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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gs.jpg  정길선  북방유라시아 유목사 산책
 
  우문선비의 요동, 요서 지역 정착과 모용선비와의 관계
  
   작성자 : 정길선
작성일 : 2017-05-29     조회 : 451  

우문선비는 강력한 세력을 일으키던 부족은 아니었으나 북위가 건국되기 이전에는 주로 요동과 요서지역에서 영위하였으며 주로 목축업을 하였다. 주로 목축업을 하던 지역은 오환의 옛 영토인 적봉과 서랍목륜하 지역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지역은 고구려, 부여와 주로 국경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었고 때로는 고구려의 보호를 받았으며 부여의 보호를 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해당 지역에 단 선비가 내려오자 우문선비와 섞여 살기도 하였다.


이러한 우문선비의 역사는 북주가 건국되기 이전까지는 계속 다른 민족에 복속되었던 전례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독립된 국가를 건국하기에는 북주를 세우기 이전에는 다른 선비계통의 부족들하고 비교할 때 계체수와 부족을 구성하는 씨족들이 매우 작은 민족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제법 넓은 범위로 이동이 가능했고 다른 민족들은 이러한 우문선비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것은 고구려와 부여조차도 우문선비가 크게 위협적으로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에 고구려, 부여에 대한 왕래가 매우 자유로웠고 때로는 부여, 고구려의 영토 깊숙이 들어와서 유목행위를 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우문선비는 고구려 및 남쪽의 오환(烏丸)과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또한 요동군(遼東郡) 양평현(襄平縣) 출신인 공손도(公孫度)가 후한말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요동(遼東) 지역을 장악한다. 233년 막북(漠北)에 자리잡고 있던 가비능(軻比能)은 이미 위나라에 항복해 장성을 지키는 번병 역할을 하고 있던 보도근(步度根)을 회유해 서로 화친을 맺고 병주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도록 사주한다. 이 정보를 입수한 병주자사 필궤(畢軌)는 장성을 넘어 군대를 진격시켜 음관(陰館)에 둔영을 설치한다. 가비능(軻比能)은 직접 만 명의 기병을 몰고 형북(陘北)까지 내려와 보도근의 부족과 연합을 꾀한다. 필궤(畢軌)와 가비능(軻比能)은 누번(樓煩)에서 위나라 군대를 격파하자 이에 위나라는 효기장군(驍騎將軍) 진랑(秦朗)을 보내 중군(中軍)을 거느리고 토벌하게 했다. 가비능(軻比能)과 보도근(步度根) 등의 무리는 위나라의 대군과의 정면대결을 피해 막북(漠北)으로 달아났다. 그 후 선비대인(鮮卑大人) 보도근, 설귀니(泄歸泥)등이 가비능과 서로 틈이 벌어져 부락(部落)의 3만여 가(家)를 거느리고 안문군(雁門郡)으로 와서 귀부하였고, 견초는 운중(雲中)의 옛 군(郡)에서 가비능을 쳐서 대파한다.


모용외(慕容廆)의 조부인 목연(木延)은 가비능의 좌현왕(左賢王)이었고, 부친인 섭귀(涉歸)는 공손연(公孫淵) 공격 당시 유성(柳城)을 보전한 공으로 위나라로부터 선비선우(鮮卑單于)로 임명되고 요동(遼東) 북쪽으로 읍락을 옮긴다. 여전히 우문선비는 작은 부족이었지만 우문선비의 영토에 갑자기 모용선비가 침공하여 섞여 살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우문선비가 모용선비에 대한 강한 반감을 가지게 되었고 급기야 모용선비가 우문선비를 지배하려 하자 강력히 저항했다. 특히 모용선비의 수장인 모용섭귀 하고는 격렬히 저항하여 단 선비와 손잡고 모용선비를 공격했으며 중원 대륙에 진출하려던 모용선비는 우문선비의 저항에 매번 고초를 겪어야 했다.


우문선비와 사이가 좋지 못하였던 섭귀(涉歸)가 죽자 장남인 토곡혼(吐谷渾)은 둘째아들인 모용외(慕容廆)가 선우의 자리를 계승하였기에, 그는 부하들을 거느리고 농서 지역으로 이주하여 지금의 감숙성 대력가산(大力加山)에서 살았다. 그리하여 토곡혼은 이곳을 근거지로 삼고 인접한 저족(氐族)과 강족(羌族)등을 침공하여 서북지역의 강대국이 되었다. 이 때 모용외와 모용황이 우문선비를 공격하자 우문선비는 패배하여 송막(松漠) 사이 땅으로 도망가서 정착하였다.


