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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gs.jpg  정길선  북방유라시아 유목사 산책
 
  광개토태왕의 서방 원정과 후연의 멸망
  
   작성자 : 정길선
작성일 : 2017-05-25     조회 : 1,123  

401년 용성 내부에서 모반 사건이 벌어졌고 이 때 모용성은 모반을 피하여 도주하다 살해되었다.이 때 모반 사건은 황제인 모용성의 죽음이 있었으나 그의 일족들에 의해 평정되었다. 모용성의 황후 정씨(丁氏)가 차기 황위 자리로 모용희(慕容熙)를 추천했는데 모용희는 모용수(慕容垂)의 서장자였고 고구려 원정에 선봉으로 출정하여 여러 차례 공을 세운 바 있다. 그리고 태자 모용정(慕容定)은 아직 나이가 어렸고 평원공 모용원(慕容元)은 너무 무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모용희가 전면에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모용희가 태후 정씨와 사통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였다.


모용희는 후연의 마지막 황제로 17세에 즉위했다. 그러나 즉위한 뒤 모용희의 총애가 귀인 부씨(苻氏)에게로 쏠리자 정씨는 이에 불만을 품고 병부상서 정신(丁信)과 더불어 모용희를 폐위시키려 의논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발각되어 모용희는 정씨를 핍박하여 자살시키고 정신을 주살하였다.


이후 귀빈 부씨와 소의 부씨를 총애하여 이들이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었는데, 용등원(龍騰苑)을 크게 짓고 그 안에 경운산(景雲山)을 조성하며 소요궁(逍遙宮), 감로전(甘露殿), 홍광문(弘光門)을 짓고 천하거(天河渠), 곡광해(曲光海), 청량지(清涼池)를 파게 했다. 이러한 토목공사는 국고를 낭비하게 하였고 백성들에게 지나친 세금을 걷어 들여 민심이 떠나게 되었다. 또한 귀빈 부씨와 소의 부씨가 민간에 다니며 잔치를 벌이는 것을 방조하였고, 모용희 자신도 전국 각지로 사냥을 다니며 국정을 돌보지 않았다. 이러한 행태는 백성들의 부담을 가중시켰으며 또 이어지는 고구려와 북위의 공격은 다량의 유랑민들을 유출시켜 사회적 문제로 까지 이어지게 하였다. (『진서(晉書)』, 卷 百二十四,「載記」, 第二十四, <慕容盛傳> [본문] 遼西太守李郎在郡十年,威制境內,盛疑之,累征不赴。以母在龍城,未敢顯叛,乃陰引魏軍,將為自安之計,因表請發兵以距寇。盛曰:「此必詐也。」召其使而詰之,果驗,盡滅其族,遣輔國將軍李旱率騎討之。師次建安,召旱旋師。朗聞其家被誅也,擁三千餘戶以自固。及聞旱中路而還,謂有內變,不復為備,留其子養守令支,躬迎魏師于北平。旱候知之,襲克令支,遣廣威孟廣平率騎追朗,及於無終,斬之。初,盛之追旱還也,群臣莫知其故。旱既斬朗,盛謂群臣曰:「前以追旱還者,正為此耳。朗新為叛逆,必忌官威,一則鳩合同類,劫掠良善,二則亡竄山澤,未可卒平,故非意而還,以盈怠其志,卒然掩之,必克之理也。」群臣皆曰:「非所及也。」李旱自遼西還,聞盛殺其將衛雙,懼,棄軍奔走。既而歸罪,複其爵位。盛謂侍中孫勍曰:「旱總三軍之任,荷專征之重,不能杖節死綏,無故逃亡,考之軍正,不赦之罪也。然當先帝之避難,眾情離貳,骨肉忘其親,股肱失忠節,旱以刑餘之體,效力盡命,忠款之至,精貫白日。朕故錄其忘身之功,免其丘山之罪耳。」盛去皇帝之號,稱庶人大王。魏襲幽州,執刺史盧溥而去。遣孟廣平援之,無及。盛率眾三萬伐高句驪,襲其新城、南蘇,皆克之,散其積聚,徙其五千余戶於遼西。)


