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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gs.jpg  정길선  북방유라시아 유목사 산책
 
  모용외의 등장과 단 선비
  
   작성자 : 정길선
작성일 : 2017-05-19     조회 : 331  

유총은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화북의 복종하지 않는 다른 유목민족 세력을 굴복시키고자 하였다. 이에 반발한 세력은 유총과 다른 민족인 갈족(葛族) 수장인 석륵(石勒)이었다. 석륵은 진나라와 유총이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양국(襄國)을 기반으로 삼고 하북 일대에 반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하였다. 316년에는 하북 일대로 공격해온 남흉노 세력인 병주(幷州)의 유곤(劉坤)을 격파하고 병주 북부 일대를 차지하였다.


318년 유총이 사망하자 한나라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 유총의 아들인 유찬(劉粲)이 죽고 병주 중남부 일대를 반란군이 점거한 상태가 되자 석륵이 유총의 차남인 유요(劉要)의 명을 받아 출정하여 반란을 진압하였다. 석륵의 군대에 패배한 반란군이 유요에게 항복하자 석륵은 분노하여 한나라의 수도 평양(平陽)을 공격하여 불태웠다. 이후 유요와 화친하기 위해 사자를 보냈으나 평양을 공격한 것에 대한 원한 때문에 유요는 석륵의 사자를 죽이고 화친을 거부했다. 그러자 석륵은 양국에서 조왕(趙王) 지위에 올라 유요와 전쟁을 개시했다. 사가에서는 유요가 이미 한나라에서 조(趙)나라로 국호를 변경하였기 때문에 유요의 조나라를 전조(前趙), 석륵의 조나라를 후조(後趙)로 불렸다.


이 때 갈족의 용병으로 단 선비가 참여하여 유요와의 전쟁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석륵이 남하하자 기존의 석륵이 차지하고 있던 하북성에서 모용선비가 세력을 확대하여 점차 강성해지기 시작했다. 329년 유요가 석륵에게 대패하고 전조가 후조에게 멸망하자 남쪽에 전량(前梁)이 독립하여 떨어져 나갔고 석륵은 낙양으로 들어와 330년 황제가 되었다.


그러자 석륵이 떠난 하북성에는 모용외(慕容廆)가 세력을 확장하였고 연왕(燕王)을 자칭했다. 이 때 단 선비가 조금씩 강성해져 하북성 일대에서 모용선비와 전쟁을 벌이게 되었는데 이 때가 단란(段蘭)이 부족장이 되어 있었던 시기이다. 필자는 단 선비와 모용선비의 전쟁이 하북성의 패권을 놓고 격전을 벌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남쪽에는 석륵이 있고 산동성 이남에는 낭야왕(琅琊王) 사마예(司馬睿)가 도주하여 세운 동진(東晋)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용선비가 아직 세력이 왕성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북성 지역에 근거지를 마련하는 것에 사력을 다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은 단 선비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333년 모용외가 사망하고 모용인(慕容仁)이 난을 일으키자 단 선비는 모용선비를 몰아내기 위해 모용인을 적극 지원했다. 그러나 336년 모용인은 난을 실패하고 전사했다. 곽충(郭充), 동수(冬壽)는 고구려로 망명했고 나머지 모용인의 세력은 모용황(慕容皝)에게 참살될까 두려워 단 선비에 항복해왔다. 단 선비에 투항한 장수 중에 모용한(慕容翰)이라는 장수가 있었는데 지략과 용맹이 모용외 못지않아 모용외에 총애를 받았던 왕자였다. 모용한(慕容翰)은 바로 단 선비 군의 장수가 되어 군을 이끌고 모용황을 다시 공격하러 나섰다. 단 선비는 모용황을 유성(柳城)에 몰아넣고 공격을 개시하니 모용선비가 순식간에 멸망할 위기에 놓였다.


궁지에 몰린 모용황은 평주에 주둔하고 있는 모용한(慕容汗)에 사자를 보내 구원을 요청했고 모용한(慕容汗)은 성급히 들어오다가 패배를 당해 자멸하고 말았다. 이 때 단 선비의 군대를 이끌고 모용선비를 공격하고 있던 모용한(慕容翰)의 심경에 변화가 생긴거 같다. 그것은 모용씨의 멸족을 우려한 것도 있고 모용한(慕容翰)이 단 선비에 망명할 때 가족은 그대로 모용선비에 두고 나왔다. 그러자 모용황이 모용인의 세력을 흡수하기 위해 모용한(慕容翰)의 가족들을 잘 보살펴주고 있었다는 것에서도 모용한(慕容翰)의 성정을 자극했다.


