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수, 당을 한족 국가라 하여 한족 국가 중 하나로 생각하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수, 당은 본연의 문화와 한족 문화를 입혀서 혼합문화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수, 당이 선비 본연의 색체를 점점 잃어가던 시기에 혈통적으로 선비의 혈통인 것은 수, 당의 시조들에만 해당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나라는 문제 이후, 당나라는 태종 이후, 선비족 보다는 한족의 입장에서 보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본 단락과 본 연구는 수, 당의 전체적인 역사 보다는 수나라 시조인 양견과 당나라 시조인 이연의 가계에 대하여 서술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러한 가계와 건국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도 함께 서술하고자 한다. 그것은 수, 당의 시조와 그 뿌리에 대한 이해는 본고의 선비에 대한 연구 중 최종적 부분이고 선비가 한족에 흡수되었다는 설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수나라를 건국한 양견은 수국공(隨國公) 양충(楊忠)의 아들로 태어났다. 양견에 대해서 서술하기 전에 양충이 어떠한 인물이었는지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양충의 집안은 북위-서위-북주 등 선비 정복왕조에서 6대에 걸쳐 태수와 장군을 역임한 선비에서는 명문 가문 출신이었다. 『수서(隋書)』에서는 양충의 조상이 후한의 태위 벼슬을한 양진(陽震)에서 비롯한다고 서술되어 있으나,* 양진의 8대 손으로 모용선비 전연의 북평(北平)태수를 지낸 양현(陽鉉) 이전으로 올라가면 구체적인 기록이 전혀 없다.
* 『수서(隋書)』, 卷一,「帝紀」, 第一 , <高祖>上. [본문] 高祖文皇帝, 漢太尉震八代孫鉉, 仕燕爲北平, 太守, 鉉生元壽, 後魏代爲武川鎭司馬, 元壽生太原太守惠嘏嘏染見, 烈生寧遠將軍禎, 禎生忠, 忠卽皇考也, 皇考從周太祖, 位至柱國, 隋國公.
양현의 아들이며 양견의 5대조인 양원수(陽元壽)는 무천진(武川鎭)에 자리를 잡고 탁발선비 정복왕조를 섬기기 시작했다. 4대조와 3대조는 북위의 태수였고, 아버지 양충과 양홍(陽虹)은 북위의 장군이었다. 양견의 아내인 문헌황후(文獻皇后)는 무천진(武川鎭) 독고신(獨孤信)의 딸이다.* 독고신은 무천진(武川鎭)의 우문태(宇文泰)를 섬기며, 서위를 세우고, 후에 북주를 창건하는데 큰 공을 세운 8주 국(八柱國)의 일원이었다. 독고신의 장녀는 우문태의 장자로 북주의 첫 번째 황제가 된 명제(明帝)와 결혼을 했고, 일곱 번째 딸은 양견과 결혼을 했고, 넷째 딸은 당 고조 이연의 아버지와 결혼을 하였다.*
* 『주서(周書)』, 卷 十六,「 獨孤信列傳」, 第八. [본문] 獨孤信, 其先者, 爲部落大人, 與魏俱起, 祖, 和平中. 自雲中鎭武川因家焉, 父, 爲領民酋長, 建明初, 信爲大都督, 信與太祖鄕里 少相友, 信長女周明敬后, 第四女, 元貞皇后, 第七女, 隋文獻后, 周隋及皇家, 三代皆爲外戚.
* 『구당서(舊唐書)』, 卷 一,「高祖本紀」, 第 一. [본문] 高祖, 姓李氏諱淵, 皇祖諱虎, 與周文帝及, 大司馬 獨孤信等, 稱爲八柱國家, 追封唐國公, 皇考諱昞 [北]周安州總管, 襲唐國公, 追尊元皇帝, 高祖七歲襲唐國公, 帝獨孤皇后 卽高祖從母也.
독고신 휘하의 대장군 양충은 우문태에 의해 수국공(隋國公)에 봉해졌고, 양견은 부친 양충의 칭호를 물려받아 후에 자신이 세운 나라의 이름으로 삼았다. 양견의 집안은 선비 정복왕조 지배계급의 핵심 씨족에 속한 것이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양씨 집안이 한족 조상을 가졌다 해도, 모용선비 전연이 370년에 멸망하기 이전 양진의 8대손이 전연 북평 태수가 된 언제인가부터 선비어를 말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양견이 수나라를 세운 581년에는 최소한 211년간 선비어를 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 『북사(北史)』, 卷 六十,「王雄列傳」, 第 四十八. [본문] 王雄, 開國公李虎, 柱國大將軍, 開國公獨孤信, 與周文帝[宇文泰]爲八柱國, 開國公楊忠, 是爲十二大將軍.
