 산속에 있으면서 수도(修道)를 하고 제자(弟子)를 가르치다가, 나라에 일이 있거나 부름이 있으면 이에 응하여 인세(人世)를 구하러 속세로 나왔다가 일이 완성되면 다시 산으로 돌아가는, 의로움을 실천하는 사나이(山人)를 의미하기도 한다.
소도(蘇塗)는 국선(國仙)이 하늘에 제(祭)를 올리는 신성지역(神聖地域)이다. 단군천왕이 직접 제(祭)를 올리는 곳이기도 하다. 소도는 신성지역임을 나타내는 솟대로써 표시하는 곳이 된다. 즉 소도와 솟대는 원래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이 될 것이다. 솟대는 솟은 나무 기둥 위에 기러기나 오리 등의 새를 조각하여 얹어 놓은 높은 대(臺)를 가리키는데, 특히 기러기는 북쪽을 왔다갔다 하는 철새인 바, 북쪽은 사방 중에서 가장 높은 자리이며 신(神)을 모시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신(神)을 모시는 곳임을 표시하는 솟대와 하늘에 제(祭)를 올리는 소도(蘇塗)는 같은 곳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국선소도(國仙蘇塗)를 설치한 곳이 전국으로 12개의 명산(名山)이 되는데, 12라는 숫자는 하늘을 상징하는 수 1과 땅을 상징하는 수 2가 함께 조합되어 합산하면 사람의 숫자인 3이 된다. 10천간 12지의 12와도 상관되는 숫자로서 땅에서의 방향을 나타내는 완전한 숫자가 되는데, 서기전3500년경 태호복희가 지구가 자전을 하면서 나타내는 하루 시간을 12시(時)로 나눈 것과 방위을 12방으로 나누는 것과도 연관된다.
국선소도(國仙蘇塗)의 둘레에 박달나무(檀木)를 많이 심고서 그 중에서 가장 큰 나무를 골라 한웅상(桓雄像)을 받들어 모시고 제(祭)를 올렸으며 웅상(雄常)이라고도 하였다.
한웅(桓雄)의 모습(像)으로 모신 박달나무가 웅상(雄常)이다. 웅상(雄常)은 한웅께서 늘 계신다는 의미이다. 한웅천왕께서 서기전3897년 갑자년에 하늘나라인 한국(桓國)에서 밝은 땅 나라인 박달(檀)로 오실 때 태박산(太白山)의 박달나무(檀木) 즉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오셨다. 그리하여 박달나무를 한웅상(桓雄像)으로 모신 것은 한웅천왕이 하늘나라에서 박달나무 아래로 오신 것과 연관된다.
산해경(山海經) 해외서경(海外西經)의 기록에, 웅상(雄常)에 관한 내용이 있는데, 다섯가지 천연색의 옷감을 걸친 신단수(神檀樹)가 있는 소도지역임을 나타내고 있다.
산해경의 해외서경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대황(大荒)의 가운데에 산이 있어 불함(不咸)이라 하며 숙신씨(肅愼氏)의 나라이고, 숙신국(肅愼國)은 백민국(白民國)의 북쪽에 있으며, 나무가 있어 이름하여 웅상(雄常)이라 하고, 앞선 8대의 임금(帝)들이 여기에서 취하였다(大荒之中 有山 名曰不咸 肅愼氏國 肅愼之國 在白民之國北 有樹 名曰雄常 先八代帝 於此取之).
여기서 대황은 황하 북쪽 지역 전체인 대황원(大荒原)을 가리키며, 불함산은 곧 단군조선의 태백산(太白山)인 백두산(白頭山) 또는 숙신국의 땅에 있던 불함산이 되는데, 실제 숙신씨의 나라는 단군조선의 제후국으로서 송화강 동쪽과 북쪽지역에 있던 나라가 되어, 정확히 어느 산을 가리키는지는 불명하다.
백민국은 성(城)에 해당하는 백민성(白民城)을 나라(國)로 부른 것이 되는데, 숙신국이 백민성의 북쪽에 위치하였던 것이 된다. 서기전426년에 우화충(于和冲)의 난이 일어나자 물리(勿理) 천왕의 명을 받아 난을 진압한 구물(丘勿)이라는 인물이 백민성(白民城) 욕살(褥薩)이었다라고 기록된다.
숙신국(肅愼國)을 지금의 백두산을 포함한 만주(滿洲) 지역을 통칭한 용어라면 불함산(不咸山)이 백두산(白頭山)일 가능성이 있으나, 백민성(白民城)이 진한(眞韓) 땅에 있었던 것이 분명한 것으로 보아 백민성은 숙신과 옥저(沃沮)의 사이 또는 옥저의 땅에 위치하였던 것이 되는 바, 여기서 말하는 불함산은 단군조선 진한의 제후국이던 숙신국(肅愼國) 지역에 있었던 것이 된다.
