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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gs.jpg  정길선  북방유라시아 유목사 산책
 
  전연, 부여와의 전쟁과 모용황의 죽음
  
   작성자 : 정길선
작성일 : 2017-05-23     조회 : 382  

모용황은 학문적인 부분과 인재 양성을 동시에 진행했는데 이는 초기의 과거제도를 창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모용황은 인재를 양성하는 방식으로 대신(大臣)의 자제(子弟)들 중 관학생(官學生)이 된 자에게 고문생(高門生)이라는 칭호를 하사했다. 그리고 학문의 진흥을 위해 옛 궁에 학교를 세워 활을 쏘고 수련하면서 공부 하는 곳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수련에 완숙하고 공부 기간을 마친 고문생들을 매월 임관(臨觀)하여 우열을 가릴 수 있도록 고시(考試)를 보았다. 여기서 도출되는 고시(考試)는 바로 초기의 과거제도이다. 이와 같은 고시를 통하여 인재를 배출했고 문화적인 부분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모용황이 본래 문적(文籍)을 좋아하고 강학하는데 부지런하여 학생이 매우 많아 천여 명에 달했다. 친히「태상장(太上章)」을 지어『급취(急就)』*를 대신하고 또『전계(典誡)』15편을 저술하여 제후들과 귀족자제들에게 가르쳤다. 모용황 스스로 학생을 가르치는 스승이 되고 학술적으로 뛰어난 인재들을 키워내어 차후 문치국가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뜻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문치적인 부분은 앞서 서술한 것과 같이 후일 북위가 화북을 통일하면서 비로소 발전하게 되었다.


* 『급취(急就)』는 학동들의 문자 교육용 자서(字書)의 하나. 전한(前漢) 원제(元帝) 때(B.C 48년~33년) 황문령(黃門令) 사유(史游) 저작. 전 4권. 책 이름은 이 책의 맨 처음에 나오는 급취(急就: 속성으로 이룸)라는 2자(字)에서 유래하는데 초서체의 일종인 장초(章初)를 가르치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여『급취장(急就章)』이라고도 부른다.『창힐편(倉頡篇)』『훈찬편(訓纂篇)』『범장편(凡將篇)』『방희편(滂喜篇)』등과 함께 한(漢)나라 때의 문자 교육용 서책 가운데 현재까지 전해지는 유일한 저서인 동시에 이러한 종류로 완전하게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책이다. 당시의 상용 한자 약 1,900자를 성씨(姓氏)·의복·음식·기명(器皿)·충어·복식·음악 및 궁실·식물·동물·질병·약품·관직·법률·지리 등 물명(物名)과 인명 등을 열거하여 글자를 배우는 동시에 각각의 사물들에 관한 간략한 지식도 습득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이를 3자구(字句), 4자구, 또는 7자구로 배열한 후 각운(脚韻)을 달아 학습과 암송에 편리하도록 만들었는데 그 압운(押韻)은 음운사(音韻史)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된다. 구본은 32장으로 되어있는데 책의 말미에 후인들이 보강하거나 고쳐 놓은 부분이 덧붙여 있다. 오(吳)나라 황상(黃象)의 31장 본과, 송 태종이 쓴 34장 본이 있으며 각 사본마다 내용이 약간 다른 곳도 있다. 현존하는 판본은 원(元)나라의 서예가인 조맹부(趙孟부)/ 등문원(鄧文原)의 필사본과 명(明)나라 때 양정(楊政)의 송강학부(松江學府) 석각본이 있는데 모두 장단점이 있다고 한다. 주석서로 당나라 때 안사고(顔師古)의 주와 송나라 때 왕응린(王應麟)의 보주가 있으며, 『소학회함(小學匯函)』과 『학진토원(學津討原)』이라는 책에도 그 각본이 수록되어 있다.


