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도 모르게 울음이 북받쳐버린 거지.,
그 리고 나서 절을 수 없이 하고 난 다음에 '저 석벽에 새겨져 있는 천부경을 창호지로 탁본(拓本)을 해서 어떻든 이것을 뜻이 있는 사람에게 전달해가지고서 보급을 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서 손바닥으로 그 이끼 낀 천부경을 수 없이 쓰다듬어 보고 또 눈물을 닦고 눈물로서 쓰다듬어 보고 그리고 나서 자기가 살던 토굴로 돌아온 거예요.
그런데 행여나 길을 잃어버릴까봐 석벽 바로 밑에 돌탑을 막 쌓은 거예요.
탑을 쌓고 또 오면서 돌멩이로 돌무더기를 만들고......다시 찾기 위해서.
그래 가지고서 자기 토굴까지 돌아온 겁니다.
자기 토굴에 있는 창호지하고 먹물, 솜하고. 탁본할 준비를 잔뜩 한 것이죠.
그리고 하룻밤을 자고서 다음 날 ···, 말이 잠이지 잠도 안 온 것이지, 얼른 새벽이 되면 가고 싶어 가지고서······, 그 장소를 향해서 간 거예요.
한참 열심히 가는데 길을 잃어버린 거예요.
아무리 찾아도 자기가 군데군데 돌무더기를 쌓았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해가 저물어 버렸어요, ‘이래선 안되겠다. 아직까지 내가 정성이 부족해서 천지신명께서 나에게 이것을, 그 귀중한 석벽에 새겨져 있는 천부경을 탁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지 않는가 보다’하고서 반성을 하고 '내가 이래선 안되겠다. 다시 돌아가서 정성을 드리고 난 다음에 다시 찾아야 겠다.'고 마음을 가다듬고···이미 그 때 계연수 이 분은 너무 흥분했는지도 모르지....(허허허)
그러다 보니까 좀 이성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죠.
그리고 나서 찾는 걸 포기하고 다시 자기 토굴로 온 거예요.
토굴로 와 가지고서 그 때부터 완전히 음식을 먹는 것을 모두 끊어버린 거예요.
그리고서 3일 동안 온갖 정성을 다해서 기도를 열심히 하였습니다.
3일 동안 기도를 다 하고 난 다음에 다시 또 탁본할 수 있는 것을 모두 챙겨 가지고서 편안한 마음으로 이제는 그 때처럼 뛰지도 않고 천천히 하나 하나 찾아서 간 거예요.
그렇게 가다 보니까 전에 자기가 조그맣게 돌을 쌓았던 흔적을 하나하나 발견할 수가 있었던 거예요.
결국 절벽에 새겨진 그 장소까지 도달한 거예요.
그리고 나서 손으로 그 글자 속에 있는 이끼를 그야말로 정성들여서, 행여나 그 글자가 조금이라도 손상이 될까봐, 하나하나 뜯는 거예요.
이끼를 뜯고 난 뒤, 먹을 칠해서 탁본을 한 장 한 장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또 한 장을 하려고 하니까 바람이 불고 안개가 끼고 일기가 상당히 안 좋은 거예요.
그래서 더 이상 탁본을 할 수가 없어서 한 장만 탁본한 채 일단 자기 토굴로 온 것이죠.
그러면서 이 탁본한 천부경을 어떻게 하면 가장 확실하게 뜻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고서 고민을 하기 시작한 것이죠.
그 리고 고민한 끝에 어떠한 결론을 내렸냐고 하면은·····, 서울, 그 당시 ‘한성이죠’ 한성에는 단군 할아버지를 모시고 공부하는 종교가 있다고 하는데 그 종교가 왜놈들에게 많이 핍박을 받는다고 하더라. 그런데 그래도 몰래 숨어서 공부를 하는 곳이 있다고 하더라. 이것을 그곳에 전달해주면 그 사람들이 이걸 보고 나서 충분히 해석할 수 있지 않겠는가?
거기에 있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또 훌륭히 도(道)를 닦는 사람들도 혹 있을지 모르니까........' 하는 생각을 갖고서 궁리를 한 것이죠.
