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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gs.jpg  정길선  북방유라시아 유목사 산책
 
  우문각의 북주와 우문호의 세도정치
  
   작성자 : 정길선
작성일 : 2017-05-30     조회 : 556  

북주는 우문각(宇文覺)에 의해 556년에 건국되었다. 북주의 건국과 우문선비에 대한 연구에 들어가기 전에 우문선비가 어떻게 서위의 영토 지역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 주목하여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문태의 출신지는 무천진(武川鎭)(貿泉鎭)으로 현재 내몽골자치구 지역으로 감숙성 이북으로 추정되고 있다. 해당 지역은 과거에 흉노의 영지였고 혁련씨의 발원지였으며 후일 모용선비가 모용외와 갈라섰던 모용토욕혼이 해당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신장위구르 지역까지 영위했던 곳이기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호(胡)족들이 무천진(武川鎭)에 거주하였으며 우문선비도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전연의 모용황과 모용준에게 축출되어 막북으로 달아났다가 이 지역으로 남하한 것으로도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북위에 복속되었다가 무천진(武川鎭)으로 이주하였을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다. 이것은 우문씨족이 여러 계층으로 분산되어 이동했고 그 중 가장 강력한 부분이 무력적인 부분인데 북위의 장수들 중 우문씨족 계열들이 상당수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우문씨족 출신 장수들이 주로 변경에 배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가운데 우문굉(宇文肱)이 대표적인 장수 중 하나였다. 우문굉은 아들인 우문태가 나타나기 전에 무천진(武川鎭)으로 이주하여 성주(城主)가 되었다.여기에서 우문태가 탄생했고 부친인 우문호가 사망하자 성주 지위를 이어 받았다. 그리고 우문태는 해당 지역의 호족들을 모두 통합하여 군벌을 만들어 상당 기간 진주했다. 우문태는 처음 북위 6진의 난에 참가하였다가 이주씨에 의해 토벌이 감행되자 탁발선비의 모태인 하란부로 도주하여 부족장인 하발악(賀拔岳)에 귀의했다. (『주서(周書)』, 卷二,「帝紀」下, 第二, <文帝> [본문] 魏氏之初,統國三十六,大姓九十九,後多絕滅。至是,以諸將功高者為三十六國後,次功者為九十九姓後,所統軍人,亦改從其姓, 穿鮮卑服装。)


하발악이 죽자 하발악이 가지고 있던 기반을 계승한 뒤 관중 지방으로 남하하여 세력권을 확장했다. 그리고 북위의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 사천지방으로 원정하여 대부분 약탈하고 중원 서쪽 지방의 거대 군벌로 등장했다. 우문태는 우문선비의 씨족들의 맹주가 되어 스스로 관서대도독을 칭하여 장안을 수도로 삼았고 이른바 단독 괴뢰정부로 군림하기도 하였는데 이것이 북주가 세워진 기반을 이룩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였다.


이 때 효무제(孝武帝)가 북위의 재상 고환(高歡)으로부터 도망쳐 그에게로 왔다. 그 후 고환이 동위를 건국하자 우문태도 사이가 나빠진 효무제를 독살하고 문제(文帝)를 옹립하니 이것이 서위가 되었다. 그 후, 우문태는 서위의 대재상으로까지 승진했다. 강력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하였고 대다수 호족들의 지지를 받은 우문태는 새롭게 24군제를 창시했는데, 이 제도는 군의 조직을 주국 → 대장군 → 개부(開府)의 계열로 내려오게 한 뒤, 가장 큰 정점에 우문태가 있게 한 것으로 재편했다. 이 제도는 후에 부병제(府兵制)의 근간이 되었다.


서위는 우문태가 실권을 장악했기 때문에, 우문태의 중심으로 모든 정사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비록 국력은 동위에 비해 떨어졌지만 우문태의 군사적 능력이 뛰어나 여러 차례 동위를 압도하는 전과를 올릴 수가 있었다.


553년, 남조 양나라가 후경(後景)의 난에 의해 혼란해진 사이를 틈타 사천지방을 함락하여 영토를 확장했다. 또한 강릉(江陵)을 함락하여 양나라의 원제(元帝)을 자살하게 한 뒤, 양나라의 옹주자사(雍州刺史) 소찬(蕭餐)을 보호하고 강릉으로 복귀시켜 주인으로 삼았다. 이 나라가 바로 후량(後梁)이었으며, 이를 통해 남조에 타격을 주는 데도 성공한다.이후 우문태가 사망하자 대재상을 물려받은 우문각(宇文覺)은 557년 서위의 공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제위에 올라 북주를 건국했다. 여기에서 우문각은 후에 효민제(孝閔帝)로 추증이 되기 때문에 본 단락에서는 효민제로 서술하기로 한다. (『주서(周書)』, 卷三,「帝紀」, 第三, <孝閔帝> [본문] 十二月丁亥,魏帝詔以岐陽之地封帝為周公。庚子,禪位於帝....(중략)....元年春正月辛丑,即天王位。柴燎告天,朝百官於路門. )


