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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gs.jpg  정길선  북방유라시아 유목사 산책
 
  북위, 동위와 서위로 분열되고 북제의 고씨 집안은 고구려의 후예이..
  
   작성자 : 정길선
작성일 : 2017-05-29     조회 : 568  

6진의 유력자 중에 고조의 일족들이 있었는데 6진의 난을 거쳐 북위의 멸망과정에서 고조의 일족 중에서 다시 권력중추에 올라선 자들도 있었다. 회삭진 출신으로 동위(東魏)의 실권을 장악하여 북제의 기초를 닦았던 고환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또한 무천진(武川鎭) 출신의 유력자는 무천진(武川鎭) 군벌, 일명 관롱집단(關籠集團)으로 불리며 서위부터 북주, 수, 당나라까지 이르는 변천과정에서 각 왕조의 핵심적인 권력집단으로 군림하였다. 북주의 우문태, 수나라의 양견, 당나라의 이연등은 각 왕조의 창시자이며 무천진(武川鎭)의 유력자 일족 출신이었다.


그 후 북위에 대한 남조의 양(梁)나라 군대가 침공하여 황하 이북 지역의 여러 성들을 점령하고 돌아갔다. 북위의 영내에 각종 도적떼들이 창궐하여 치안도 어렵게 되자 영태후는 이주영(爾朱榮)에게 이를 진압하도록 명을 내린다. 그러나 이주영은 난을 평정하러 출병했다.


528년 효명제는 영태후에게 독살당하고 영태후는 원쇠(元釗)를 황제로 세우고 소공황제(少恭皇帝)로 칭하였다. 그러나 이주영(爾朱榮)은 이에 반발하여 산서성 삭현 지방에서 군대를 이끌고 낙양에 들어와 효장제(孝莊帝)를 옹립했다. 이주영은 529년 영태후와 소공황제(少恭皇帝)를 사로잡아 황하에 던져버리고, 승상 이하 대신 1,000명을 처형했다. 사서에서는 이를 하음의 변(河陰之變)이라 한다.


이주영은 6진의 난을 평정하고 진양(晋陽)에서 조정을 움직였으나 이주씨 휘하의 장군이자 고조의 일가인 고환(高歡)이 이주영의 폭정을 비판하여 이주씨와 대립하였다. 고환은 532년 낙양에 들어와 이주씨에 의해 세워진 절민제(節閔帝)을 폐위하고 효무제(孝武帝)를 옹립했다. 고환은 이주씨 일당을 각지에서 격파하였고 북위의 정권은 다시 고환에게로 넘어갔다.


고양왕(高陽王)에 의해 살해되었던 고조는 고환의 뜻으로 효무제에 의해 완전 복권되었고 고조의 일가들이 다시 북위의 정권을 장악하면서 화북 지방은 다시 고구려계에 의해 지배되는 상황에 놓였다. 그러나 효무제는 이번엔 고환의 전횡을 싫어하여 낙양을 탈출해 장안(長安)으로 도망쳤다. 장안에서는 우문태(宇文泰)와 우문선비의 씨족들이 지키고 있었는데 효무제가 장안으로 도망쳐오자 우문태는 효무제를 받아들였다. 우문태가 효무제를 받아들인 것은 북위의 정통성 문제에 기인하여 정당하게 북위의 옥쇄를 받으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효무제가 이를 거부하자 우문태는 효무제를 죽이고 문제(文帝)를 즉위시키니 이로써 북위는 동서로 분열하게 되었다. 역사상 이것을 동위(東魏), 서위(西魏)라 부르게 된다. (『자치통감(資治通鑑)』, 孝武帝, 永熙二年 [본문] 元子攸姿貌很俊美,有勇力。自幼在宮為孝明帝元詡擔任伴讀,與孝明帝頗為友愛,管至中書侍郎,封武城縣開國公,被特封長樂王。農曆四月十一日,被爾朱榮擁立為皇帝,實際上是傀儡。孝莊帝永安二年, 鑄永安五銖錢。永安三年九月二十五日,孝莊帝伏兵明光殿,聲稱皇后爾朱英娥, 爾朱榮的女兒, 生下了太子,派元徽向爾朱榮報喜。爾朱榮跟元天穆一起入朝,元子攸臉色緊張,連忙索酒來喝,光祿少卿魯安、典禦李侃晞從東廂門闖入行刺,爾朱榮撲向元子攸,元子攸用刀將之劈倒,魯安等揮刀亂砍,殺爾朱榮與元天穆等人。十月三十日,爾朱族人爾朱兆另立孝莊帝的遠房堂叔元曄為帝。十二月三日,爾朱兆攻入洛陽,殺死孝莊帝在襁褓中的兒子,孝莊帝被俘。十二月十三日,爾朱兆絞殺孝莊帝於太原城三級寺。臨終前孝莊帝向佛祖禮拜,發願生生世世不做皇帝,並賦詩明志:“權去生道促,憂來死路長。懷恨出國門,含悲入鬼鄉。隧門一時閉,幽庭豈復光。思鳥吟青松,哀風吹白楊。昔來聞死苦,何言身自當。”