이 가운데 귀빈 부씨를 황후로 삼았고, 소의 부씨가 죽자 그녀를 치료하던 왕온(王溫)을 잔인하게 죽이는 폭정을 가했다. 민심 이반과 더불어 폭정까지 행해지자 모용희에 충성하고 있는 신하들이 모반을 계획하기에 이르렀다. 402년부터 404년까지 고구려가 후연을 공격해 숙군성(宿軍城)과 연군(燕郡)이 함락당하고 요동과 요서 대부분의 성들이 고구려에 점령되었다.* 그리고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이 용성 인근까지 공격해 와서 모용희의 입조를 요구하니 모용희가 이를 거부하여 광개토태왕은 일단 군을 물려 사태를 주시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卷第 十八,「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 第 六, <廣開土太王> [본문] 十一年, 王遣兵攻宿軍, 燕平州刺史慕容歸, 棄城走. ; 11년(서기 402), 임금이 병사를 보내 연나라의 숙군성(宿軍城)을 공격하였다. 연나라 평주자사(平州刺史) 모용귀(慕容歸)가 성을 버리고 도주하였다.; 十三年, 冬十一月, 出師侵燕.; 13년(서기 404) 겨울 11월, 군사를 출동시켜 연나라를 공격하였다.


405년에 고구려를 공격하여 요동성을 거의 함락하였으나, 성에 자신과 왕후가 최초로 입성하기 위해 “성을 깎아 평지가 되길 기다려 짐이 마땅히 황후와 더불어 수레를 타고 들어가리라, 장군과 사졸은 먼저 오르지 말라” 라는 어리석은 명령을 내리는 바람에 공격에 실패하고 퇴각했다. (『진서(晉書)』, 卷 百二十四,「載記」, 第二十四, <慕容熙傳> [본문] 待剗平寇城,朕當與後乘輦而入,不聽將士先登.


『삼국사기(三國史記)』, 卷第 十八,「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 第 六, <廣開土太王> [본문] 十四年, 春正月, 燕王熙來攻遼東城, 且陷, 熙命將士, 毋得先登, 俟剗平其城, 朕與皇后, 乘轝而入, 由是, 城中得嚴備, 卒不克而還.)


같은 해 거란이 공격해 오자 모용희는 거란을 격파했다. 그리고 405년 12월에는 북으로 거란을 공격하러 출정하였다. 그러나 거란은 기동력을 앞세운 기마술 등의 전술로 후연의 측면을 괴롭히자 거란에 감히 대적하지 못하고 소득 없이 퇴각했다. 그러나 황후 부씨가 이에 따르지 않자 목표를 변경하여 고구려의 목저성(木底城)을 공격하였으나 고구려군의 강력한 저항 때문에 패배하고 용성으로 돌아왔다. (『삼국사기(三國史記)』, 卷第 十八,「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 第 六, <廣開土太王> [본문] 十五年, 秋七月, 蝗, 旱, 冬十二月, 燕王熙襲契丹, 至陘北, 畏契丹之衆, 欲還, 遂棄輜重, 輕兵襲我, 燕軍行三千餘里, 士馬疲凍, 死者屬路, 攻我木底城, 不克而還.)


407년 황후 부씨가 죽자 모용희는 이를 슬퍼하여 전국에 명을 내렸고 눈물을 흘리고 곡하지 않는 자를 조사하여 벌주었으며, 거대한 무덤을 축조하고 공신들을 순장하려 하였다. 이러한 무덤이 완성되자 모용희는 맨발로 부씨의 상여와 함께 용성을 나섰는데, 이때 상여가 너무 커서 북문을 부수고 나갔다. 성문이 부서지자 용성에서 후연의 장군 풍발(馮跋)이 모반을 일으켜 모용운(慕容雲)을 황제로 추대했고 모반 소식을 접한 모용희는 군대를 이끌고 돌아와 용성의 북문을 공격하였으나 패배하여 모용희의 군대는 사방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풍발은 모용희를 계속 추격하여 용등원에 숨어 있던 모용희를 체포하고 그를 처형했다. 풍발이 모용희를 처형하고 모용운을 황제로 옹립함에 따라 후연은 멸망했다. 그리고 사가에서는 이미 건국되어 있던 모용덕의 남연과 비교하여 모용운의 국가를 북연(北燕)이라 하였다.*


* 고운을 후연의 마지막 황제로 보고 풍발이 등극한 시기를 북연으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여기서는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북연이라 부른 것을 따랐다.


