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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gs.jpg  정길선  북방유라시아 유목사 산책
 
  북위 황실과 조정의 권력을 장악한 고구려 인
  
   작성자 : 정길선
작성일 : 2017-05-27     조회 : 487  

476년 고구려의 유력인사들이 대거 북위와 통교(通交)하면서 정착하여 살게 되었는데 그 중 고조(高肇)가 이와 같은 인물이었다. 고조(高肇)일가는 발해 고씨(撥海高氏)로 대대로 중원에 정착하여 살았던 완벽한 한족일가였다.


고조의 5세조인 고고(高苦)는 4세기 초 서진이 멸망할 무렵 난리를 피해 고구려로 갔다. 고고의 가문은 고구려에서 계속 살았고, 고조와 문소황후도 고구려에서 태어났다. 고조의 가문은 한족의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들은 100여 년 동안 고구려에서 살았고, 고구려에서 학문을 비롯하여 고구려의 풍습과 문화를 배웠다. 고조의 가문은 이미 고구려화된 중국인, 고구려인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고조가 470년대에 고구려에서 북위로 가자 곧 여위장군에 봉해지고, 여동생은 황후가 되면서 출세를 하게 된다.


북위로 온지 얼마 안 된 고조가 높은 출세를 하게된 배경에 대해서『위서(魏書)』에는 후한 시절 명문 집안이었던 발해 고씨였기 때문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100여년 이상 고구려에 망명생활을 한 고조의 가문이 단순히 명문집안이라는 이유로 고속 승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발해 고씨가 명문이라기보다 고조의 동생 고현(高顯)은 고구려대중정(高句麗大中正)이라는 관직을 하였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구려대중정은 고구려 출신 인물들을 천거하는 관직으로, 이는 당시 북위에 고구려에서 온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고조의 가문이 이들 고구려인을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고조의 집안이 고구려대중정이라는 벼슬을 받았던 것은 그들이 고구려인이라는 것을 말한다. 고조의 집안인 발해 고씨가 오랫동안 고구려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들이 비 고구려인이라 할지라도 고구려의 입장을 반영하는 친 고구려성향을 가졌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조가 출세하고 여동생이 문소황후가 되었다는 것은 이러한 강대국 고구려를 배경으로 하였기 때문이었다.


*『위서(魏書)』, 卷 九十九,「高肇傳」, 第 七十一 [본문]誰魏的, 高肇, 沒有採取高出勢, 天名文輯安, 漢國撥海高氏做的, 打擊。


고조의 친척인 고잠(高潛)*은 고구려에서 돌아오자 곧 북위로부터 개양남(開陽男)이라는 작위를 부여 받고, 부마도위가 되었다. 또 다른 친척인 고윤(高允)은 북위의 대표적인 학자이자 정치가로 대접받았다. 그리고 고조는 북위 효문제의 여동생인 고평공주(高平公主)와 혼인하여 상서공(上序公)이라는 관직에 올랐으며 고조의 인척들인 고구려 세력들이 잇달아 고위 관직에 올라 북위의 정권을 장악했다.


* 고잠의 조부인 고무는 형 고고와 함께 영가의 난(永嘉之亂)때 고구려에 망명하여 요동에 정착했다고 한다. 그러니 고잠 역시 고조와 함께 친 고구려적 성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 『世說假譎篇』,『文淵閣四庫全書電子版』, 北京 : 迪志文化出版, 1991.


이처럼 친고구려적인 인물들이 대거 국정에 진출했기 때문에 북위는 고구려에 대해 강경책을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참고로 수 양제 때 발해 고씨가 숙청된 것은 고구려에 대한 중원 측 국가의 대응책 변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볼 수 있다.『삼국사기(三國史記)』와『위서(魏書)』「고구려전(高句麗傳)」을 보면 양국 간에 정략결혼이 성사되려 했던 기록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하나같이 북위가 결혼을 먼저 청하고 고구려가 이를 거절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위서(魏書)』「정준열전(程駿列傳)」*과「고조열전(高肇列傳)」*을 보면 당시 고구려의 장수태왕이 먼저 북위에 정략결혼을 청하여 고조의 여동생인 문소황후가 북위의 효문제와 결혼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의 차이를 검토해보면『위서(魏書)』「고구려전(高句麗傳)」의 고구려가 북위의 결혼요구를 거절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은 사서의 기록을 오판하여 나온 것으로 보인다.


*『위서(魏書)』, 卷 百六,「高句麗傳」, 第 八十八 [본문] 馮太后, 使臣發送到高句麗, 高句麗王室的, 公主,獻文帝, 政略結婚, 是一個提議。高句麗王璉, 關於它“公主的出家婚姻的, 奧古斯都和, 成事場女會”,他花了便紙。這種認識是, 馮太后和, 尙書安王眞, 樂李國境, 敷派遣, 發送幣帛有...(중략)...接受高句麗王璉, 便紙發回魏兄弟的, 場女非常憤怒, 與死者馮太后, 發送假散騎, 常侍程駿, 高句麗王璉, 另一個種室, 發送任何女, 孩不同。


*『위서(魏書)』, 卷 六十五,「程駿傳」, 第 四十八 [본문] 延興末, 高麗王璉求納女於掖庭, 顯祖許之.


