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多夕日誌 공부] 1955. 4. 30. 토요일. 맑음.
유영모 (1890 ~ 1981)
낮에 金玄님 오다. 앞서 생각한 七思中에서 卽席에 銳觸
이 息思消이었다고 말씀. 因하야 七思를 적어 둠.
1. 瞑思誠
2. 居思直
3. 息思消(吸生呼命)
4. 寢思寧
5. 房(琴瑟造端)思後生
6. 郊(無聊時中倍思親 空虛感上獨樂園)思事天
7. 食思割愛
내게 七思가 이러나기는 "食物은 割愛로만 보겠다" 는데서 비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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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玄은 金興浩(1919 ~ 2012) 교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의 號인 鉉齋에서 앞글자 鉉을 두개의 글자로 쪼개서 재미있게 표현한 말입니다.
아래에 설명할 七思에 대하여는 柳永模 선생과 김흥호 사이에 많은 이야기가 오간 것으로 보입니다.
글 내용으로 볼 때 김흥호가 칠사 중에서 息思消를 제일로 친 것이라 보입니다.
이런 사정이 있어 말나온 김에 七思를 일지에 기록하게 되었다고 첫머리에 말하고,
문장 마지막에 "음식을 먹는 것은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만 보겠다"하는 데서부터
七思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적었습니다.
"七思"는 유영모 선생이 본인의 "하루"를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만든 7가지의 생활지침입니다.
● 瞑思誠 명사성
눈을 감고 명상에 들면 오직 하늘의 뜻만 생각한다.
선생이 하루종일 잣나무 널판 위에 앉아 묵상하며 깨달은 하늘의 말씀을 자필로 기록한 것이 "多夕日誌"입니다.
1955년 4월 26일(화)부터 1974년 10월 18일(금)까지 근 20년에 가까운 기록이 들어 있습니다.
● 居思直 거사직
앉거나 눕거나 걷거나 일하거나 일상생활을 함에 있어서 언제나 머리를 똑바르게 하고 허리를 곧게 세운다.
머리는 하늘과 몸을 이어주는 매개체, 척추는 그 몸의 기둥이라 했습니다.
머리와 허리를 곧게 세운다는 것은 어떠한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 息思消 식사소
숨쉴 때는 호흡을 고요히 다스려 깊이 들이고 내쉰다.
선생은 새벽에 일어나 냉수마찰, 맨손체조와 함께 단전호흡을 하였습니다.
선생의 앉는 법은 가부좌(跏趺坐)가 아니고 궤좌(跪坐)라고 합니다.
무릎 꿇고 앉은 상태에서 다리를 좌우로 벌려 엉덩이가 바닥에 닿게 하고 무릎은 서로 붙입니다.
앉은 사람이 볼 때 삼각형 모양이 됩니다. 처음엔 가부좌보다 고통스럽지만 선생은 곧 익숙하게 행했습니다.
● 寢思寧 침사령
잠잘 때는 딱딱한 나무판에 반듯하게 누워 편하게 잔다.
선생이 묵상이나 취침할 때 사용한 나무판은 길이 210센티, 폭 90센티, 두께 9센티의
잣나무 널판으로 喪家에서 쓰는 널감이었습니다. 단순, 검소, 소박한 구도자의 삶을 상징합니다.
● 房思後生 방사후생
자녀를 얻고자 할 때만 남녀 관계가 필요하다.
배우자에게 욕정을 품는 것은 죄악이라고 선생은 생각했습니다.
1941년 부인 金孝貞(1893 ~ 1980)과 남녀 관계를 끊는 解婚을 선언하고
이후 40년 동안 아내를 누이로 대하고 살았습니다.
선생의 지나칠만큼 철저한 금욕생활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 郊思事天 교사사천
명상에서 벗어나 주변을 거닐 때에는 하늘섬김만 생각한다.
한가할 때는 어버이 하느님을 더욱 생각하고 마음이 허전할 때는 홀로 동산에 거닐기를 즐겨했습니다.
몸과 마음의 빈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 지 생각해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 食思割愛 식사할애
식사할 때마다 小食과 사랑나눔을 생각한다.
선생은 인간이 이겨내기 가장 힘든 본능을 食慾으로 보았고,
식사를 줄이는 것이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을 정복하는 첫걸음이라 여겼습니다.
또한, 내가 적게 먹어서 남긴 음식은 타인에 대한 사랑이라 여겼습니다.
선생은 51세가 되는 1941년 2월 17일부터 40년 동안 하루에 한 번, 저녁 한 끼만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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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게 생각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몸가짐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몸가짐을 바르게 가지기 위해선 자기 생활의 질서부터 바르게 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의 현대인들도 참고할 만한 좋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