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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gs.jpg  정길선  북방유라시아 유목사 산책
 
  북위 효문제, 백제와 전쟁에서 패배하다.
  
   작성자 : 정길선
작성일 : 2017-05-27     조회 : 449  

480년 고구려는 남제(南齊)의 태조(太祖) 소도성(蕭道成)과 통교하기 위하여 사신 여노(餘奴) 등을 보내 예방하게 하였는데, 북위의 광주(光州)에서 여노 등을 붙잡아 북위의 궁궐로 압송하였다. 그리고 남제와의 동맹에 대한 파기를 요구하여* 장수태왕은 북위와의 의리를 생각해서 이를 파기하고 북위와 더욱 통교하게 되었다. 이것은 남제와 손을 잡은 고구려가 북위를 외교적으로 압박하려는 부분을 미리 차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삼국사기(三國史記)』, 卷第 十八,「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 第 六, <長壽王> [본문] 六十八年, 夏四月, 南齊太祖蕭道成, 策王爲驃騎大將軍, 王遣使餘奴等, 朝聘南齊, 魏光州人, 於海中得餘奴等, 送闕, 魏高祖詔責王曰 ; 道成親弑其君, 竊號江左, 朕方欲興滅國於舊邦, 繼絶世於劉氏, 而卿越境外交, 遠通簒賊, 豈是藩臣守節之義, 今不以一過掩卿舊款, 卽送還藩, 其感恩思愆, 祗承明憲, 輯寧所部, 動靜以聞.


『삼국사기(三國史記)』, 卷第 二十六,「백제본기(百濟本紀)」, 第 四, <東城王> [본문] 六年, 春二月, 王聞南齊祖道成, 冊高句麗巨璉, 爲驃騎大將軍, 遣使上表, 請內屬, 許之, 秋七月, 遣內法佐平沙若思, 如南齊朝貢, 若思至西海中, 遇高句麗兵, 不進.


483년 이후 고조의 정권에서 문소황후는 후일 선무제(宣武帝)가 되는 원자를 낳게 되는데『위서(魏書)』「문소황후고씨열전(文昭皇后高氏列傳)」에는 문소황후에 대한 설화가 수록되어 있는데 수록되어 있는 문소황후의 설화는 대략 다음과 같다.


"그녀가 어릴 때 집안에 서 있는데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와서 뜨겁게 비췄다. 이를 피해 동서로 옮겼으나 햇빛은 따라와 비췄다. 같은 일이 수 차례 반복되자 부친 고양(高楊)은 요동(遼東) 사람 민종(閔宗)에게 그 뜻을 물었다. 그는 “이는 기이한 징조로서 말할 수 없이 귀하게 될 것이다”라고 답했다. “무릇 해라는 것은 임금(君人)의 덕이요, 제왕의 상징이다. 햇빛이 여인의 몸에 비치면 반드시 은명(恩命)이 미친다”라고 말했다."


『위서(魏書)』, 卷 十五,「文昭皇后高氏列傳」, 第 一 [본문] 她站在房子, 作為一個, 孩子來到窗口,艷陽高照熱。傷害從東, 到西移動,但隨著陽光的, 照射下閃耀。同樣的事情也幾次, 父親東高楊閔宗, 廖問其含義。 “我可以說,沒有耳朵作為, 古色古香的, 跡象.” 他說. “無論君人種美德,是主的, 象徵。陽光照在女人的, 身體有兩個恩命.” 他說.


여기서 나오는 요동(遼東)사람이란 것은 고구려인을 뜻한다. 이것은 문소황후가 고구려에서 왔다는 중요한 근거 중 하나이다. 당시 고구려가 요동을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고조의 집안은 요동에서 주로 살았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리고 470년대에 북위로 이동해 올 때 요동에서 출발하여 북위에 입국했다는 것으로 생각된다. 햇빛을 받으며 자란 황후에게서 태어났던 선무제는 어렸을 때부터 총명했고 효문제에게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일찍 태자로 책봉되었다.