370년에 전진(秦)의 왕맹(王猛)이 전연을 공격하여 멸망시키자, 이 틈을 노려 우문선비가 남하하여 고구려를 침략하고 남쪽으로 세력을 넓힌다. 탁발십익건(拓跋什翼健)의 손자 탁발규(拓跋珪)는 전진이 비수의 전투에서 대패하여 쇠퇴한 시기를 틈타 서기 386년 대나라 왕을 칭하고 자립하였다.


이후 대나라 영토 동부지역에 우문선비의 일족 중 하나인 지두우(地豆于)*가 서요하 지역으로 이동하여 대나라와 국경을 마주하게 되자 두 나라는 충돌하게 되었다. 그리고 탁발규(拓跋珪)가 서진하고 있는 지두우의 약낙수(弱洛水) 남쪽에서 크게 격파하자 지두우는 서진을 단념하게 되었다.이러한 지두우에게서 거란(契丹)이 독립하여 민족을 형성하게 되었고 북위가 세력을 확대하고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이 공격하자 모두 함락되었다.* 그리고 우문선비는 북위로 복속되어 군사적인 부분에서 성장을 거듭했고 장안과 사천성 지역에는 우문태(宇文泰)가 군벌로 성장하여 서위(西魏)의 실권자가 되었다. 이후 우문태의 아들인 우문각(宇文覺)이 서위의 황제인 공제에게 양위 받아 북주(北周)를 건국하게 되었다.


* 『위서(魏書)』卷 百六,「地豆于列傳」, 第 八十八 [본문] 庫莫奚國之先, 東部宇文之別也, 初爲慕容元眞所破, 遺落者竄匿松漠之間. 

 
* 『위서(魏書)』卷 百六,「地豆于列傳」, 第 八十八 [본문] 地豆于國, 在失韋西千餘里, 多牛羊, 出名馬, 皮爲衣服, 無五穀, 惟食肉酪' 延興二年八月, 遣使朝貢, 至於太和六年, 貢使不絕, 十四年, 頻來犯塞, 高祖詔征西大將軍, 陽平王頤擊走之, 自後時朝京師, 迄武定末, 貢使不絕.

    
* 『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본문] 其辭曰 永樂五年歲在乙未 王以碑麗不息□ 叉躬率住討 □富山 負山 至鹽水上破其丘部洛 六七百當 牛馬群羊 不可稱數 於是旋駕 因過□平道 東來 □城 力城 北豊五□ 遊觀土境田獵而還.


 * 『삼국사기(三國史記)』, 卷第 十八,「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 第 六, <廣開土太王> [본문] 九月, 北伐契丹, 虜男女五百口, 又招諭, 本國陷沒民口一萬而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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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선비가 영위했던 대흥안령산맥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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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선비의 후예 지두우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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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두우 분할 사건의 지도

 

 
 