한편, 서기전2333년 10월 3일에 개국된 단군조선의 수도가 숙신(肅愼)의 땅에 속하는 송화강 아사달(阿斯達)이 되는 바, 전기 단군조선을 대칭(代稱)으로 숙신이라 할 수도 있어 여기서 말하는 불함산이 백두산임을 배제할 수는 없다. 서기전1285년에 시작된 후기 단군조선의 수도가 부여(扶餘) 땅인 상춘(常春)의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 鹿山)에 있어 후기 단군조선을 그냥 부여(扶餘)라고 부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가 된다.
웅상에서 무엇을 취하였다라고 적은 것은, 또 다른 중국측 기록인 진서(晋書) 동이전(東夷傳)을 보면 알 수 있게 되는데, 진서 동이전에는 웅상(雄常)이 아닌 낙상(雒常)으로 적고 있으며, 낙상은 웅상을 오기한 것이 명백하게 된다.
진서 동이전의 기록은 아래와 같다.
숙신씨에 나무가 있어 낙상이라 부르며, 만약 중국(中國)에서 성제(聖帝)가 대(代)를 이어 즉위함이 있으면, 그 나무의 날가죽으로 가히 옷을 해 입을 만 하였다(肅愼氏 有樹 名雒常 若中國 有聖帝代立 則其木生皮可衣).
중국에서 대를 이어 즉위한다는 것은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임금자리를 잇는 경우를 가리키는데, 산해경의 해외서경에 기록된 8대제(代帝)가 진서 동이전에서 말하는 성제(聖帝)로서 대를 이어 즉위하는 임금이 된다.
8대제(代帝)는 고대중국의 대를 이은 임금 즉 천자(天子)로서, 소위 삼황오제와 하은주의 시조 왕을 가리킨다. 즉 태호복희(太皞伏羲), 염제신농(炎帝神農), 황제헌원(黃帝軒轅)의 소위 삼황(三皇)과, 소호금천(少昊金天), 전욱고양(顚頊高陽), 제곡고신(帝嚳高辛), 요(堯), 순(舜)의 소위 5제(帝)와, 하(夏)나라 시조 우(禹), 은(殷, 商)나라 시조 탕(湯), 주(周)나라 시조 무왕(武王)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다만, 이 8대제(代帝)가 소위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여덟 임금를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소위 오제(五帝)와 하은주(夏殷周) 3대(代)의 건국시조 왕(王)을 가리키는지가 불명하다. 물론 단군조선 시대의 제후국이 되는 숙신(肅愼)이라는 말에서 단군조선 시대를 가리키는 것이 되어 요순(堯舜), 하은주(夏殷周) 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게 된다.
8대제(代帝)를 서기전3500년경 인물인 태호복희(太皞伏羲), 서기전3200년경 인물인 염제신농(炎帝神農), 서기전2698년경 인물인 황제헌원(黃帝軒轅)의 소위 삼황(三皇)과, 황제헌원 이후 황제헌원의 나라, 유웅국(有熊國)를 이은 소호금천(少昊金天), 전욱고양(顚頊高陽), 제곡고신(帝嚳高辛), 요(堯), 순(舜)의 소위 5제(帝)로 보면, 배달나라 시대와 단군조선 초기에 해당한다.
한편, 서기전2698년 이후의 소위 5제(帝)와 서기전2224년의 하(夏)나라 시조 우(禹), 서기전1766년의 은(殷, 商)나라 시조 탕(湯), 서기전1122년의 주(周)나라 시조 무왕(武王)을 합하여 8대제(代帝)라 한 것이라면, 배달나라 말기와 단군조선 시대가 된다.
여기서 황(皇)은 제(帝)와 거의 통하는 자리로서 함께 써서 황제라고도 하는데, 왕(王)은 황(皇)과 같거나 아래이며 제(帝)의 아래 자리로서, 왕을 극존칭하지 않는 한 결코 황제(皇帝)라고 하지 않으며, 만약 왕(王)이 스스로 황제(皇帝)라고 칭한다면 대역죄(大逆罪)에 해당한다.
숙신국(肅愼國)은 단군조선 초기에 이미 봉해진 제후국(諸侯國)으로서 요순(堯舜) 시대에도 존재하였던 것이며, 원래 산해경(山海經)이라는 책이 순(舜)임금의 신하이던 사공(司空) 우(禹)가 서기전2267년 단군조선의 태자부루(太子扶婁)가 주관(主管)한 도산회의(塗山會議)에서 치수법(治水法)을 전수받고서 우공(虞貢)의 사례(事例)로서 서기전2267년부터 서기전2247년 사이 약20년간에 우(禹)와 백익(伯益)이 치산치수(治山治水)와 관련하여 산천(山川)의 지리(地理)와 특산물(特産物) 등을 조사하여 엮은 책이 된다.