488년에는 백제가 세력을 회복하여 산동성 지역에 군사를 사열하고 여러 요새들을 짓고 군 병력을 강화시키자 효문제는 이에 위기를 느끼고 산동성의 백제 요새들을 공격했다. 그러자 백제는 남제의 동맹하여 연합군으로 북위군과 맞서 격파했다. 백제, 남제 연합군과의 접전에서 패배한 북위는 489년 정월부터의 연합군 공격에 크게 위협을 느껴 그해 8월 효문제의 특사 형산(邢産)과 후영소(候靈紹)를 남제의 무제(武帝)에게 보내어 화평을 요청하고 남제의 무제가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남제의 건국 시조 소도성 이래 백제와 동맹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490년 4월과 11월 북위와 남제는 서로 사신을 파견, 다시 한 번 화평관계를 확인한다.


이제 백제와 남제 간의 동맹관계가 와해되었다고 판단한 북위의 효문제는 20만 대군을 동원하여 하북성 지구의 백제 군사들을 공격해 왔다. 그러나 백제는 북위군에 수성전을 펼치며 최대한 시간을 끌자 군량이 떨어진 북위군이 후퇴하는 틈을 타서 공격해 격파했다.* 같은 해 490년 풍태후가 죽자 효문제의 친정(親政)이 시작되었다. 풍태후의 문화 진흥 산업과 토지제도 등의 개혁은 풍태후 사후, 효문제 친정 때도 그대로 시행되었다.