북위 말엽에 양홍(陽虹)장군 집안에 양충이 태어났다. 양충은 18세에 태산으로 갔다가, 마침 북벌하던 양나라 군대에게 포로가 되었다. 양나라는 강남 지역에 있던 왕조로, 북위와 적대국이었다. 양충은 잡혀가서 목숨은 부지했고 5년 뒤에 양나라가 다시 한 번 북벌을 감행하자 따라서 올라갔다가 도중 진영을 탈출하여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북위의 독고신이라는 장수의 부하로 종군했다. 본래 북위의 여러 실력자들도 우문태와 고환, 양쪽을 두고 결정해야 했는데, 독고신은 우문태의 어렸을 때 같은 고향 출신이었기 때문에 우문태의 휘하에 들어갔다. 독고신의 부하였던 양충도 여기에 따라가면서 두 장수는 최전선으로 파견되었다.
그런데 서위는 후일 북주라는 국가로, 동위는 후일 북제라는 국가로 변환하였다. 북제는 수도가 낙양에 함곡관(咸谷關)을 경계로 평야지대를 확보했고, 바다에 면하는 황하 하류를 끼고 있었기에 농산물이 풍부하여 매우 강대했다. 상대적으로 북주는 초반에 북제에게 밀리는 형편이었고, 북주의 전신이었던 서위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동위의 공격에 서위는 시달렸고, 최전선에 있던 독고신과 양충도 이러한 공격에 시달리게 되었다.
독고신과 양충은 계속되는 동위의 공격에 패배하여 양나라로 달아났다. 그런데 양충이 이전에 양나라에 왔을 때 신망을 쌓아, 양나라는 독고신과 양충을 보호했고 후하게 대접했다. 2년 뒤 독고신과 양충은 다시 북주로 돌아왔고 독고신은 귀환 이후에 우문태의 핵심 측근이 되었다. 여기에 독고신이 양충을 천거하여 양충을 기용하게 하려 하였으나 우문태가 양충에 대해 잘 알지 못하여 크게 기용하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우문태는 양충을 데리고 사냥을 하면서 그를 살펴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 우문태를 공격하자 호랑이를 죽이고 우문태를 살려주었다.*
* 『通志』 [본문] 神擊敗, 連續票面金額的, 攻擊,逃到。然而,有關金額的, 國家,當它來到昆蟲, 先前建立起來的, 信任,在國家和的, 神保護卷染機的, 娛樂性。兩年後,重新卷染, 機返回後上帝和神的. 核心海歸助手是正確的。一千神住在這裡卷, 染機卷染試圖任命,但不知道很多關, 於玉文的, 狀態問題主要是任命。所以,有權採取卷, 染看著他打獵時,突然出現, 讓老虎攻擊, 殺吳吳還活著。
우문태를 살려준 공으로 양충을 표기대장군으로 승진시키고 측근에 두었다. 그리고 541년 장안 부근의 반야사라는 절에서 장자를 출생하니 그가 훗날 수 문제가 되는 양견이다.*
* 『자치통감(資治通鑑)』, [본문] 昉見靜帝幼衝,以楊堅後父,有重名,遂與領內史鄭譯、禦飾大夫柳裘、內史大夫杜陵韋謩、禦正下士朝那皇甫績謀引堅輔政。堅固辭,不敢當。昉曰:「公若為,速為之;不為,昉自為也。」堅乃從之,稱受詔居中侍疾。裘,惔之孫也。是日,帝殂。秘不發喪。昉、譯矯詔以堅總知中外兵馬事。顏之儀知非帝旨,拒而不從。昉等草詔署訖,逼之儀連署,之儀厲聲曰:「主上升遐,嗣子衝幼,阿衡之任,宜在宗英。方今趙王最長,以親以德,合膺重寄。公等備受朝恩,當思盡忠報國,奈何一旦欲以神器假人!之儀有死而已,不能誣罔先帝。」昉等知不可屈。乃代之儀署而行之。諸衛既受敕,並受堅節度。堅恐諸王在外生變,以千金公主將適突厥為辭,徵趙、陳、越、代、滕五王入朝。堅索符璽,顏之儀正色曰:「此天子之物,自有主者,宰相何故索之!」堅大怒,命引出,將殺之;以其民望,出為西邊郡守。
수나라 최대 판도
중국 섬서성 시안에서 있는 수 문제의 동상
수나라 문제 양견의 초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