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로서 난 者마다 罪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居함이요
저도 犯罪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貫珠聖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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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요한"(John the Apostle, CE 6 ~ 100)은 "세배대"의 아들로,
가버나움에서 베드로 형제와 함께 어부생활을 하다가 예수를 만나
그의 가장 나이어린 제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가 가장 사랑했던 제자로 불렸던 그는 90년 경에 "요한복음",
100년 경에는 "요한계시록"을 썼다고 전하는데, 요한의 서신 1,2,3편은
위 두 작품의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요한이 말년에 머물고 있던 에베소 등 소아시아 지역에는 예수가 육신으로 왔다는 것을
부정하는 마르시온(Marcion, 85? ~ 160?)의 假現說 등 靈知主義 사상이 널리 퍼져 있어서,
이를 반박하기 위해 예수의 成肉身(Incarnation)과 사랑을 실천하는 삶의 중요성에 대하여
강조하는 내용을 편지에 담았습니다.
특히 위 인용구절은,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으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된 신도들은 저마다 하나님의 "씨"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결코 죄를 지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데, 여기서 사람들이
죄짓지 않는 근거로 제시한 하나님의 "씨"라는 표현은 깊이 생각해 볼만한 단어입니다.
원본 헬라어 성서에는 스페르마(σπέρμα)라는 단어로 표현되어 있으며, 헬라어 사전적
의미로는 씨, 정충, 잔존자, 후손, 자손 등 문맥에 따라서 여러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4세기에 완성된 라틴어성경(Vulgata)에도 "semen"이라는 단어를 사용, 헬라어성경의 취지를
그대로 잇고 있으며, 권위있는 영어성경으로 불리는 KJV에도 "SEED"로 번역한 사례 등을 볼 때,
우리나라 관주성경에서 사용한 "씨"라는 단어는 성경 원문과 일치하는 정확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공동번역성서나 Good News Bible 등 현대어 성경에서는 하느님의 "본성"(very nature)
이라는 표현을 선호하는 추세입니다.
이상에서 살펴 본 하느님의 "씨"나 "본성"이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가는
신학적 입장에 따라 다양하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어디까지나
번역자들의 직관적이고 포괄적인 서술에 그치는 것이지 논리와 철학에 바탕을 둔 개념적
서술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만약 직관적인 동질성을 허용할 수 있다고 한다면,
佛敎에서 見性成佛(불성을 보고 부처가 되라)의 ''性'',
儒敎에서 天生德於予(하늘이 나에게 속알을 낳았다)의 ''德'',
三一神誥에서 自性求子 降在爾腦(너 자신으로부터 찾으라 네 머릿골에 내렸느니라)의 ''自性'',
퀘이커교(Quakers) 친우들이 말하는 inner light 즉 “내적인 빛”,
柳永模(1890 ~ 1981) 선생이 얘기한 ''얼나'' 등등
이 모두가 "씨"나 "본성"이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다양한 규정과 표현들을 감안할 때,
사람 안에 있다는 하나님의 "씨"와 "본성"은 실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그리고 그 "씨"와
하나님의 관계는 어떠한 존재론적인 개념으로 규정하고 어떻게 구체적인 언어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앞으로 상세하게 밝혀져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나라 東學의 경우를 참고로 든다면,
"사람이 하늘이다"(人乃天)라고 주장한 본뜻은 사람이 하늘님이라는 의미이므로,
絶對他者神觀을 부정하는 동학의 입장으로 볼 때, 사람은 결코 하늘님의 밖(외부)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은 당연히 하늘님 안에 존재하는 包含의 관계가 되므로,
하늘님을 존재론적 "全體"라고 가정하면 사람은 "個體하늘님", 하늘님 자신은 "全體하늘님"
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유영모가 깨달은 "얼나" 역시 하느님인 "전체 얼나"와 개개 사람인 "개체 얼나"로
좀 더 구분해서 생각해 볼 수 있으며,
불교의 "性"과 유교의 "德", 삼일신고의 "自性", 퀘이커들의 "내적인 빛"이라는 표현에도
"個體와 全體"라는 개념을 동일하게 적용함으로써, 좀 더 명확한 개념과 설명이 가능할 수 있도록
일상의 언어로 다듬는 작업이 앞으로도 필요하다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