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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gs.jpg  정길선  북방유라시아 유목사 산책
 
  걸복선비의 중원 진출
  
   작성자 : 정길선
작성일 : 2017-05-19     조회 : 407  

걸복선비는 토욕혼, 농서지역에 정착하면서 세력을 키워갔다. 해당 지역은 원래 흉노의 점령지였고 흉노의 기원지로 추정되는 기련산(祁連山)과 언지산(焉支山)이 근교에 있었던 지역이었다. 그리고 두 산 근처에 독발선비가 자리 잡고 있었다. 걸복선비는 선비의 역사에 단 선비, 모용선비, 탁발선비처럼 큰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걸복선비는 앞서 서술한 단 선비와 다르다는 것이 5호 16국 시대에 중원에 진출하여 왕조를 건설하였다는 것에 있다.


* 중국사에서 서진(西秦)과 같이 중국의 국가 시조를 같은 종씨가 모시면서 두 번 연속 같은 왕조를 이루었던 국가는 고조 유방의 전한(前漢), 후한(後漢)과 무제 사마염의 서진(西晋), 동진(東晋), 태조 조광윤의 북송(北宋), 남송(南宋), 태조 주원장의 명(明), 남명(南明)을 들 수 있다.


걸복선비의 5호 16국 시대에 건국한 서진(西秦)은 걸복선비의 수장인 걸복국인(乞伏國仁)이 세운 국가이다. 중국에서 거의 없는 같은 성씨가 두 번 건국한 국가로 전체적으로 시조가 걸복국인(乞伏國仁)이라 것은 중국사에서는 찾기 어려운 사례인 종씨시조 중복국가 개념으로 볼 수 있다.걸복선비의 역사는 서진 건국과 흥망, 걸복선비의 소멸 두 가지의 종족적 구분(Tribal classification)을 들 수 있는데, 걸복선비의 경우, 서진 왕조의 짧은 영위와 소멸, 두 가지 이외에는 문헌 사료의 부족으로 인해 역사적 함의를 도출해 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해당 부족의 역사적 연구 및 토론과 제언이 본고가 처음이라는 것에 의의가 있다. 일단 본고에서는 걸복선비의 앞서 서술한 두 가지의 논제와 개념을 가지고 논의 전개하기로 한다.


ⓐ 걸복선비의 중원진출


먼저 걸복선비가 5호 16국의 혼란기에 어떻게 중원에 들어왔고 걸복국인에 의해 서진이 어떻게 건국하고 전개되어 왔는지 개괄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걸복선비는 농서지역에서 5호의 혼란기에 걸복국인(乞伏國仁)의 영도하에 장성을 넘어 들어왔다. 당시에 화북(華北)지역에는 저족(氐族)의 부견(苻堅)이 전진(前秦)을 세운 상태로 동쪽의 모용선비가 세운 전연(前燕)과 양강(兩强)체제를 이루고 있었다. 걸복국인(乞伏國仁)은 전진에 항복하여 부견(苻堅)의 부장이 되었다. 그러면서 걸복선비의 세력을 이끌고 전진의 군사와 함께 전연과 전쟁하여 멸망시키는 공을 세우고 부견의 신임을 얻었다. 걸복국인은 걸복씨 씨족들을 통치하고 병사를 양성하는 남선우(南單于)가 되어 전진의 중원전쟁에 합세하게 된다.


383년 부견이 동진(東晋)을 공격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중에 농서(隴西)에서 걸복국인의 숙부 걸복보퇴(乞伏步頹)가 모반을 꾀하며 전진에게서 이탈하려 하였다. 이에 부견은 걸복국인을 토벌대로 파견하였는데 걸복보퇴는 오히려 걸복국인을 환영하며 맞이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걸복국인은 동족을 토벌한다는 것도 쉽지 않았 을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걸복국인은 오히려 동진과의 전쟁에 참전하지 않고걸복씨의 영지에 남아 전진과 동진의 전쟁을 관망하게 되었다. 걸복보퇴(乞伏步頹)의 이러한 반기는 전진의 전쟁에서 희생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뜻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진의 부견에게는 걸복씨가 참전하지 않아도 동진을 공격할 충분한 물자와 병사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개의치 않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부견의 큰 실책은 휘하의 북방민족을 동진과의 전쟁 이전에 제대로 단속하지 못했다는 것에 있었고 항상 배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전진은 비수대전(淝水大戰)에서 동진에게 대패하자 전진 휘하의 북방민족들은 전진의 군사력 약화를 틈타 잇달아 독립했고 특히 걸북국인은 농서 인근의 여러 부족들을 통합하며 세력을 확대하였다. 385년, 부견이 요장(姚萇)에게 살해되자 걸복국인은 대선우(大單于)를 자칭하고 용사성(勇士城)에 수도를 정하여 독립정권을 세웠다. 이것이 바로 서진(西秦)으로 요장(姚萇)과 부견이 세운 후진(後秦)과 전진(前秦)과 차이를 두어 비정했다. 이후 용사성에 성을 개축하고 12개 군을 설치하여 농서군 일대에서 할거했다. 그리고 주변의 경쟁상대인 흉노, 강족 등과 대립하면서 점차 세력을 확대하여 관중(關中)북쪽 변경까지 진출했다.