345년 모용각(慕容恪)이 고구려(高句麗)의 남소(南蘇)성을 함락하고 수비병을 둔 뒤에 돌아왔다. 이것은 고구려에 대한 지속적인 공격으로 차후에 있을 전연에 대한 공격을 미리 차단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리고 346년에는 대대적으로 부여에 대한 공세에 나섰다. 모용준(慕容儁)이 모용각과 함께 기병 1만 7천을 이끌고 동쪽으로 부여를 습격하여 이기고 부여의 왕과 백성 5만여 명을 포로로 잡고 돌아왔다. 이 때 부여는 전연의 공격으로 거의 멸망상태인 것으로 보이고 일부 부여인들은 좀 더 북쪽으로 도망하여 흑룡강 일대에서 부족을 이루게 되었는데 흑룡강 부여인들은 광개토태왕 때 고구려에 일시 병합되었다.


348년 모용황은 52세로 승하했다.* 모용황은 15년간 제위*하고 전연의 전성기를 이루었던 제왕이었다. 후일 모용준이 황제로 칭한 뒤에 모용황을 문명황제(文明皇帝)로 시호를 추증하였고 종묘에 모셔 매해 제사를 지냈다. 이러한 모용황의 뒤를 이어 태자인 모용준이 연왕(燕王)으로 즉위했다.


* 『진서(晉書)』에는 모용황의 죽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래되고 있다.


모용황이 일찍이 서쪽변경에서 사냥한 일이 있었다. 이때 하수를 건너려 하다 부로(父老) 한명을 보았는데 붉은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있었다. 그가 손을 들어 모용황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은 사냥터가 아니니 왕은 돌아가시오.”


이 일을 숨긴 채 말하지 않고 마침내 하수를 건너서는 연일 사냥감을 많이 잡았다. 뒤에 흰 토끼를 보고 말달려서 활을 쏘려다 말이 쓰러져 모용황이 부상을 당하니 이에 전에 부로를 보았던 일을 얘기하였다. 연(輦)을 타고 궁으로 돌아와 모용준(慕容儁)을 불러 뒷일을 맡겼다.


영화(永和) 4년(348년)에 죽었다. 15년간 재위하고 죽을 때의 당시 나이는 52세였다. 모용준이 제호를 참칭한 뒤에 모용황을 문명황제(文明皇帝)로 추시(追諡)하였다. ;『진서(晉書)』, 卷 百九,「載記」, 第九, <慕容皝傳> [본문] 皝嘗畋于西鄙, 將濟河, 見一父老, 服朱衣, 乘白馬, 擧手麾皝曰:「此非獵所, 王其還也.」 祕之不言, 遂濟河, 連日大獲. 後見白兎, 馳射之, 馬倒被傷, 乃說所見. 輦而還宮, 引儁屬以後事. 以永和四年死, 在位十五年, 時年五十二. 儁僭號, 追諡文明皇帝.


* 이를 역산하면 모용황 생몰 297년~348년이고 재위는 334년~348년이다. 이 재위년도는 유년칭원법을 전제로 계산한 것이며, 앞서 서술한 것과 같이 실제로 모용외가 죽고 모용황이 계위한 해는 333년이므로 실제 재위년도는 333년~348년 이다. 그리고 연왕(燕王)재위는 337년~348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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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성 석가장 (전연 용성)의 선비족 수도임을 밝혀주는 마상(馬狀)



 
 
