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에게서 나왔으니 돌아가 하느님께 마치리"
1931년 로맹 롤랑이 마하트마 간디를 스위스 레만호반에서 만났다.
그 두 사람의 만남은 참으로 역사적인 만남이었다.
수십억을 헤아리는 인류지만 그 때 두 사람만큼 서로 뜻이 통하고
경애하는 진리의 벗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신문기자들도 모여들었다.
신문기자들은 두 사람에게 그들의 신관을 물었다.
마하트마 간디는 "하느님이 진리라기보다 진리가 하느님이시다"라고 말하였다.
로맹 롤랑은 "하느님은 인격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불변의 법칙이다.
그리고 그 법칙과 그것을 만드는 이는 하나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법칙은
법률의 법칙을 말한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법칙이라는 것은 산 법칙을 말한다.
그것이 하느님이다. 그리고 그 법칙은 변함이 없다. 그것은 영원한 것이다.
하느님은 영원한 원칙(原則)이다. 그래서 나는 진리가 하느님이라고 말한다" 라고 하였다.
아놀드 토인비는 "사랑은 내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하느님이다.
하느님이란 사랑이라는 것이 종교의 궁극적 진실이다." (토인비, 「미래의 잔존」)
로맹 롤랑의 원칙과 토인비의 사랑은 하느님의 속성을 하나씩 말한 것이다.
하느님은 유(有)와 공(空)과 영(靈)으로 된 유일절대한 전체 존재인데
원칙과 사랑과 영원의 속성을 지녔다.
하느님으로부터 와서 하느님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은 개체로 나서 죽어
전체로 간다는 말이다. 바다 속에서 물고기들이 나서 죽기를 되풀이하듯이
절대의 허공 속에 많은 개체들이 생겼다가 없어지기를 되풀이하고 있다.
개체가 생멸(生滅)을 거듭하는 것은 허공의 하느님이 살아 계시다는 증거인 것이다.
* 유영모(多夕 柳永模, 1890 ~ 1981)
*《多夕 柳永模 명상록》pp531~532, 2000, 도서출판 두레, 박영호 옮기고 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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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존재의 근원은 하느님입니다.
내 몸이 하느님 몸의 일부인 것처럼, 내 영혼 역시 하느님 영혼의 일부입니다.
다만 하느님은 전체로 존재하고 우리는 그 안에 개체로 존재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하느님을 "전체하느님"이라고 한다면, 우리들은 "개체하느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전체 얼나"라고 한다면 우리들은 "개체 얼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느님의 축소체이며 하느님이라는 거대한 생명체를 구성하고 있는
하나의 세포라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고 생각하는 등의 다양한
육체적, 정신적 느낌을 느낄 때, 하느님도 동시에 똑같은 느낌을 느낍니다.
'우리가 살고 있다'라는 것은 작은 하느님들이 살고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사람이 하늘'이라는 동학의 핵심은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느 한 사람도 소홀히 대해선 안됩니다. 하느님을 대하듯 소중하게
대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