일찍이 모용황은 모용인의 가족들과 모용인에 편에 서서 자신을 공격했던 장수들의 가족들은 잘 대해줄 것을 당부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모용선비 내부의 결속과 포용, 정치적 안정화를 위한 포석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전략은 모용씨 내부에서 단합된 힘을 축적하고 발휘할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되었으며 337년 모용황이 황제로 등극하는데 있어 내, 외부에 물리적 현상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이것은 안정된 상태에서 외부를 향한 적극적인 공세를 펼칠 수 있었다.


모용한(慕容翰)은 더 이상 유성을 공격하지 않고 포위를 풀었으며 이에 단 선비는 모용한(慕容翰)의 반역을 의심했다. 모용한(慕容翰)의 심경 변화로 인해 단 선비와 모용한(慕容翰)의 관계가 틀어졌고 모용황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단선비의 공격과 모용인의 반란으로 한때 멸망의 위기까지 겪었던 모용황은, 곧 전열을 재정비하고 단 선비와 재 전쟁에 돌입했다. 337년 11월에 단 선비를 공격한 모용황은 하북의 중심인 양평(襄平)을 함락하여 단 선비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한다. 단 선비는 산동성 제남(齊南)으로 쫓겨 가서 수세를 취했으며, 전선은 고착되었다. 이러한 소강상태는 340년까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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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와 중원의 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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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선비와 모용씨 선비의 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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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황의 동상

 

 
 