그러나 북주의 실권은 우문태의 조카였던 우문호(宇文護)가 쥐고 있었다. 효민제는 우문호의 무소불위의 권력 행사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제거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효민제의 이러한 행위를 알아챈 우문호는 오히려 쿠데타를 일으켜 효민제를 살해했다. 서위의 공제에게 양위는 받았으나 황제로써 권위를 세우지 못한 효민제는 후세에 우문호의 세도정치에 의한 희생양으로 평가되었다. 북제는 고양이 단독으로 정권을 이끌어 가는 반면 북주는 우문호의 세도정치로 인한 내부씨족들의 정권분쟁으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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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드라마에 나타나는 북주 효민제 우문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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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드라마에 나타나는 권신 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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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당나라 고조 이연, 태종 이세민이 선비족 출신이라는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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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선  |  Date: 2017-06-02  |  Hit: 839
85. 당나라 고조 이연은 서량 황실 후손이자 선비족의 후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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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선  |  Date: 2017-06-01  |  Hit: 656
84. 수 문제의 탄생설화와 문제의 가계에 대하여
개국 황제의 출생에는 대부분 설화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수나라 문제 양견 역시 탄생설화가 존재했고 탄생설화는 다음과 같다. "갑자기 반야사의 정원이 양견이 출생할 무렵 보랏빛으로 밝게 빛났다. 비구니가 이르기를 "보통 아들이 아니니 소중하게 키워야 한다." 라고 말했다. 양견이 태어나게 되었는데 양견의 이마에 용의 뿔…
Name: 정길선  |  Date: 2017-06-01  |  Hit: 492
83. 수나라 양견은 선비족 출신이고 수나라는 선비족 국가이다.
흔히 수, 당을 한족 국가라 하여 한족 국가 중 하나로 생각하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수, 당은 본연의 문화와 한족 문화를 입혀서 혼합문화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수, 당이 선비 본연의 색체를 점점 잃어가던 시기에 혈통적으로 선비의 혈통인 것은 수, 당의 시조들에만 해당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나라는 문제 이…
Name: 정길선  |  Date: 2017-06-01  |  Hit: 595
82. 북주 무제의 북제 정복과 수국공 양견의 등장
북주를 멸망시킨 이후 무제는 북제와 동맹국인 고구려를 공격했으나 대패하고 고구려에 대한 공격을 단념했다.* 온달 장군이 등장하여 북주를 격퇴했던 것이 바로 이 시기이다. 그리고 577년에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평원태왕을 개부의동삼사대장군요동군개국공고구려왕(開府儀同三司大將軍遼東郡開國公高句麗王)으로 임명했다.* 577…
Name: 정길선  |  Date: 2017-06-01  |  Hit: 445
81. 북주와 고구려의 외교관계
북주와 고구려간의 외교적 부분의 대외관계에서는 고구려가 먼저 서위 시절인 546년에 외교 및 교역사절을 보냈다. 그리고는 서로간의 큰 교류가 없었다. 그것은 고구려는 원래 북제와 영토와 국경을 마주했기 때문이고, 동위와 북제를 세웠다고 할 수 있는 고환이 고구려계이기 때문이다.* 북주가 세워진 이후 고구려와 북주의 관계 기…
Name: 정길선  |  Date: 2017-05-31  |  Hit: 485
80. 우문각의 북주와 우문호의 세도정치
북주는 우문각(宇文覺)에 의해 556년에 건국되었다. 북주의 건국과 우문선비에 대한 연구에 들어가기 전에 우문선비가 어떻게 서위의 영토 지역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 주목하여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문태의 출신지는 무천진(武川鎭)(貿泉鎭)으로 현재 내몽골자치구 지역으로 감숙성 이북으로 추정되고 있다. 해당 지역은 과거에 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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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북제 북주의 돌궐과의 관계를 표현한 왜곡된 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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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505
78. 강력한 돌궐에 북주와 북제가 무릎을 꿇다
유연이 중앙아시아를 지배하고 있으며 한창 전성기를 누릴 무렵, 서쪽에는 유연의 지배하에 있던 철륵계 부족들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간 유연의 관심이 북위 시기 까지는 중원에 쏠려 있었고 중원에 있는 세력들은 유연에 대한 경계를 철저히 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연과 중원 세력들 간의 알력다툼은 매번 유연의 패배로 끝이 났다. …
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522
