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傳統 神槪念의 現代的 展開와 그 意義
‘한’ 의 意味와 傳統 神槪念
수 천년 겨레의 전통을 따라 내려오는 ‘한’이라는 말이 한민족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
우리나라의 이름이면서 우리가 입는 의복, 자는 집, 먹는 음식과 일상언어 등 조상들의 생활 깊숙이 자리잡고 우리들의 일상생활에까지 폭넓게 사용되고 있는 ‘한’이라는 말.
일찍이 안호상 선생(1902 ~ 1999)은 ‘한’이라는 말이 가진 22가지의 뜻을 연구해 밝혀 놓은 바 있습니다.
크다, 밝다, 하나다, 통일하다, 희다, 바르다, 높다, 같다, 많다, 길다는 뜻 이외에도,
전체, 처음, 하늘, 임금, 으뜸이다. 포용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한’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하나’ 와 ‘전체' 라는 뜻에 주목해 보고자합니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3대경전 중 하나인 三一神誥의 神訓을 보면,
크나큰 덕과 슬기와 힘으로 우주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리시는 하느님을 설명하고나서, “그대 본성에서 하느님 씨앗을 찾으시오, 그대 머릿속에 내려와 계십니다” 라고 하여 초월성과 내재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神개념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19세기 후반기에는 수운 최제우 선생(1824~1864)에 이르러 “사람이 하늘이라”는 人乃天 사상이 “사람 섬기기를 하늘 섬기듯 하라”는 인본사상의 발전으로 이어졌으며 20세기 초인 1909년에는 홍암 나철 대종사(1863~1916)의 노력으로 우리의 상고 하느님신앙에서 출발한 大倧敎의 重光을 선포하였으며,
현대에 들어서는 다석 유영모 선생(1890~1981)를 통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하느님뿐이요, 하느님은 온통(전체), 인간은 낱동(개체)이라는 얼기독론으로까지 神人合一의 전통적인 神觀이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어 나왔습니다.
이처럼 우리역사를 통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적인 신관을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하나이면서 전체인 유일의 하느님이 존재하고 있고 그 하느님은 각 개체인간의 내면에 또한 임재하고 계시니 인간도 또한 하느님이라 할 수 있습니다.
神觀의 現代的 展開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를 알기쉽게 그림으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커다란 원은 하느님, 작은 원은 인간을 뜻합니다.
하느님안에 인간이 들어가 있는 포함의 관계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절대타자가 아닌 포함의 관계로 인식하게 되면 “그대의 머릿골에 내려와 계십니다” 또는 “사람이 하늘이라”, “하느님은 전체요, 인간은 개체다”라는 말들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체인 하느님과 그 하느님안에 존재하는 개체인 인간의 존재양상이 자연계, 마음계, 영계, 영계핵의 네 가지 차원으로 전개된 것이 우주 전체의 모습인 동시에 하느님의 진정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몸인 자연계에 우리 육체가 있고,
하느님의 마음인 마음계에 우리 마음체가 있으며,
하느님의 영인 영계에 우리 영체가 있고,
하느님의 영핵인 영계핵에 우리들의 개체 영핵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과 인간은 전체와 개체라는 차이만 있을뿐, 존재양상은 동일합니다.
人間은 왜 存在하는가 ?
그렇다면 인간은 왜 하느님안에 존재하게 되었을까요 ?
이 물음은 “왜 하느님이 우주를 움직여 인간과 만물을 창조했을까 ?” 와 같은 물음입니다.
무시무종으로 존재하는 유일한 존재자 하느님이 어느 순간 “느끼기위한 목적”을 정했는네 이 것이 바로 “큰 힘”입니다.
물질 소립자와 원자 등이 끊임없이 회전운동을 하고, 분자와 분자가 결합하여 조직과 생명체를 만드는 것도 그들나름의 느끼기위한 목적이 외부로 나타난 결과이며, 식물과 동물이 영양분을 흡수하고 번식하며 자기 생명을 유지,존속시키는 것도 느끼기위한 본능이 食,衣,住와 번식기능이라는 육체적 본능으로 나타난 것이며,
우리 인간들이 무엇이든 보다 많은 것들을 보다 깊이있게 느끼고 싶어하는 것과 眞,善,美의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도 하느님의 “느끼기위한 목적”을 닮아난 영혼의 본능입니다.
이때 느낄 수 있는 대상이 하느님이외에 따로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기자신이 개체로 분리되어 인간개체와 하느님 전체라는 상대적인 관계를 통하여 느낌을 느낄 수 있는 방향으로 우주에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느끼기위한 하느님의 목적흐름은 자연계의 물질을 움직이고 결합하게 하였고 차츰 완성된 인간의 육체가 진화되도록 자연계의 생명력으로 작용하게 되었습니다.
인간 육체의 진화과정에서 핵인 두뇌가 모든 느낌을 고루 느낄 수 있게 진화된 찰라 그 육체에 비로소 영혼이 생기게 되었고 육체가 느끼는 느낌은 인간의 영혼이 느낌과 동시에 곧바로 하느님에게도 전달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태초에 하느님이 원하셨던 하느님과 인간사이의 느낌의 교류가 시작되면서 육체의 지나친 본능에 따라 죄악으로 점철되었던 인류사에 영혼의 眞,善,美 본능에 따른 양심과 도덕, 윤리와 철학, 종교 등 전체성의 앎을 향한 인간지성의 발달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의 “느끼기위한 목적“은 그 목적이 모두 충족되기 전에는 또 다른 목적을 정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수 많은 영혼이 생겨나더라도 무한하신 전체성의 하느님에게는 유한한 숫자에 불과한 것이므로 하느님의 “느끼기위한 목적”은 영원히 만족될 수 없으며, 그에따라 하느님의 “느끼기위한 목적”의 대상체인 인간 영혼도 영원히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유일무이한 존재일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체입니다.