 * 고운(高雲, 374 ~ 409년)은 북연(北燕)의 초대 황제이다. 시호는 혜의제(惠懿帝)이다. 고국원왕 때 고구려가 후연(後燕)에 패배하여 붙잡혀 온 고구려의 지파 고화(高和)의 손자이고, 고발(高拔)의 아들이며, 자(字)는 자우(子雨)이다. 모용보의 양자로서 모용운(慕容雲)이란 이름을 썼었기 때문에 모용운이라고도 불린다.

(『진서(晉書)』, 卷 百二十四,「載記」, 第二十四, <慕容熙傳> [본문] 熙北襲契丹,大破之. 昭儀苻氏死,偽諡湣皇后。贈苻謨太宰,諡文獻公。二苻並美而豔,好微行遊宴,熙弗之禁也。請謁必從,刑賞大政無不由之。初,昭儀有疾,龍城人王溫稱能療之,未幾而卒,熙忿其妄也,立於公車門支解溫而焚之。其後好游田,熙從之,北登白鹿山,東過青嶺,南臨滄海,百姓苦之,士卒為豺狼所害及凍死者五千餘人矣。會高句驪寇燕郡,殺略百餘人。熙伐高句驪,以苻氏從,為沖車地道以攻遼東。熙曰:「待剗平寇城,朕當與後乘輦而入,不聽將士先登。」於是城內嚴備,攻之不能下。會大雨雪,士卒多死,乃引歸。擬鄴之鳳陽門,作弘光門,累級三層。熙與苻氏襲契丹,憚其眾盛,將還,苻氏弗聽,遂棄輜重,輕襲高句驪,周行三千餘裏,士馬疲凍,死者屬路。攻木底城,不克而還。盡殺寶諸子。大城肥如及宿軍,以仇尼倪為鎮東大將軍、營州刺史,鎮宿軍,上庸公懿為鎮西將軍、幽州刺史,鎮令支;尚書劉木為鎮南大將軍、冀州刺史,鎮肥如。為苻氏起承華殿,高承光一倍,負土於北門,土與穀同價。典軍杜靜載棺詣闕,上書極諫。熙大怒,斬之。苻氏嘗季夏思凍魚膾,仲冬須生地黃,皆下有司切責,不得,加以大辟,其虐也如此。苻氏死,熙悲號躃踴,若喪考妣,擁其屍而撫之曰:「體已就冷,命遂斷矣!」於是僵僕氣絕,久而乃蘇。大斂既訖,複啟其棺而與交接。服斬縗,食粥。制百僚于宮內哭臨,令沙門素服。使有司案檢哭者,有淚以為忠孝,無則罪之,於是群臣震懼,莫不含辛以為淚焉。慕容隆妻張氏,熙之嫂也,美姿容,有巧思。熙將以為苻氏之殉,欲以罪殺之,乃毀其禭靴,中有弊氈,遂賜死。三女叩頭求哀,熙不許。制公卿已下至於百姓,率戶營墓,費殫府藏。下錮三泉,周輸數裏,內則圖畫尚書八坐之象。熙曰:「善為之,朕將隨後入此陵。」識者以為不祥。其右僕射韋璆等並懼為殉,沐浴而待死焉。號苻氏墓曰征平陵。熙被發徒跣,步從苻氏喪。轜車高大,毀北門而出。長老竊相謂曰:「慕容氏自毀其門,將不久也。」中衛將軍馮跋、左衛將軍張興,先皆坐事亡奔,以熙政之虐也,與跋從兄萬泥等二十二人結盟,推慕容雲為主,發尚方徒五千餘人閉門距守。中黃門趙洛生奔告之,熙曰:「此鼠盜耳,朕還當誅之。」乃收發貫甲,馳還赴難。夜至龍城,攻北門不克,遂敗,走入龍騰宛,微服隱于林中,為人所執,雲得而弑之,及其諸子同殯城北。時年二十三,在位六年。雲葬之於苻氏墓,偽諡昭文皇帝。垂以孝武帝太元八年僭立,至熙四世,凡二十四年,以安帝義熙三年滅。初,童謠曰:「一束槁,兩頭然,禿頭小兒來滅燕。」槁字上有草,下有禾,兩頭然則禾草俱盡而成高字。雲父名拔,小字禿頭,三子,而雲季也。熙竟為雲所滅,如謠言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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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드라마 속 후연 마지막 황제 모용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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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 알렉산더로 극찬되고 있는 고구려 광개토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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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의 후연 정벌 진격로