TOTAL 170
86. 당나라 고조 이연, 태종 이세민이 선비족 출신이라는 근거
이연 집안이 한족 조상을 가졌다 해도, 탁발선비가 화북을 통일한 439년 이후부터 선비어를 말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이연이 당 나라를 세운 618년에는 이미 179년 가까이 선비어를 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북주는 고사하고 한족 국가로 간주해도 된다고 흔히 말하는 북제 조정의 언어 역시 선비어였다. 그리고 북주가 한화정책을 거부하고 …
Name: 정길선  |  Date: 2017-06-02  |  Hit: 839
85. 당나라 고조 이연은 서량 황실 후손이자 선비족의 후예이다.
당나라를 건국한 이연은 당국공(唐國公) 이병(李昞)의 자식으로 먼저 이연의 가계와 당나라를 건국한 과정, 그리고 이연의 선조들이 어떠한 인물들이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당나라가 선비족 계통의 국가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연의 7대조는 이고(李暠)*로 흉노 부족이 오늘날 감숙성 지역…
Name: 정길선  |  Date: 2017-06-01  |  Hit: 656
84. 수 문제의 탄생설화와 문제의 가계에 대하여
개국 황제의 출생에는 대부분 설화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수나라 문제 양견 역시 탄생설화가 존재했고 탄생설화는 다음과 같다. "갑자기 반야사의 정원이 양견이 출생할 무렵 보랏빛으로 밝게 빛났다. 비구니가 이르기를 "보통 아들이 아니니 소중하게 키워야 한다." 라고 말했다. 양견이 태어나게 되었는데 양견의 이마에 용의 뿔…
Name: 정길선  |  Date: 2017-06-01  |  Hit: 492
83. 수나라 양견은 선비족 출신이고 수나라는 선비족 국가이다.
흔히 수, 당을 한족 국가라 하여 한족 국가 중 하나로 생각하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수, 당은 본연의 문화와 한족 문화를 입혀서 혼합문화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수, 당이 선비 본연의 색체를 점점 잃어가던 시기에 혈통적으로 선비의 혈통인 것은 수, 당의 시조들에만 해당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나라는 문제 이…
Name: 정길선  |  Date: 2017-06-01  |  Hit: 595
82. 북주 무제의 북제 정복과 수국공 양견의 등장
북주를 멸망시킨 이후 무제는 북제와 동맹국인 고구려를 공격했으나 대패하고 고구려에 대한 공격을 단념했다.* 온달 장군이 등장하여 북주를 격퇴했던 것이 바로 이 시기이다. 그리고 577년에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평원태왕을 개부의동삼사대장군요동군개국공고구려왕(開府儀同三司大將軍遼東郡開國公高句麗王)으로 임명했다.* 577…
Name: 정길선  |  Date: 2017-06-01  |  Hit: 445
81. 북주와 고구려의 외교관계
북주와 고구려간의 외교적 부분의 대외관계에서는 고구려가 먼저 서위 시절인 546년에 외교 및 교역사절을 보냈다. 그리고는 서로간의 큰 교류가 없었다. 그것은 고구려는 원래 북제와 영토와 국경을 마주했기 때문이고, 동위와 북제를 세웠다고 할 수 있는 고환이 고구려계이기 때문이다.* 북주가 세워진 이후 고구려와 북주의 관계 기…
Name: 정길선  |  Date: 2017-05-31  |  Hit: 485
80. 우문각의 북주와 우문호의 세도정치
북주는 우문각(宇文覺)에 의해 556년에 건국되었다. 북주의 건국과 우문선비에 대한 연구에 들어가기 전에 우문선비가 어떻게 서위의 영토 지역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 주목하여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문태의 출신지는 무천진(武川鎭)(貿泉鎭)으로 현재 내몽골자치구 지역으로 감숙성 이북으로 추정되고 있다. 해당 지역은 과거에 흉…
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557
79. 북제 북주의 돌궐과의 관계를 표현한 왜곡된 서술
북주, 북제는 돌궐이 두려워 해마다 막대한 물자를 바치고 돌궐은 그들 나라를 침략하지 않는 대가로 막대한 물자를 받아 발전한 관계라는 것이다. 돌궐과 북주, 북제는 지배와 피지배자 관계인데 돌궐이 북주에 조공하였다고 『주서(周書)』에서는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은 명제로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명제 2년(558년) 사근이 …
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505
78. 강력한 돌궐에 북주와 북제가 무릎을 꿇다
유연이 중앙아시아를 지배하고 있으며 한창 전성기를 누릴 무렵, 서쪽에는 유연의 지배하에 있던 철륵계 부족들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간 유연의 관심이 북위 시기 까지는 중원에 쏠려 있었고 중원에 있는 세력들은 유연에 대한 경계를 철저히 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연과 중원 세력들 간의 알력다툼은 매번 유연의 패배로 끝이 났다. …
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522
77. 초기 거란과 고구려와의 관계
거란은 소수림왕 제위 시기인 378년에 고구려를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고 8개 부락을 탈취했다.*이것 역시 거란이 생기고 나서 단독으로 이웃을 공격하여 거둔 거란사에 있어서 최초의 승리였다. 그러나 거란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광개토태왕의 공격을 받아 종속국이 되고 말았다.   * 『삼국사기(三國史記)』, 卷第 十八,「고…