*『위서(魏書)』, 卷 九十九,「高肇傳」, 第 七十一 [본문] 高麗王璉, 一個請政略結婚, 第一魏高肇, 文昭皇后的, 妹妹結婚, 孝文帝的魏.


더욱이 중국 사가들은 기록을 할 때 위한휘치(爲漢諱恥)라 하여 한족의 수치스러운 기사는 숨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것으로 볼 때 고구려의 장수태왕이 북위에 먼저 결혼을 청하여 고조의 여동생을 북위 효문제와 결혼시켜 북위의 왕을 고구려의 사위로 삼음으로써 북위에 대한 우위를 확보하고, 북위의 정치에 일정부분 영향을 행사했다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추가적으로 연구가 필요한 것은 고조가 장수태왕과의 관계와 그가 고구려 왕실에 속한 자였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이것은 장수태왕이 북위에 대해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하고 고구려계 관료들이 북위의 정권을 잡았던 부분에 대한 신빙성을 확고히 할 수 있다.


이러한 부분 때문에 장수태왕이 죽자 북위의 효문제는 소위모라는 흰색 모자와 포심의라는 상례 때 입는 옷을 입고 동쪽 교외에 나가 곡을 하며 “고구려 장수왕이 돌아가셨다. 내가 비록 생전에 그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름은 널리 퍼져서 잘 알고 있다.” 고 애도했던 것이라 여겨진다.* 문소황후가 된 고조의 여동생은 선무제(宣武帝)를 낳아 고씨 가문과 북위 황실의 관계를 두텁게 하였고 고조의 조카인 고맹(高猛)은 장락공주(長樂公主)와 혼인함으로써 북위 황실과 3중의 혼인관계를 맺게 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卷第 十八,「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 第 六, <長壽王> [본문] 七十九年, 夏五月, 遣使入魏朝貢, 秋九月, 遣使入魏朝貢, 冬十二月, 王薨, 年九十八歲, 號長壽王, 魏孝文聞之, 制素委貌布深衣, 擧哀於東郊, 遣謁者僕射李安上, 策贈車騎大將軍太傅,遼東郡開國公高句麗王, 諡曰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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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인 문소황후 능의 비석 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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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 효문제의 고구려인 문소황후 고씨의 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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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인 출신으로 문소황후를 등에 업고 북위 조정을 농락한 권신 고조(高肇)

 

 
 