 

 
 
TOTAL 170
65. 백제 개로왕, 북위 효문제에 표문을 올리고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을…
472년 백제에서 사절들이 북위에 들어와 국교(國交)를 요청하고 다음과 같은 표문을 올렸다. “제가 동쪽 끝에 나라를 세웠으나, 고구려가 길을 막고 있어서, 비록 대대로 대국의 교화를 받았으나 번국 신하의 도리를 다할 수 없었습니다. 멀리 궁궐을 바라보면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은 끝이 없으나, 북쪽의 찬바람으로 말미암아 응할 …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412
64. 풍태후 시기의 북위와 고구려 장수왕과의 관계
을불혼을 축출한 풍태후는 4년간 대리통치 하였다. 466년 풍태후는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 왕실의 공주와 헌문제와의 정략결혼을 제의했다. 그러자 고구려 장수태왕은 이에 대해 “공주가 출가하였으므로 아우의 장녀와 혼인을 성사하도록 하겠다.” 라고 편지를 보냈다. 북위의 풍태후는 이를 인정하여 안락왕(安樂王) 진(眞)과 …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497
63. 풍태후의 대리 통치에 이은 북위의 전성기 확립
즉위 후에는 백성들이 영토를 개간하여 살 수 있도록 몇몇 황무지에 백성들을 이동시켰고 산지도 개간하여 백성들을 부유하게 하였다. 또 국내의 구심력을 높이는 의미로부터도 불교 탄압을 폐지했다. 그리고 승려인 사문(沙門)의 담요(曇曜)에게 명하여 운강석굴(雲崗石窟)*을 축조하게 하였다.* 정치는 유학적인 부분을 많이 인용하였…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400
62. 북위 태무제, 화북을 통일하고 권신 최호와 종애가 북위 권력의 정…
북위 태무제가 서역에 사신을 파견할 때, 북량의 저거목건(沮渠牧犍)에게 큰 도움을 얻자, 태무제는 그의 여동생을 후궁 중 하나인 우소의로 맞이했고 자신의 여동생을 저거목건이 왕후로 맞이하도록 했다. 그런데 439년 왕후 탁발씨가 저거목건과 통정하던 저거목건의 형수 이씨에 의해 독살되어 태무제가 이씨를 사사(賜死)토록 요구…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428
61. 북위 태무제의 정복 전쟁
명원제(明元帝)는 남조 송(宋)나라와 자주 전쟁하여 하남성(河南省)을 함락했다. 그리고 강대국인 고구려와 국경을 마주 보게 되자 고구려와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했다. 양국은 사신이 서로 왕래했고 상인들은 고구려와 북위의 영토에서 주로 교역하여 양국의 문물이 서로의 국가에 전파되었다.* * 명원제 시기에는 사신이 왕래한 …
Name: 정길선  |  Date: 2017-05-26  |  Hit: 410
60. 탁발규의 평성(平城) 천도와 북위 개국 공신들을 숙청하다.
398년 탁발규는 황제에 즉위하고 수도를 평성으로 정함으로써 북위를 연 개국황제가 되었다.평성에 수도를 옮기자 부근 태행산맥 동쪽의 6주의 백성 46만명을 이동시켰다. 탁발규는 각 출신과 국가, 민족등을 따지지 않고 명족(名族) 인재들을 등용하여 국정에 참여하게 하였다. 이로써 북조 귀족제의 기초를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지식…
Name: 정길선  |  Date: 2017-05-25  |  Hit: 379
59. 탁발규, 북위(北魏)를 건국하고 전진(前秦)에게서 독립하다.
탁발규는 387년 국호를 대(代)에서 위(魏)로 바꾸고 연호를 등국(登國)으로 하였다. 그리고 수도를 성락으로 정하여 옛 대나라의 초기의 왕정을 복고시켰다. 유현은 이에 분개하고 탁발규의 숙부인 굴돌(掘突)을 이용했다. 이것은 탁발규의 숙부인 굴돌(掘突)을 내세워 탁발규의 정통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동시에 독고부의 군대를 동원해 …