그리하여 산해경이 처음 엮어진 시기를 고려하면, 이 시대는 순임금 시대가 되어 8대제는 순임금 이전의 임금이 되어 소위 삼황오제(三皇五帝)를 가리키는 것이 되는 것이다.
나무의 생 껍질로 옷을 해 입을 만 하였다라는 것은, 즉위 의식으로서 박달나무 즉 웅상(雄常)의 나무 껍질로 옷을 해 입었다라는 것이 되고, 이는 고대 중국의 소위 삼황오제가 배달나라와 단군조선 천국(天國)의 제후(諸侯)가 되는 천자(天子)임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글이 된다.
즉, 제후는 임금으로부터 봉해지는 직책이다. 그리하여 천자(天子)는 천국(天國)의 천왕(天王)이나 천제(天帝)로부터 봉해지는 봉작(封爵)의 하나로서 곧 자작(子爵)이 된다.
상국(上國)이나 중앙조정(中央朝廷)의 임금을 천왕(天王), 천제(天帝)라 한다. 즉 왕(王)의 상국의 임금은 천왕(天王)이 되고 제(帝)의 상국의 임금은 천제(天帝)가 되는 것이다.
천자(天子)는 일반적으로 천하 왕(天下王)이 된다. 즉 천상(天上)의 왕인 천군(天君), 천왕(天王), 천제(天帝)와는 다르며, 천하(天下) 즉 지상의 인간세계 또는 지방(地方)의 왕이 되는 것이다.
천자(天子)와 천군(天君)은 단적으로 하늘나라의 자작(子爵)과 군(君)으로서 하늘과 땅 차이가 있는 것이 되며, 하늘에 직접 제사를 지낼 수 있는 권한(權限)이 천군(天君)에게는 있으나 천자(天子)에게는 없으며, 천자는 다만 명(命)을 받아 행하거나 봉선(封禪)을 행할 뿐이다. 일반 제후로서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이 있으며, 이들의 앞에 천(天)이라는 글자를 붙이면 곧 하늘나라(天國)이나 상국(上國) 또는 중앙조정의 제후들이 되는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이 되는 것이다.
단군조선의 단군을 제(帝)라고 적을 때는 진짜 천국(天國) 즉 하늘나라의 임금은 천제(天帝)라고 하며, 단군조선의 비왕(裨王)인 마한(馬韓)과 번한(番韓)의 임금을 왕(王)이라고 할 때는 진한(眞韓)의 임금은 천왕(天王)이 되는 것이다. 특히 단군왕검은 천왕에 해당하는 진한 태자부루를 봉하였으므로 천제(天帝)라 받드는 것이 된다. 천제(天帝)는 인격신(人格神)에 해당하고 천신(天神)은 자연신에 해당한다. 즉 천제(天帝)는 천신(天神)의 화신(化身)인 것이다.
특히 고대중국의 소위 삼황오제(三皇五帝)와 후대의 왕(王)들은 스스로 천자(天子)라고 칭하였다. 즉 스스로 하늘나라에서 봉해진 자작(子爵)으로서 천하의 왕을 자칭한 것이다. 이는 곧 고대중국의 임금이 되는 소위 삼황오제(三皇五帝)가 모두 상국(上國)이 되는 배달나라(檀國)와 단군조선(檀君朝鮮)의 제후로서 봉해진 천하(天下) 즉 지방(地方)의 왕이 되는 것이다.
태호복희는 한웅천왕(桓雄天王)의 아들로서 천군(天君)에 해당하고, 나머지 염제신농 이하 요순(堯舜)까지는 모두 일반 천자(天子)에 해당한다. 천자(天子)를 극존칭하여 태상천자(太上天子) 등은 몰라도 천왕(天王)이라고 칭하거나 부를 수 없으며, 만약 이와 같이 참칭(僭稱)하거나 부르는 경우에는 상국(上國)의 천왕(天王)을 모독하는 대역죄를 짓는 것이 된다.
공자(孔子)는 예기(禮記)에서 천자(天子)가 돌아가시면 천왕(天王)이라 존칭한다라고 적고 있으나, 단군조선의 천왕(天王)이 엄연히 존재하던 시기이므로 예(禮)에 어긋나는 것이 되며 대역죄에 해당하는 것이다. 천자(天子)가 죽으면 태상천자(太上天子)라 하거나 천자(天子)보다 높은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이라 함은 몰라도 천왕(天王)이라 함은 가당치 않은 것이 된다. 이로써 공자(孔子)는 핵심중화주의자(核心中華主義者)로 낙인 찍히는 것이며 신선불사 예의군자(神仙不死禮義君子)의 나라인 단군조선 구이(九夷)를 감히 글로써 모독(冒瀆)한 자가 되는 것이다.
