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개역한글판 성경전서, 1979, 대한성서공회)
하늘과 땅을 지어내신 순서는 위와 같았다.
야훼 하느님께서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때였다.
And that is how the universe was created.
When the LORD God made the universe,...
(공동번역성서, 가톨릭용, 2002, 대한성서공회)
אֵלֶּה תּוֹלְדָוֹת הַשָּׁמַיִם וְהָאָרֶץ בְּהִבֵּרְאָם בְּיוֹם עֲשָׂוֹת יְהוָה אֱלֹהִים אֶרֶץ וְשָׁמָיִם: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 DEUTSCHE BIBELSTIFTUNG STUTTG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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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 성서의 창세기에는 두 가지의 창조설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1장부터 2장 4절 전반부까지가 한 가지이고, 2장 4절 후반부터는 또 다른 창조이야기가 서술됩니다.
성서 편집자들은 서로 다른 경로로 전승된 이 두 이야기 중 어느 한쪽만 남기지 않고 모두 보존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두 전승이 4절 안에 나란히 이어 붙여져 오늘날의 형태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1장부터 2장 4절의 전반부에 기록된 첫번째 설화에서 묘사한 창조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첫날 : 빛과 어둠, 낮과 밤
이튿날 : 하늘
사흗날 : 땅, 바다, 풀, 과일나무
나흗날 : 해, 달, 별들
닷샛날 : 물고기, 새들
엿샛날 : 집짐승, 길짐승, 들짐승, 남자와 여자
이렛날 : 쉼
이에 반해 2장 4절 후반부부터 2장 25절까지에 기록된 두번째 설화에서는, 아무 것도 없는 땅위에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들고 에덴동산에 살게 했으며, 이어서 들짐승과 공중의 새를 진흙으로 만들고, 아담의 갈빗대를 하나 뽑아 여자를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두 이야기는 전개되는 분위기나 순서, 내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통상 성서비평학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창세기 1장부터 2장 4절의 전반부까지는 P문서라 하고, 2장 4절의 후반부부터 4장까지는 J문서라 합니다.
J문서의 작성 시기는 대략 기원전 10세기 전후, P문서는 기원전 6세기 후반 포로기 무렵으로 보는데, 시기적으로 야훼(J) 문서보다 400년쯤 나중에 작성된 제사장(P) 문서가 창세기에서는 앞부분에 위치하게 된 것입니다.
P문서의 창조과정이 J문서보다 더 체계적이고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는 느낌을 주는 이유는 보다 후대에 편집이 되어 추가되었기 때문입니다.
אֵלֶּה תּוֹלְדָוֹת הַשָּׁמַיִם וְהָאָרֶץ בְּהִבֵּרְאָם
엘레 톨르도트 하샤마임 웨하아레츠 베히바르암
위 2장 4절의 본문 전반부는 "이것이 천지를 창조했을 때의 이야기이다"라는 뜻으로 P문서에 기록된 첫번째 창조이야기를 종료하고 있습니다.
בְּיוֹם עֲשָׂוֹת יְהוָה אֱלֹהִים אֶרֶץ וְשָׁמָיִם:
베욤 아쏘트 야웨 엘로힘 에레츠 웨샤마임
반면, 위 2장 4절의 본문 후반부는 "야훼 하느님께서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때에"라고 새로 시작되는 창조 이야기의 첫 운을 뗀 후에, 아담과 하와를 진흙으로 빚어 만드는 두번째의 창조설화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성서 개역한글판과 영어 성서 KJV에서는 2장 4절의 전,후반부를 확실하게 구분하지 않고 합해서 편집했습니다. 반면 최근 성서인 Good News Bible이나 가톨릭용 공동번역 성서는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후반부 시작되는 곳부터 아예 문단을 나눠 소제목으로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다. The Garden of Eden"이라 표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창세기에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창조 설화가 나란히 실리게 된 것은, 지금의 성서가 오랜 세월 다양한 전승과 사본들이 편집된 결과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보수 기독교인들처럼 성서에는 한 글자도 오류가 없다는 성경무오설을 고집하는 것은, 성서의 역사와 그 형성과정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매우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성서는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일반 문학작품과 마찬가지로 성서 역시 사람들에 의해 쓰여지고 편집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