Name: 정길선  |  Date: 2017-05-25  |  Hit: 467
58. 전진의 부견이 탁발선비를 복속시키고 동진(東晉)과의 비수대전에…
북위사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북위가 건국되기 이전 북위 시조 탁발규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탁발규는 대나라 왕족이자 전체적인 탁발선비의 중원 정착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군주이기 때문이다. 북위의 대표적 군주로 도무제(道武帝-탁발규)와 효문제(孝文帝)를 주로 언급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도무제의 시작이 선비 …
Name: 정길선  |  Date: 2017-05-25  |  Hit: 498
57. 흉노 철불부와 대나라의 대립
318년에는 흉노 철불부 유호의 침입을 격퇴하고 서쪽의 옛 오손국의 고토를 취하였다. 동쪽으로는 물길(勿吉)을 병합하고 상당히 넓은 국토를 영유하게 되자 마침 모용선비가 북상해 와서 모용선비와 내몽골 지역의 영토를 두고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후 모용선비와 전쟁의 결과와 과정에 대해서는 추후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서 고고…
Name: 정길선  |  Date: 2017-05-25  |  Hit: 446
56. 탁발선비의 대(代)나라 건국과 탁발의로의 관제 도입
탁발씨 선비는 위나라 때부터 흉노의 일족들을 몰아내고 조조와 화친과 교역으로 인해 중원 접경 지역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비능 이후에는 단 선비의 세력 하에 있었다. 그것은 전체적인 선비의 균형이 단 선비에 맞춰 있었고 탁발선비가 생활하던 지역은 오환의 범위에 예속되어 있었다. 그러자 오환의 답돈이 위나라에 살…
Name: 정길선  |  Date: 2017-05-25  |  Hit: 452
55. 탁발선비가 통치할 시기의 중기 선비족의 문화와 사회제도
탁발선비의 북위부터 시작되는 남북조 시기, 북위 문화를 중기 선비의 문화로 흔히 규정되며 해당 문화는 선비가 완전히 중원에 정착하면서 유목민족이었던 부분을 버리고 농경 정주문화에 동화되었다. 이것에 가장 대표적인 부분이 귀족 문화의 발달이다. 그리고 종교적으로 불교 문화가 융성했는데 특히 북위의 운강석굴(雲崗石窟)…
Name: 정길선  |  Date: 2017-05-25  |  Hit: 539
54. 탁발선비의 연구 개관
탁발선비는 모용선비와 더불어 한민족과 관계 뚜렷한 선비의 씨족이다. 그리고 중원의 5호 16국의 시대를 종식하고 화북을 통일함으로써 남조의 송나라와 대치하여 남북조 시대를 이끌었던 국가인 북위(北魏)를 건설하기도 하였다. 모용선비가 한창 강성할 때 탁발의로(拓跋猗盧)가 서진(西晋)의 관작을 받고 대(代)나라의 왕으로 봉해…
Name: 정길선  |  Date: 2017-05-25  |  Hit: 435
53. 북연 이후, 모용선비의 향방과 탕가스 족
내전으로 인해 북연은 북위의 압박을 받아 나라가 위태로운 상황이 되자 풍홍은 435년,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만약의 사태가 벌어지면 고구려로 망명하여 재기를 도모할 것을 청하였다. 그리고 436년 북위가 침공하여 백랑성(白狼城)이 함락되고 수도인 용성마저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풍홍은 고구려의 장수태왕(長壽太王)에게 망명을 요…
Name: 정길선  |  Date: 2017-05-25  |  Hit: 365
52. 북연을 세운 모용운과 풍발
모용운은 천왕(天王)에 즉위하여 성을 본래의 성인 고(高)로 고치고 국호는 그대로 유지하였다. 연호를 정시(正始)라 하고 죄수들에 대한 사면령을 내리는 한편 거사를 주도한 풍발을 시중(侍中)으로 삼았다. 나라 이름은 그대로 대연(大燕)이라 하였다. 모용운은 모용보(慕容寶)가 태자로 있었을 때, 무관으로서 모용보를 섬겼다. 모용…