하느님의 三位一體
이와같은 하느님의 “느끼기위한 목적”은 목적을 정했을 때 그 이후 전개될 우주역사를 순간적으로 모두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존재가 시공간을 초월하는 전체이기 때문이며 이것이 바로 “큰 슬기”입니다.
이렇게 목적을 정한 것이 한순간에 모두 기록되었다가 인간의 구체적인 시공간 역사속에 순차적으로 전개되어 나오게 된 이유는 하느님의 체질인 “원칙”이 있기 때문인데, 이것이 바로 “큰 덕”입니다.
이렇게 전체성의 하느님은 목적, 기록, 원칙의 3위1체로 존재하며, 당초 우주를 움직인 목적이 “느끼기 위함”이었기 때문에 인간으로부터 보다 올바르고 선하고 아름다운 느낌의 교류를 원합니다.
그에따라 인간세상에는 자연히 예술, 윤리, 도덕, 종교, 철학 등의 다양한 발전이 뒤따르게 되었고 궁극적으로 이 세상에 하느님과 같은 전체성을 실현하는 길인 “자연과의 합일”, “생명과의 합일”, 신과의 합일”을 추구해 온 살아있고 목적있는 역사를 우리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現代的 神觀의 意義
하느님과 인간사이의 포함적인 전체성 개념은 “개체와 전체”, “자유의지론과 결정론”, “우연과 필연”, “창조론과 진화론” 등 사상사적인 문제뿐만아니라 “환경오염과 공해”, “가치관 혼란” 등 인류사에 산적한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서구사회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궁지에 몰리게 된 절대타자 신관의 대표적 문제점인 원죄론, 타락론, 구원론 등은 죄악의 원인을 영혼과 육체본능의 상대성으로 파악하고 인간과 하느님을 타자로 분리해서 보지 않는 전체성의 신관에서는 모순과 오류 등의 문제점이 생기지 않으며,
시공간의 제약속에 있는 개체인간에게는 자유의지론으로, 시공간을 초월한 전체성의 하느님에게는 결정론으로 적용되는 전체성 개념은 인간이 역사를 포용력있게 이해하면서도 운명론에 빠지지 않고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인생관을 제공해 주고,
개체의 입장에서는 우연으로 보이는 것이 전체성의 입장에서는 개체간의 상호작용에 따른 연쇄반응으로 필연이 될 수 있는 이치를 제공함으로써 우연과 필연이 같은 동전의 다른 면임을 자각할 수 있게 하며,
하느님이 우주를 움직인 목적은 창조이며, 그 생명력이 창조의 과정을 진화로 이끌어왔으므로 없었던 형체와 사건이 생기는 것을 시간적 최초의 시점에서 얘기할 때는 창조라 할 수 있고, 물질간의 법칙에 따라 천변만화하는 자연현상을 시간적 과정의 관점에서 얘기할 때는 진화라 할 수 있으므로 창조와 진화 또한 유신론적인 개념의 선재여부와 해석하는 각도의 차이일뿐임을 입증할 수 있고,
인간의 이기심이 초래한 자연환경의 파괴와 환경오염 문제는 자연계가 하느님의 몸인 동시에 인간의 몸이라는 사실을 근거로 공생, 공존하는 새로운 환경인식의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으며,
전쟁과 살인, 부패와 부도덕 등 비인간성의 정점을 보여주고 있는 현대사회에 땅에 떨어진인간을 가치를 “개체하느님”의 차원까지 회복시켜 인륜과 도덕이 살아있는 아름답고 따뜻한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이제는 “個體하느님”의 時代
개체로 태어난 인간이 일상생활에서 습관, 체면, 위선, 허례허식 등의 “개체인습”을 떨어냄과 동시에, 개체로서의 한계를 드러내는 貪瞋痴(탐진치) 등 “개체의식”을 이겨내고 전체의식을 실천해 나가는 한 편,
항상 처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되 지나간 과거는 원칙에 따른 불가피함을 깨달아 이해와 용서를 베품과 동시에 반성의 기회로 삼는 태도는 전체성인 하느님과의 느낌의 교류를 더 깊고 강렬하게 해줍니다.
명상에서 지복이니 삼매니 하는 표현들은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전체성의 앎을 완성하여 모든 존재를 하느님으로 대접하고 전체의식을 실천하는 “개체하느님의 시대”에 들어왔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라든지, 하느님의 분신이라든지 하는 에두른 표현은 그치고 이제부터는 직접 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나는 “개체하느님”,
여러분도 “개체하느님”,
우리 모두 “개체하느님”
세계 모든 사람이 “개체하느님”.
모든 존재가 존중받고 존중해주는 “개체하느님”이라는 새로운 신개념으로 우리의 의식을 전환해야 할 때입니다.
하느님이 韓民族에게 바라시는 것
하느님이 이 시대 우리 한민족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
오랜 역사동안 숨겨지고 왜곡된 우리 역사의 진실을 찾아내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그를바탕으로 조상들께서 전하신 유구한 역사와 문화, 종교사상 등을 지구촌 모든 나라와 민족에게 전하여 모든 사람이 서로를 하느님으로 대하며 존중하는 평화로운 홍익인간의 세계를 실현하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 모두는 마음의 편견과 독단을 버리고 “개체하느님”으로 거듭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개인, 가정, 사회, 국가 등 실생활을 통해 “전체의식”을 실천함으로써 세계를 한 가족으로 이루려는 하느님의 사업에 적극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