TOTAL 170
23. 걸복선비의 중원 진출
걸복선비는 토욕혼, 농서지역에 정착하면서 세력을 키워갔다. 해당 지역은 원래 흉노의 점령지였고 흉노의 기원지로 추정되는 기련산(祁連山)과 언지산(焉支山)이 근교에 있었던 지역이었다. 그리고 두 산 근처에 독발선비가 자리 잡고 있었다. 걸복선비는 선비의 역사에 단 선비, 모용선비, 탁발선비처럼 큰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그…
Name: 정길선  |  Date: 2017-05-19  |  Hit: 408
22. 단 선비 일족의이동
단 선비는 1차로 모용선비와 후조의 군사들에게 패배하고 하북, 산동성에 자리잡은 부족들이 고구려로 도주했다. 그리고 단요가 전연에 항복함으로써 단 선비는 대부분 전연에 흡수되어 소멸되었다. 그러나 일부 단 선비는 서북쪽으로 이동을 계속했고 산서성(山西省)이북의 독발선비의 지역을 통과해야 했다. 그러나 숫자적으로 열세…
Name: 정길선  |  Date: 2017-05-19  |  Hit: 446
21. 모용외의 등장과 단 선비
유총은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화북의 복종하지 않는 다른 유목민족 세력을 굴복시키고자 하였다. 이에 반발한 세력은 유총과 다른 민족인 갈족(葛族) 수장인 석륵(石勒)이었다. 석륵은 진나라와 유총이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양국(襄國)을 기반으로 삼고 하북 일대에 반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하였다. 316년에는 하북 일대로 공격해온 남흉…
Name: 정길선  |  Date: 2017-05-19  |  Hit: 332
20. 진(晉) 나라 8왕의 난과 단 선비
사마씨의 진나라가 8왕의 난이 일어나면서 극심한 혼란기에 접어들었다. 본고에서는 선비의 세력이 중원에 남하한 배경이 되는 8왕의 난부터 간단히 서술하면서 단 선비의 남하에 대해 서술하고자 한다. 8왕의 난은 북방유목민족인 흉노와 선비가 중원을 잠식하는데 시초가 되었던 중요한 사건이다. 그리고 시대적 구분도 8왕의 난 시…
Name: 정길선  |  Date: 2017-05-18  |  Hit: 376
19. 단 선비와 부여, 고구려와의 관계
단 선비는 대흥안령산맥을 중심으로 시작하였고 세력이 남하하면서 중국과 국경이 맞닿았고 동쪽으로는 부여, 고구려와 경계하였다. 부여는 평소 흉노와의 관계가 좋았으나 흉노가 물러난 이후 선비와 지속적인 평화적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부여와 선비의 관계는 외교적인 부분에서 아직 연구가 미진하기 때문에 2세기 이후의 관…
Name: 정길선  |  Date: 2017-05-18  |  Hit: 429
18. 가비능과 보도근의 단 선비 통치 시대
233년 가비능이 보도근을 유인하여 화친을 맺었고 이에 보도근은 설귀니와 부족민들을 모두 이끌고 가비능에게 의지하였다. 이것은 가비능이 위나라보다 더 좋은 실익(實益)을 제시했을 가능성이 높다. 가비능은 보도근을 끌어들여 오히려 위나라를 공격하게 함으로써 두 세력 동시 제거를 노렸다. 보도근은 병주를 침략하고 관원과 백…
Name: 정길선  |  Date: 2017-05-18  |  Hit: 461
17. 화련과 가비능, 보도근의 통치 시대
화련은 재능과 용력이 부친인 단석괴에 미치지 못하고 탐욕스럽고 음란하였다. 그리고 사리판별을 못하여 부족민들 중에 반기를 든 자가 절반에 이르렀다. 영제 말년에 후한 변경을 여러 차례 침략하고 북지(北地)를 공격했는데, 북지의 서인(庶人) 중에 노(弩)를 잘 쏘는 자가 있어 화련을 쏘아 죽였다. 단 선비는 화련이 죽자 퇴각하였…
Name: 정길선  |  Date: 2017-05-18  |  Hit: 438
16. 단석괴의 통치 시기와 선비족의 남하
단석괴는 앞서 단 선비씨족의 기원을 서술함에서 출생과 신화적 요소에 대해 서술하였으며 본 단락에서는 단석괴의 단 선비의 성장과 가비능의 등장 및 가비능의 암살로 인한 부족 침체기까지 서술하려 한다. 단석괴가 즉위한 이후 고류(高柳) 북쪽 3백여 리 되는 곳의 탄한산(彈汗山) 철구수(啜仇水)가에 정(庭)을 두었고 주변 씨족…
Name: 정길선  |  Date: 2017-05-18  |  Hit: 423
15. 초기 선비의 고고학적 검토
초기 선비는 대흥안령산맥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와 서요하(西遼河)유역, 서쪽으로는 몽골고원의 오논 강에서부터 시라무렌 강까지에 이른다. 대흥안령산맥의 북쪽 지역인 탁발씨의 기원지이고 그보다 남쪽인 선비산은 단 선비의 기원지이다. 그리고 서랍목륜하 지역은 독발씨와 걸복씨의 기원지이고 대흥안령산맥이 끝나는 지점인 서…
Name: 정길선  |  Date: 2017-05-18  |  Hit: 388
14. 단 선비의 상세한 연구 개요 설명
앞서 단 선비에 대한 서술은 단 선비의 기원과 역사, 그리고 단석괴의 탄생신화에 주로 역점을 두었다. 그리고 단석괴는 15~16세에 용맹함과 지략, 부족을 이끌 수 있는 역량을 두루 갖춘 뒤 단 선비의 지도자가 되어 선비의 씨족 전체를 통솔하게 되었다. 단석괴는 몽골고원과 장성 이북, 멀리는 중앙아시아에까지 세력을 확대하여 거대…
Name: 정길선  |  Date: 2017-05-18  |  Hit: 480
13. 우문선비의 기원 두번째 이야기
모용선비는 대외적으로는 위나라에 협력하고 위나라의 정복전쟁에 참가하면서 서서히 역량을 끌어올렸다. 대표적인 위나라의 정복전쟁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촉, 오와의 삼국쟁패에 용병으로 참전하였다는 것과 관구검의 고구려 침략에 참여했다는 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 모용선비의 이러한 이중적인 외교는 …
Name: 정길선  |  Date: 2017-05-12  |  Hit: 484
12. 우문선비의 기원