TOTAL 170
44. 전연의 전성기와 모용각의 활약
353년 동진의 영삭장군(寧朔將軍) 영호(榮胡)가 팽성(彭城)과 노군(魯郡)을 들어 동진에 반역하고 모용준에게 항복했다. 모용준은 이를 받아들여 팽성태수로 봉하여 변경을 방어하도록 하였다. 상산(常山) 사람인 이독(李犢)이 수천명 무리를 모아 보벽루(普壁壘)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모용준이 모용각(慕容恪)을 보내 군대를 이끌고 이를…
Name: 정길선  |  Date: 2017-05-23  |  Hit: 457
43. 모용준, 전연의 황제로 즉위하다.
352년 단 선비의 단근(段勤)이 당초 모용준에게 귀부했었다가 그 뒤에 다시 반기를 들었다. 모용준이 모용각(慕容恪)과 상국(相國) 봉혁(封弈)을 보내 안희(安喜)에서 염민(冉閔)을 치고, 모용수(慕容垂)는 역막(繹幕)에서 단근(段勤)을 치고, 모용준은 중산(中山)으로 가서 모용각과 봉혁의 군대를 위하여 미리 주둔하고 만약의 사태에 대…
Name: 정길선  |  Date: 2017-05-23  |  Hit: 409
42. 모용준의 즉위와 염민, 염위의 멸망
모용준(慕容儁)은 자(字)가 선영(宣英)이고 모용황(慕容皝)의 차남이다. 당초 모용준의 조부인 모용외(慕容廆)가 늘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내가 복(福)과 인(仁)을 쌓았으니 내 자손이 마땅히 중원(中原)을 차지할 것이다.” 얼마 뒤에 모용준을 낳자 모용외가 말했다, “이 아이의 골상(骨相)이 범상치 않으니 우리 가문이 마땅한 후계…
Name: 정길선  |  Date: 2017-05-23  |  Hit: 422
41. 전연, 부여와의 전쟁과 모용황의 죽음
모용황은 학문적인 부분과 인재 양성을 동시에 진행했는데 이는 초기의 과거제도를 창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모용황은 인재를 양성하는 방식으로 대신(大臣)의 자제(子弟)들 중 관학생(官學生)이 된 자에게 고문생(高門生)이라는 칭호를 하사했다. 그리고 학문의 진흥을 위해 옛 궁에 학교를 세워 활을 쏘고 수련하면서 공부 하는 곳으…
Name: 정길선  |  Date: 2017-05-23  |  Hit: 383
40. 동진(東晉) 조정, 모용황의 전연을 북방의 패자로 인정하다.
343년 전연은 우문귀(宇文歸)가 국상(國相) 막천혼(莫淺渾)을 보내 모용황을 공격하니 제장들이 맞서 싸울 것을 청했으나 모용황은 허락하지 않았다. 막천혼은 모용황이 자신을 두려워한다고 여겨 전혀 방비하지 않았다. 이 때 모용황은 모용한(慕容翰)과 기병들을 보내 막천혼의 군사들을 치게 하니 막천혼(莫淺渾)이 대패하여 혼자 화…
Name: 정길선  |  Date: 2017-05-22  |  Hit: 416
39. 모용황과 고구려의 전쟁 - 고구려의 치욕
339년, 모용황이 고구려를 공격하여 신성에 이르렀다. 전연의 군대가 막강하여 고구려의 고국원왕이 화의를 청하자 다시 회군하여 돌아왔다. 340년에는 고국원왕이 태자를 모용황에게 보내 입조하게 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卷第 十八,「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 第 六, <故國原王> [본문] 九年, 燕王皝來侵, 兵及新城…
Name: 정길선  |  Date: 2017-05-22  |  Hit: 396
38. 모용황, 단 선비 - 후조(後趙) 석계룡과의 전쟁
모용황은 단요(段遼)가 여러 차례 변경을 공격하여 피해를 주자 장군 송회(宋回)를 후조(後趙)의 석계룡(石季龍)*에게 보내 함께 단요를 공격할 군대를 요청했다. 이에 석계룡이 군대를 총괄하여 진격하고, 모용황도 군사를 이끌고 단요의 도읍인 영지(令支) 이북의 여러 성들을 공격했다. 단요가 장수 단란(段蘭)을 보내 항거하니 이를 …
Name: 정길선  |  Date: 2017-05-22  |  Hit: 453
37. 모용황의 모용인, 단 선비 공략과 전연 (前燕)의 건국