고환은 효정제(孝靜帝)를 옹립하고 534년 수도를 업(鄴)으로 옮겼다. 그리고 동위의 정권은 모두 발해 고씨가 장악했다, 북위가 동서로 분열되자 동위(東魏)의 효정제의 궁정에서 승상을 지냈다. 고환은 북위의 화화정책(華化政策)에 불만을 가진 군벌(軍閥)들을 기반으로 태행산맥 동쪽의 산동, 하북을 지배하였고, 서위(西魏)의 우문태와 대립하였다. 동위의 국력은 서위에 비해 우세했지만 여러 차례 우문태와 전쟁에서 패배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환은 앞으로 자신을 대신할 후계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렇기 위해서는 세습적인 부분이 당연히 필요했다. 세습제로 하여 완벽하게 권력을 승계하려면 권력 승계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신속하게 권력을 세습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환은 고민 끝에 아들들의 재주를 시험하기로 하였는데 이는 대략 다음과 같다.


"고환은 하루는 아들들의 재주를 시험할 목적으로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그는 어지럽게 뒤엉킨 삼실 한 뭉치씩을 아들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풀도록 하였다. 고환의 다른 아들들은 모두 한 올 한 올씩 뽑아내느라 진땀을 흘렸으나, 둘째 아들인 고양(高洋)은 칼 한 자루를 들고 와 삼실을 베어버리며 어지러운 것은 베어 버려야 한다고 말하였다. 고환은 고양이 장차 큰일을 할 인물이라 생각하며 기뻐하였다." (《北齊書 • 神武上》曰:其長史慕容紹宗諫曰:“不可,今四方擾擾,人懷異望,況高公雄略,又握大兵,將不可為。”兆曰:“香火重誓,何所慮也。”紹宗曰:“親兄弟尚爾難信,何論香火!”時兆左右已受神武金,因譖紹宗與神武舊有隙,兆乃禁紹宗而催神武發。神武乃自晉陽出滏口。路逢爾朱榮妻北鄉長公主,自洛陽來,馬三百匹,盡奪易之。兆聞,乃釋紹宗而問焉。紹宗曰:“猶掌握中物也。”於是自追神武。至襄垣,會漳水暴長,橋壞。神武隔水拜曰:“所以藉公主馬,非有他故,備山東盜耳。王受公主言,自來賜追,今渡河而死不辭,此眾便叛。”兆自陳無此意,因輕馬渡,與神武坐幕下,陳謝,遂授刀引頭,使神武斫己。神武大哭曰:“自天柱薨背,賀六渾更何所仰,願大家千萬歲,以申力用。今旁人構間至此,大家何忍復出此言!”兆投刀於地,遂刑白馬而盟,誓為兄弟,留宿夜飲。)


고환은 고양을 후계자로 낙점하였는데 장남인 고징(高澄)이 마음에 걸려 고민하다 고징을 다음 승계 자리에 올렸다. 547년 고환이 죽자 고환의 장남 고징이 재상이 되었다. 549년 고징은 상국(相國)에 올라 제나라 왕에 봉해졌다. 그러나 고징은 고양처럼 영명한 재상은 아니었고 주색을 즐기는 매우 포악한 성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고징이 상국의 제왕(齊王)이 되었다고 성정이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 포악한 행동을 일삼던 고징은 부하인 난경(蘭京)에게 살해되었다. 그러자 고환의 차남 고양(高洋)이 상국-제왕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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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롱집단의 범위도, 수나라, 당나라의 뿌리가 여기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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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음의 변을 비롯해 북위를 쇠퇴하게 만든 흉노 출신 장수 이주영(爾朱榮),

중국 드라마에도 번번히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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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 6진의 배치도, 혹은 7진이라고도 한다.