임금이 제후를 봉함에는 일정한 의식(儀式)을 거행한다. 그리하여 천자(天子)를 봉함에도 의식을 치르는 것이 된다. 즉, 배달나라와 단군조선의 천왕(天王), 천제(天帝)가 천자(天子)를 봉하면서 옷을 해 입힌 것이다. 그 옷의 옷감이 곧 웅상(雄常)인 박달나무의 생껍질이라는 것인데, 웅상(雄常)은 곧 신단수(神檀樹)인 바, 나무껍질은 이 신단수에 걸쳐진 삼색(三色), 오색(五色) 등의 천연색 옷감을 비유적으로 기록한 것이 되어, 가히 옷을 해 입을 만 하였다라고 적은 것은, 웅상에 걸쳐진 옷감으로써 천자(天子)에게 하사(下賜)하는 옷을 만들었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 된다.
[국자사부 유위자(有爲子)의 헌책(獻策)]
서기전1891년 경인년에 국자사부(國子師傅)로 있던 유위자(有爲子)가 계책을 바쳐 올려 말하기를, “생각컨대, 우리 신시(神市)는 한웅의 개천(開天) 때로부터 무리를 받아들여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을 계율(戒律)로 세워서 교화(敎化)하였으되, 천경(天經)과 신고(神誥)는 조칙(詔勅)에 의하여 위에서 짓고, 의관(衣冠)과 대일(帶釰)은 아래로 즐거이 본을 보였으니, 백성들은 죄를 짓지 않고 함께 다스려져 들에는 도둑이 없어 저절로 편안하며, 온 세상의 사람들은 질병이 없어 스스로 오래 살고, 굶주림 없이 스스로 넉넉하며, 산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달을 맞아하여 춤을 추매, 멀리까지 이르지 아니한 곳이 없고 흥하지 아니한 곳이 없었으니, 덕의 가르침은 만 백성들에게 더하여 노래하는 소리가 사해(四海)에 넘쳤사옵니다. 이러한 청이 있사옵니다(惟我神市 實自桓雄 開天納衆 以佺設戒 而化之 天經神誥詔述於上 衣冠帶釰樂効於下民 無犯而同治 野無盜而自安 擧世之人 無疾而自壽 無歉而自裕 登山而歌 迎月而舞 無遠不至 無處不興 德敎加於萬民 頌聲溢於四海 有是請).”하였다.
국자사부(國子師傅)는 국자랑(國子郞)의 사부(師傅)를 가리킨다. 단군조선 시대에 국자랑이라는 기관이 있었던 것이 되는데, 고려(高麗) 시대에도 같은 제도가 있었다. 신라시대의 화랑(花郞)이라는 제도에 해당한다. 국자랑은 글자 그대로 왕족이나 귀족들의 자제들을 대상으로 하여 심신수련(心身修練)으로 교육시키는 기관이 된다.
천제(天帝)의 아들이 천제자(天帝子)이며 천왕랑(天王郞)이 되는데, 한웅천왕(桓雄天王)이 한인(桓因) 천제(天帝)의 아들로서 천왕랑(天王郞)이었으며 천웅(天雄)이기도 한데, 서자부(庶子部) 대인(大人)으로 직을 수행하다가, 서기전3897년경에 한인천제의 명(命)을 받아 호족(虎族)과 웅족(熊族)의 난(亂)을 진압하고 이화세계(理化世界), 홍익인간(弘益人間) 세상을 펼친 것이 된다.
서기전239년에 백악산아사달을 차지한 해모수(解慕漱)가 천왕랑(天王郞)이라 칭하며 실질적인 천왕(天王) 노릇을 하였는데, 이 천왕랑이 곧 천왕(天王)의 자격(資格)이 있는 천제(天帝)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천제(天帝)는 단군조선의 천왕(天王)을 존칭한 것이 되며, 하늘로 돌아가신 천왕(天王)을 천제(天帝)라 부르는 것이 되기도 한다.
천경(天經)은 천부경(天符經)을 가리킨다. 천부경은 무극(無極), 천지인(天地人) 삼태극(三太極), 다시 무한순환하며 변화하는 무극(無極)의 원리로써 역(易)의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는 81자로 된 소위 조화경(造化經)이다. 신고(神誥)는 삼일신고(三一神誥)를 가리키며 천지인의 정의와 천지인 합일의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는 366자로 된 소위 교화경이다. 이 천부경과 삼일신고는 참전계경(參佺戒經)과 더불어 늦어도 한국(桓國) 시대의 중기가 되는 서기전6200년경 이전에 정립된 것으로 된다.
배달나라 시대에 이미 갓을 쓰고 칼을 차고 다닌 것이 된다. 갓은 머리에 쓰는 모자인데, 벼슬(冠)하는 사람임을 나타내는 것이 된다. 일반백성들이 차고 다니는 칼은 진검(眞劍)이 아니라 무딘 칼로서 수련을 위한 칼이 된다.