* 『남제서(南齊書)』, 卷 五十八, 「百濟傳」,第 十七 [본문] 去庚午年, 獫狁弗悛, 擧兵深逼. 臣遣沙法名等, 領軍逆討, 宵襲霆擊, 匈梨張惶, 崩若海蕩. 乘奔追斬, 僵屍丹野. 由是嶊銳氣, 鯨暴韜凶, 今邦宇謐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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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당나라 고조 이연, 태종 이세민이 선비족 출신이라는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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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당나라 고조 이연은 서량 황실 후손이자 선비족의 후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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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선  |  Date: 2017-06-01  |  Hit: 657
84. 수 문제의 탄생설화와 문제의 가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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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선  |  Date: 2017-06-01  |  Hit: 493
83. 수나라 양견은 선비족 출신이고 수나라는 선비족 국가이다.
흔히 수, 당을 한족 국가라 하여 한족 국가 중 하나로 생각하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수, 당은 본연의 문화와 한족 문화를 입혀서 혼합문화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수, 당이 선비 본연의 색체를 점점 잃어가던 시기에 혈통적으로 선비의 혈통인 것은 수, 당의 시조들에만 해당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나라는 문제 이…
Name: 정길선  |  Date: 2017-06-01  |  Hit: 596
82. 북주 무제의 북제 정복과 수국공 양견의 등장
북주를 멸망시킨 이후 무제는 북제와 동맹국인 고구려를 공격했으나 대패하고 고구려에 대한 공격을 단념했다.* 온달 장군이 등장하여 북주를 격퇴했던 것이 바로 이 시기이다. 그리고 577년에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평원태왕을 개부의동삼사대장군요동군개국공고구려왕(開府儀同三司大將軍遼東郡開國公高句麗王)으로 임명했다.* 577…
Name: 정길선  |  Date: 2017-06-01  |  Hit: 446
81. 북주와 고구려의 외교관계
북주와 고구려간의 외교적 부분의 대외관계에서는 고구려가 먼저 서위 시절인 546년에 외교 및 교역사절을 보냈다. 그리고는 서로간의 큰 교류가 없었다. 그것은 고구려는 원래 북제와 영토와 국경을 마주했기 때문이고, 동위와 북제를 세웠다고 할 수 있는 고환이 고구려계이기 때문이다.* 북주가 세워진 이후 고구려와 북주의 관계 기…
Name: 정길선  |  Date: 2017-05-31  |  Hit: 486
80. 우문각의 북주와 우문호의 세도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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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557
79. 북제 북주의 돌궐과의 관계를 표현한 왜곡된 서술
북주, 북제는 돌궐이 두려워 해마다 막대한 물자를 바치고 돌궐은 그들 나라를 침략하지 않는 대가로 막대한 물자를 받아 발전한 관계라는 것이다. 돌궐과 북주, 북제는 지배와 피지배자 관계인데 돌궐이 북주에 조공하였다고 『주서(周書)』에서는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은 명제로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명제 2년(558년) 사근이 …
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505
78. 강력한 돌궐에 북주와 북제가 무릎을 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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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523
77. 초기 거란과 고구려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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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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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701
75. 우문선비의 요동, 요서 지역 정착과 모용선비와의 관계
우문선비는 강력한 세력을 일으키던 부족은 아니었으나 북위가 건국되기 이전에는 주로 요동과 요서지역에서 영위하였으며 주로 목축업을 하였다. 주로 목축업을 하던 지역은 오환의 옛 영토인 적봉과 서랍목륜하 지역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지역은 고구려, 부여와 주로 국경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었고 때로는 고구려의 보호를…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452
74. 탁발선비 연구에 대한 마무리와 탁발씨의 한족과 동화에 관하여
서위에 소속되어 있던 탁발선비의 일족은 북주가 건국된 이후 그대로 중원에 남았다. 우문선비가 건국한 북주는 인재 등용의 폭을 넓혀 오히려 전 왕조의 황족들인 탁발선비도 관직에 등용했다. 그리고 우문선비는 탁발선비의 과거 용맹성을 매우 높이 샀기 때문에 주로 무관직에 등용하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탁발선비의 황족이 …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375
73. 탁발선비의 투르크계 변환과 중원 정착, 중앙아시아의 선비계 민족 …
동위와 서위가 멸망한 뒤 동위의 탁발선비 세력들은 북제의 시조 고양에 의해 북쪽 변경인 회삭진(懷朔鎭) · 무천진(武川鎭) · 무명진(撫冥鎭) · 유현진(柔玄鎭) · 옥야진(沃野鎭) · 회황진(懷荒鎭)에 강제 추방되었다. 북제의 고양은 이들 6개 진에게 탁발선비의 황족들과 남은 씨족들을 감시하게 하였는게 앞서 언급한 6개의 진들은 효…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723
72. 북제와 북주의 성립
550년, 후경(後景)이 남조 양(梁)나라에 항복해 동위를 배신하자 고양은 모용소종(慕容紹宗)에게 후경을 공격하게 하고, 동위에 남아있던 후경의 처자식을 죽였다. 또한 양나라와 수호관계를 맺고, 후경을 고립상태로 몰아넣었다. (『양서(梁書)』, 卷七十,「侯景傳」, 第七 [본문] 王僧辯遣侯瑱率軍追景。景至晉陵,劫太守徐永東奔吳郡…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471
71. 북위, 동위와 서위로 분열되고 북제의 고씨 집안은 고구려의 후예이…
6진의 유력자 중에 고조의 일족들이 있었는데 6진의 난을 거쳐 북위의 멸망과정에서 고조의 일족 중에서 다시 권력중추에 올라선 자들도 있었다. 회삭진 출신으로 동위(東魏)의 실권을 장악하여 북제의 기초를 닦았던 고환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또한 무천진(武川鎭) 출신의 유력자는 무천진(武川鎭) 군벌, 일명 관롱집단(關籠集團)으로…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569
70. 북위 영태후의 섭정과 6진의 난
선무제의 뒤를 이어 선무제의 차남인 효명제(孝明帝)가 황제가 되었으나 6세에 불과해 영태후(靈太后)가 섭정하게 되었다. 영태후(靈太后)는 정치를 담당하면서 고조와 고조의 일족들을 일부 복권시켰고, 그들 고조의 일족들 중 고환(高歡)이 매우 영명하고 재능이 있어 발해 고씨 일족들은 다시 고환(高歡)을 중심으로 뭉치게 된다. 고…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576
69. 고구려계 고조의 북위에 대한 철권통치와 그의 죽음과 몰락
선무제는 외가 인척들에게 매우 극진하여 외삼촌인 고조 형제들에게 관직과 작위를 주고 외조부 고양(高陽)과 외조모에게도 작위를 추증하였다. 그리고 501년, 국정을 측근이나 외척인 고조(高肇)에게 맡겼고 선무제는 정치보다는 오히려 향락에 심취하여 지냈다. 게다가 불교에 입도하여 점차적으로 불교신앙에 빠지면서 오히려 정치…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400
68. 북위, 백제와의 전쟁과 효문제, 문소황후의 죽음
493년 수도를 평성에서 낙양(洛陽)으로 천도하고 대대적인 한족문화를 받아들이는 작업 시행했다. 이것은 풍태후도 하지 않았던 일로도 일찍이 풍태후의 섭정시기에도 이러한 제안이 들어온 적 있었으나 풍태후는 선비족의 정체성이 사라질까 우려하여 실행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효문제는 친정을 시작하자마자 가장 위험한 일을 자행…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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