Name: 정길선  |  Date: 2017-05-25  |  Hit: 422
51. 광개토태왕의 서방 원정과 후연의 멸망
401년 용성 내부에서 모반 사건이 벌어졌고 이 때 모용성은 모반을 피하여 도주하다 살해되었다.이 때 모반 사건은 황제인 모용성의 죽음이 있었으나 그의 일족들에 의해 평정되었다. 모용성의 황후 정씨(丁氏)가 차기 황위 자리로 모용희(慕容熙)를 추천했는데 모용희는 모용수(慕容垂)의 서장자였고 고구려 원정에 선봉으로 출정하여 …
Name: 정길선  |  Date: 2017-05-25  |  Hit: 1124
50. 후연의 내부 분열과 쇠락
모용수의 뒤를 이어 모용보(慕容寶)가 황제가 되었다. 모용보는 태자 시절부터 성격이 우유부단하고 문약하여 난세의 군주감이 아니라고 평가되었으며, 이로 인해 태자 지위를 위협받기도 했다. 이러한 부분을 만회하기 위해 395년에 군사를 이끌고 북위(北魏)를 공격하 였으나 참합피(參合陂)에서 탁발규(拓拔珪)에게 대패하였다.황제…
Name: 정길선  |  Date: 2017-05-24  |  Hit: 616
49. 고구려 광개토태왕과 후연의 모용수의 격돌, 후연이 북위(北魏)에게…
하북성 일대의 혼란을 가까스로 진압한 모용수는 고구려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것은 하북 지역 평정과 동진의 세력을 막는 것도 급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고국양왕(故國壤王)은 이러한 모용수의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부친인 고국원왕 시기의 치욕은 잊을 수 없는 부분이…
Name: 정길선  |  Date: 2017-05-24  |  Hit: 849
48. 전진(前秦)의 패망과 모용수의 등장 및 후연(後燕)의 건국
383년, 전진의 부견은 동진을 정벌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 이 때 강족의 장수 요장이 선봉을 맡고 전연의 황족이자 모용황의 다섯째 아들인 모용수가 후위를 맡았다. 보병 60만, 기병 27만의 대군에 서역으로 원정간 10만까지 포함하면 100만이 넘는 대군이었다. 부견의 본군이 형주와 예주로 진격하고, 촉과 한중의 군사는 각기 장강과 …
Name: 정길선  |  Date: 2017-05-23  |  Hit: 457
47. 동진(東晉) 환온의 북벌과 전연, 전진(前秦)의 부견에게 멸망하다.
전진의 부견은 전연을 도모하기 위해 사자를 보내 내부 상황을 판단하였는데 전연이 급속도로 쇠퇴하고 있음을 알고 정복할 계획을 세웠다. 전진의 경우, 중원의 책사인 왕맹(王猛)을 영입하고 재상으로 임명하여 내부 치세를 확장했다. 10여 년 동안 내치를 다졌던 전진은 강력해진 세력을 이끌고 366년부터 서서히 외부 정복전쟁에 나…
Name: 정길선  |  Date: 2017-05-23  |  Hit: 457
46. 모용각의 통치 시대
360년대의 중원은 천하 분란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인 정족지세(鼎足之勢)가 구축되어 있었다. 이것은 주(周)나라 시기, 새 왕조를 세우는데 공을 세운 신하들에게 영지를 배분함으로써 세워진 봉건제도의 최대 악순환의 결과였다. 이 때부터 중원은 춘추전국시대, 진, 한 군웅할거 시대, 삼국의 성립 직전 군웅할거 시대, 이후 5호 16국의 …
Name: 정길선  |  Date: 2017-05-23  |  Hit: 438
45. 모용준과 전진(前秦)의 부견과 격돌
356년 모용준의 태자(太子) 모용엽(慕容曄)이 죽자 시호를 내려 헌회(獻懷)태자라고 하였다. 357년에 셋째 황자인 모용위(慕容暐)를 태자로 삼고 경내에 사면령을 내렸다. 그리고 연호를 개정하여 광수(光壽)라고 하였다. 그리고 모용준은 동생인 모용수(慕容垂)와 중군장군(中軍將軍) 모용건(慕容虔)을 보내 호군장군(護軍將軍) 평희(平熙)…
Name: 정길선  |  Date: 2017-05-23  |  Hit: 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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