특히 갓(冠)은 단군조선 시대의 화폐가 되는 소위 명도전(明刀錢)에 글자로 새겨져 있기도 하다. 아마도 절풍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새의 깃(羽)을 갓(冠)의 옆쪽에 꽂았던 것으로 보인다.
백성들은 죄를 짓지 않고 함께 다스려져 들에는 도둑이 없어 저절로 편안하며, 온 세상의 사람들은 질병이 없어 스스로 오래 살고, 굶주림 없이 스스로 넉넉하며, 산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달을 맞이하여 춤을 추매, 멀리까지 이르지 아니한 곳이 없고 흥하지 아니한 곳이 없었으니, 덕의 가르침은 만 백성들에게 더하여 노래하는 소리가 사해(四海)에 넘쳤다 하는 것에서, 배달나라 시대는 법은 있으나 법이 필요 없으며, 심신수련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농사법으로 풍년이 들어 풍족한 생활을 하며, 풍월(風月)을 즐기던 지상낙원(地上樂園)과 다름없는 홍익인세(弘益人世)였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이와 같이 국자사부 유위자는 도해 천왕께 배달나라 시대에 행해진 교화(敎化)와 덕치(德治)를 본 받자고 방책(方策)을 올린 것이 된다. 이리하여 이후 도해(道奚) 천왕께서는 대시전(大始殿)을 건립하여 배달나라 시조 한웅천왕(桓雄天王)의 상(像)을 걸고 거발한(居發桓)이라고 부르며, 천지인(天地人)의 큰 도(道)와 큰 일(事)을 칭송하고, 한웅천왕의 교화(敎化)와 덕치(德治)를 칭송하였던 것이며, 이를 돌에 새겨 후세에 영원토록 전해지게 하였던 것이다.
[대시전(大始殿) 건립]
서기전1891년 경인년 겨울 10월에 명을 내려 대시전(大始殿)을 세우도록 하고 매우 장려하도록 하였다. 옛 천제한웅(天帝桓雄)의 상(像)을 받들어 모셨는데, 머리 위에는 광채가 번쩍여 마치 큰 해와 같았으니 둥근 빛이 있어 온 우주를 비추며, 박달나무 밑 한화(桓花)의 위에 앉아 계셔 진짜 신(神)과 같았으니 둥근 원의 중심이 있어 천부인(天符印)을 지니셨으며, 대원일(大圓一)의 그림을 누전(樓殿)에 표(標)하여 걸어 놓으니 이를 일러 거발한(居發桓)이라 하였다. 사흘 동안 재계하고 이레 동안 강연(講演)연하시니 위풍(威風)이 사해(四海)를 움직이듯 했다.
그 기원하는 마음을 표(標)한 글에 이르되,
“하늘은 현묵(玄黙)으로써 그 큰 도(道)는 보원(普圓)으로, 그 큰 일은 진일(眞一)로 삼고, 땅은 축장(蓄藏)으로써 그 큰 도(道)는 효원(効圓)으로, 그 큰 일은 근일(勤一)로 삼고, 사람은 지능(知能)으로써 그 큰 도(道)는 택원(擇圓)으로, 그 큰 일은 협일(協一)로 삼으니,
이와 같이 단군조선 제11대 도해(道奚) 천왕은 국자랑의 사부(師傅) 유위자(有爲子)의 헌책을 받아들여 배달나라 개천시조 한웅천왕(桓雄天王)의 교화(敎化)와 덕치(德治)를 본받아 홍익인간의 낙원시대를 만들기 위하여, 한웅천왕을 기리기 위하여 대시전(大始殿)을 건립하도록 하고, 몸소 개천교화(開天敎化)의 원리인 천지인(天地人)의 도(道)에 관한 강연을 하였다.
대시전(大始殿)은 홍익인간 세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크게 시작한 한웅천왕을 모신 신전(神殿)이다. 불교(佛敎)로 말하면 사찰(寺刹)의 대웅전(大雄殿)에 해당한다. 원래의 역사로 따진다면, 원래 절(寺)이라는 곳은 시간에 맞추어 업무를 보면서 삼성(三聖) 또는 삼신(三神)에게 기도하는 곳으로서 삼성각(三聖閣) 또는 삼신각(三神閣)이 있는 곳이다.
즉,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에는 우리 역사에서 홍익인간 세상을 실현하여 지상낙원을 만드신 한국(桓國)의 한인(桓因), 배달나라 개천시조 한웅(桓雄), 단군조선 개국시조 단군왕검(檀君王儉) 즉 삼성(三聖)의 초상화를 받들어 모시고 기리며 절(拜)하던 곳인 것이다. 또 삼성(三聖)으로서 하늘로 돌아가시어 삼신(三神)이 되셨으니, 마고(麻姑) 이후 황궁(黃穹), 유인(有因), 한인(桓因), 한웅(桓雄), 치우(治尤), 단군왕검을 삼신(三神)으로 모시는 것이다.