그리고 나서 자기가 그 천부경을 탁본한 경위를 주욱 적은 거죠, 적고 나서 자기가 잘 알고 있는 동료 가운데서 주로 전국적으로 약을 팔러 다니는 사람에게 탁본한 천부경 한 본 하고 그걸 주면서 신신부탁을 한 거예요.
'내가 묘향산에 들어가서 이 귀중한 것을 발견했는데 서울에 가면은 단군을 모시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는 교당(敎堂)이 있다고 하는데 그 교당을 찾아가서 전해달라' 고 인편으로 보낸 거예요.
인편으로 그것을 보내 가지고서 결국 한성에 있는 단군 교당에 전달된 것이죠.
그 전달된 게 지금까지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해방이후 6.25사변을 겪으면서 탁본한 원본이 어느곳에 숨겨졌다고 하는데 그 사실여부를 확인키 위해 하루 빨리 찾아야겠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운초 계연수라고 하시는 분을 묘향산 석벽에서 천부경을 탁본하고 세상에 알린 그 위치에서만 평가를 할 수 있는가 하면 그건 아니에요.
어떤 것이냐고 하면····, 지금 우리 나라에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일반 사람들에게 우리 민족 특히 고대사 부분에 있어 가지고서 획기적으로 사고 방식을 바뀌어 놓을 수 있게끔 하는 귀한 책이 나왔어요.
그게 <한단고기(桓檀古記)>라고 하는 책입니다.
한단고기!
지금 시중에 가면 한단고기 원본을 가지고서 번역한 책이 한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물론 원본은 똑같죠.
그럼 이 한단고기가 도대체 어떻게 해서 세상에 드러났는가?
한단고기는 어떤 개인이 쓴 책이 아닙니다.
고려 시대 그리고 조선 시대까지 당시에 전해져 내려왔던 우리 민족의 고대사에 관한 책을 엮은 거예요. 즉, 네 가지 책입니다.
뭐냐고 하면 삼성기(三聖記), 단군세기(檀君世紀), 북부여기(北夫餘記), 태백일사(太白逸史) 이 네 가지의 책을 엮어 가지고서 책이름을 ‘한단고기’라고 칭한 거예요.
그럼 단군세기나 북부여기나 태백일사나 삼성기 이 책은 뭐냐고 하면 누가 생각해가지고 쓴 게 아니라는 거예요.
이미 신라 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에 있던 책인데 그 책이 끝까지 없어지지 않고 결국 운초 계연수라고 하는 그 분의 손에 까지 들어가게 된 거예요.
물론 그 책보다도 수없이 귀한 책들이 엄청나게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네 가지의 책이 합본되어 가지고서 이 세상에 드러났다는 것은 우리 민족에게 지나간 고대사의 역사를 밝히는 데 있어서 너무나 귀중한 자료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운초 계연수라고 하시는 분이 어떻게 해서 이 책을 갖게 되었으며, 어떻게 해서 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는가를 알아보겠습니다.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그 책들 가운데서 단군세기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고려 시대의 학자인 행촌 이암(杏村 李灸)이라고 하는 유명한 사람이 썼어요.
이 분은 당시 우리나라 고대사의 일부분중에서 많이 내려온 것들을 모아 다른 책들을 이용해서 많이 쓴 거예요.
그런데 그러한 그 분의 책들은 그 분의 후손들에 의해서 간직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간직한 후손들이 일종의 역사 공부를 하는 모임을 가졌었죠.
그 모임을 한 일원 중에서 운초 계연수도 있었어요. 그 역사공부를 하는 일원이었어요.
그 때 이미 운초 계연수라고 하는 사람이 많은 사람-일원-들 가운데서 학식으로나 또는 인품으로도 가장 뛰어났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결국 그 분에게 이 네 가지의 책을 맡긴 것이지요.
자기가 그것을 맡은 후, 그 책을 주욱 봤을 때 책 내용이 감히 그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그야말로 너무너무 우리 민족의 역사에 대해서 상세하게 나와 있더란 거예요.
그런데 그 책을 함부로 세상에 냈다가는 그 책이 오히려 더 핍박을 받아야 하는 실정이었어요,
왜정시대니까....