모용황이 바다를 건너 모용인을 치려 하자 많은 신하들이 간언하며 ‘바닷길은 위태롭고 험하니 의당 뭍길(陸路)로 쳐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자 모용황이 말했다. “예전에는 바닷물이 얼지 않았는데 모용인이 반란을 일으킨 이래로 세 번이나 얼어붙었다. 옛날 후한 광무제(光武帝)가 얼어붙은 호타수(滹沱水)를 건너 대업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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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모용황의 요동 경략
평주 요동국 양평현의 현령 왕빙(王冰), 장군 손기(孫機)가 요동(遼東)으로써 모용황에게 반기를 드니 동이교위(東夷校尉) 봉추(封抽), 호군(護軍) 을일(乙逸), 요동상(遼東相)* 한교(韓矯), 현도태수(玄菟太守) 고후(高詡) 등은 성을 버리고 달아났고 이들은 모용황에게 돌아갔다. * 요동상(遼東相)은 요동국의 상相. 모용외가 요동공…
Name: 정길선  |  Date: 2017-05-22  |  Hit: 853
35. 모용인의 반란과 모용황의 토벌
333년 5월에 모용황이 요동공의 지위를 이었고 평북장군(平北將軍) 대행이자 평주자사(平州刺史)가 되어 부(部) 내부를 장악했다. 같은 해 우문걸득귀(宇文乞得龜)가 그의 별부(別部) 일두귀(逸豆歸)에 의해 축출되어 도망치다가 객사했다. 이에 모용황은 일두귀의 행위를 용납하지 못한다고 하여 본격적으로 거병하였다. 모용황이 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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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모용외의 중원 공략과 모용황의 등장
배억(裴嶷)이 건업(建鄴)으로부터 돌아올 때 동진에서 사자를 보내 모용외를 감평주제군사(監平州諸軍事), 안북장군(安北將軍), 평주자사(平州刺史)로 임명하고 식읍을 2천 호(戶) 늘려주었다. 321년에는 동진에서 모용외에 사신을 보내 사지절(使持節), 도독유주동이제군사(都督幽州東夷諸軍事), 거기장군(車騎將軍), 평주목(平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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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고구려의 요동 침공과 모용외의 대응
모용외의 차남인 모용황(慕容皝)이 각 제후들과 귀족 자제들을 이끌고 속수(束脩)하여 수업(受業)하고 모용외가 정무를 보다 틈이 있으면 친히 유학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이렇게 모용외가 다스리는 요동지역은 비교적 평안했으며 학문으로는 유학적인 부분을 받아들임으로써 국가로 발전할 수 있는 강력한 체제를 구축하게 되었다. …
Name: 정길선  |  Date: 2017-05-20  |  Hit: 433
32. 고구려의 미천왕과 모용외, 모용선비의 완전한 하북성 정착
309년, 고구려 미천왕은 장수를 보내어 요동의 서안평(西安平)을 쳐서 함락시키고, 315년에는 현도성(玄菟城)을 함락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卷第 十七,「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 第 五, <美川王> [본문] 十二年, 秋八月, 遣將襲取遼東西安平...(중략)...十六年, 春二月, 攻破玄菟城, 殺獲甚衆. ) 그리고 이를 지키기 위해 …
Name: 정길선  |  Date: 2017-05-20  |  Hit: 375
31. 모용외와 고구려의 격돌
고구려는 관구검의 침입 이후 동산(東山)에서 재기하여, 현도(玄菟) · 요동(遼東)을 다시 침략하였다. 무제 때에 소요수(小遼水)로 침입하여, 신성(新城)을 점령하였고, 또 대량수(大梁水)상류로 침입하여, 양맥(梁貊)을 통치하였다. 294년에 모용외는 군사를 이끌고 다시 고구려를 침공하여, 신성(新城)을 포위하자, 신성(新城)의 재북부(…
Name: 정길선  |  Date: 2017-05-20  |  Hit: 439
30. 모용선비와 부여의 전쟁