머리 위에는 광채가 번쩍여 마치 큰 해와 같았으니 둥근 빛이 있어 온 우주를 비추었다는 것은, 한웅천왕이 도를 깨달은 각자(覺者) 즉 부처임을 나타내는 것이며, 박달나무 밑 한화(桓花)의 위에 앉아 계셔 진짜 신(神)과 같았으니 둥근 원의 중심이 있어 천부인(天符印)을 지니셨다는 것은, 배달나라를 처음 시작한 박달나무 아래 무궁화 꽃이 만발한 단(壇)위에 앉아 계시는 모습이 마치 천상(天上)의 신(神)이 하강한 모습이며,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상징하는 원방각(圓方角)의 도형(圖形)을 그린 표식을 지니셨다는 것이다.
천부인(天符印)은 곧 천부삼인(天符三印)인 바, 도형(圖形)으로는 하늘, 땅, 사람을 상징하는 원방각(圓方角)이며, 증거물(證據物)로는 거울, 방울 또는 북, 칼이며, 말씀으로 된 가르침으로는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參佺戒經)이 된다.
천부삼인의 증거물이 되는 거울, 방울 또는 북, 칼은 그 역할의 상징성으로 인하여 배달나라 정치기구로서는 풍백, 우사, 운사에 해당한다. 즉 거울, 방울 또는 북, 칼은 홍익인간 세상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권한을 부여한 부인(符印) 즉 증거물인 것이다.
거울은 천성(天性), 방울이나 북은 천음(天音)으로서 천법(天法), 칼은 천권(天權)을 상징한다. 즉, 거울은 하늘과 하늘의 대표격인 태양(太陽)이자 천성(天性)인 인간의 본성(本性)을 상징하며 항상 본성을 되돌아 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 하늘의 법 즉 천법(天法)을 새기고, 방울 또는 북은 하늘의 소리 즉 천음(天音)으로서 이치에 따르는 하늘의 법 즉 천법(天法)을 상징하며 하늘의 법을 실행함을 의미하고, 칼은 천성(天性)을 어기어 천법(天法)에 위반하는 악행(惡行)을 처단하는 천권(天權)을 상징하며 세상을 바로 잡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리하여 거울은 나라의 법을 세우는 입법관(立法官)인 풍백(風伯), 방울이나 북은 법을 시행하는 행정관(行政官) 또는 시정관(施政官)인 우사(雨師), 칼은 법을 위반하는 악행자를 처단(處斷)하는 사법관(司法官)인 운사(雲師)를 각 상징하는 것이다.
한웅천왕은 홍익인간 세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하늘나라 즉 한국(桓國)의 가르침을 폈으니, 곧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이다. 천부경(天符經)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원래 하나이며 하나로 되돌아 가는 역(易)의 원리를 81자로 가르치며, 삼일신고(三一神誥)는 하늘과 땅과 사람이 무엇이며 사람이 하늘과 땅과 하나가 되는 법을 366자로 가르치고, 참전계경(參佺戒經)은 하늘의 법과 땅의 법과 인간세상의 법에 합치하는 완전한 인간이 되는 가르침을 366조목으로 가르치는 경전(經典)이다.
한웅천왕의 상(像)을 그린 대원일(大圓一)의 그림을 누전(樓殿)에 걸고 거발한(居發桓)이라 하였는데, 대원일(大圓一)은 보원(普圓), 효원(效圓), 택원(擇圓)의 삼원(三圓)을 하나로 이르는 것이며, 거발한은 크게 밝고 환하다는 의미로서 한웅천왕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일신(一神)이 내리어 속이 충만하시고(一神降衷), 천성(天性)이 통하여 밝고 밝으며(性通光明,) 천지인의 이치로서 세상을 다스려(在世理化), 홍익인간(弘益人間) 세상을 펼치신 천웅천왕(桓雄天王)이 곧 세상을 밝히는 광명(光明) 그 자체인 것이다.
[마한(馬韓) 대성산(大聖山)의 대시전(大始殿) 건립]
서기전1891년 경인년 마한(馬韓) 아화(阿火) 시대에, 때에 도해(道奚) 천왕이 바야흐로 뜻을 세워 개화평등(開化平等)을 다스림으로 삼았으며, 명을 내려 대시전(大始殿)을 대성산(大聖山)에 세우고 큰 다리를 대동강(大同江)에 세웠으며, 삼홀(三忽)로 전(佺)을 삼아 경당(扃堂)을 설치하여 칠회제신(七回祭神)의 의식(儀式)을 정하고 삼륜구서(三倫九誓)의 가르침을 강론(講論)하게 하니 한도(桓道) 문명(文明)의 번성함이 나라 밖까지 들렸다.