 

 
 
TOTAL 170
86. 당나라 고조 이연, 태종 이세민이 선비족 출신이라는 근거
이연 집안이 한족 조상을 가졌다 해도, 탁발선비가 화북을 통일한 439년 이후부터 선비어를 말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이연이 당 나라를 세운 618년에는 이미 179년 가까이 선비어를 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북주는 고사하고 한족 국가로 간주해도 된다고 흔히 말하는 북제 조정의 언어 역시 선비어였다. 그리고 북주가 한화정책을 거부하고 …
Name: 정길선  |  Date: 2017-06-02  |  Hit: 840
85. 당나라 고조 이연은 서량 황실 후손이자 선비족의 후예이다.
당나라를 건국한 이연은 당국공(唐國公) 이병(李昞)의 자식으로 먼저 이연의 가계와 당나라를 건국한 과정, 그리고 이연의 선조들이 어떠한 인물들이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당나라가 선비족 계통의 국가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연의 7대조는 이고(李暠)*로 흉노 부족이 오늘날 감숙성 지역…
Name: 정길선  |  Date: 2017-06-01  |  Hit: 657
84. 수 문제의 탄생설화와 문제의 가계에 대하여
개국 황제의 출생에는 대부분 설화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수나라 문제 양견 역시 탄생설화가 존재했고 탄생설화는 다음과 같다. "갑자기 반야사의 정원이 양견이 출생할 무렵 보랏빛으로 밝게 빛났다. 비구니가 이르기를 "보통 아들이 아니니 소중하게 키워야 한다." 라고 말했다. 양견이 태어나게 되었는데 양견의 이마에 용의 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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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수나라 양견은 선비족 출신이고 수나라는 선비족 국가이다.
흔히 수, 당을 한족 국가라 하여 한족 국가 중 하나로 생각하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수, 당은 본연의 문화와 한족 문화를 입혀서 혼합문화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수, 당이 선비 본연의 색체를 점점 잃어가던 시기에 혈통적으로 선비의 혈통인 것은 수, 당의 시조들에만 해당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나라는 문제 이…
Name: 정길선  |  Date: 2017-06-01  |  Hit: 596
82. 북주 무제의 북제 정복과 수국공 양견의 등장
북주를 멸망시킨 이후 무제는 북제와 동맹국인 고구려를 공격했으나 대패하고 고구려에 대한 공격을 단념했다.* 온달 장군이 등장하여 북주를 격퇴했던 것이 바로 이 시기이다. 그리고 577년에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평원태왕을 개부의동삼사대장군요동군개국공고구려왕(開府儀同三司大將軍遼東郡開國公高句麗王)으로 임명했다.* 577…
Name: 정길선  |  Date: 2017-06-01  |  Hit: 445
81. 북주와 고구려의 외교관계
북주와 고구려간의 외교적 부분의 대외관계에서는 고구려가 먼저 서위 시절인 546년에 외교 및 교역사절을 보냈다. 그리고는 서로간의 큰 교류가 없었다. 그것은 고구려는 원래 북제와 영토와 국경을 마주했기 때문이고, 동위와 북제를 세웠다고 할 수 있는 고환이 고구려계이기 때문이다.* 북주가 세워진 이후 고구려와 북주의 관계 기…
Name: 정길선  |  Date: 2017-05-31  |  Hit: 486
80. 우문각의 북주와 우문호의 세도정치
북주는 우문각(宇文覺)에 의해 556년에 건국되었다. 북주의 건국과 우문선비에 대한 연구에 들어가기 전에 우문선비가 어떻게 서위의 영토 지역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 주목하여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문태의 출신지는 무천진(武川鎭)(貿泉鎭)으로 현재 내몽골자치구 지역으로 감숙성 이북으로 추정되고 있다. 해당 지역은 과거에 흉…
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557
79. 북제 북주의 돌궐과의 관계를 표현한 왜곡된 서술
북주, 북제는 돌궐이 두려워 해마다 막대한 물자를 바치고 돌궐은 그들 나라를 침략하지 않는 대가로 막대한 물자를 받아 발전한 관계라는 것이다. 돌궐과 북주, 북제는 지배와 피지배자 관계인데 돌궐이 북주에 조공하였다고 『주서(周書)』에서는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은 명제로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명제 2년(558년) 사근이 …
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505
78. 강력한 돌궐에 북주와 북제가 무릎을 꿇다
유연이 중앙아시아를 지배하고 있으며 한창 전성기를 누릴 무렵, 서쪽에는 유연의 지배하에 있던 철륵계 부족들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간 유연의 관심이 북위 시기 까지는 중원에 쏠려 있었고 중원에 있는 세력들은 유연에 대한 경계를 철저히 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연과 중원 세력들 간의 알력다툼은 매번 유연의 패배로 끝이 났다. …
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523
77. 초기 거란과 고구려와의 관계
거란은 소수림왕 제위 시기인 378년에 고구려를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고 8개 부락을 탈취했다.*이것 역시 거란이 생기고 나서 단독으로 이웃을 공격하여 거둔 거란사에 있어서 최초의 승리였다. 그러나 거란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광개토태왕의 공격을 받아 종속국이 되고 말았다.   * 『삼국사기(三國史記)』, 卷第 十八,「고…