모용외는 우문선비를 공격하여 제압하기 위해 진나라에 사자를 보내 공격을 할 수 있도록 허락을 구했으나 진나라의 무제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모용외는 이에 분노하여 우문선비를 제압하고 진나라를 공격했다. 진나라의 낙양으로 향하는 지역인 요서(遼西)를 침입하여 여러 성들을 약탈하고 진나라 백성들을 사로잡아 갔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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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모용선비의 등장과 모용외 신화
위나라가 모용선비에게 요동을 내주었다는 것은 위나라 입장에서 피해는 최소한으로 하고 고구려, 부여와의 전쟁을 통해 모용선비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것, 그리고 모용선비를 동북지역의 방패막이로 삼아 고구려와 부여를 견제하는 것도 목적이 있었다. 이러한 전략적 행위에 분노한 고구려는 요동의 서안평(西安平)을 공격하면서…
Name: 정길선  |  Date: 2017-05-20  |  Hit: 358
28. 모용선비에 대해 종합적 연구 개요
모용선비는 고구려 역사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5호 16국 시대에 세워진 선비 국가 중 가장 강한 국가는 탁발선비의 북위이지만 5호의 시대적 구분을 보았을 때 초기와 중기는 모용선비의 전연, 후연 시대, 후기는 탁발선비의 북위 시대로 구분되고 있다. 문화적으로도 하북성, 산동성 지역에는 모용선비가 강력한 국가로 …
Name: 정길선  |  Date: 2017-05-20  |  Hit: 338
27. 남량(南凉)의 멸망과 독발선비의 후예, 티베트로 이주하여 토번을 …
독발이녹고 사후, 독발녹단이 즉위하여 남량을 통치했다. 아버지는 독발사복건이고 독발오고(禿髮烏孤), 독발이녹고(禿髮利鹿孤)의 동생이다. 남량은 세습 없이 형제상속으로 제위를 이어갔다. 이것은 독발사복건이 독발녹단의 재능을 높이 사서 후계자로 삼고 싶어 하였고, 독발오고와 독발이녹고는 이러한 아버지의 뜻을 따라 형제 …
Name: 정길선  |  Date: 2017-05-20  |  Hit: 417
26. 독발선비가 세운 남량(南凉)
독발선비는 걸복씨와 같이 중원 북서쪽, 하서(河西)지역에 근거했던 부족이었다. 이들은 원래 독발씨라고 하는 씨족으로 분류되었으나 점차 씨족민이 늘어가면서 부족으로 탈바꿈 한 것으로 보인다. 주로 하서 양주(凉州)를 거점으로 하였으며 기존에 세력을 이루었던 걸복선비와는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그러나 중원의 혼란기 시대를…
Name: 정길선  |  Date: 2017-05-20  |  Hit: 357
25. 걸복선비, 서진(西秦)의 멸망과 마무리
걸복치반의 뒤를 이은 걸복모말(乞伏暮末)은 즉위하자마자 북량의 침입을 받았다. 북량은 끊임없이 서진을 공격했으며 그것은 북쪽의 위협인 서진을 정복해야 북위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북량의 침략으로 서진 정권은 영토를 조금씩 잃어갔고 농서 지역과 산서성에 쥐었던 패권마저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
Name: 정길선  |  Date: 2017-05-19  |  Hit: 401
24. 걸복선비의 전성기, 걸복건귀, 걸복치반이 중국 서부 지역의 맹주가…
걸복건귀는 서성(西城)으로 천도하여 세력을 토욕혼 지역으로 확대했다. 그러나 그 곳에는 저족이 세운 후량(後凉)이 존재했고 오히려 후량의 역습을 받아 대패했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후량은 397년 금성(金城)을 함락시키고 서진의 동쪽 국경 지대를 유린했다. 그러나 이 때 패배로 인해 서진의 세력은 급속도로 약화되었고 이러한 세…
Name: 정길선  |  Date: 2017-05-19  |  Hit: 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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