도해(道奚) 천왕은 마한(馬韓) 아화(阿火)에게 명하여 마한의 수도인 백아강(白牙岡) 지역의 대성산(大聖山)에 한웅천왕(桓雄天王)을 모신 대시전(大始殿)을 세우게 하고 대동강(大同江)에 다리를 놓게 하였다. 이는 한웅천왕 시대의 홍익인간 세상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하는 의지의 발로였던 것이 된다.
삼홀을 기준으로 미혼의 자제들을 모아 참전(參佺)의 도(道)를 닦게 하는 전(佺)을 삼아 소도(蘇塗)를 설치하고, 소도 옆에는 경당(扃堂)을 설치하여, 소도에서는 칠회제신(七回祭神)의 의식을 행하고 경당에서는 삼륜구서(三倫九誓)를 비롯하여 6예(藝)를 닦게 함으로써 홍익인간 문명이 번성하게 되었던 것이 된다.
삼홀(三忽)은 즉 세 고을(골, 忽, 卒)을 의미하며, 홀은 대략적으로 지금의 군(郡) 단위의 크기가 되는 지역이 된다. 즉 일정 단위의 지방에 소도를 설치하고 그 옆에 경당을 설치하여 미혼의 자제로 하여금 소도제천의 의식을 행하게 하고 심신수련을 하게 하였던 것이다.
심신수련의 실체적인 과목으로는, 경당에서 육예(六藝)로 닦던 독서(讀書), 습사(習射), 치마(馳馬), 예절(禮節), 가악(歌樂), 권박일술(拳撲釰術)이다. 몸과 마음을 함께 수련하는 과목인데, 습사는 활쏘기 익히기로서 이(夷)라는 글자와 곧바로 통하며, 예절(禮節)로써 예의지국(禮儀之國)임을 바로 알 수 있다.
또, 활쏘기인 습사와 말달리기인 치마와 주먹치기인 권박과 무딘 칼로 익히는 검술(劍術)인 일술로써 무예(武藝)를 숭상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가악으로써 노래와 음악을 중시하고 즐겼음을 알 수 있는 바, 단군조선 시대에 나라의 기둥이 될 청소년들이 심신수련(心身修練)으로 문무(文武)와 음악적 예술을 겸비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도(蘇塗)에서 치르는 칠회제신(七回祭神)의 의식은, 한국(桓國) 시대에도 행해지던 것을 한웅천왕(桓雄天王)이 배달나라를 열고 재현(再現)하였던 것이 되는데, 일월수화목금토(日月水火木金土)라는 칠성신(七星神)에게 하루하루 제(祭)를 올리는 의식인 것이다.
즉, 첫날은 태양신인 일신(日神)에게, 두쨋날은 달신인 월신(月神)에게, 세쨋날은 수성신인 수신(水神)에게, 네쨋날은 화성신인 화신(火神)에게, 다섯쨋날은 목성신인 목신(木神)에게, 여섯쨋날은 금성신인 금신(金神)에게, 일곱쨋날은 토성신인 토신(土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것이다. 일월수화목금토의 기(氣)를 소위 음양오행(陰陽五行)이라 한다. 기(氣)는 신(神)의 작용으로서 만물(萬物)의 생장소병몰(生長消病歿) 등 변화(變化)의 원천(源泉)이다.
경당에서 가르침을 받는 삼륜구서(三倫九誓)는 세가지 윤리와 아홉가지 맹서를 가리키는데, 배달나라 시대에 이미 행해졌던 덕목들이다.
세가지 윤리덕목인 삼륜은, 가정에서는 부모에게 효(孝)를 다하고, 사회에서 배움에서는 스승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며, 나라에서는 군신간의 충의(忠義)를 다한다는 도(道)를 말하며, 곧 군사부(君師父) 일체의 도(道)를 지향한다.
아홉가지 지키고 행할 맹서(盟誓)의 덕목인 구서(九誓)는, 가정에서 효(孝)를 다하고, 형제간에 우애(友愛)있고, 스승과 벗과는 믿음(信)이 있으며, 나라에는 충성(忠誠)하고, 무리에게는 겸손(謙遜)하며, 정사(政事)에는 밝게 알고(明知), 전쟁터에서는 용감(勇敢)하며, 몸과 행동에는 청렴(淸廉)하며, 맡은 일에는 의로움(義)을 다한다는 것이다.