우문씨 선비는 기원이 분명치 않으나 시라무렌 강(西拉木倫河) 유역을 중심으로 단 선비와 함께 유목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 탁발, 모용, 단 선비가 세력이 강력해졌을 때 우문씨는 선비 씨족 중 가장 늦게 세력이 발흥(發興)했으며 가장 늦게 중원에 진출한 세력이었다. (『후한서,後漢書』,卷 九十,「烏桓鮮卑列傳」, 第五, [본문] 俞…
Name: 정길선  |  Date: 2017-05-12  |  Hit: 380
11. 탁발선비의 기원 두번째 이야기와 시조 탁발역미의 등장
후한에서 위나라로 교체되고 오환이 조조에 의해 무너지자 탁발씨는 오환과 그 외의 기타 선비씨족들을 지속적으로 통합했다. 전쟁이 아닌 포용성과 개방성을 지니면서 각 부족을 통합하여 사마씨(司馬氏) 진나라 시기에는 상당한 세력을 갖춘 부족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부족 통합은 역량을 갖춘 부족장이 나타나지 않으면 불가능한…
Name: 정길선  |  Date: 2017-05-12  |  Hit: 427
10. 탁발선비의 기원
탁발선비는 선비의 씨족 중 가장 많은 씨족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그들은 기존의 단 선비나 모용선비와는 기원지가 달랐으며 대부분 평원과 산을 의지하였던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동굴에서 부족의 기원이 시작되었는데 이에 대한 시대적인 배경에는 흉노의 침입으로 동호가 멸망하였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탁발의 씨족들…
Name: 정길선  |  Date: 2017-05-12  |  Hit: 420
9. 목용과 모용선비, 그리고 모용선비의 기원 두번째..
목용은 씨족들을 규합하여 불칸 산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대하여 부족으로 성장시켰다. 그리고 부족들을 이끌고 오늘날의 장성 근처로 이주하였는데 그 수는 2만 명에 달했다. 목용이 죽은 후 뒤를 이어 목연(木延)이 대인(大人)이 되어 부족을 이끌었고 모용씨는 하북성(河北省) 지역으로 들어와 거주하게 되었다. 대인(大人)은 부족을 …
Name: 정길선  |  Date: 2017-05-12  |  Hit: 458
8. 모용선비의 기원
모용선비는 선비의 씨족 중 세 번째로 많은 부족민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오늘날의 몽골고원 동쪽인 바르히얀(Barhiyan)에서 기원했다. 바르히얀(Barhiyan)은 오논 강(Ohnon) 중류 지역으로 지형상 칭기즈칸의 탄생지인 카라코룸(Karacorum)의 인근에 위치해있다. 지금은 사막으로 변했지만 당시 칭기즈칸이 해당 지역을 정복하고 파괴한 이전에는…
Name: 정길선  |  Date: 2017-05-12  |  Hit: 470
7. 독발선비의 기원
독발씨는 대대로 양주(凉州) 남부에 거주하던 씨족이었다. 독발씨는 어디에서 기원했고 기원 시조가 누구인지 기록된 바 없다. 단 남아있는 기록이 있다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양주(凉州)남부에 거주하였다는 기록이 전부이다. 독발씨는 걸복씨보다 기록이 더 없으며 『흉노사』에도 독발씨의 기원을 찾을 수 없다. 독발씨의 기…
Name: 정길선  |  Date: 2017-05-12  |  Hit: 354
6. 걸복선비, 홀복씨의 기원
걸복씨의 기원은 중국 문헌사료에 의하면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단지 단석괴의 단 선비에 의해 갈려나왔다는 기록이『위략(魏略)』에 존재하고 있으나 이 역시 확실하지 않다.『흉노사』에는 당시 걸복씨가 부여와 인근에 접경하고 있던 씨족이었다는 기록만이 걸복씨에 대한 단 선비 이전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걸복씨는 흉…
Name: 정길선  |  Date: 2017-05-12  |  Hit: 394
5. 단석괴의 이름 유래와 그에 따른 샤머니즘 해석
단석괴라는 이름에서 어원과 샤머니즘, 신화와의 비교를 분석해보면 사실 단족이 단군조선의 후예라는 것이 절실히 드러난다. 단석괴의 단(檀)은 단군조선의 천자(天子)인 단군(檀君)을 호칭하며 단석괴가 즉위하고 나서 본연의 성씨를 단(檀)씨로 하였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여기에 괴(槐)자가 중요한 부분인데 ‘홰나무 괴(槐)’ 자…
Name: 정길선  |  Date: 2017-05-12  |  Hit: 345
4. 단석괴의 출생과 성장 배경, 그리고 단석괴라는 이름의 의미
단 선비는 단석괴(檀石槐)가 나타나 선비 전체의 종족을 통합하기 전까지는 선비의 씨족 가운데 크게 중심이 되는 씨족이 아니었다. 단석괴(檀石槐) 이전까지의 선비는 전체적으로 통일되어 역사상 전면에 나타났던 부족이 아닌 마땅한 영도자가 없이 씨족끼리 이동하여 개별적으로 세력을 유지했던 종족이었다. 그러면서 흉노, 한, 오…
Name: 정길선  |  Date: 2017-05-12  |  Hit: 604
3. 단 선비 연구 개요
선비의 시대적 구분을 나열할 때 단선비의 단석괴(檀石槐)가 등장하기 전의 선비는 초기 선비로 구분하고 단석괴 이후에는 단 선비의 통치기, 가비능(軻比能)의 통치기를 거쳐 모용씨 선비, 탁발씨 선비로 구분하여 마지막에 우문씨 선비로 선비의 시대적인 구분이 이루어진다. 선비가 부족적인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새로운 유목…
Name: 정길선  |  Date: 2017-05-11  |  Hit: 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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