77. 초기 거란과 고구려와의 관계
거란은 소수림왕 제위 시기인 378년에 고구려를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고 8개 부락을 탈취했다.*이것 역시 거란이 생기고 나서 단독으로 이웃을 공격하여 거둔 거란사에 있어서 최초의 승리였다. 그러나 거란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광개토태왕의 공격을 받아 종속국이 되고 말았다.   * 『삼국사기(三國史記)』, 卷第 十八,「고…
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481
76. 우문선비와 그 갈래 민족들 (거란, 실위, 해, 습, 지두우, 고막해)와 …
우문선비는 고구려, 부여와 국경을 마주한 관계로 많은 친연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공식적인 부분에서 모용선비가 고구려, 부여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지만 비공식적인 부분에서는 우문선비와 관계가 잦았으며 필요에 따라 이동하고 정주하는 부분이 더욱 강하였다. 여기에서 공식적인 부분이라는 것은 정식국가와 같이 사신 왕래 …
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700
75. 우문선비의 요동, 요서 지역 정착과 모용선비와의 관계
우문선비는 강력한 세력을 일으키던 부족은 아니었으나 북위가 건국되기 이전에는 주로 요동과 요서지역에서 영위하였으며 주로 목축업을 하였다. 주로 목축업을 하던 지역은 오환의 옛 영토인 적봉과 서랍목륜하 지역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지역은 고구려, 부여와 주로 국경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었고 때로는 고구려의 보호를…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451
74. 탁발선비 연구에 대한 마무리와 탁발씨의 한족과 동화에 관하여
서위에 소속되어 있던 탁발선비의 일족은 북주가 건국된 이후 그대로 중원에 남았다. 우문선비가 건국한 북주는 인재 등용의 폭을 넓혀 오히려 전 왕조의 황족들인 탁발선비도 관직에 등용했다. 그리고 우문선비는 탁발선비의 과거 용맹성을 매우 높이 샀기 때문에 주로 무관직에 등용하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탁발선비의 황족이 …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375
73. 탁발선비의 투르크계 변환과 중원 정착, 중앙아시아의 선비계 민족 …
동위와 서위가 멸망한 뒤 동위의 탁발선비 세력들은 북제의 시조 고양에 의해 북쪽 변경인 회삭진(懷朔鎭) · 무천진(武川鎭) · 무명진(撫冥鎭) · 유현진(柔玄鎭) · 옥야진(沃野鎭) · 회황진(懷荒鎭)에 강제 추방되었다. 북제의 고양은 이들 6개 진에게 탁발선비의 황족들과 남은 씨족들을 감시하게 하였는게 앞서 언급한 6개의 진들은 효…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722
72. 북제와 북주의 성립
550년, 후경(後景)이 남조 양(梁)나라에 항복해 동위를 배신하자 고양은 모용소종(慕容紹宗)에게 후경을 공격하게 하고, 동위에 남아있던 후경의 처자식을 죽였다. 또한 양나라와 수호관계를 맺고, 후경을 고립상태로 몰아넣었다. (『양서(梁書)』, 卷七十,「侯景傳」, 第七 [본문] 王僧辯遣侯瑱率軍追景。景至晉陵,劫太守徐永東奔吳郡…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470
71. 북위, 동위와 서위로 분열되고 북제의 고씨 집안은 고구려의 후예이…
6진의 유력자 중에 고조의 일족들이 있었는데 6진의 난을 거쳐 북위의 멸망과정에서 고조의 일족 중에서 다시 권력중추에 올라선 자들도 있었다. 회삭진 출신으로 동위(東魏)의 실권을 장악하여 북제의 기초를 닦았던 고환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또한 무천진(武川鎭) 출신의 유력자는 무천진(武川鎭) 군벌, 일명 관롱집단(關籠集團)으로…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568
70. 북위 영태후의 섭정과 6진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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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575
69. 고구려계 고조의 북위에 대한 철권통치와 그의 죽음과 몰락
선무제는 외가 인척들에게 매우 극진하여 외삼촌인 고조 형제들에게 관직과 작위를 주고 외조부 고양(高陽)과 외조모에게도 작위를 추증하였다. 그리고 501년, 국정을 측근이나 외척인 고조(高肇)에게 맡겼고 선무제는 정치보다는 오히려 향락에 심취하여 지냈다. 게다가 불교에 입도하여 점차적으로 불교신앙에 빠지면서 오히려 정치…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399
68. 북위, 백제와의 전쟁과 효문제, 문소황후의 죽음
493년 수도를 평성에서 낙양(洛陽)으로 천도하고 대대적인 한족문화를 받아들이는 작업 시행했다. 이것은 풍태후도 하지 않았던 일로도 일찍이 풍태후의 섭정시기에도 이러한 제안이 들어온 적 있었으나 풍태후는 선비족의 정체성이 사라질까 우려하여 실행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효문제는 친정을 시작하자마자 가장 위험한 일을 자행…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448
67. 북위 효문제, 백제와 전쟁에서 패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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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449
66. 북위 황실과 조정의 권력을 장악한 고구려 인
476년 고구려의 유력인사들이 대거 북위와 통교(通交)하면서 정착하여 살게 되었는데 그 중 고조(高肇)가 이와 같은 인물이었다. 고조(高肇)일가는 발해 고씨(撥海高氏)로 대대로 중원에 정착하여 살았던 완벽한 한족일가였다. 고조의 5세조인 고고(高苦)는 4세기 초 서진이 멸망할 무렵 난리를 피해 고구려로 갔다. 고고의 가문은 고구…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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