삼륜구서의 덕목은 오늘날에도 가정과 사회와 국가가 존재하는 한 가정과 사회와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반드시 실천해야할 귀중한 윤리의 덕목이기도 하다. 이러한 인간윤리의 덕목으로서 삼륜구서가 한웅천왕이 배달나라를 세우고 하늘을 연 때부터 이어져 온 배달조선의 윤리강령이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효충신용인(孝忠信勇仁)의 삼한오계(三韓五戒)가 나오며, 사친이효(事親以孝), 사군이충(事君以忠), 교우이신(交友以信), 임진무퇴(臨陣無退), 살생유택(殺生有擇)이라는 고구려 시조 고주몽 성제(高朱蒙聖帝)의 다물오계(多勿五戒)와 신라 화랑도(花郞道)의 세속오계(世俗五戒)가 나오는 것이며, 하은주(夏殷周) 시대에 홍익인간(弘益人間)의 덕치(德治)를 실현하던 단군조선(檀君朝鮮)의 문화적 영향 아래에서 형성된 인간윤리(人間倫理)가 춘추시대 공자(孔子)와 한(漢), 송(宋)을 거치면서 소위 유교(儒敎)의 삼강오륜(三綱五倫)으로 정립된 것이다.
대시전(大始殿)을 건립하고 삼홀(三忽)로 전(佺)을 삼아 소도(蘇塗)를 설치하고 경당(扃堂)을 설치하여 칠회제신(七回祭神)의 의식을 행하며 삼륜구서(三倫九誓)를 닦고 6예(藝)를 익히는 등 심신수련(心身修練)으로 문명을 부흥시키니, 한도(桓道) 문명(文明)의 번성함이 나라 밖까지 들렸다 하는 바, 그리하여 곧 이어 하(夏)나라의 왕 근(厪)이 마한(馬韓)에 사신을 보내어 방물을 바쳤던 것이다.
한도(桓道)는 한배달조선(桓檀朝鮮)의 재세이화(在世理化), 홍익인간(弘益人間) 등 도(道) 문명(文明)을 가리킨다. 하(夏)나라가 마한(馬韓)에 조공을 한 것으로 보아 하나라는 천왕격의 나라가 되는 마한보다 아래인 천자국(天子國)임이 드러나는 셈이다. 즉 하나라는 마한, 번한의 아래에 해당하는 일반 제후국에 불과한 것이 된다.다만,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수시로 반역한 역사가 있는 나라이긴 하지만, 단군조선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던 것이 된다.
[하왕(夏王) 근(厪)이 마한(馬韓)에 조공(朝貢)하다]
서기전1891년 경인년에 하나라 왕 근(厪)이 사신을 보내 마한(馬韓)에 방물(方物)을 바쳤다.
하나라 왕 근(廑)은 제14대 왕으로서 서기전1900년부터 서기전1879년까지 21년간 재위에 있었는데, 하나라의 수도였던 언사(郾師)에서 보아 마한(馬韓)은 번한(番韓)보다 바다 멀리 떨어진 것이 되는데, 마한에 사신을 보낸 것으로 보아 배를 타고 간 것으로 보인다.
우(禹)가 단군조선에 반역함으로써 하(夏)나라 건국시조가 된 이후에 단군조선에 조공(朝貢)을 한 예로는 서기전2133년에 제4대 오사구(烏斯丘) 천왕 시절에 해당하는 하나라 제5대왕 상(相) 시대와, 서기전2077년 번한(番韓) 호갑(虎甲) 시절에 해당하는 하나라 제7대왕 소강(少康) 시대와, 서기전1891년 마한(馬韓) 아화(阿火) 시절에 해당하는 하나라 제14대왕 근(廑)의 시대가 되는데, 그 외에도 교류 내지는 조공의 역사가 많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본다.
이처럼 하(夏)나라가 단군조선 진한(眞韓)이나 번한(番韓) 또는 마한(馬韓)에 조공을 한 것으로 보아, 하나라 스스로 단군조선의 제후격인 천자국(天子國)임을 깨닫고 예(禮)를 갖춘 것이 되며, 이로써 하나라는 안으로 정세가 안정되었던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조홍근 한문화사업총단 대표/천산역사연구원장/천부역(天符易)과학원장/마고족보연구원 대표/세계무궁화축제문화사업회 이사/독도 대마도 동해 만주 수호회복단 이사/천웅도 문무원 이사/광개토황비문연구원 이사/천부어문연구원 이사/산삼문화사업단 이사/한국삼협회 고문/홍익정치연구원 이사/한문화컨텐츠개발원 이사/한문화유물문화재연구원 이사/한문화사업단 이사/행운천지인 역리풍수 대표/(주)한문화개발 고문/플러스코리아타임즈 이사/춘천고조선유적지보전협의회 총괄기획위원장/천부풍수연구원 이사/풍수지리신문 편집국장/현 법무사/저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마고할미로부터 7만년> <생활사주> <생활기문> <천부풍수> <천웅도와 홍익인간><우리말글과 세계언문역사>외 ------------------------------------------------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3년 역사를 정립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