TOTAL 170
86. 당나라 고조 이연, 태종 이세민이 선비족 출신이라는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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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북주 무제의 북제 정복과 수국공 양견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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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우문각의 북주와 우문호의 세도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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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북제 북주의 돌궐과의 관계를 표현한 왜곡된 서술
북주, 북제는 돌궐이 두려워 해마다 막대한 물자를 바치고 돌궐은 그들 나라를 침략하지 않는 대가로 막대한 물자를 받아 발전한 관계라는 것이다. 돌궐과 북주, 북제는 지배와 피지배자 관계인데 돌궐이 북주에 조공하였다고 『주서(周書)』에서는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은 명제로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명제 2년(558년) 사근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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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강력한 돌궐에 북주와 북제가 무릎을 꿇다
유연이 중앙아시아를 지배하고 있으며 한창 전성기를 누릴 무렵, 서쪽에는 유연의 지배하에 있던 철륵계 부족들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간 유연의 관심이 북위 시기 까지는 중원에 쏠려 있었고 중원에 있는 세력들은 유연에 대한 경계를 철저히 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연과 중원 세력들 간의 알력다툼은 매번 유연의 패배로 끝이 났다. …
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523
77. 초기 거란과 고구려와의 관계
거란은 소수림왕 제위 시기인 378년에 고구려를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고 8개 부락을 탈취했다.*이것 역시 거란이 생기고 나서 단독으로 이웃을 공격하여 거둔 거란사에 있어서 최초의 승리였다. 그러나 거란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광개토태왕의 공격을 받아 종속국이 되고 말았다.   * 『삼국사기(三國史記)』, 卷第 十八,「고…
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482
76. 우문선비와 그 갈래 민족들 (거란, 실위, 해, 습, 지두우, 고막해)와 …
우문선비는 고구려, 부여와 국경을 마주한 관계로 많은 친연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공식적인 부분에서 모용선비가 고구려, 부여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지만 비공식적인 부분에서는 우문선비와 관계가 잦았으며 필요에 따라 이동하고 정주하는 부분이 더욱 강하였다. 여기에서 공식적인 부분이라는 것은 정식국가와 같이 사신 왕래 …
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701
75. 우문선비의 요동, 요서 지역 정착과 모용선비와의 관계
우문선비는 강력한 세력을 일으키던 부족은 아니었으나 북위가 건국되기 이전에는 주로 요동과 요서지역에서 영위하였으며 주로 목축업을 하였다. 주로 목축업을 하던 지역은 오환의 옛 영토인 적봉과 서랍목륜하 지역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지역은 고구려, 부여와 주로 국경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었고 때로는 고구려의 보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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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탁발선비 연구에 대한 마무리와 탁발씨의 한족과 동화에 관하여
서위에 소속되어 있던 탁발선비의 일족은 북주가 건국된 이후 그대로 중원에 남았다. 우문선비가 건국한 북주는 인재 등용의 폭을 넓혀 오히려 전 왕조의 황족들인 탁발선비도 관직에 등용했다. 그리고 우문선비는 탁발선비의 과거 용맹성을 매우 높이 샀기 때문에 주로 무관직에 등용하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탁발선비의 황족이 …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375
73. 탁발선비의 투르크계 변환과 중원 정착, 중앙아시아의 선비계 민족 …
동위와 서위가 멸망한 뒤 동위의 탁발선비 세력들은 북제의 시조 고양에 의해 북쪽 변경인 회삭진(懷朔鎭) · 무천진(武川鎭) · 무명진(撫冥鎭) · 유현진(柔玄鎭) · 옥야진(沃野鎭) · 회황진(懷荒鎭)에 강제 추방되었다. 북제의 고양은 이들 6개 진에게 탁발선비의 황족들과 남은 씨족들을 감시하게 하였는게 앞서 언급한 6개의 진들은 효…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722
72. 북제와 북주의 성립
550년, 후경(後景)이 남조 양(梁)나라에 항복해 동위를 배신하자 고양은 모용소종(慕容紹宗)에게 후경을 공격하게 하고, 동위에 남아있던 후경의 처자식을 죽였다. 또한 양나라와 수호관계를 맺고, 후경을 고립상태로 몰아넣었다. (『양서(梁書)』, 卷七十,「侯景傳」, 第七 [본문] 王僧辯遣侯瑱率軍追景。景至晉陵,劫太守徐永東奔吳郡…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470
71. 북위, 동위와 서위로 분열되고 북제의 고씨 집안은 고구려의 후예이…
6진의 유력자 중에 고조의 일족들이 있었는데 6진의 난을 거쳐 북위의 멸망과정에서 고조의 일족 중에서 다시 권력중추에 올라선 자들도 있었다. 회삭진 출신으로 동위(東魏)의 실권을 장악하여 북제의 기초를 닦았던 고환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또한 무천진(武川鎭) 출신의 유력자는 무천진(武川鎭) 군벌, 일명 관롱집단(關籠集團)으로…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569
70. 북위 영태후의 섭정과 6진의 난
선무제의 뒤를 이어 선무제의 차남인 효명제(孝明帝)가 황제가 되었으나 6세에 불과해 영태후(靈太后)가 섭정하게 되었다. 영태후(靈太后)는 정치를 담당하면서 고조와 고조의 일족들을 일부 복권시켰고, 그들 고조의 일족들 중 고환(高歡)이 매우 영명하고 재능이 있어 발해 고씨 일족들은 다시 고환(高歡)을 중심으로 뭉치게 된다. 고…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575
69. 고구려계 고조의 북위에 대한 철권통치와 그의 죽음과 몰락
선무제는 외가 인척들에게 매우 극진하여 외삼촌인 고조 형제들에게 관직과 작위를 주고 외조부 고양(高陽)과 외조모에게도 작위를 추증하였다. 그리고 501년, 국정을 측근이나 외척인 고조(高肇)에게 맡겼고 선무제는 정치보다는 오히려 향락에 심취하여 지냈다. 게다가 불교에 입도하여 점차적으로 불교신앙에 빠지면서 오히려 정치…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400
68. 북위, 백제와의 전쟁과 효문제, 문소황후의 죽음
493년 수도를 평성에서 낙양(洛陽)으로 천도하고 대대적인 한족문화를 받아들이는 작업 시행했다. 이것은 풍태후도 하지 않았던 일로도 일찍이 풍태후의 섭정시기에도 이러한 제안이 들어온 적 있었으나 풍태후는 선비족의 정체성이 사라질까 우려하여 실행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효문제는 친정을 시작하자마자 가장 위험한 일을 자행…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449
67. 북위 효문제, 백제와 전쟁에서 패배하다.
480년 고구려는 남제(南齊)의 태조(太祖) 소도성(蕭道成)과 통교하기 위하여 사신 여노(餘奴) 등을 보내 예방하게 하였는데, 북위의 광주(光州)에서 여노 등을 붙잡아 북위의 궁궐로 압송하였다. 그리고 남제와의 동맹에 대한 파기를 요구하여* 장수태왕은 북위와의 의리를 생각해서 이를 파기하고 북위와 더욱 통교하게 되었다. 이것은 …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449
66. 북위 황실과 조정의 권력을 장악한 고구려 인
476년 고구려의 유력인사들이 대거 북위와 통교(通交)하면서 정착하여 살게 되었는데 그 중 고조(高肇)가 이와 같은 인물이었다. 고조(高肇)일가는 발해 고씨(撥海高氏)로 대대로 중원에 정착하여 살았던 완벽한 한족일가였다. 고조의 5세조인 고고(高苦)는 4세기 초 서진이 멸망할 무렵 난리를 피해 고구려로 갔다. 고고의 가문은 고구…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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