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조는 중국 동남 연해를 중심으로 하는 해신신앙의 대상으로 천비(天妃), 미주낭마(湄州娘媽), 천후(天后), 천비낭낭(天妃娘娘), 천상성모(天上聖母) 등으로도 불리고 있다.
마조의 성은 임씨(林氏)이며, 북송 초기인 960년 태어난 실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두 가지의 설 중 하나는 987년인 28세에 홀로 미봉(湄峰)의 정상에 올라 승천하여 여신이 되었다고도 하며, 다른 하나는 16세 때 물에 빠져 구하지 못한 부친의 시신을 찾아 먼 바다를 헤엄치다가 지쳐 죽었고 시신은 마조열도의 남간(南竿, Nángān) 섬 해변에서 발견되었다는 설이 있다.
마조에 대한 여러 전설 중 현존 최초의 문헌은 남송 소흥(紹兴) 20년(1150) 료붕비(廖鵬飞)의 성돈조묘중건순제묘기(聖墩祖廟重建順济廟记)로, 이에 따르면 마조는 임씨로 미주인이며 무녀(女巫)로 사람의 화복을 미리 알 수 있는 예지력을 지녔다고 한다. 선화 5년(1123) 급사중(给事中) 노윤(路允)이 고려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황해를 건널 때 배가 풍랑을 만나 전복되며 다치고 일곱 명이 익사하였을 때 여신이 돛대에 올라 선무(旋舞)를 하며 구해주자 선원들은 그녀가 미주 여신의 혼령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마조는 북송 때부터 숭배를 받기 시작하여, 이후 복건, 절강, 광동성(廣東省) 등 연해로 전파되었고 대만, 유구(琉球), 일본, 동남아 등의 해외로도 퍼져나갔다고 전해진다. 즉 바다의 여신인 격이다.
그런데 월(越) 지역이던 베트남에서는 여신이자 모신(母神)으로 어우꺼의 신화가 있다. 락롱꿘은 어우꺼(Âu Cơ)와 결혼하여 100명의 아들을 낳았다. 1개의 알이 부화하니 100명의 아들이 알에서 나왔다고 하며, 이 알에서 나온 백 명의 아들들이 백월(百越)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락롱꿘은 아들 50명을 데리고 바닷가 지역을 중심으로 생활했고, 어우꺼는 나머지 50명의 아들과 산으로 가서 살았다 한다. 락롱꿘(Lạc Long Quân, 貉龍君, 기원전 2839년~기원전 2439)의 성은 맥(貉)씨로 이러한 성은 중국에서조차도 자주 나타나는 성은 아니다. 이를 인간의 성이 아니라 종족 이름으로 봐야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즉 맥(貉)족이 남하하여 신의 여인 어우꺼를 얻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100명이 태어난 것이다.
결국 산신(山神)이 된 어우꺼는 용이 되어 해안으로 들어가 남편인 락롱꿘을 만날 수 있다는데 이에 대한 전설을 참조하여 베트남과 월 지역 해안가에서는 바다의 여신으로 용이 된 어우꺼를 섬기기도 한다. 여기서 나타나는 월 지역 해안가는 복건, 광동, 광서 등을 말한다. 이는 마조가 나타나기 전, 해안을 보살피는 여신이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베트남 해안가에 뿐 아니라 전국이 부처님보다 여인의 모습을 한 관음보살을 최고로 여기고 있다. 게다가 사진에 나타난 것처럼 베트남의 해안 도시 다낭에는 세계 최대 높이의 관음보살상이 있다. 관음보살의 위치는 어부가 고기를 잡으로 나가는 해안가, 출항하는 항구를 바라보고 서있다.
그럼 마조를 보자! 마조의 생김새가 약간 불교와 혼합된 느낌이다. 관음보살의 얼굴과 비슷한 유형을 가지고 있다. 이는 어우꺼가 관음보살에 투영된 유형이라고 베트남 무속학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중국 남방 해안에도 그 이전부터 이러한 형태의 외형적인 형태의 여신이 10세기 전에 관음보살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마조라는 이름으로 10세기 이후에는 재탄생되었다.
어우꺼 -> 관음보살 -> 마조
이렇게 정리할 수 있는데 이들 해안가들의 특징은 모계사회가 발달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대만에 전파가 된 것이고 동남아, 오키나와, 일본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리고 같은 여신이라는 것과 한자의 음운이 비슷하다는 것 외에는 마조와 마고가 동일신이라는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따라서 마조와 마고는 다른 유형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곳 자이시에서 마조의 사당 몇 군데가 나의 방문리스트에 있다. 일단 연구는 어우꺼 -> 관음보살 -> 마조로 변모했다는 핵심적인 부분만 어느 정도 밝혀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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