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482
76. 우문선비와 그 갈래 민족들 (거란, 실위, 해, 습, 지두우, 고막해)와 …
우문선비는 고구려, 부여와 국경을 마주한 관계로 많은 친연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공식적인 부분에서 모용선비가 고구려, 부여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지만 비공식적인 부분에서는 우문선비와 관계가 잦았으며 필요에 따라 이동하고 정주하는 부분이 더욱 강하였다. 여기에서 공식적인 부분이라는 것은 정식국가와 같이 사신 왕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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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우문선비의 요동, 요서 지역 정착과 모용선비와의 관계
우문선비는 강력한 세력을 일으키던 부족은 아니었으나 북위가 건국되기 이전에는 주로 요동과 요서지역에서 영위하였으며 주로 목축업을 하였다. 주로 목축업을 하던 지역은 오환의 옛 영토인 적봉과 서랍목륜하 지역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지역은 고구려, 부여와 주로 국경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었고 때로는 고구려의 보호를…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452
74. 탁발선비 연구에 대한 마무리와 탁발씨의 한족과 동화에 관하여
서위에 소속되어 있던 탁발선비의 일족은 북주가 건국된 이후 그대로 중원에 남았다. 우문선비가 건국한 북주는 인재 등용의 폭을 넓혀 오히려 전 왕조의 황족들인 탁발선비도 관직에 등용했다. 그리고 우문선비는 탁발선비의 과거 용맹성을 매우 높이 샀기 때문에 주로 무관직에 등용하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탁발선비의 황족이 …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375
73. 탁발선비의 투르크계 변환과 중원 정착, 중앙아시아의 선비계 민족 …
동위와 서위가 멸망한 뒤 동위의 탁발선비 세력들은 북제의 시조 고양에 의해 북쪽 변경인 회삭진(懷朔鎭) · 무천진(武川鎭) · 무명진(撫冥鎭) · 유현진(柔玄鎭) · 옥야진(沃野鎭) · 회황진(懷荒鎭)에 강제 추방되었다. 북제의 고양은 이들 6개 진에게 탁발선비의 황족들과 남은 씨족들을 감시하게 하였는게 앞서 언급한 6개의 진들은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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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북제와 북주의 성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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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북위 영태후의 섭정과 6진의 난
선무제의 뒤를 이어 선무제의 차남인 효명제(孝明帝)가 황제가 되었으나 6세에 불과해 영태후(靈太后)가 섭정하게 되었다. 영태후(靈太后)는 정치를 담당하면서 고조와 고조의 일족들을 일부 복권시켰고, 그들 고조의 일족들 중 고환(高歡)이 매우 영명하고 재능이 있어 발해 고씨 일족들은 다시 고환(高歡)을 중심으로 뭉치게 된다. 고…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575
69. 고구려계 고조의 북위에 대한 철권통치와 그의 죽음과 몰락
선무제는 외가 인척들에게 매우 극진하여 외삼촌인 고조 형제들에게 관직과 작위를 주고 외조부 고양(高陽)과 외조모에게도 작위를 추증하였다. 그리고 501년, 국정을 측근이나 외척인 고조(高肇)에게 맡겼고 선무제는 정치보다는 오히려 향락에 심취하여 지냈다. 게다가 불교에 입도하여 점차적으로 불교신앙에 빠지면서 오히려 정치…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400
68. 북위, 백제와의 전쟁과 효문제, 문소황후의 죽음
493년 수도를 평성에서 낙양(洛陽)으로 천도하고 대대적인 한족문화를 받아들이는 작업 시행했다. 이것은 풍태후도 하지 않았던 일로도 일찍이 풍태후의 섭정시기에도 이러한 제안이 들어온 적 있었으나 풍태후는 선비족의 정체성이 사라질까 우려하여 실행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효문제는 친정을 시작하자마자 가장 위험한 일을 자행…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449
67. 북위 효문제, 백제와 전쟁에서 패배하다.
480년 고구려는 남제(南齊)의 태조(太祖) 소도성(蕭道成)과 통교하기 위하여 사신 여노(餘奴) 등을 보내 예방하게 하였는데, 북위의 광주(光州)에서 여노 등을 붙잡아 북위의 궁궐로 압송하였다. 그리고 남제와의 동맹에 대한 파기를 요구하여* 장수태왕은 북위와의 의리를 생각해서 이를 파기하고 북위와 더욱 통교하게 되었다. 이것은 …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449
66. 북위 황실과 조정의 권력을 장악한 고구려 인
476년 고구려의 유력인사들이 대거 북위와 통교(通交)하면서 정착하여 살게 되었는데 그 중 고조(高肇)가 이와 같은 인물이었다. 고조(高肇)일가는 발해 고씨(撥海高氏)로 대대로 중원에 정착하여 살았던 완벽한 한족일가였다. 고조의 5세조인 고고(高苦)는 4세기 초 서진이 멸망할 무렵 난리를 피해 고구려로 갔다. 고고의 가문은 고구…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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