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481
76. 우문선비와 그 갈래 민족들 (거란, 실위, 해, 습, 지두우, 고막해)와 …
우문선비는 고구려, 부여와 국경을 마주한 관계로 많은 친연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공식적인 부분에서 모용선비가 고구려, 부여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지만 비공식적인 부분에서는 우문선비와 관계가 잦았으며 필요에 따라 이동하고 정주하는 부분이 더욱 강하였다. 여기에서 공식적인 부분이라는 것은 정식국가와 같이 사신 왕래 …
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701
75. 우문선비의 요동, 요서 지역 정착과 모용선비와의 관계
우문선비는 강력한 세력을 일으키던 부족은 아니었으나 북위가 건국되기 이전에는 주로 요동과 요서지역에서 영위하였으며 주로 목축업을 하였다. 주로 목축업을 하던 지역은 오환의 옛 영토인 적봉과 서랍목륜하 지역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지역은 고구려, 부여와 주로 국경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었고 때로는 고구려의 보호를…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452
74. 탁발선비 연구에 대한 마무리와 탁발씨의 한족과 동화에 관하여
서위에 소속되어 있던 탁발선비의 일족은 북주가 건국된 이후 그대로 중원에 남았다. 우문선비가 건국한 북주는 인재 등용의 폭을 넓혀 오히려 전 왕조의 황족들인 탁발선비도 관직에 등용했다. 그리고 우문선비는 탁발선비의 과거 용맹성을 매우 높이 샀기 때문에 주로 무관직에 등용하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탁발선비의 황족이 …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375
73. 탁발선비의 투르크계 변환과 중원 정착, 중앙아시아의 선비계 민족 …
동위와 서위가 멸망한 뒤 동위의 탁발선비 세력들은 북제의 시조 고양에 의해 북쪽 변경인 회삭진(懷朔鎭) · 무천진(武川鎭) · 무명진(撫冥鎭) · 유현진(柔玄鎭) · 옥야진(沃野鎭) · 회황진(懷荒鎭)에 강제 추방되었다. 북제의 고양은 이들 6개 진에게 탁발선비의 황족들과 남은 씨족들을 감시하게 하였는게 앞서 언급한 6개의 진들은 효…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722
72. 북제와 북주의 성립
550년, 후경(後景)이 남조 양(梁)나라에 항복해 동위를 배신하자 고양은 모용소종(慕容紹宗)에게 후경을 공격하게 하고, 동위에 남아있던 후경의 처자식을 죽였다. 또한 양나라와 수호관계를 맺고, 후경을 고립상태로 몰아넣었다. (『양서(梁書)』, 卷七十,「侯景傳」, 第七 [본문] 王僧辯遣侯瑱率軍追景。景至晉陵,劫太守徐永東奔吳郡…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470
71. 북위, 동위와 서위로 분열되고 북제의 고씨 집안은 고구려의 후예이…
6진의 유력자 중에 고조의 일족들이 있었는데 6진의 난을 거쳐 북위의 멸망과정에서 고조의 일족 중에서 다시 권력중추에 올라선 자들도 있었다. 회삭진 출신으로 동위(東魏)의 실권을 장악하여 북제의 기초를 닦았던 고환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또한 무천진(武川鎭) 출신의 유력자는 무천진(武川鎭) 군벌, 일명 관롱집단(關籠集團)으로…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568
70. 북위 영태후의 섭정과 6진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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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575
69. 고구려계 고조의 북위에 대한 철권통치와 그의 죽음과 몰락
선무제는 외가 인척들에게 매우 극진하여 외삼촌인 고조 형제들에게 관직과 작위를 주고 외조부 고양(高陽)과 외조모에게도 작위를 추증하였다. 그리고 501년, 국정을 측근이나 외척인 고조(高肇)에게 맡겼고 선무제는 정치보다는 오히려 향락에 심취하여 지냈다. 게다가 불교에 입도하여 점차적으로 불교신앙에 빠지면서 오히려 정치…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400
68. 북위, 백제와의 전쟁과 효문제, 문소황후의 죽음
493년 수도를 평성에서 낙양(洛陽)으로 천도하고 대대적인 한족문화를 받아들이는 작업 시행했다. 이것은 풍태후도 하지 않았던 일로도 일찍이 풍태후의 섭정시기에도 이러한 제안이 들어온 적 있었으나 풍태후는 선비족의 정체성이 사라질까 우려하여 실행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효문제는 친정을 시작하자마자 가장 위험한 일을 자행…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448
67. 북위 효문제, 백제와 전쟁에서 패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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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449
66. 북위 황실과 조정의 권력을 장악한 고구려 인
476년 고구려의 유력인사들이 대거 북위와 통교(通交)하면서 정착하여 살게 되었는데 그 중 고조(高肇)가 이와 같은 인물이었다. 고조(高肇)일가는 발해 고씨(撥海高氏)로 대대로 중원에 정착하여 살았던 완벽한 한족일가였다. 고조의 5세조인 고고(高苦)는 4세기 초 서진이 멸망할 무렵 난리를 피해 고구려로 갔다. 고고의 가문은 고구…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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