387년에는 전진이 혼란에 시기에 접어들자 부견의 아들 부등(苻登)의 세력에 가담하여 부등에 의해 원천왕(苑川王)에 책봉되었다. 388년 걸복국인이 사망하자 아들 걸복공부(乞伏公府)가 어렸기 때문에 뒤를 이어 동생인 걸복건귀(乞伏乾歸)가 즉위했다. 그리고 수도를 금성(金城)으로 옮기며 산서성 일대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진의 부등은 아버지 걸복국인에 이어 동생인 걸복건귀에도 금성왕(金城王)으로 책봉되었다. 이것은 최대한 전진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전진의 서쪽 영지인 감숙성 지역과 산서성 일대의 영지를 보장받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감숙성과 산서성 일대의 왕으로 책봉이 되면 경쟁상대인 흉노와 강족보다 사실상 영유권 쟁탈에서 인증 받았다는 것 때문에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실 걸복국인과 사이가 좋지 못했던 후진의 요장(姚萇)을 견제하면서 전진을 사실상 지켜주는 결과가 되었다. 이것에 대표적인 부분은 요장이 전진의 부등을 공격해오자 서진에 원군을 요청하였는데 이를 승낙한 걸복건귀는 출병하여 요장을 격파하였다는 『진서(晉書)』「걸복건귀전(乞伏乾歸傳)」의 기록이 있다. (姚萇的, 攻擊苻登, 兩個秦以, 援軍黨, 乞伏幹歸要請承諾,這是一個, 乞伏幹歸出兵的, 姚萇是擊破。)


그러나 『자치통감(資治通鑑)』 의 기록은 다르다. 농서(隴西) 일대에서 할거하던 걸복건귀는 394년에 부등이 지원군을 청하면서 양왕(梁王)에 책봉하자 1만의 기병을 원군으로 파견하였다. 그러나 원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부등은 전사하였고 걸복건귀는 회군한 것으로 되어 있다. (太元十八年, 請苻登,而兩個援軍, 梁王冊封, 讓援軍一萬騎兵派遣。然而,即使在​​援軍, 苻登二到著是戰死, 乞伏幹歸, 一回軍。) 두 기록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진위에 대한 논란이 재기되고 있으나 아직 명확한 정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부등이 죽고 황중(湟中)에서 부숭(苻崇)이 황제에 즉위하자 부숭은 걸복건귀의 직위와 왕의 직책을 박탈하자 걸복건귀는 이에 전진을 공격하여 395년 10월에 부숭을 몰아냈다. 그리고 황중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부숭의 일족들을 살해했다. 그러자 부숭은 구지(仇池)의 양정(楊定)에게 망명하여 공동으로 걸복건귀를 공격하였다. 걸복건귀는 이들 연합군을 격파하고 구지(仇池)까지 함락하여 전진을 멸망시켰다. 이를 토대로 산서성과 하남성, 하북성 일부를 장악한 걸북건귀는 후진의 요장에게까지 세력을 확장하려 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걸복건귀는 진왕(秦王)에 즉위하여 전진의 후속을 자처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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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색 사각형의 서진(西秦)이 걸복국인이 세운 걸복선비의 국가이다.



 
 
TOTAL 170
23. 걸복선비의 중원 진출
걸복선비는 토욕혼, 농서지역에 정착하면서 세력을 키워갔다. 해당 지역은 원래 흉노의 점령지였고 흉노의 기원지로 추정되는 기련산(祁連山)과 언지산(焉支山)이 근교에 있었던 지역이었다. 그리고 두 산 근처에 독발선비가 자리 잡고 있었다. 걸복선비는 선비의 역사에 단 선비, 모용선비, 탁발선비처럼 큰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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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탁발선비의 기원 두번째 이야기와 시조 탁발역미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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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탁발선비의 기원
탁발선비는 선비의 씨족 중 가장 많은 씨족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그들은 기존의 단 선비나 모용선비와는 기원지가 달랐으며 대부분 평원과 산을 의지하였던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동굴에서 부족의 기원이 시작되었는데 이에 대한 시대적인 배경에는 흉노의 침입으로 동호가 멸망하였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탁발의 씨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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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목용과 모용선비, 그리고 모용선비의 기원 두번째..
목용은 씨족들을 규합하여 불칸 산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대하여 부족으로 성장시켰다. 그리고 부족들을 이끌고 오늘날의 장성 근처로 이주하였는데 그 수는 2만 명에 달했다. 목용이 죽은 후 뒤를 이어 목연(木延)이 대인(大人)이 되어 부족을 이끌었고 모용씨는 하북성(河北省) 지역으로 들어와 거주하게 되었다. 대인(大人)은 부족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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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모용선비의 기원
모용선비는 선비의 씨족 중 세 번째로 많은 부족민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오늘날의 몽골고원 동쪽인 바르히얀(Barhiyan)에서 기원했다. 바르히얀(Barhiyan)은 오논 강(Ohnon) 중류 지역으로 지형상 칭기즈칸의 탄생지인 카라코룸(Karacorum)의 인근에 위치해있다. 지금은 사막으로 변했지만 당시 칭기즈칸이 해당 지역을 정복하고 파괴한 이전에는…
Name: 정길선  |  Date: 2017-05-12  |  Hit: 469
7. 독발선비의 기원
독발씨는 대대로 양주(凉州) 남부에 거주하던 씨족이었다. 독발씨는 어디에서 기원했고 기원 시조가 누구인지 기록된 바 없다. 단 남아있는 기록이 있다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양주(凉州)남부에 거주하였다는 기록이 전부이다. 독발씨는 걸복씨보다 기록이 더 없으며 『흉노사』에도 독발씨의 기원을 찾을 수 없다. 독발씨의 기…
Name: 정길선  |  Date: 2017-05-12  |  Hit: 354
6. 걸복선비, 홀복씨의 기원
걸복씨의 기원은 중국 문헌사료에 의하면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단지 단석괴의 단 선비에 의해 갈려나왔다는 기록이『위략(魏略)』에 존재하고 있으나 이 역시 확실하지 않다.『흉노사』에는 당시 걸복씨가 부여와 인근에 접경하고 있던 씨족이었다는 기록만이 걸복씨에 대한 단 선비 이전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걸복씨는 흉…
Name: 정길선  |  Date: 2017-05-12  |  Hit: 394
5. 단석괴의 이름 유래와 그에 따른 샤머니즘 해석
단석괴라는 이름에서 어원과 샤머니즘, 신화와의 비교를 분석해보면 사실 단족이 단군조선의 후예라는 것이 절실히 드러난다. 단석괴의 단(檀)은 단군조선의 천자(天子)인 단군(檀君)을 호칭하며 단석괴가 즉위하고 나서 본연의 성씨를 단(檀)씨로 하였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여기에 괴(槐)자가 중요한 부분인데 ‘홰나무 괴(槐)’ 자…
Name: 정길선  |  Date: 2017-05-12  |  Hit: 345
4. 단석괴의 출생과 성장 배경, 그리고 단석괴라는 이름의 의미
단 선비는 단석괴(檀石槐)가 나타나 선비 전체의 종족을 통합하기 전까지는 선비의 씨족 가운데 크게 중심이 되는 씨족이 아니었다. 단석괴(檀石槐) 이전까지의 선비는 전체적으로 통일되어 역사상 전면에 나타났던 부족이 아닌 마땅한 영도자가 없이 씨족끼리 이동하여 개별적으로 세력을 유지했던 종족이었다. 그러면서 흉노, 한, 오…
Name: 정길선  |  Date: 2017-05-12  |  Hit: 604
3. 단 선비 연구 개요
선비의 시대적 구분을 나열할 때 단선비의 단석괴(檀石槐)가 등장하기 전의 선비는 초기 선비로 구분하고 단석괴 이후에는 단 선비의 통치기, 가비능(軻比能)의 통치기를 거쳐 모용씨 선비, 탁발씨 선비로 구분하여 마지막에 우문씨 선비로 선비의 시대적인 구분이 이루어진다. 선비가 부족적인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새로운 유목…
Name: 정길선  |  Date: 2017-05-11  |  Hit: 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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